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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9화 (9/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09화

9화

#3장 추적

"큭큭큭, 영웅과 미녀와 죽음이라~ 정말로 비극적이군. 비극적이야."

상현이 입가를 혀로 훔쳤다.

품속에서 총을 꺼내더니 강혁을 향해 겨누었다.

"당신 다음에 저 애 차례야. 마침 오늘이 석 달째거든, 난 석 달에 한 번씩 내 여인을 영원한 보금자리로 옮겨주었지. 어쩌나 강혁 형사. 마지막엔 아무도 구해주지 못했군."

상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방아쇠에 걸어놓은 손가락을 당겨갔다.

수영은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수영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강혁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의 오른쪽 팔이 앞으로 곧게 뻗어 있었다.

수영이 고개를 돌려 상현 쪽을 바라보았다.

수영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어… 어…떻…게……?"

상현은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과일 깎는 식도가 심장을 그대로 뚫고 들어가 있었다.

"신이 없다고? 그야 난 모르지. 하지만 적어도 넌 오늘 내 손에 죽었어. 빙신아."

강혁이 씩 웃었다.

마침내 원수를 갚은 그의 두 눈에서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숨이 가빠오며 눈앞이 흐려졌다.

"아저씨~"

"수영아……."

"아저씨, 정신 차려. 아저씨……."

"난 틀렸어. 수영아 승우, 서영이, 잘 돌봐야 한다. 알겠지?"

"아저씨!"

강혁은 흐뭇하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이젠 됐어. 유라야, 경아야. 아빠가 간다.'

"아저씨!"

수영의 울음소리가 아스팔트 위를 넓게 퍼져나갔다.

잠시 후, 사이렌 소리와 함께 몇 대의 경찰차와 응급차가 왔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상황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시체들을 수거했다.

수영은 경찰에게 간단하게 상황을 알려주고 응급차에 올라가는 강혁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저 일단 집으로 갈 수 없나요?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수영이 말하는 대로 경찰수첩에 상황을 요약하던 경찰이 수영을 보며 말했다.

"일단 경찰서로 갔다가 간단히 조서를 작성하고 나면 집으로 가셔도 됩니다. 원하시면 경찰관이 댁까지 모셔다 드릴 겁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수영은 경찰차 뒤에 앉았다.

차가 이동하자 눈을 감았다.

스르륵 잠이 왔다. 수영은 꿈속에서 오래 전 돌아가신 부모님을 뵈었다.

수영의 눈꼬리에서 눈물이 흘렀다.

'엄마~ 아빠~'

수영은 달려가 두 분의 품에 안겼다.

수영이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표정이 이상하다.

'엄마, 아빠.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수영이 두 사람의 품에 안겨 도리질을 쳤다.

수영을 내려다보는 두 사람의 표정이 슬퍼보였다.

앰뷸런스가 야간 도로를 달렸다.

차 안에서 응급요원이 강혁의 몸에 다가가 심장에 커다란 주사 바늘을 꽂았다.

강혁의 몸이 흔들리더니 두 눈이 떠졌다.

그의 두 눈에 백발의 노신사가 보였다.

"강혁 형사. 안녕하신가?"

"당신은?"

"나? 난 당신이 죽인 상현 도련님의 집사라네."

왼쪽 눈에 단안경을 끼고 있는 백발의 노집사가 대답했다.

"……?"

"궁금한 표정이군. 도련님은 살릴 수 없었어. 그런데 당신은 왜 살렸을까?"

"……!"

"역시, 알아챘군."

강혁이 몸을 움직였지만 이미 몸이 결박당한 상태라 움직일 수 없었다.

"자네와 수영이란 여자애는 이대로 토막을 내서 야산에 묻을 생각이야. 도련님이 평소에 자주 사용하시던 장소지. 그리고 도련님의 유희는 내가 이어받을 생각이야. 어쭙잖게 형사 나부랭이 따위가 도련님을 이겼다는 생각 따위 하지 못하도록 말이야."

"미친……."

"알겠어요? 강혁 형사~ 당신 따위는 영웅도 뭣도 아닌 쓰레기라는 거. 영원한 패배자. 그 말로는 이름 없는 야산에서 자신이 지켜주려던 여자애와 함께 토막 난 시체가 되어 묻히는 거지. 영웅적인 죽음이 아니라. 큭큭큭"

노집사의 두 눈은 상현의 죽음으로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그럼 잘 가라고."

노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혁은 정신을 잃고 긴 꿈을 꾸었다.

악몽을…….

*     *     *

택시는 어느 한적한 야산에 올랐다.

차에서 내린 강혁은 모든 것이 일어난 장소를 보고 있었다.

18년 후, 신상현의 별장이 있었던 장소에는 당시와 달리 아무 것도 없는 평지다.

강혁은 쓸쓸한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수영이도 결국 지키지 못했어.'

강혁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죽음 직전 자신을 바라보던 수영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고마워요. 아저씨.'

이 말을 끝으로 수영은 자신의 눈앞에서 죽었다.

백발의 노신사는 그야말로 악귀 그 자체였다.

어쩌면 신상현 그 이상으로 미친 자였다.

강혁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자신의 마지막이 떠오른 것이다.

'젠장. 악귀 같은 새끼.'

강혁은 당시의 감각이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목숨을 걸고 지켜 주리라고 다짐 했던 수영이었다.

죽음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당시의 분노와 좌절감.

자신의 팔과 다리를 잘라내며 잔인하게 웃던 단안경을 낀 백발 노인의 얼굴 표정.

그리고 땅 속에 묻히며 머리 위로 흙이 덮일 때의 기분.

살아 있는 채 그 모든 것을 겪어야 했다.

강혁은 모든 것이 방금 겪은 것 같았다.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얼어 죽을……."

강혁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두고 봐. 이번엔 절대로 다를 테니."

자신에게 다짐하듯 하늘을 향해 외쳤다.

고개를 내려 앞을 보는 강혁의 두 눈빛이 이글거렸다.

"분명 내 기억이 맞다면, 그녀석 신상현, 지금은 박상현이다."

아내와 딸의 죽음 이후,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었다.

삼년 후, 새로운 사체의 등장과 함께 마침내 범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내었다.

그 단서에서 시작해서 마침내 신상현의 존재까지 알게 되었다.

강혁은 국정원 출신의 프리랜서 해커와 함께 신상현의 과거를 파헤쳤다.

그는 놀랍게도 삼강그룹의 회장 신철호의 사생아였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박상현으로 자랐다.

10살이 되던 해에 갑작스럽게 신철호의 부름을 받고 정식으로 삼강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그 전까지는 경기도 파천시에서 과일 농원을 하는 외삼촌의 집에서 자랐다.

강혁은 기억 속의 주소지를 떠올리고는 다시 택시에 올라탄 후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그놈을 만나야 해."

*     *     *

띵동띵동~

차임벨 소리에 문이 열리며 30대 후반의 남자가 모습을 보였다.

신상현 아니, 지금은 박상현의 삼촌이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일하러 오셨나? 요즘 우리 농원은 사람 안 써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여기 상현이, 박상현이라고 있죠?"

"응? 그 자식은 왜? 혹시 학교에서 오셨어요?"

"아, 아뇨. 그거 아닌데, 걔한테 제가 볼일이 좀 있어서요. 얼굴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놈 가출했어요."

남자가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예? 가출?"

"며칠 됐어. 안 그래도 경찰에도 신고하고, 학교에도 신고했는데. 좀 기다려 보면 얼마 안 있어서 기어 들어오겠지. 뭐 다른 볼일 없으면 이만 돌아가소."

남자의 말에 멍해진 강혁은 터덜터덜 걸어서 시외버스터미널로 걸어갔다.

강혁은 기억 속에서 자신이 조사했던 신상현의 과거와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된 거야? 이 자식 분명히. 삼강 회장이 이때쯤 사람을 보내서 데려간 걸로 아는데.'

강혁은 어디서 잘못된 건지 몰라 잠시 길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신문기사를 검색했다.

'찾았다.'

지역 신문에서 빈번하게 벌어진 방화 사건과 들개들이 쥐약을 먹고 죽은 사건들을 발견했다.

모두 상현이 살고 있던 농원 근처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앞으로 18년 후, 강혁이 국정원 출신의 해커 최승호와 함께 알아낸 일이었다.

강혁은 이 사건이 모두 어린 시절 신상현이 저지른 일일 것이라 추측했다.

방화, 동물 살인, 야뇨증 이 세 가지를 청소년기에 가졌다면 그 사람은 연쇄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론을 뉴질랜드 출신의 정신과 의사 J.M 맥도널드가 발표한 적이 있다.

이것을 맥도널드의 삼합이론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더해 강혁은 신상현이 엄마에게 버림받고 외삼촌 댁에서 자라는 동안 심각한 정신적, 육체적 학대를 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현시점, 신상현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 뿐, 이미 훌륭한 사이코패스였다.

'놈은 분명히 존재했다.'

강혁의 표정이 변했다.

'어디냐? 신상현.'

강혁이 도서관 천장을 노려보았다.

1주일 후.

강혁은 1억 5천 만원의 복권 당첨 상금을 수령하고 대부분을 통장에 넣었다.

세율이 15%라 실수령액은 1억 3천5백 만원이었다.

강혁이 회귀한 해는 94년도다.

강남의 25평형 아파트가 1억 8천하던 시대이니 결코 작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삼강의 후계자가 될 신상현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이다.

회귀 전에도 강혁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역부족이었다.

사회 각계각층에 삼강장학생들이라 불리는 유력자들이 비호하고 있는 삼강그룹의 힘을 생각하면, 거대한 벽을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어 죽을, 삼강이란 말이지?"

94년도의 삼강과 미래의 삼강은 또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I.M.F를 거쳐 삼강은 IT 붐을 거치면서 반도체와 핸드폰 사업으로 대한민국 1등 그룹을 넘어 세계의 삼강이 되었다.

그런 삼강이 적수라는 생각을 하면 막막했다.

자신은 일개 형사에 불과했지만 상대는 막강한 힘을 가진 재벌 그룹의 상속자였다.

게다가 지금은 형사도 아니었다.

군대에서 사고로 전역한 백수에 불과했다.

"방법이 있을 거야. 분명히 방법이."

강혁은 책상에 앉아 노트를 꺼내었다.

그리고 볼펜을 들고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정리했다.

프리랜서 해커 최승우와 함께 신상현에 대해 조사했던 모든 것을 노트에 빼곡하게 적었다.

강혁은 교육부 서버와 내무부 서버를 해킹해서 신상현이 어느 학교를 언제 다녔고, 성적이 어떠했는지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94년 04월 8일, 신상현은 서울에 소재한 삼강그룹 계열의 사립 초등학교에 전입 신고했다.

강혁은 달력을 바라보았다.

4월15일.

이미 신상현은 전입을 마친 뒤였다.

그렇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신상현의 외삼촌은 분명 상현이 가출을 했다고 했다.

강혁은 그가 진실을 말했다는 것을 안다.

얼굴의 미세표정을 보고 거짓말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거짓말 탐지기가 강혁이다.

지구상에 그의 눈을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단연코 없다.

강혁이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미국 연수 중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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