소설리스트

二章. 꽃피던 달빛 아래 (3/15)

二章. 꽃피던 달빛 아래

어머니를 뵙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사는 것에 미련이 있어서도, 눈 맞은 사내가 따로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한 번만,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와 얼굴을 맞대고, 그 무릎 한 번만 베고 누워 도란도란 얘기하고 싶었을 뿐.

친정에 한 번만 보내 주었어도 달아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반보기(양쪽 집의 중간 거리에서 만나는 것)라도 하게 해 줬다면, 스스로 목을 매달아 기꺼이 정려문을 서게 했을 것이다.

살아도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은 세월, 그렇게 끝내도 아쉬울 것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하아. 하아.”

하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멀리 보이는 솟을대문을 바라보았다. 붉게 퍼지는 노을을 이고, 눈을 감고도 그릴 친정집이 저 앞에 있었다.

태어나고 자란 곳. 어머니가 계신 곳. 그립고 또 그리웠던, 나의… 집.

“어머니….”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문지르며 하연은 그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

탁.

탁주 한 사발이 금세 비워졌다. 빈 그릇을 내려놓은 손이 안주 삼아 나물을 집어 올렸다.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고개를 젖히고 입을 벌려 나물을 삼키려던 손이 그대로 굳었다.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나운 눈길에 양윤의 눈이 끔뻑거렸다.

짙은 눈썹에 쫙 찢어진 서늘한 눈매를 알아본 그가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서둘러 나물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무헌의 손을 잡아끌어 앉혔다.

“너도 한잔해. 여기 탁주 맛이 아주 기가 막혀.”

“네가 지금 여기서 신선놀음할 때야?”

“탁주 두 잔에 신선놀음이면, 개나 소나 다 신선이다.”

양윤이 털털거리며 웃었다. 무헌은 푸우, 한숨을 쉬었다.

“이러는 동안 네 동생은 호랑이 밥 될 뻔했다. 알아?”

그사이 탁주를 한 잔 더 받아 오던 양윤이 그 말에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무슨 소리야, 그게? 호랑이 밥이라니. 우리 양선이가 왜?”

“왜긴. 네 말대로 밤에 돌아다니는 걸 내가 데려다 놨다. 범골까지 갔더라고, 그 어린 게.”

“범골? 우리 양선이가?”

“그래, 범골.”

양윤이 입을 뻐끔거렸다. 무헌은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나저나 네 동생 열셋 맞아?”

“…….”

“열세 살 맞냐고.”

멍하게 있던 양윤이 무헌의 추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응. 열셋 맞지.”

“도저히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말했잖아, 애가 일찍 컸다고. 덩치만 컸지 나이는 한참 어리지.”

“…….”

“뿐인가? 몸은 스물만치 자랐어도 생각은 고작 일고여덟 살이잖아. 그런 아기를 애먼 데 시집을 보내 가지고 소박이나 맞게 하고. 에헤이, 괘씸한 것들! 퉤!”

어린 누이 얘기만 나오면 양윤은 쉽게 흥분했다. 그가 분을 삭이듯 탁주를 들이마셨다.

“이젠 죽으나 사나 내가 끼고 살 거야. 친척이고 나발이고, 암튼 다 믿을 거 못 되는 거야. 주모! 여기 탁주 한 사발 더, 억!”

주모를 향해 높이 쳐든 팔을 무헌이 툭 잡아 내렸다.

“핑계로 술 처먹지 말고 일어서지? 지금 가야 어둡기 전에 도착할 거 아냐.”

“한 사발 얼른 먹고 그만큼 빨리 걸으면 되지.”

“암튼 먹을 줄만 알지, 하는 건 아무것도 없는 똥 손.”

“그러지 말고 너도 맛 좀 봐.”

히죽 웃은 양윤이 부침개 한 귀퉁이를 쭉 찢어 건넸다.

“그런데 넌 여기 웬일이야? 볼일 있었어?”

눈앞의 부침개를 잠시 바라보던 무헌은 입을 벌려 받아먹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덕삼이네 다녀왔다.”

“꿩 잡은 거야?”

“내가 누구냐?”

“역시.”

고개를 끄덕이던 양윤이 대뜸 소리를 쳤다.

“그러니까 너는 그 실력 썩히지 말고 무과를 보라니까! 언제까지 그렇게 잡일만 할 거야?”

“…….”

“네 할머님이 이걸 아시면 지하에서 얼마나 속상하시겠냐고.”

“할머니는 건드리지 말지?”

정색을 하고 으르자 양윤이 울먹이며 입을 비죽거렸다.

“누군 얼자라 과거 보고 싶어도 못 보는구만. 너는 볼 수 있으면서도 왜 그러고 염병이야! 한양 갈 돈은 내가 마련해 준다니까!”

“벌써 취했냐? 너도 무과에 응시하면 될 거 아냐.”

“몸치가 어떻게 무과를 봐? 손놀림도 몸놀림도 다 똥이라고 구박할 땐 언제고!”

시끄러워 귀를 후빈 무헌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개소리 그만하고, 얼른 마시고 동생이나 데려가.”

“…….”

“양선이가 하루 동안 먹은 게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 그거 다 셈으로 따지면 한 푼, 두 푼, 세 푼….”

“그런데.”

탁주를 손가락으로 휘휘 젓던 양윤이 고개를 기울였다. 입술을 앞으로 쭈욱 내민 것이 제법 심각한 얘기를 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아까부터 자꾸 우리 양선이 얘기를 하는데, 네가 얘를 언제 봤어? 다섯 살 이후로는 못 보지 않았어? 내가 다시 데려온 다음에는 너 일이 바빠서 우리 집에 못 들렀잖아.”

무헌이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어제 봤다니까. 범골을 돌아다니고 있는 걸 데려다 놨다니까.”

“그러니까 그 범골 말이야.”

양윤이 눈을 끔뻑 감았다 떴다.

“양선이는 어제 나랑 있었는데?”

“무슨 소리야, 양선이는 어제 나랑 있….”

성토를 하는 무헌의 앞으로 노란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여인이 불쑥 나와 섰다. 양윤이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섰다.

“여기 있잖아, 우리 양선이.”

양윤의 양 볼이 볼록 솟았다.

“하얀 적삼은 이제 싫다고 해서 새로 사 입혔어. 어때, 예쁘지?”

양윤이 뿌듯하게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무헌은 몇 번이나 입술을 꿈틀거리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얘가… 양선이?”

“응. 얘가 양선이. 어릴 때랑 얼굴이 많이 달라졌지?”

“…너랑 하나도 안 닮았다며?”

“응. 그랬지.”

“하나도 안 닮아서, 예쁘다며?”

“응! 것도 그랬지.”

“…….”

“양선아, 인사해. 알지? 오라비의 단짝, 무헌 오라버니다.”

양윤이 자랑스럽게 씨익 웃었다. 그 옆에서 누가 봐도 양윤의 여동생임을 알 수 있는 양윤과 꼭 닮은 양선이 옷고름으로 입을 가리며 도도하고 새침하게 인사를 건네 왔다.

“자, 자네 얘긴 많이 드, 들었네. 난 구, 구양선일세.”

“…….”

“생긴 것이 머, 머, 멀끔한 게 꼭, 내 서방님 가, 같군.”

“…….”

무헌은 도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양윤의 손에 들려 있던 탁주는 그가 마셨다.

***

양윤의 집으로 옮겨 온 무헌은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탁주를 받아 와 간단히 술상을 차린 양윤은 무헌의 얘기를 듣자마자 흥분을 했다.

“뭐어! 그럼 그거 보…!”

놀라 소리를 지르던 양윤이 양선이 잠들어 있는 방을 흘끔거리곤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보쌈이잖아. 과부 보쌈.”

그 말에 무헌의 눈이 커졌다.

“뭐어! 그게 어떻게 과!”

얼결에 고함을 치던 무헌도 얼른 소리를 죽이며 이를 악물었다.

“그게 어떻게 과부 보쌈이 돼? 큰일 날 소리 하고 있어.”

모르는 여인을 친구 동생인 줄 알고 재워 주고, 치료해 주고, 먹인 건 흥미로운 이야기인 것이 분명하나, 그걸 보쌈이라고 하다니.

무헌은 기가 차서 탁주를 들이켰다. 양윤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소복 입고 범골 서낭당 근처에 서 있었다며.”

“…그랬지.”

“그걸 자루를 씌워 짊어지고 왔고.”

“…그, 그치.”

“그게 과부 보쌈이지! 보쌈이 뭐 별거야!”

술이 올라 코끝이 빨간 양윤이 재차 강조했다. 무헌은 빈 잔을 든 채 하얗게 굳었다. 까만 밤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양윤이 갑자기 무릎을 치며 웃었다.

“이야, 천하의 목석 이무헌이 이렇게 색시를 얻는구나. 그렇게 뻗대더니 과부를 보쌈해 와 첩을 삼을 줄이야.”

“첩은 무슨. 내 형편에 무슨 첩이야?”

기겁해 윽박을 질러도 양윤은 꿈쩍도 안 했다.

“그럼 아예 조강지처로 삼든가.”

“뭐어?”

양윤은 아예 바닥을 때리며 박장대소했다.

“이무헌이 장가를 다 가네. 너한테 목매던 용순이는 어쩔 거며, 봉희는 또 어쩔 거야. 마을 사람들이 들으면 아주 기절을 하겠다.”

“…….”

“아이고, 웃겨. 아이고, 배야. 세상 진짜 요지경이네.”

듣자 듣자 하니 정말.

“넌 이게 웃겨!”

버럭 고함을 치자 양윤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나 입언저리가 실룩거리는 게 웃음을 참는 것이 여실했다. 무헌은 그를 무시하고 초조하게 다짐했다.

“가서 사정을 설명해야지. 설명하면 이해해 줄 거야.”

그러자 양윤이 무헌의 빈 잔에 탁주를 채우며 슬그머니 다독였다.

“그냥 포기해. 받아들여.”

무헌이 노려보자 양윤이 정색을 했다.

“한방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며.”

“그거야….”

“그럼 꼼짝없이 부부가 된 거야. 빼도 박도 못하는 신랑 각시가 된 거라고. 이건 나라님도 어쩌지 못하는 거야. 이유 불문 그냥 데리고 살아야 하는 거라고.”

“하지만….”

“기껏 보쌈해 와서는 나 당신이랑 살기 싫소오 하면, 넌 천하의 몹쓸 놈이 되는 거야. 너 그거 중죄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억울한 숨을 토해 내느라 무헌의 어깨가 굽었다.

“너도 너지만 여인은 또 어떻고. 네가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면, 그건 그 여인더러 목매달고 죽으라는 소리야.”

“무슨.”

무헌이 눈을 치뜨자, 양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뭘 몰라도 한참 모르네. 생각해 봐.”

그가 술상에 팔을 얹고 몸을 기울였다.

“과부 몸으로 서낭당에 서 있던 것만도 큰 용기이자 가련하기 짝이 없는 팔자인 건데, 보쌈해 온 놈한테 또 소박을 맞아? 에헤이, 그러고도 어느 여인이 배짱 좋게 살아가겠어?”

“…….”

“너 그거, 그 여인을 두 번 죽이는 거야. 네 손으로 목만 안 매달았지, 나무에 줄 매달아 놓고 등 떠미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양윤이 탁주 잔을 들어 무헌의 손에 쥐여 주었다. 무헌의 입가로 잔을 떠밀며 한마디를 보탰다.

“예쁘다며.”

충격으로 멍한 무헌의 눈이 양윤을 찾아왔다.

“몹시 곱다며.”

“그, 그야….”

양윤이 눈을 맞추며 씨익 웃었다.

“축하하네, 이 서방.”

***

무헌은 터덜터덜 걷다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까만 밤하늘에 멀끔한 달이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술 때문인가,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달아, 뭐 좋다고 너는 이리 휘영청 밝으냐. 밤새야, 어쩌자고 너는 이리 처량히 우느냐. 바람아, 손끝이 살랑거리는 것이 꼭 여인 같구나. …그래, 그 여인….”

사립문 앞에서 차례로 두 발이 섰다. 그가 그어 놓고 간 선을 빤히 눈에 담았다.

그 여인에게서는 참 좋은 냄새가 났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처럼 고운 향기가.

우습다. 우습게도 왜 지금 그 향기가 이리도 생각나는지….

무헌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고개를 들었다.

그래. 아무리 가진 것 없고,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이름뿐인 양반이라고는 하나, 명색이 사내가 되어 여인을 함부로 내칠 수는 없는 법.

나 이무헌! 비록 뜻하지 않게 맺은 연이지만, 사내의 도리를 다하겠노라.

쌀밥에 고깃국과 비단옷은 못 해 주어도 낭군으로서 성심을 다해 부인을 책임지겠노라.

그래, 그게 사내지. 그게, 도리고.

“보시오, 부이이…ㄴ.”

작심하고 낮게 내지르던 말이 컴컴한 집 안 속으로 사그라들었다.

설마, 벌써 잠자리에 든 건가?

방 앞으로 다가오던 무헌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댓돌 위에는 그녀에게 내어 준 짚신이 없었다. 곱게 개여 툇마루 위에 놓여 있는 옷은 그가 입으라며 건넸던 옷이었다.

그리고, 사례금처럼 그 위에 오롯이 놓여 있는 비녀는, 분명 그녀의 까맣고 윤기 나는 검은 머리를 탐스럽게 쪽 찌고 있던 것이었다.

‘갔구나.’

그 생각이 치고 들어왔다. 머리가 아닌 가슴을 툭 건드리고 갔다. 어깨가 늘어졌다. 왜인지 맥이 빠져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그가 빨아서 널어놓았던 저고리와 치마 자리가 휑했다. 달빛은 거침없이 마당으로 들어섰다.

“잘됐네, 뭐.”

한참 만에 무헌이 툭 내뱉었다.

제 발로 떠나 줬으니 잘된 거 아닌가.

“응. 잘됐어.”

하마터면 졸지에 장가갈 뻔했네.

다시 한번 되뇐 후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섰다. 방문을 닫기 전에 바라본 마당이 유독 휑했다. 무헌은 일부러 방문을 꾹 닫았다.

아아. 진짜.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뒤척이던 무헌은 등이 배겨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어둠 속에서 애꿎은 이부자리를 노려보았다. 오늘 아침 그녀가 개어 놓은 그대로 방 한쪽에 고이 놓여 있는 상태였다.

“그래, 내가 내 이불을 왜 못 깔아? 내 것이잖아. 원래부터 내 거였잖아.”

입술에 힘을 주고 이부자리를 단번에 펼쳤다. 베개를 놓고 그 위에 큰대자로 드러누웠다.

이불이 풀썩 올라왔다 내려가며 고운 향이 코를 스쳤다. 때마다 게을리하지 않고 깨끗이 빨아 덮고 자는 이불이었지만, 이 향은 그래서 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겨우 하룻밤 내어 준 게 다인데, 뭐 이리 향이 깊게 배는 건지. 여인의 살 내음이 원래 이렇게 단 건가?

이상하게 허리 아래가 꿀렁거렸다. 어린 동생이라 여겨 제쳐 놓았던 것들이 새삼스레 면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예쁘다며.”

“몹시 곱다며.”

그래, 참으로 고왔다.

얼굴은 어찌나 하얀지 달빛이 없어도 방이 환했다. 조그만 얼굴에 커다란 눈과 동그란 코와 볼록한 입술이 오밀조밀 들어가 있는 게 신기했다.

까맣고 말간 눈동자로 빤히 바라볼 땐 할 말을 잊었다. 내내 불퉁하다가 환히 웃었을 땐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보았다.

손끝이 닿았을 땐 또 어떻고. 개나리꽃을 넘겨주다가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손가락이 찌르르 울려 몸이 잘못된 줄 알았다.

달았다. 손끝도 달고, 낭랑한 목소리도 달고, 가까이서 느낀 숨결도 달았다. 사람이 아니라 폭신한 목화솜을 부풀려 고운 향을 입힌 것만 같았다.

조그맣고 가느다란 손. 하얗고 작은, 발….

그러고 보니….

“아직 다 아물지 않았을 텐데.”

발바닥의 상처가 꽤 깊었다. 그 발로는 혼자서 오래 걷기 힘들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떠난 거야?”

또다시 일어나 앉았다. 서운함에 화가 났다.

개떡도 만들어 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고, 옷도 빨아 줬는데. 뭐가 서운해서 말도 없이 떠났느냔 말이다.

가만, 설마….

“모자란다더니, 혼자서도 잘 풀고 나왔네?”

모자란 취급을 해서 그런가?

“이제 보니 말도 별로 안 더듬고.”

말더듬이라고도 불렀다.

“자꾸 그러면 볼기 맞는다?”

으어어, 손버릇 나쁜 사내인 줄 알고 도망간 건가!

게다가….

“고맙긴.”

그녀가 남기고 간 비녀에 눈이 갔다.

“네 오라비한테 다 받아 낼 건데.”

쪼잔하기까지 했다!

무헌은 비녀를 손에 쥔 채 소리 없이 절규했다.

나, 그렇게도 못난 사내였던가!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발로 허둥지둥 도망가게 만들 만큼.

그녀가 입었던 옷을 바라보았다. 그게 그녀라도 되는 듯 쏘아보았다.

허름해도 너무 허름한 옷.

너무 가난해서, 차였… 나?

“에이씨!”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길도 모르는 주제에 다 늦게 어딜 가. 헤매다 호랑이한테 물려 가면 어떡하려고.”

관솔가지를 둘둘 묶어 횃불을 만들었다. 아무리 그가 마음에 안 들어서 도망간 여인이라고는 해도, 위험한 산길에 여인 혼자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범골이 위험한지도 모르고 서 있던 여인이다. 분명 엉뚱한 데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게 뻔했다.

“도망을 갈 거면 환한 아침에 가든가. 아니면 길을 물어보고나 가든가.”

그러다가 또 범골로 들어서면 어떡하려고. 그러다 또 보쌈이라도 당하면 어떡하려고. 그 사내가 이상한 사내면 어떡, 하려고.

갑자기 짜증이 확 솟았다.

“어우우, 이 모지리. 어디 가서 또 험한 일 당하고 있는 거 아냐?”

씩씩거리며 문을 나섰다.

“누가 붙잡는대? 나도 나 싫다는 여인은 싫다고. 가겠다면 기꺼이 보내 주겠다고.”

쉼 없이 툴툴거렸다. 그러면서도 발걸음은 뛰듯이 빨랐다.

***

두 시진은 지난 듯했다. 아니, 그보다 더 되었을지도 모른다.

웅크리고 앉은 하연은 길게 늘어진 제 달그림자를 바라보며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초도 켜지 않은 방 안은 밤이 되자 서늘했다. 하연은 옅은 바람에 부르르 떠는 문풍지 너머로 눈길을 보냈다. 이제라도 어머니의 발소리가 들릴까, 귀를 기울이면서.

처음 대문을 들어섰을 때 천 서방이 그녀를 알아보았다.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녀의 차림새를 훑기를 잠시, 서둘러 안채로 들어가 그녀가 왔음을 알렸다.

곧장 달려 나올 거라 생각했던 부모님의 얼굴은 뵐 수가 없었다. 잠시 뒤 돌아온 천 서방은 하연을 사랑채로 이끌었다.

“손님이 와 계십니다. 예서 기다리시면, 손님 가시는 대로 오시겠다 합니다.”

“…….”

“송구하오나, 그때까진 예서 나오지 마시라 당부하셨습니다.”

서운하지만 이해했다. 시집간 딸이 몸종도 거느리지 않고 이런 행색으로 연통도 없이 나타난 것은 충분히 흠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과부 아닌가.

혼자 된 딸이 시댁 허락도 없이 먼 길을 홀로 온 것은 온갖 추문을 덧붙이기에 좋은 얘깃거리였다. 신랑 없는 젊은 과부는 숨만 크게 쉬어도 품행을 두고 눈초리를 받는 법.

그런 식으로 명경 같고 대쪽 같은 친정의 고아한 명예에 누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귀한 딸이 그리 산 걸 아시면 아버님은 얼마나 진노하실까. 어머니는 얼마나 속상해하실까.

그걸 알기에 모두 고할 생각도 없었다. 잠시 피접을 왔노라 아뢰고 머물 셈이었다.

단지 그동안의 고단했던 삶을 친정집 구들장을 베고 누워 위로받고 싶을 뿐. 그저 당장은 간절히, 너무도 간절히 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을 뿐이었다.

그거면 아무 여한이 없었다.

“어머니…. 아버님….”

까무룩, 고개가 떨어졌다. 하연은 눈을 밀어 떠 달빛이 들어오는 방문을 보았다. 달그림자가 한참이나 기울어 있었다. 또다시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이다.

입술을 꾹 물었다 놓았다. 떨리는 손을 뻗어 천천히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커다란 사랑채건만 기척 하나 없었다. 시중을 들 노비도, 소식을 전해 줄 일꾼도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휑한 달빛이 그녀에게 머물렀다. 하연은 눈을 내려 댓돌 위에 놓인 신을 보았다.

그녀가 신고 온 낡고 해진 짚신이 아닌, 곱고 고운 꽃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아아.”

하연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수절 과부의 몸으로 신을 수 없는 신. 신어서는 안 되는 꽃신이 제 발 아래 놓여 있었다.

신으라는 뜻이 아니었다. 벗어 놓고 가라는 뜻이었다. 죽을 자리에, 예서 죽었다고 그곳에 남겨 놓고 가라는 뜻이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어머니도, 아버님도 날 보러 오지 않으시는 거다.

죽으라고 보내온 서러운 꽃신보다 그것이 더 슬펐다.

날카로운 칼끝이 가슴을 가르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심장이 뜯기는 것 같아 가슴을 움켜쥐었다.

단지 얼굴 한번 뵙고 싶었을 뿐인데. 어머니 손 한번 잡고 싶었을 뿐인데….

이제 알겠다. 나의 산목숨은 그 어디서도 죽은 것만 못함을.

먼 길 달려온 딸 얼굴 한번 보는 것이 그리도 가문에 누가 되는 것일까. 나는 대체 얼마나 짐이어서, 모두가 내 목숨 하나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일까.

홀로 된 것이 내 죄가 아니거늘. 아녀자의 도리에 한 치도 엇나감 없이 지키고 또 옭매며 살았거늘.

나의 무엇이 부족하여서, 대체 무엇이 그리 죽을죄라서, 죽기 전에 어머니 손 한번 잡아 볼 수 없단 말인가.

넋을 놓은 채로 걸음을 뗐다. 나가라고 열어 놓은 문을 넘고 또 넘어, 꽃신을 손에 든 채 하염없이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걸었다. 밭을 헤매고 산을 올랐다. 달그림자가 기울고 또 기울도록 길이 아닌 곳으로 걷고 또 걸었다.

그사이 버선이 해지고 뚫렸다. 발이 긁히고 까였다. 아픈지도 몰랐다. 절룩거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허무했다. 시커먼 절망이 치덕치덕 발에 감겼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리 살았던가. 나는 대체, 무슨 삶을 살다 가는 것인가. 살기는 한 것인가. 제대로 살기는, 한 것이냔 말이다.

얼마나 걸어왔을까, 하연은 더 이상 걸을 기운이 남아 있지 않을 무렵, 커다란 나무를 보고 멈춰 섰다. 말없이 바라보기를 한참, 마치 몸에 밴 예법을 행하듯 가지고 온 끈을 차분히 묶어 나뭇가지에 걸었다. 그리고 꽃신을 그 아래 정갈히 놓은 후, 나뭇등걸을 밟고 올라섰다.

“…흐으윽!”

놓아 버린 마음이건만 뜨거운 눈물은 흘렀다. 울음을 삼키며 하연은 고리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래요, 가져가세요. 그 귀한 열녀문을 이제 내어 드릴 테니. 그러나 내 무덤가에서 통곡은 마셔요. 이토록 명예로운 죽음이니 춤을 추셔요.

“고합니다.”

울음 섞인 목소리가 찬 공기 속으로 퍼졌다.

“전 예조 판서 정 재 자 인 자 여식인 하연, 전 좌의정 민 무 자 중 자 장손인 정후에게 시집와 6년을 홀로 살다가 조상님께 가오니, 미천한 목숨이나마 받으시어 부디 두 가문을 귀히 여기는 데 써 주시옵소서.”

매듭을 잡아당기며 동시에 발을 떼었다. 발끝이 허공에 뜨며 목이 조였다. 기도가 타는 듯 옥죄었다. 두 발이 공중에서 버둥거렸다.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간다. 이제 가는 거다. 서럽고 서러운 삶, 이제… 이제 끝인 거다….

어느 순간 몸이 붕 떴다. 불에 덴 듯 뜨거웠던 목에서도 고통이 사라졌다.

‘죽는 거구나. 이렇게 죽는 거구… 응?’

쿵. 발바닥이 땅에 세게 닿았다. 지끈한 통증이 타고 올라왔다. 하연은 감고 있던 눈을 떠 보았다. 그리고 소스라쳐 고함을 내질렀다.

“하아. 정말 너무하네.”

사납게 치켜뜬 눈이 코앞에 있었다. 하연의 몸을 바닥에 내려놓은 그가 분을 삭이듯 숨을 내쉬었다.

“그런다고 정말 목을 매냐?”

보고도 믿기지 않아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그가 얼굴을 구긴 채 밧줄을 끊어 내 들이밀었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이야? 아무리 내가 싫어도, 그런다고 죽어?”

“…….”

“아니 내가 그렇게, 그렇게 죽을 만치 싫냐고!”

하연의 입이 말을 내놓지 못하고 뻐끔거렸다. 무헌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주위를 왔다 갔다 했다.

“나랑 한 달을 살았어, 두 달을 살았어? 달랑 하루 살아 놓고. 적어도 석 달은 살아 봐야 할 거 아냐!”

“…….”

“그랬는데도 싫으면 그때 가면 되잖아. 아니, 가란 게 이렇게 가란 게 아니라 내 말은, 그러니까 나랑, 내가 잘할지도 모르니까, 아니, 잘해 줄 테니까 일단 살아 보면, 어우우!”

“…….”

“암튼 내 말은, 일단 보쌈을 당했으면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나랑 살아야 할 거 아니냐고. 목숨이 장난이야? 사람 목숨이 장난이냐고!”

거칠게 머리를 흐트러뜨린 그가 눈을 부릅뜨고 고함을 쳤다. 쩌렁쩌렁한 고함이 산을 울렸다.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거칠게 부서졌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연은 그것에 왈칵 무너졌다. 화를 내는 그의 모습이 뿌예지더니, 차오른 눈물이 뺨으로 흘렀다.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그런데도, 알겠다.

“흐윽….”

얼음장이 된 가슴에 따스한 화로를 껴안은 것 같았다. 웅크리고 있는 등을 따뜻한 손이 쓸어 주는 것 같았다. 핏줄이 설 만큼 꽉 움켜쥐고 있던 손과 발이 하나씩 펴지는 것 같았다.

결국 울음이 터져 버렸다.

“흐으윽. 으으윽.”

“뭐야, 왜 울어?”

눈이 휘둥그레진 그가 손을 내저었다.

“나 화낸 거 아냐. 아니, 화낸 거는 맞는데, 그래서 화낸 게 아니라 나는… 어이 참, 암튼 그런 거 아니야. 아니라고.”

그가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면서도 성을 내는 사내가 무섭기는커녕 마냥 고마웠다.

그래, 고마웠다.

“으어어엉!”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얼굴을 한껏 구기며 울었다. 뜨거운 눈물이 코와 입으로도 쏟아졌다. 닦을 생각도 않고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한참에 한참을 울어 결국에는 목이 쉬고 진이 빠졌다. 깨닫고 보니 온몸이 땀으로 흠씬 젖어 있었다.

그렇게 지쳐서, 입을 벌려 젖은 숨만 쌕쌕 내쉬고 있는 그녀의 앞에 무헌이 꽃신을 내려놓았다.

“자.”

그가 잡고 일어서란 듯 손을 내밀었다. 하연은 말끄러미 그를 올려다보았다.

일어설 기운도 없었다. 아니, 움직이는 방법도 잊어버린 듯 모든 게 텅 비어 버렸다.

가만히 보던 그가 안 되겠는 듯 몸을 숙여 앉았다. 그러고는 한 발, 한 발 직접 신을 신긴 후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어엇.”

찢어진 버선이 미끄러지며 다시 주저앉았다. 놀란 그가 발을 살피더니, 너덜너덜해진 버선을 벗겨 내었다.

“뭐 하는….”

순식간에 드러난 맨발이 부끄러워 치마로 가렸다. 그러자 그가 눈을 구겼다.

“새삼. 이미 다 봤는데.”

하연은 발끈해 대꾸했다.

“반가의 여인이 밖에서 맨발을 드러내고 있는 건 있을 수 없는, 뭐 하는, 어어!”

양손을 겨드랑이에 넣은 그가 단번에 그녀를 들어 올렸다. 그에게 들려 공중에 뜬 몸은 두 걸음을 지난 후 내려왔다.

“대체 이게 무슨 무례하…!”

눈을 부릅뜨고 따지려던 하연은 하얗게 떨어지는 꽃잎에 눈이 머물렀다. 머리 위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달빛을 머금은 꽃잎은 소리 내어 웃는 것처럼 크고 환했다. 숨결 하나에 꽃 향이 폐부까지 들어찼다.

겨우 두 걸음.

겨우 두 걸음이었다. 겨우 두 걸음 옆에 이렇게도 고운 꽃을 머금은 나무가 있었다.

눈만 돌리면 되는 곳에, 고개만 돌리면 되는 곳에, 꽃잎 하나하나가 달인 것처럼 밝은 나무가 있었다.

새삼 콧등이 시큰했다.

겨우 이 두 걸음 옆에서, 나는 얼마나 어둡고, 서럽고, 또 아팠던가.

“……!”

문득 발등이 간질거려 눈을 내렸다. 무헌이 그녀의 발등에 꽃잎을 덮어 주고 있었다. 발아래는 눈송이 같은 연분홍 꽃잎이 수북했다. 맨발이 꽃잎 속으로 파묻혔다.

“이러면 안 창피하지?”

무헌이 올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하연은 말을 잊었다.

이자는 대체. 이 사람은 대체.

그가 성큼성큼 걸어가 꽃신을 가져왔다. 하연은 그를 눈으로 좇다가 다시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처음이었다. 맨발로 무언가를 밟아 보는 것은. 살면서, 이리 맨발로 땅을 디뎌 보는 것은.

신기해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았다. 차가운 땅의 기운을 움켜쥔 꽃잎들이 발아래서 간질거렸다. 그런데도 포근했다. 꽃잎이 이리 포속포속한 것인지를 태어나 처음으로 알았다.

이제는 정말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세상에.’

저도 모르게 벅차올라 무헌을 보았다. 신을 가져와 쭈그리고 앉은 그는 신 속에 꽃잎을 가득 채웠다. 그러더니 그녀의 발을 조심히 들어 신을 신겼다. 발등에도 꽃잎을 수북이 덮었다.

“이제 됐지?”

그가 고개를 들어 뿌듯하게 웃었다. 하연은 말을 잊고 빤히 그를 보았다. 그러자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울어서 좀 못생겨졌지만, 어쩔 수 없지.”

그가 해탈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젠 미우나 고우나 내 각신데.”

…뭐?

“자.”

벌떡 일어선 그가 이번에도 손을 내밀었다. 턱을 치켜든 무헌의 입꼬리가 싱긋 솟았다.

“이제 가자, 집에.”

“…….”

하연은 가만히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울보가 될 것 같아 겨우 숨을 들이켜 참았다.

꽃잎 하나가 그의 손바닥 위로 내려와 앉았다.

하연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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