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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화 (2/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02화

2화

강혁은 전역 후, 매 주 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상 속에서 강혁은 다음 주에도 그 시간 그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복권 추첨 방송을 보았다.

그리고 우연히 볼일이 있어서 방문했던 골목 가게에 붙어 있던 현수막을 봤었다.

[746회, 765회 1등 복권 당첨 가게]

머릿속으로 서울 시내를 오다가다 보았던 1등 복권 당첨 가게 현수막들이 이리저리 떠오른다.

모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복권들이다.

강혁의 얼굴이 벌게졌고, 가슴이 희열로 벅차올랐다.

"확실해, 다음 주 1등 복권 번호야. 내가 미친 건 틀림없는 것 같은데. 곱게 미쳤다."

강혁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일제 때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한다고 핏덩어리 아빠와 할머니를 두고 훌쩍 만주로 떠났다.

그 덕이랄까? 그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는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결국 남들이 멸시하는 하류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거의 평생을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이 입에 풀칠만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부모님의 희망이었던 자신은 지금껏 두 분 마음에 대못만 박아왔다.

남몰래 마음고생이 심했을 아버지를 떠올리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젠장, 두 노친네 늘그막에 효도나 실컷 시켜드려야지.'

왜 자신이 미래를 볼 수 있는지 이해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개꿈을 꾼 건 아닌 게 어느 정도는 확실해졌다.

강혁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진짜 독립 운동하셨던 조상님이 도우셨나?'

할아버지는 의열단으로 독립운동에 힘썼던 분이다.

문득 손자가 불쌍해서 미래를 보여주나? 같은 헛된 생각이 떠올랐다.

'미래? 그게 진짜 미래였나? 왠지 이미 한 번 겪었던 일을 보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강혁은 복권을 손에 쥔 채 이러 저리 살펴보며 길을 걸었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 속에 비집고 들어온 이상한 기억을 두 번, 세 번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복권 당첨 상금이 1억 5천 만 원이지? 에이, 로또에 비교하면 돈도 아니네~'

강혁은 입가를 씰룩거렸다.

'세금도 많이 내야 하는데… 잠깐, 로또? 이건 또 뭐야?'

머릿속에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로또 복권에 대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기억 속에서 강혁은 더 이상 골목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지 않다.

번듯한 자기 집에서 소파 위에 누워 있다.

"오빠, 커피 한잔 할래?"

어여쁜 목소리다.

설마, 여자?

"응, 부탁해."

기억 속의 자신이 말을 한다.

"아빠, 이것 좀 봐. 잘 만들었지?"

어린 아이의 앳된 목소리다.

네 살? 다섯 살 쯤 됐을까?

"응? 경아야, 잠시만. 아빠, 이것만 보고."

"에이 참, 그럼 그거 다 보고 내가 만든 거 봐. 알았지?"

"알았어. 알았어."

TV로 로또 방송을 보고 있다.

딸아이가 아내에게 달려가 아빠가 TV 보느라 자기가 만든 거 안 본다고 고자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딸에게 '아빠를 땟지 해줘야겠네'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미래의 기억 속에 자신이 결혼을 하고, 딸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보며 놀랬다.

'얼굴 보여줘, 얼굴!'

마음속으로 외쳤다.

잠시 후, 아내가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오빠, 커피 마셔요."

"응, 고마워."

강혁은 돌아보지도 않고 커피를 받아 입에 가져갔다.

눈은 로또 방송에 고정되었다.

"이이가, 형사라는 사람이 아내가 커피를 가져다주는데, 사행성 방송이나 보고. 이래서 되겠어요?"

아직 얼굴이 나오지 않은 아내의 말에 놀랬다.

'형사? 내가 형사가 됐나? 대체 언제? 어떻게?'

형사가 되었다는 아내의 말에 정말 놀랐다.

그래도 번듯한 직장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결국 내가 그 시험을 치기는 쳤나보네.'

직장은 알았으니 이제 아내의 얼굴이 궁금하다.

'내 마누라 얼굴 보여줘. 얼굴. 대체 누구야? 선영이냐? 미숙이?'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아내와 딸아이가 궁금했다.

자신과 과거에 인연이 있었던 여자들을 모두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기억 속의 목소리는 두 사람 모두와 달랐다.

"아이고, 이번 주도 꽝이네. 얼어 죽을~"

"또! 집에 아이도 있는데. 내가 말조심 하랬잖아요."

"아아, 미안. 유라야."

내가 머쓱해하며 손으로 뒷목을 긁는다.

'이름이 유라구나? 앞으로 만나게 되는 건가? 제발 이름만큼 얼굴도 예뻤으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나란 놈은 아내도 딸아이도 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TV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로또 방송이 끝나자 뉴스가 이어졌다.

방송 화면 밑으로 당일의 환율과 주가시세가 지나간다.

그러자 머릿속으로 각종 숫자와 지표 그래프가 휘집고 지나간다.

'우욱, 이건 또 뭐야? IMF? 리먼 사태? IT버블? 야후, 구글, 페이스북? 이건 또 뭐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낯선 단어들 때문에 기억이 뒤죽박죽으로 섞이며 머리가 아파왔다.

머리를 감싸 안으며 고통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자 차츰차츰 고통이 가라앉았다.

그러자 미래의 영상이 다시 떠올랐다.

"오빠, 다 마셨으면 이리 줘요."

"응, 고마워.

내가 고개를 돌린다.

아내의 모습이 보인다.

그와 함께 딸아이가 달려들어 내 품에 안긴다.

비로소 아내와 딸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아아, 유라야. 경아야."

강혁은 길가에 멈춰 서서 미래의 아내와 딸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비로소 기억이 났다.

아내와 딸의 모습이…….

두 눈에 가득히 들어온 두 사람은 강혁의 마음을 한없이 행복하게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었구나. 내 아내는…….'

가슴이 요동쳤다.

유라는 눈처럼 흰 피부에 쌍꺼풀이 있는 눈웃음이 매력적이었다.

한쪽에 웨이브가 크게 들어가고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다.

전체적으로 귀엽고 사랑스럽다.

마치 로맨스 영화에 등장하는 여배우 같은 달콤한 외모였다.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와 결혼을 할 수 있는지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거기다 아이도 엄마를 꼭 닮아서 웃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강혁은 마음이 뭉클했다.

'아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게 이런 복이 기다리고 있었군요.'

잠시 후,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TV도 작고, 방의 모습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자세히 보니 지금 살고 있는 좁다란 원룸이다.

그다지 뭔 미래는 아닌 모양이다.

TV 속의 아나운서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삼강 그룹의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들 중 일부가 또 다시 백혈병과 암이 발병했다고 한다.

이미 반도체 공장에 다니던 직원들 중 투병생활을 하다가 사망한 이전 뉴스를 보여준다.

현재 이들은 회사 측의 보상을 바라고 있다는 멘트가 나왔다.

이어서 의료계의 권위자가 나왔다.

그는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 암의 발병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뒤이어 삼강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부문 세계 1위로 올라섰다는 내용이 나왔다.

신철호 회장의 대외활동 모습이 화면을 채웠다.

마치 삼강이 우리나라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려는 듯이.

'신철호 회장…….'

신철호 회장의 모습에 뭔가 불길한 기운이 전신을 감돌았다.

뭔가 떠올려야 하는 기억이 있다는 듯이 강혁을 압박했다.

'뭐지? 이 기분은?'

신철호 회장이 자택에서 나오는 장면이 보였다.

60대 중반의 말쑥한 차림을 한 집사가 배웅 나오는 장면이 등장했다.

그의 옆에는 10살 남짓 된 남자아이가 서 있었다.

그런데 소년을 보는 순간 강혁의 발이 휘청거렸다.

갑자기 엄청난 기억의 홍수가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우와아아아아앗!"

강혁은 머리를 감싸 안고 미친 듯이 고통스러워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손을 풀고 고개를 들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지나가던 어린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저 아저씨 울어요."

"무슨 일 있나보네."

"어른이 길거리에서 저렇게 우는 건 처음 봤어요."

"쉿, 조용히 하고 따라와."

눈에서 강물처럼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었다.

이빨을 앙 다물며 주먹을 피가 나도록 쥐었다.

잔인한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아, 내 아내와 딸아이는 저 아이의 손에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나까지도.'

손에 쥔 복권이 눈물과 땀에 젖어들었다.

지금까지 본 모든 것이, 미래를 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자신이 경험했던 과거였다.

'18년 전의 과거로 돌아온 거였어.'

강혁은 믿기 어려운 현실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망연자실했다.

"하아."

지친 몸을 이끌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보통 때라면 복권 당첨을 기대하며 술이라도 한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각성으로 인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꺼번에 들이 닥친 수없이 많은 기억들이 강혁을 힘들게 했다.

모든 기억들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자신의 손에 쥐어진 복권이 낮에 있었던 일들을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밤이 늦은 시간, 지쳐 잠이 들었다.

그러자 꿈속에서 뒤죽박죽 섞여 있던 기억 중 하나가 떠올랐다.

*     *     *

깔끔한 양복 차림으로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아나운서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스튜디오 한쪽에는 유명 인사들로 구성된 패널들이 자리했다.

방청객들도 스튜디오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강혁 형사님.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활약 부탁드립니다."

"노력하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답변했다.

패널들과 방청객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를 보냈다.

어느덧 40대에 들어선 강혁이다.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스타 형사가 되어 있었다.

미녀 아나운서의 눈빛에서 하트가 흘러나왔다.

여성 시청자들은 그런 아나운서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다.

190cm에 달하는 큰 키에 뛰어난 피지컬을 가진 짐승남이다.

말도 논리정연하게 잘 했다.

특히, 사람의 허를 찌르는 탁월한 추리력은 사람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괜히 범죄 관련 방송에서 섭외 1순위로 꼽히는 게 아니다.

짐승남과 뇌섹남.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매력을 한 몸에 지닌 남자.

강혁이 출연하는 날은 시청률이 배로 뛰어 올랐다.

남자들만의 전유물로 알려졌던 범죄 전문 방송이다.

하지만 강혁이 출연하는 날에는 많은 여성들도 시청을 했다.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사고로 군대를 제대한 후 과잉기억증후군이란 특이한 장애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절대적인 기억력이라는 사기적인 능력이 주어졌다.

원래 똑똑했던 머리에 절대적인 기억력이 더해지자 2년 만에 경찰 시험에 합격했다.

그 후로는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한 번 보면 잊지 않는 기억력으로 전국에게서 가장 많은 지명 수배범 검거 형사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형사로서의 능력은 갈수록 일취월장했다.

머릿속에서 수십, 수백 번 같은 사건 현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한번 방문한 사건 현장은 기억 속에 모든 것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 표정과 목소리 톤, 당시 어떤 제스처와 동작을 취했는지 수백, 수천 번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덕분에 강혁은 독보적인 관찰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여기에 원래 영민했던 머리까지 더해졌다.

그렇게 강혁은 사람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추리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능력은 경찰청의 위탁을 받은 F.B.I 연수를 통해 훨씬 더 강화되었다.

급기야 미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캘리포니아 식인 연쇄 살인범을 검거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일개 연수생의 신분으로 날고뛰는 F.B.I 요원들을 능가한 것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매스미디어에 노출되며 지금의 스타 형사 강혁으로 발돋움 하게 된 것이다.

강혁에게 미국의 미디어가 붙여준 별명은 동양에서 온 셜록홈즈.

21세기에 부활한 형사 콜롬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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