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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章. 이심전심 (12/15)

二章. 이심전심

어째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던 하연은 결국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앉았다. 어째서 오늘 이토록 무헌이 보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달이 밝아 그런가, 못 본 지 오래돼 그런가.

닷새 전, 지난여름에 내린 비로 가을 작물에 수해를 입은 농가가 많다고 하여 멀리 시찰을 나갔다. 치세 잘한다고 나라에서 상도 받고 승급도 되고 관할하는 지역도 넓어져서, 어디 산 너머로 시찰이라도 가면 어떨 때는 보름도 넘겼다.

백성들 삶을 꼼꼼히 챙기는 건 좋으나 연례행사로 독수공방하게 되는 심정은 또 달랐다. 맥없이 머리맡에 둔 수틀을 끌어와 매만졌다. 좋아하는 범이며, 참매며, 다 수놓았건만.

주훤이를 낳을 때도 무헌은 멀리 나가 있었다. 새로 부임한 관찰사를 맞이하는 자리라 빠질 수가 없어서였지만, 만삭의 아내를 두고 멀리 가야 했던 무헌은 가는 내내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었다.

그러다가 낭군 없는 걸 어찌 알고 갑작스레 산통이 오고, 밤새 홀로 고전하는 동안 어찌나 무헌이 그립던지. 어쩔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멀리 있는 무헌이 밉고 또 서운했었다.

그러나 그 밤. 동이 터 오기 직전의 푸른 어둠을 뚫고 땀범벅인 그가 달려와 “각시야, 나 왔어!”라고 소리쳐 주었을 때. 하연은 장사라도 된 듯이 힘을 주었고, 조그맣고 어여쁜 사내아이는 아비의 목소리에 세상 밖으로 나와 울음을 터뜨렸다.

준마가 달리다 포기한 산길을 홀로 내달려 왔다는 그.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에, 커다랗고 까끌한 손. 그 손으로 제 손을 맞잡으며 각시 고생했다며 우는 사내가 저는 또 왜 그리 좋던지. 남이야 보든 말든 꺽꺽 소리 내어 우는 사내가 제 눈에는 세상 누구보다 듬직하게 보였었다.

그 이후로 무헌은 모윤을 낳을 때쯤에는 일이 생겨도 온갖 핑계를 대며 곁에서 꼼짝도 안 했다. 유별나다고 수군거려도 한번 노려봐 준 후, 들은 척도 하지 않고서.

그러게, 달이 밝아 그런가 보다. 꽃 같은 아이 하나 더 낳고 싶지만, 각시 고생해서 싫다며 눈치 보던 무헌이 이 밤 유난히 그리운 걸 보면. 정작 하연은, 혼자인 무헌에게 가족을 많이 많이 만들어 주고픈데 말이다.

“어….”

아침에 받은 무헌의 서찰을 접으며 다시 이불을 덮고 누우려던 참이었다. 밖에서 들리는 기척에 귀가 쫑긋 섰다.

평화롭고 인심 좋기로 유명한 마을에, 그것도 수령의 안채에 감히 침범할 못된 이는 없을 텐데. 하지만 연이어 들리는 부스럭 소리에 심장이 뛰는 건 막지 못했다.

순찰을 하던 군졸들일까, 아니면 바지런한 일꾼들일까. 아직 닷새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 담긴 무헌의 서찰을 가만히 가슴에 품으며 귀를 세우던 때였다.

기다란 그림자가 훌쩍 마루로 올라서더니 방으로 다가섰다. 창호지 밖에 멈춘 사내의 모양을 본 하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몽둥이부터 찾았다. 어찌하라고 했더라? 크게 팔을 휘둘러 힘껏 내려치라고 했던가?

“각시야.”

소곤거리는 소리에 몽둥이를 쥔 채로 움찔 굳었다. 눈을 끔뻑이기를 잠시, 하연은 성큼성큼 걸어가 방문을 열었다.

“세상에. 여긴 어떻게. 이 밤에 어찌.”

말을 채 끝낼 새도 없이 무헌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안으로 들어섰다. 보고도 믿기지 않아 얼굴만 뜯어보고 있자, 히죽 웃은 무헌이 하연을 당겨 안았다.

“너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여전히 몽둥이를 한 손에 든 채로 와락 품에 안겼다. 크고 너른 품. 찬 밤공기가 묻었는데도 따뜻하기만 했다.

그제야 반가운 게 실감이 나서 하연은 무헌의 허리를 껴안았다. 몽둥이가 방바닥에 떨어져 굴렀지만 내버려 두었다.

“그렇다고 이 시간에. 사람들 보면 어쩌려고.”

“그래서 몰래 왔지. 한 시진만 있다가 얼른 돌아가야 해.”

나무랄 때는 언제고, 한 시진 후에 간다는 말에 서운해졌다. 밤새 잠도 안 자고 말을 달려 왔을 이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손으로 뺨을 만지고. 닷새 만에 본 것뿐인데 일 년 만에 본 사람들처럼 애틋하게 서로를 더듬었다.

“시간이 모자라니 두 번만 할게.”

찹쌀떡으로 붙인 듯 하연을 꼭 끌어안고 있던 무헌이 비장하게 말했다. 살 맞대고 살아온 세월이 길어 이제는 뭘 말하는지 척하면 알아들었다. 달빛에 빛나는 무헌의 눈을 보며 하연이 기함해 물었다.

“한 시진에 두 번?”

무헌이 반색을 했다.

“세 번 해도 돼?”

두 번이나 하냐는 물음이었는데 저렇게 나온다. 척하면 알아듣기에는 아직은 못 닿은 곳이 있나 보다.

“먼 길 달려야 하잖아. 세 번이나 하고 어찌 가려고.”

“내가 달리나? 말이 달릴 텐데. 말은 길에서 달리고 나는 여기서 달리고. 각자의 소임을 다하면 되는 것이지.”

그러게, 먼 길 달려온 낭군 내칠 정도로 모질지 못했다. 오늘따라 유난히 보고 싶었던 사람이라 하연도 두 번이든 세 번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입술에 입술을 쪽 붙였다가 떼자 무헌이 씨익 웃으며 겉옷을 풀었다. 제 손으로 수를 놓아 고이 입혔던 옷을 함께 푸는 하연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손은 바지런히 옷자락을 끌어 내리면서도 눈은 서로에게서 잠시도 떼지 않았다.

봐도 봐도 예쁜 내 각시. 봐도 봐도 좋은 내 낭군. 두 팔 뻗어 안으면 내 몸같이 포근하고 내 살처럼 소중한 사람.

달빛에 알몸 된 것도 모르고 그렇게 또 한동안 보았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살이 닿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정인.

누가 알까. 살 비비고 산 세월이 얼마인데 아직도 이이만 보면 설레고 좋은 이 마음을.

가슴을 움켜쥔 무헌의 입술이 어깨에 닿았다. 한 손이 등허리를 쓸고 내려가 엉덩이 골 사이로 파고들자 하연은 어깨를 움츠렸다.

“흐응….”

옅은 신음에 반응한 손이 골 사이를 비벼 왔다. 뜨끈한 숨결이 귓가에 닿더니 귓불을 질끈 깨물었다. 축축하게 젖은 허벅지 한쪽을 들어 무헌이 제 허리에 감자 몸이 붙었다. 불뚝하게 서 있던 그의 물건이 맞닿은 아랫배와 아랫배 사이에 갇혀 꿈틀거렸다.

뜨거운 숨결. 아래를 파고드는 손. 살과 살이 비벼지는 젖은 소리.

“하응….”

크고 단단한 것이 아래를 파고들 땐 저도 모르게 또 소리를 내었다. 무헌이 혀를 쪽 빨았다가 놓으며 몸을 쳐올렸다.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하연은 고개를 젖혔다.

문틈으로 스며든 달빛이 참으로 고왔다.

꽃 같은 아이가 그 빛 타고 내려올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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