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14화
14화
마흔 중반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던 최영혜는 사실 아이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머님이 시작했던 보육원 사업에 대해서는 나름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시설들을 직접 살피고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이 정원에는 어머니와 자신이 심은 나무나 꽃들이 있다.
보육원에 올 때는 항상 혼자 이곳을 찾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보통 최영혜가 이곳을 찾을 때는 보육원 아이들이 다른 활동을 하고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정원에는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얘, 이름이 뭐니? 지금은……."
최영혜의 말에 신상현이 몸을 돌렸다.
순간 최영혜는 잠시 말을 잊었다.
쉽게 보기 힘든 미소년이다.
뭔가 모를 신비로운 분위기를 느꼈다.
"안녕하세요. 이사장님."
소년이 미소를 지었다.
신비로운 소년에게 최영혜는 잠시 눈길을 빼앗겼다.
"…아, 안녕?"
최영혜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그만큼 신상현의 존재감은 생소한 것이었다.
최영혜는 이 소년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얘, 너 이름이 뭐니?"
"…보문산 골짜기, 70년 10월 10일. 나무자비 조화불."
신상현의 말에 최영혜가 부르르 떨었다.
"나무자비 조화불? 어…어떻게 네가 그걸?"
"영혜야, 나다 나. 영세계의 칙사 이태성이다."
"아이고머니나."
최영혜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일주일 전 자신의 내연남이며, 영적 스승이었던 이태성이 죽었다.
생전 자신이 언젠가 한민족의 여왕이 될 거라고 말했다.
아직 젊었던 시절 그를 만나 이제껏 믿고 따랐다.
그런 그가 얼마 전에 82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못 믿겠느냐?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70년 10월10일 보문산 골짜기에 있던 '영세계 칙사관'이 아니었더냐?"
"마…맞아…요."
최영혜는 쉽게 믿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감히 함부로 하대하지도 못했다.
"그…그분은 일주일 전에 임종하셨는데, 어떻게……."
"나무자비 조화불, 네게 할 말이 있어 이 소년에게 빙의하였다."
"빙…빙의라고요?"
"그렇다. 영혜야. 먼저 너는 무릎을 꿇어라. 영세계의 주인이신 조물주님께서 칙사인 나를 통해 네게 명을 전한다."
"예, 예, 칙사님."
영혜는 즉시 무릎을 꿇었다.
"이 소년은 원래 천군장 미카엘이었으며, 조화불이자 태을신군으로, 내 영혼의 반쪽이다."
"세상에……."
"영세계의 조화로 이미 10년 전에 태어나 있었다. 이제 내가 소천하여 다시 소년의 영혼에 빙의했으니 비로소 완전해 졌노라."
"나무자비 조화불, 나무자비 조화불."
최영혜는 신상현의 말에 연신 나무자비 조화불을 외쳤다.
이 주문은 이태성이 보문산 골짜기에서 영세계 칙사관이란 것을 세우고 영세계 원리를 설파할 때 가르쳤던 주문이다.
"영세계의 주인이신 조물주께서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위해 나를 보내셨으니. 너는 나를 따르라."
"나무자비 조화불, 나무자비 조화불."
최영혜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양손을 합장하며 주문을 외웠다.
"영혜야!"
"예, 칙사님."
"나는 이제 다시 돌아갈 것이고, 이 아이는 곧 깨어날 것이다. 이 아이가 깨어나면 나이되 내가 아니니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네게 한 말은 기억하지만, 원래의 나와는 또 다르니. 이 아이에게서 옛정을 찾으려 하지 말라. 하지만 네 혼자 있는 것이 안쓰러워 조물주께서 새로운 인연을 맺어주셨으니. 네 아들로 삼으라."
소년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에 최영혜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렸다.
"흐흑, 감사합니다. 조물주님. 나무자비 조화불, 나무자비 조화불."
"이 아이에게 조물주께서 큰 운명을 맡기셨다. 이 아이가 앞으로 너를 한민족의 여왕으로 만들 것이며, 한민족을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모든 우주의 조화가 이 아이와 함께 할 것이니. 너는 무슨 말을 하든, 이 아이의 말을 따르거라."
"나무자비 조화불. 나무자비 조화불. 칙사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최영혜는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나무자비 조화불을 외쳤다.
* * *
갑작스러운 최영혜의 말에 이영자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뭐라고요? 아이를 입양하시겠다고요?"
이영자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래. 신상현이란 아이야. 너도 만나보면 내가 왜 아들로 삼으려고 하는지 알거야."
"그… 그… 안 돼요. 그건."
최영혜의 답변에 당황한 이영자가 얼마나 놀랐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자신들의 계획에 없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뭐라고? 안 된다니. 무슨 소리야?"
최영혜는 평소 자신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던 이영자의 반대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사실 약간 짜증도 났다.
"영혜 언니. 언니는 결혼도 안 한 몸인데 아이라니요. 말도 안 돼요."
"그게 뭐 대수라고. 어차피 입양이잖아. 아무튼 그렇게 정했으니. 빨리 수속을 밟도록 해."
최영혜는 말을 마치고는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이영자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아니, 대체… 갑자기 입양이라니……."
"안녕하세요. 영자 이모. 처음 뵙겠습니다. 신상현이라고 합니다. 아니 이제는 최상현이라고 해야겠지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이영자는 깜짝 놀랐다.
언제 들어왔는지 방 안에 이제 10살 남짓 된 남자 아이가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확실히 보통 볼 수 있는 아이와는 뭔가 달라보였다.
"너…너… 누구니?"
이영자의 말에 신상현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너무나 충격적인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무자비 조화불, 영자야, 나는 니 애비다. 이태성이다, 이도원이다. 원화경이다."
"뭐…뭐라고?"
이영자는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은 잘 모르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가명과 교인들만 아는 주문이 처음 만난 남자아이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신상현의 입에서 쉴 새 없이 놀라운 말들이 흘러나왔다.
이영자의 눈과 입이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여 왔던 집안의 비밀들이 하나 둘 신상현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가까운 가족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런 이야기에 이영자의 눈은 점점 더 커졌다.
결국 그녀의 얼굴은 경악에 물들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신상현이 사용하는 어휘력이나 단어들 모두 이제 10살인 소년의 입에서 나올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이영자는 서서히 신상현이 돌아가신 아버지가 빙의된 존재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입양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냥 내버려 뒀단 말이야?"
"네, 어쩔 수 없었어요."
"평소처럼 잘 구슬려서 없던 일로 해야지! 왜 내버려뒀어?"
김성민이 크게 화를 내며 부인인 이영자를 다그쳤다.
성민이 화를 내자 움찔하던 이영자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여보, 놀라지 마세요. 그 아이는 사실… 사실… 돌… 돌……."
"뭐야? 똑바로 말을 해! 돌, 뭐?"
"돌…돌아가신 아버지예요."
이영자는 단숨에 말을 내뱉었다.
감히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겨우 내뱉은 것이다.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방금 뭐라고 했어?"
"그…그러니까. 그게, 그 아이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환생… 아, 아니 빙의한 아이라고요."
이영자의 말에 김성민은 크게 화를 냈다.
"이 여편네가? 돌았나! 빙의? 아니 지금 그걸 나 보고 믿으란 말이야?"
"당…당신이 그 아이, 아니… 아니, 아, 아버질 직접 만나보면 알아요."
"뭔 헛소리야?"
"당신은 아무 말 말고 따라요. 이제 최영혜 고것이 지금보다 훨씬 더 우리말을 잘 따르게 될 테니까. 알겠어요?"
김성민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철썩 같이 사실로 믿는 아내의 모습에 순간 멍해졌다.
김성민 역시 이태성을 잘 알았다.
원래 이태성이 처음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을 때는 무당이었다.
그것도 매우 큰 무당이었다.
아무리 유명한 무당도 이태성이 저주하면 신내림이 사라져버려 무당질을 못하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빙의라니?'
도대체 누가 그런 이야기를 믿는다는 말인가?
김성민은 화가 머리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곧장 신상현이 있는 방으로 씩씩거리며 들어갔다.
"어디서 어린놈이… 너냐? 네 놈이냐?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놈이 어디서 사기질이야!"
김성민은 방에 들어서자 호통을 쳤다.
이때, 신상현은 등을 지고 있었다.
김성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몸을 빙글 돌렸다.
"……!"
김성민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평생 본 적이 없는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신상현은 김성민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가 앳된 입을 열자마자 육두문자가 쏟아져 나왔다.
"이놈아! 제 앞가림도 못하던 놈을 내가 손수 키워놓았더니. 어디서 지 주제도 모르고 대거리질이냐?"
"뭐?"
"이놈아! 네 놈은 전국의 애국 목사들을 모아, 기독구국결사대를 만들 때 만나지 않았더냐? 네놈이 그날 내게, 네놈의 삼생을 걸어놓고 맹세하지 않았더냐? 나무자비 조화불! 삼생을 다해 영세계의 칙사님을 영원히 모시겠노라고!"
김성민은 입을 쩍 벌리며 당황했다.
"아… 아…아버님?"
"이놈이 그래도 머리를 꼿꼿이 들고 있구나! 네 놈이 정녕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꽃에 삼생동안 태워져 보려느냐! 이놈아~"
"아, 아닙니다. 아버님. 나무자비 조화불~ 부디 노여움을 거두소서~"
김성민은 단박에 오체복지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가족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간이 콩알만 해졌다. 정말 빙의가 일어난 것 같았다.
"아, 아버님. 대, 대체 어떻게?"
"흥, 너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잊었느냐?"
"아이고, 아닙니다. 아버님. 그럴리가요. 나무자비 조화불!"
김성민이 머리를 바닥에 엎드리며 손바닥을 모아 합장한다.
이 모습을 재단 사람들이 보았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재단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인물이 김성민이다.
그가 얼굴을 찡그리면 다음날 바로 직원들이 잘려나갔고, 조금의 실수도 용서가 없었다.
그런 김성민이 열 살짜리 아이의 호통에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있었다.
40대 중반의 건장한 남자가 아직 육체적으로 한참이나 어린아이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신상현은 겁에 질려 있는 김성민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통쾌하게 웃었다.
'흐흐흐, 역시 이런 잡놈들은 초장부터 휘어잡아야 제맛이지.'
그런데 어떻게 신상현은 이런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사실 회귀 전 삼강의 정보팀은 최영혜 대통령과 이태성에 대해서 상세히 조사를 했었다.
당시 신상현은 이태성 일가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세우고, 꼭두각시처럼 조정한 그 방식이 매우 궁금했다.
그들 일가의 이야기는 신상현 같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매우 구미에 당기는 것이 있었다.
덕분에 신상현은 최영혜 대통령과 이태성 일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크흐흐흐, 네놈을 충실히, 아주 충실히 부려 먹으마!'
신상현은 납작 엎드린 김성민을 내려다보았다.
이들 일가를 어떻게 부려먹을지 생각하며 입가를 끌어 올렸다.
혹여 김성민이나 이영자에게 삼강 자료에 없는 개인적인 일화로 인해 들킬 염려도 하지 않았다.
빙의하면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지면 그만이다.
후에는 신상현의 말을 따르도록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필요할 때만 빙의로 포장하면 그만이다.
신상현으로서는 하나의 도박이었는데 대성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