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17화
17화
#5장 미국행
상념에서 돌아온 규철은 즉시 복권을 들고 주택은행 본점으로 갔다.
잠시 후, 규철의 통장에는 세금을 공제한 1억 3천 5백만 원이 찍혀 있었다.
"이…이제 됐다. 이제 됐어. 이제 우리 딸은 살았어. 흐흐흑. 서희야. 이제 살았어."
규철은 우선 급히 밀린 병원비를 내고, 사채 빚을 갚았다.
그 와중에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하지만 707특임대의 전설인 이규철에게 작은 규모의 조폭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깨끗하게 용팔이파 아이들을 손봐준 후, 드러누운 사내들을 향해 말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돈 잘 썼습니다."
꾸벅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이규철이다.
조폭들은 얻어맞은 서러움에 고개를 반대로 돌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후배님의 의뢰를 완수해볼까? 아니지 이제는 사장님이지. 크흠. 사장님, 충성입니다."
규철은 싸게 구입한 중고차를 몰고 남해로 향했다.
강혁이 부탁한 것은 보육원 근처에 잠복하고 있으면서 이유라를 지키는 일이었다.
혹시 모를 신상현 측의 움직임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강혁은 미래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이규철이 처해있는 어려움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딸을 위해 특임대들 모임에서 돈을 걷기도 했었다.
사실 이규철의 말로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딸의 병원비를 모으지 못한 이규철은 광역 조폭의 해결사로 들어간다.
이후 사건에 휘말려 투병 중인 어린 딸을 두고 감옥에 가게 되었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감옥에서 이규철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딸이 병원에서 쫓겨나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보육원에 버려진 후 결국 죽은 것이다.
딸의 죽음을 알려준 보육원 원장은 딸이 죽기 직전까지 감옥에 간 아빠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규철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상처받은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두목은 딸의 치료와 따뜻한 돌봄을 약속했었다.
그날 밤,
이규철은 감옥에서 탈옥했다.
피비린내가 나는 밤이었다.
광역 조폭 대방파가 규철의 칼부림에 전멸 당했다.
규철은 자신을 스카웃 했던 조폭 두목을 죽이고 자신의 심장에 칼을 박았다.
강혁은 그에게 닥칠 불행을 알고 있었다.
아내와 딸을 잃었던 강혁이다.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를 돕는 한편, 어린 이유라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지난 며칠 동안 강혁은 미친 듯이 그의 행방을 찾아 다녔다.
이규철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강혁이 왜 그를 미친 듯이 찾아다녔는지 말이다.
아니 강혁도 사실은 알지 못했다.
자신이 왜 규철을 미친 듯이 찾아다녔는지 말이다.
강혁은 사실 자기 자신을 도우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규철과 그의 딸을 구하면서 말이다.
강혁은 규철에게 당첨이 확실한 복권을 건넸다.
자세한 사연은 묻지 말라고 했다.
대신 그 복권은 반드시 당첨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규철은 궁금한 점이 산처럼 많았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에게 약속한 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였다.
강혁은 규철에게 이유라의 신변을 보호하고 근황을 정기적으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계약금은 당첨이 확실한 3회 분량의 복권번호와 복권 구입처였다.
동일인이 3회 연속으로 1등이 되면 의심을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수수료를 지급하고 당첨된 복권을 받아올 대리인도 섭외를 해놓은 상황이었다.
"내 딸만 구할 수 있다면 그까짓 거. 이유는 몰라도 돼. 울 사장님이 도사쯤 되나보지."
규철은 엑셀을 밟았다.
남해까지는 앞으로 몇 시간을 더 달려야 했다.
* * *
강혁이 라스베가스 공항에서 내린 것은 오전 10시였다.
대부분의 돈을 보육원과 부모님에게 쓴 강혁이다.
미국에서 한 달 체류비 정도밖에 없었다.
강혁의 능력으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카지노였다.
강혁은 택시를 불렀다.
"어디로 모실까요? 손님?"
"메트로폴리스 호텔로 갑시다."
"멋진 곳이죠. 라스베가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행운이 함께 하시길"
라스베가스는 정말 화려한 곳이었다.
특급 호텔인 메트로폴리스 호텔 로비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이 많았다.
여기저기에 화려한 옷을 걸친 다국적 여행객들이 보였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손님?"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금발의 아가씨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강혁은 1박을 할 수 있는 가장 싼 방을 골랐다.
그렇다고는 해도 라스베가스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방이었음에도 하루에 15만 원 상당의 돈을 지급해야 했다.
강혁이 체크인을 하는 동안 옆에서 온몸을 명품으로 도배한 동양인 하나가 예약해둔 방의 열쇠를 받고 있었다.
'뭐지? 이 친구?'
강혁은 고개를 돌려 한 번 위아래를 훑었다.
작은 키에 뚱뚱한 몸매였지만 스위스제 명품 시계와 명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동양의 어느 졸부 집 아들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았는지 동양인이 강혁을 돌아보며 인사를 했다.
"헤이, 형씨. 만나서 반가워. 헨리 첸이라고 해."
"헤이, 헨리. 반가워요. 존 강이요."
"존,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코리아, 헨리는 말레이시아 사람이죠?"
강혁의 말에 헨리의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오? 어떻게 알았어요?"
놀란 헨리의 동글동글한 얼굴이 왠지 순진해보였다.
"하하, 진정해요. 헨리. 나는 당신 여행 가방에 걸려 있는 발송용 카드를 보고 알았으니까."
강혁의 말에 그제야 헨리는 이해를 한 듯했다.
"형씨, 눈썰미가 상당하군. 마음에 들었어. 그럼 굿럭!"
헨리는 손가락을 이마에 갖다 붙이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헨리는 하루 숙박비가 천만 원이 넘는 최고급의 스위트룸을 예약했다.
'대단한 부자인 모양이군.'
자기 방에서 짐을 푼 강혁은 샤워를 했다.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1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들고는 카지노를 찾았다.
그리고 대충 부스를 살펴본 후 포커 판에 뛰어들었다.
두 시간 후, 강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1달러로 시작했던 그의 수중에는 이미 만 달러의 칩이 모여 있었다.
두 시간 만에 한화로 천만 원을 훌쩍 넘는 돈을 번 것이다.
다시 다른 테이블을 구경하다가 강혁은 헨리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오? 헨리. 이런 곳에 있었군요. 이런? 손해를 좀 본 것 같군요."
"응? 존이군. 내가 손해를 봤다고? 무슨 소리야 겨우 만 달러가지고."
사실 만 달러라면 다른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액수다.
하지만 헨리는 그 정도 손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 정도로는 손해라고 볼 수 없지. 안 그래? 이봐. 여기 십만 달러 더 내와."
"예, 손님. 잠시만 기다리시죠."
헨리의 가슴 앞에 칩이 다시 산더미처럼 쌓였다.
"어때? 존, 너도 한 판 할래?"
"기꺼이."
기존 멤버들의 승낙을 받고 강혁도 포커 판에 앉았다.
헨리가 앉은 테이블은 상당히 판이 커져 있었다.
첫 판은 상황을 살펴보려 했던 강혁이다.
하지만 첫 판부터 너무 쉽게 강혁이 돈을 따게 되었다.
"이런, 이번 판은 망했군. 한 판 더 해보겠나?"
강혁이 포커 판에 끼어들기 전까지 테이블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남자가 눈을 빛내며 강혁을 보았다.
강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의 다른 손님들도 전의를 불태웠다.
이번 판에는 헨리도 돈을 조금 땄기 때문인지 소리 높여 한 번 더를 외쳤다.
강혁은 속으로 웃었다.
지금 포커 판에 앉은 멤버들이 헨리를 제외하고 모두 한통속이라는 것을 눈치 챘던 것이다.
그들은 몰래 몸짓으로 서로에게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얼핏 보면 전혀 한 팀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다양한 연령과 성별, 피부색으로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강혁의 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슬쩍 어깨나 모자를 매만지거나, 결혼반지를 살짝 터치하거나, 귀걸이를 만지는 것이 보였다.
반지나 목걸이를 만지는 손가락이 어느 손가락인지에 따라서도 신호가 달라지는 모양이다.
이번 판에 그들이 잃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판을 더 키우기 위한 것이다.
돈줄로 보이는 졸부 동양인들의 주머니를 탈탈 털 속셈일 것이다.
상당히 능숙해 보이는 사기단이었다.
하지만 강혁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강혁은 F.B.I 연수 시절 사람의 얼굴 표정과 몸짓 언어를 읽어내는 법을 배웠다.
그때의 인연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는 멘탈리즘도 배우게 된다.
멘탈리즘은 상대의 심리를 읽고 유도하는 기술이다.
심리학, 최면, 독심술 등이 바탕이 된 고도의 심리조작능력이다.
멘탈리즘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상세한 설명이 없다면 초능력이라고 해도 믿었을 정도였다.
강혁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커 챔피언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얼굴표정과 몸짓으로 상대방의 패를 읽어내는 강의를 했었다.
지금에 와서는 포커 판에서 적수가 없는, 대가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현 시대에는 이런 심리조작 기술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게다가 절대적인 기억능력을 가지고 있는 강혁이다.
카드게임으로 강혁을 이길 수 있는 고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강혁이 미국행을 결심했을 때 처음 라스베가스를 택한 이유였다.
다시 다섯 시간이 지난 후, 강혁의 앞에는 칩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포커 사기 팀을 이끄는 리더 격의 남자가 어떤 수를 써도 강혁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에는 게임을 진행할 의욕을 잃어 버렸다.
"자, 그럼 이제 그만 끝내죠. 잃은 돈의 10%는 가져가세요."
강혁의 호의에 포커 사기단은 눈을 빛내며 얼른 칩을 받아가며 감사를 표했다.
리더 격의 사내는 강혁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인상적인 실력이군요. 내 이름은 호커요."
"존입니다. 이번에는 운이 없으셨군요."
"운이라? 하하, 그럼 또 봅시다."
호커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돌려받을 칩을 챙겨서 나갔다.
아마 저 사람들은 다른 장소에서 다시 모일 거다.
"하하, 존. 잘하는군. 마치 포커의 신 같은 솜씨였어."
"헤이, 헨리. 넌 좀 실력이 많이 부족하더라."
존의 말에 헨리는 어깨를 조금 으쓱거릴 뿐이었다.
많은 돈을 잃었지만 싱글벙글거리는 얼굴표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럼 잘 놀았어. 또 보자고. 친구."
헨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다름 사람들과 달리 10%를 돌려받지 않았다.
강혁은 그를 불러 세우려고 했지만 그가 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흠, 이상한 녀석이었어.'
막판에 판돈이 나름 커지는 바람에 강혁의 수중에는 모두 이십만 달러의 칩이 쌓였다.
그것도 중간에 멈춰서 그 정도였다.
만약 끝까지 갔다면 사기단과 헨리의 돈을 탈탈 털 수 있었을 거다.
"이걸로 1차 목표는 달성했어. 그럼 내일은 슬슬 접근을 해볼까?"
강혁은 그길로 칩의 일부를 환전한 후, 택시를 타고 컴퓨터 가게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94년도 최신형 컴퓨터와 모뎀을 산 후, 호텔로 돌아와 설치했다.
그 후 즉각 컴퓨터 괴짜들이 모여드는 커뮤니티를 검색한 후 가입했다.
그리고 밤을 꼬박 새웠다.
[헤이, 존94. 넌 정말 획기적인 생각의 소유자구나.]
[그래서 미래에는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빅데이터를 지금과는 전혀 다른 수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거란 말이지?]
[그래, 그레타31. 나는 앞으로 30년 후쯤에는 지금의 내 구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술들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해.]
[존94의 생각은 정말 흥미로워. 뭐 또 다른 참신한 생각 없어?]
[30년 후보다 가까운 장래의 일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아마도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IT기업들이 상당한 주목을 받고 수십 년간 약진할 거라는 거지. 중간에 한두 번쯤 등락은 있겠지만 말이야. 앞으로 IT관련 주식을 주목해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