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08화
8화
'아버지, 정말 그 말이 예언이 되었네요.'
호신술 개념으로 배우는 현대의 무술이나, 엔터테이너로서의 스포츠 격투와는 달랐다.
강혁이 배운 것은 전장에서 탄생하여 사람을 가장 효율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물이었다.
아버지에게 무술이란 곧 사람을 죽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기술이었다.
강혁은 목이 부러져 죽은 샤크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 억지로 자신에게 무술을 가르쳤던 아버지에게 감사를 드렸다.
강혁이 배운 무술은 그의 할아버지에게서 전해진 것이다.
할아버지는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후, 모종의 임무를 안고 만주로 갔다.
그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만난 만주의 한 권법가에게 배운 것이다.
오직 사람을 맨손으로 살상하기 위해 탄생한 무술.
하지만 이런 종류의 무술은 평화의 시대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법이다.
소중한 인연을 잊지 않기 위해 할아버지에서 아버지에게로 전수되었던 권법은 다시 강혁에게 전수되었다.
하지만 지금껏 실제로 사용해본 적은 없었다.
강혁은 삼대에 걸쳐 전해졌던 권법의 위력을 오늘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에게서부터 전수된 권법은 모두 세 가지였다.
사마귀의 형상을 흉내 냈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북파 18개 문파의 기술을 총망라한 종합무술 당랑권.
수많은 중국 무술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위력을 지녔다는 팔극권.
마지막으로 안개처럼 베일에 쌓인 신비의 무술 팔괘장이다.
강혁은 조금 전 샤크를 상대로 당랑권의 구명 절초 몇 가지를 사용해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아저씨!"
"수영아."
"아저씨 대단해요."
수영이 강혁에게 안겨들었다.
혁은 수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안심시켜주었다.
"나만 믿으라고 했잖아."
그르릉 거리며 바깥에서 차량이 마당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영은 화들짝 놀랐다.
"아저씨, 돌아왔나봐요. 어쩌죠?"
수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혁은 재빨리 샤크의 몸을 뒤져서 자동차 키를 찾아냈다.
그리고 수영과 함께 몸을 숨겼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며 신상현과 노집사가 거실로 들어왔다.
그들의 눈에 어지럽혀진 바닥과 핏자국이 보였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상현과 노집사는 박광수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노집사가 박광수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놀랐다.
"도련님, 죽었습니다."
상현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놀람과 의혹, 흥분이 뒤섞인 기묘한 표정이다.
평소 상현에게 보이던 허무함이 담긴 눈빛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개에게 독약을 먹이거나, 집에 불을 지른 후, 사람들의 놀람과 분노를 구경할 때 짓던 표정이 그곳에 있었다.
"누구 짓일까요?"
상현의 눈빛이 기이하게 빛났다.
그는 말없이 몸을 움직였다.
거실과 지하로 연결된 문을 열고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복도를 내달려 수영과 강혁을 감금해 둔 문을 열었다.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아무런 저항 없이 열렸다.
철문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영의 자유를 결박해두었던 쇠사슬만 남아 있었다.
"도련님~!"
노집사의 외침에 상현은 복도를 날 듯이 뛰어 거실로 달려갔다.
뭔가에 얻어맞은 듯 노집사가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할아범……."
"도…도련님."
노집사가 손가락을 밖으로 가리켰다.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집 밖에서 자동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놓치시면 안 됩니다."
노집사의 다급한 목소리를 뒤로 하고 상현은 밖으로 뛰어나가 차에 올라 강혁의 뒤를 쫓았다.
* * *
"노인을 때린 건 너무 했나?"
강혁의 말에 수영이 머리를 격하게 좌우로 흔들었다.
"아뇨, 아주 잘 하셨어요."
강혁이 수영의 격한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짓자 수영이 말했다.
"나쁜 노인네예요. 한 번 도망쳤었는데, 그 노인네 때문에 잡혔어요. 그때 내 뒷머리를 돌로 찍었다고요."
수영의 말에 강혁의 눈이 커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가서 더 혼내줄까?"
"킥!"
수영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강혁은 그런 수영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잘 견뎌 주었어.'
어떤 고초를 겪었을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던 강혁은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다.
강혁이 도로 위의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엑셀을 밟은 발에 더 힘이 들어갔다.
상현의 차가 도로 위를 쏜살같이 질주했다.
서울 근교의 야산에 위치한 별장이라 도심까지 얼마가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만일 강혁을 이대로 놓치면 상현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표정이다.
엑셀을 힘껏 밟자 푸른색 벤틀리가 도로 위를 거칠게 질주했다.
얼마가지 않아 강혁의 차가 보였다.
상현의 두 눈에 광기가 어렸다.
"이렇게 마지막이군요. 강혁 형사님. 그러고 보니 오늘로 석 달째네. 그 계집애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는데, 두 사람을 한꺼번에 처리하라는 어둠의 계시인가?"
상현은 눈앞의 차량을 향해 속도를 더 끌어 올렸다.
강력한 엔진음이 울리며 차량이 급가속 했다.
"수영아!"
강혁이 백미러를 보더니 급히 수영에게 말했다.
"예?"
"꼭 잡아."
핸들이 휙하고 꺽이며 차량이 차선을 바꾸었다.
상현의 벤틀리가 강혁이 운전하는 차량의 뒷범퍼를 향해 돌진했지만 가까스로 충돌을 피했다.
야밤에다 다른 차량은 볼 수 없는 산길 도로다.
다행히 피할 공간이 있었기에 간발의 차로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현은 미친 사람처럼 차량을 돌진시켜 번번이 뒷범퍼를 노렸다.
휙 하고 돌아간 핸들이 다시 반대 방향으로 휙 하고 넘어갔다.
차량이 거칠게 움직이자 수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꺄악~ 아저씨!"
"꽉 잡아!"
쾅!
충격음과 함께 차량이 좌우로 빙글빙글 돌았다.
강혁은 그 와중에도 핸들을 놓치지 않고 브레이크를 강하게 밟았다.
바퀴와 브레이크가 비명을 질렀다.
아스팔트 위로 타이어가 새까만 동심원을 몇 개나 그려나갔다.
쾅!
다시 한 번 거센 충격음이 들리면서 차량이 가드레일을 박았다.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차량을 비추었다.
상현은 차를 세운 후 문을 열고 내렸다.
가드레일에 처박혀 찌그러진 차를 바라보는 상현의 얼굴에 괴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평소 그를 아는 사람들은 결코 본 적이 없는 얼굴이다.
상현의 본색을 본 사람은 그에게 납치되어 결국 죽음에 이른 여인들과 노집사 정도였다.
상현은 조만간 이 얼굴을 그의 늙은 아버지에게도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룹을 완전히 자신이 지배하에 두게 된 후에 말이다.
열기가 올라있는 상현의 얼굴 표정에 기묘한 흥분이 더해졌다.
찌그러진 차문을 열고 강혁이 수영을 끌어올리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신상현의 얼굴은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강 형사님! 당신이란 사람은 정말, 끝까지 실망을 주지 않는군요. 이렇게까지 내 욕망을 채워 주다니……."
상현은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핥았다.
그리고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그곳에는 권총이 메어져 있었다.
"아저씨, 전 이제 됐어요. 아저씨라도 살아나가세요."
"무슨 소리야. 네가 이러면 승우나, 서영이는 어떡하라고! 널 기다리는 동생들을 생각해!"
"아… 저씨……."
강혁은 다리가 끼어 있는 수영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죽 먹던 힘까지 다 사용하여 겨우 수영을 찌그러진 자동차에서 끄집어냈다.
그 와중에 어깨가 다시 탈골되었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강혁은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인내심이었다.
"아저씨, 고마워요."
수영이 다가오자 강혁은 손을 내밀며 만류했다.
의아해하는 수영을 눈앞에 두고 강혁은 웃으며 말했다.
"잠깐만, 아저씨가 팔이 빠졌거든."
"예?"
수영이 놀라는 것도 잠시 강혁은 팔을 한 번 돌리더니 어깨에 다시 집어넣었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강혁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엄청난 통증이었을 텐데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찰나의 순간, 강혁의 눈에 찌그러진 차 아래로 기름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강혁은 수영의 손을 잡으며 재빨리 달렸다.
당황해하는 수영에게 강혁이 외쳤다.
"뛰어. 수영아!"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차량이 폭발했다.
그 충격으로 강혁과 수영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상현의 얼굴이 화재로 생긴 불꽃으로 물들었다.
파편 조각이 여기저기로 날아갔다.
수영은 폭발의 충격에 그만,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났다.
"우웅……."
고개를 든 수영은 자신을 감싸고 있는 강혁을 발견하고 몸을 일으키다가 깜짝 놀랐다.
강혁의 등에 커다란 유리 파편 박혀 있었다.
"아, 아저씨!"
수영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자신을 강혁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저 커다란 파편은 자신의 등에 박혔을 것이다.
수영의 두 눈이 금세 눈물로 차올랐다.
짝! 짝! 짝!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상현이었다.
"이야, 정말이지. 강혁 형사님.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정말로 감탄했습니다."
"신상현……."
"그거 아세요? 제가 왜 강혁 형사님한테 집착했는지?"
상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저는 말이죠. 어릴 때부터 사람들 몰래 많은 잘못을 저질렀어요. 처음에는 들킬까봐 조마조마했죠. 푸하하핫!"
상현은 무척 즐거운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더라고! 아무도! 병신들~"
상현이 고개를 쳐들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나쁜 짓은 다 저질러보았죠."
상현이 고개를 돌려 강혁을 보았다.
"그런데도 아무도 모르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지. 세상이 미친 걸까? 아니며 내가 미친 걸까?"
상현의 얼굴이 광기로 물들어갔다.
"결국은 알게 됐죠. 세상도 나도 미친 거라는 걸."
"읏… 미친……."
"그러다가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되었죠. 강혁 형사. 비정상적인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이질적인 존재! 내가 음이라면, 당신은 양! 내가 어둠의 자식이라면 당신은 정의의 사도. 그래서 해봤지. 어둠의 자식이 정의의 사도를 건드리면 과연 어떻게 될까?"
상현의 표정이 더할 수 없이 광기에 물들었다.
"아, 당신은 진짜 영웅이었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가짜들과는 다른 진짜 영웅."
상현의 두 눈이 번들거렸다.
"아내와 딸을 잃고 나면, 나처럼 변할까 기대했는데, 당신은 다르더군. 당신은 달랐어. 여전히 정의의 편에 서서 악을 응징했지. 나처럼 변하지는 않더군. 조금 기대했는데 말이야."
"헛…헛소리 하…하지마."
강혁은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고개가 점점 꺾여갔다.
"하하, 내버려 두어도 죽겠는데?"
"헛…헛소리 마. 넌… 내…내 손에… 죽어……."
"킥킥킥, 이것으로 더 분명해졌어."
"……?"
"없어, 없어. 세상엔 신 같은 건 정말로 없다고. 이런 진짜 영웅이, 이런 곳에서 여자아이를 구하다가 죽어가고 있는데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죽음만 기다리고 있잖아!"
"…뭐… 라는… 거야?"
신상현은 대학에서 교양수업 시간에 들은 그리스 영웅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떠올렸다.
그의 두 눈이 반달처럼 변했다.
이제 강혁의 죽음으로서 비극은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