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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화 (1/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01화

@U

1화

#1장 회귀

"과잉기억증후군이라고요?"

20대 초반의 강혁은 의사 앞에 앉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190은 되어 보이는 큰 키에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는 마치 운동선수 같은 모습이다.

강혁은 의아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눈앞의 의사를 바라보았다.

"말씀해주신 증상들을 고려하면 그거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

강혁의 눈썹이 힐끗 올라갔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현재 환자분의 뇌수술 동영상을 면밀하게 살펴보았지만, 큰 문제는 없어보였습니다."

"그럼 원인도 알 수 없다는 겁니까?"

"다만 뇌수술 이후 일어난 일이니… 당시의 수술이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짐작할 뿐입니다."

의사의 말에 강혁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 한국에서는 이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의사는 없을 겁니다."

의사의 말에 강혁은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 방법이 없을까요?"

"최근 미국에서 신경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젊은 친구가 하나 있는데, 연락처를 드리죠."

의사는 강혁에게 명함 하나를 건네었다.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니… 너무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의사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강혁은 침울했다.

"저는 정말 심각합니다."

"아, 그런가요?"

강혁은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만일 방구 냄새를 맡잖아요?"

"……?"

"그러면 그때 상황과 함께 방구 냄새까지 정확히 기억이 납니다."

"……!"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그걸 무한 반복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주 죽을 지경입니다."

"하아, 그건 참 놀라운 일이군요!"

놀란 표정을 짓는 의사를 바라보며 강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교 졸업 후, 부모님이 주먹질이나 하며 사고 칠까 싶어 억지로 보낸 군대였다.

그곳에서 강혁은 의외의 적성을 발견했다.

주변에서는 아예 군대에 말뚝 박으란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군대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희열을 느꼈다.

그러던 중 707특임대 모집공고를 보았다.

"까짓 것, 이왕 하는 거 폼 좀 나는 걸로 해보자고!"

타고난 완력과 넘치는 깡으로 707특임대에 지원을 했다.

대한민국 특수부대 중에서도 가장 훈련이 힘들다는 707특임대였다.

그런 곳에서도 나름 인정을 받았다.

하루하루가 행복했던 순간들이다.

그러나 사고는 일순간에 다가왔다.

적진 침투 및 폭발 훈련 중에 큰 사고를 당한 것이다.

꼬박 48시간에 걸친 대대적인 수술이 이어졌다.

강혁은 병원에서 겨우 의식을 되찾았다.

의사말로는 한 번은 죽었었단다.

그야말로 천우신조로 살아난 것이다.

그런데 의식을 차린 이후부터 이상한 현상을 겪게 되었다.

자신이 경험한 모든 일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화장실에서 맡은 악취는 물론이고, 지나던 사람들이 지껄이는 대화 내용까지!

모든 것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고민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가 내려준 진단은 '과잉기억증후군.'

사고로 체질이라 생각했던 군대를 전역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일상에 복귀하기도 힘들었다.

악몽의 연속이다!

왜 하늘은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일까?

대체 뭘 어쨌다고?

"하아, 이제 뭘 해야 밥 먹고 살지?"

병원을 나선 강혁은 받은 명함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흰 구름과 푸르른 하늘이 얄밉다.

한숨이 푹푹 나온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제에길, 하늘은 또 내 편이 아닌갑네~"

눈앞에 놓여 있던 깡통을 찼다.

포물선을 그리며 멀리 나가떨어지더니 탱거랑 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다 곧 멈춘다.

피식 웃다가 몸을 돌린 강혁의 눈에, 게시판에 붙어 있는 모집공고가 보였다.

[94년 경찰공무원(순경) 채용 공고]

"경찰공무원이라?"

강혁은 전단지를 한참 보다가 돌아섰다.

고졸에 중2 수준의 학력이다.

시험에 붙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아서라, 기억력은 좋다지만. 내가 고시원 생활을 어떻게 하냐? 돈만 날리지."

사실 머리는 나쁜 편이 아니었다.

어릴 때는 동네에서 신동 소리를 듣기도 했었다.

문제는 어디 얌전히 붙어 있는 걸 죽어도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청소년기에는 질풍노도의 시절을 보내느라 제대로 공부를 한 기억이 없다.

지금부터 공부해서 경찰시험에 도전하기에는 세상을 너무 물로 보는 것 아닌가?

강혁은 헛웃음을 지으며 게시판에서 돌아서서 걸어 나왔다.

"엇?"

이게 뭘까?

갑자기 드는 이 기시감?

이 상황을 어디선가 경험했었던 것만 같은 기묘한 느낌!

이게 뭐지?

"훗, 그럴 리가 없지."

도리질을 친 강혁은 버스 정류소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런 강혁의 눈앞에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커다란 개를 데리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목줄을 잡고 있었다.

커다란 개는 아이보다 더 큰 덩치였다.

"저 개가 짖으며 내게 달려온다."

강혁은 자기도 모르게 홀린 듯 혼잣말을 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개가 아이의 손을 떨치고 뛰어왔다.

그 순간 강혁도 기민하게 반응을 했다.

파쉿!

강혁의 몸이 함께 반회전하며 옆으로 피하더니 개의 목 뒤를 때렸다.

비호처럼 빠른 몸놀림이다.

퍽!

707특임대에서 수없이 반복 훈련했던 동작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깨~갱~

개가 육중한 몸을 바닥에 처박으며 비명을 질렀다.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인 듯한 사람이 뛰어 왔다.

차림새를 보니 제법 잘 사는 집안의 안주인처럼 보였다.

'이 여자가 할 말을 알고 있어.'

강혁의 머릿속에서 신기하게 말이 떠올랐다.

'이봐요! 아니, 왜 우리 개를 때리는 거예요.'

"이봐요! 아니, 왜 우리 개를 때리는 거예요."

'우리 개가 얼마나 비싼 개인지 아세요? 당신 어쩔 거야?'

"우리 개가 얼마나 비싼 개인지 아세요? 당신 어쩔 거야?"

강혁에게 소년의 어머니가 외치는 욕설과 어린 소년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개가 뛰어든 상황과 소년의 어머니가 소리치는 장면이 강혁의 기억 속에 있었다.

'뭐지? 이건?'

"…이봐요. 어쩔 거예요."

여인의 목소리에 강혁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 상황도 강혁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아무 말 안하고 있으면 내가 그냥 넘어 갈 것 같아?"

"아무 말 안하고 있으면 내가 그냥 넘어 갈 것 같아?"

소년의 어머니와 강혁이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여인이 황당하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는 빽,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 양반이 지금 나하고 뭐하자는 거야?"

"아니, 이 양반이 지금 나하고 뭐하자는 거야?"

그녀가 말을 내뱉는 것과 동시에 강혁의 입에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소년의 어머니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뭐… 뭐야? 이 남자?"

"뭐… 뭐야? 이 남자?"

이번에도 소년의 어머니와 같은 말을 내뱉었다.

"어…엄마, 무서워요. 우리 그냥 가요."

소년이 겁에 질려 말했다.

소년의 어머니 역시 강혁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이한 강혁의 행동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어, 어서 가자. 이사람 미쳤나보다."

소년의 어머니와 소년은 개를 끌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강혁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혼란스럽게 바라보았다.

*     *     *

"이모, 여기 선지국밥 하나요."

강혁은 자취방 인근에 있는 골목 식당을 찾았다.

음식 맛이 괜찮고 가격이 싸서 최근 단골이 된 식당이었다.

'아까 그건 뭐야? 과잉기억증후군 때문인가?'

마치 앞으로 일어날 미래를 이미 한 번 체험한 것 같은 기분이다.

강혁이 무심코 눈을 돌렸다.

TV에서 이번 주 복권 당첨 번호를 발표하고 있었다.

동그란 플라스틱 통 안에서 번호가 적혀 있는 수십 개의 공들이 회전하다가 그중 하나가 빠져나온다.

그 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번호를 확인하고 있는 깔끔한 인상의 남자 아나운서를 향했다.

"3번, 3번 나와라 3번."

식당의 다른 테이블에서 목에 수건을 걸치고 런닝 하나만 입고 있는 중년 남자 하나가 복권을 들고서 자신이 바라는 번호를 애타게 불렀다.

"6번!"

"응?"

강혁의 말에 중년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방송에서 번호를 발표하는 남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6번입니다.]

"오, 그 짝도 복권 좀 샀는가베~."

다음 공이 떨어졌다.

남성 아나운서가 공을 잡았다.

그 순간 강혁이 또 번호를 말했다.

"9번."

[이번 번호는 9번입니다.]

"오잉? 이 총각 뭐시여? 귀신이여? 자네 대체 뭔 재주로 번호를 미리 아느가?"

중년 남자의 호들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혁은 TV만 바라보며 아나운서가 말하기도 전에 번호를 호명했다.

"3번."

[마지막 번호는 3번이었습니다.]

"헐! 다 맞춰 버렸네잉?"

강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식당을 나섰다.

마침 선지국밥을 내오던 식당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총각, 음식 나왔는데 어디가?"

"급한 일이 생겨서요. 음식 값은 식탁 위에 올려났어요."

"어잉? 어딜 저리 급히 가는 거지?"

강혁은 골목을 나와서 급히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분명해! 다음 주 복권은 그곳에서 팔렸다.'

버스에 올라탄 강혁은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서 이상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기억 속에서 자신이 지나가던 골목 작은 가게 앞에 현수막이 붙어 있다.

[복권 명당 00슈퍼. 746회, 765회 1등 복권 연속 당첨]

746회면 다음 주 복권이다.

강혁은 버스에서 내려 기억 속의 가게로 달려갔다.

"어서 오……."

"사장님, 복권… 번호 2조 211577주세요."

"아이구, 뭔 용꿈이라도 꿨어?"

후덕한 인상의 사장님이 웃는다.

"성미도 급하지 조금 전에 이번 주 복권 당첨 방송을 했는데 말이야."

말과는 달리 복권 더미를 향해 손을 뻗는다.

"이 사람아, 복권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어. 아직 잉크도 안 말랐겠다."

복권을 뒤지던 사장님이 잠깐 동작을 멈춘다.

"근데 찾는 번호 우리 가게에 없을 수도……."

"있어요. 틀림없이."

강혁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워낙에 대단한 기세라 사장님 표정이 당황스럽다.

"하… 하하, 진짜 뭔 꿈이라도 꿨나보네? 기다려봐."

사장님이 복권을 살폈다.

"…앞자리가……?

"2조요."

"2조…여기 있네."

"211577"

강혁이 급히 다음 번호를 부른다.

"211~"

사장이 가락에 섞어 흥얼거리며 복권 묶음에서 번호를 찾는다.

"577입니다. 211577"

혹시라도 실수할까 강혁이 조바심을 내며 다음 번호를 불러주었다.

"어랏?"

사장의 목소리가 변했다.

"왜, 왜요?"

"있네! 있어! 진짜 여기에 2조 211577이 있어."

후덕한 표정의 사장님이 진짜 신기하다는 듯이 웃으며 복권을 빼서 건네었다.

"그래, 무슨 꿈을 꿨기에 복권을 사러 온 거야?"

"하하. 그냥. 개꿈 좀 꿨어요."

"크크크, 그래. 알았어. 잘 됐으면 좋겠네."

강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기억 속 번호가 이 가게에 존재하자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건 진짜다.'

강혁은 다시 한 번 눈을 비비고 복권을 보았다.

'이거야, 이거. 다음 주 1등 복권 번호.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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