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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4화 (24/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24화

24화

#7장 악의 발화 (2)

"그런데 그 분은 왜 찾으시려고 하는지 제가 알아도 될까요?"

"하하, 딱히 숨기고 할 일은 아닙니다. 그 분이 우리 대진건설의 새로운 사장이 되실 겁니다."

"예?"

강혁의 말에 이규철은 살짝 놀랐다.

부도 위기를 맞은 대진건설을 강혁이 인수하기는 했지만 작년만 해도, 실적 순위로 30위권에 위치한 나름 큰 중견 회사였다.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회사를 운영해서 결국 자금난을 겪게 된 것이다.

"그 분이 그 정도로 능력 있는 분입니까?"

이규철의 말에 강혁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음, 능력도 뛰어나지만, 안전 문제를 등한시 하지 않는 분입니다. 건설 현장 감독과 감리에 철저하시던 분이죠."

강혁은 회귀 전 자신이 읽었던 신문 기사를 회상하며 말했다.

강혁이 찾는 사람의 이름은 최삼우.

43세의 젊은 나이에 건설회사 홍익을 세운 사람이다.

그는 초압축 성장을 거듭하던 한국 사회에서 건설사의 부실시공 관행을 타파하려 노력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직하게 건설을 하려니 경쟁사들에게 밀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의 회사는 건설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대다수의 건설사들은 인건비와 자재비의 상승을 핑계로 신기술의 도입과 고급 자재 사용을 꺼릴 때 홍익은 달랐다.

항상 최신 기술을 도입하려 노력했고, 자재도 좋은 것으로만 골라서 사용했다.

이런 회사는 더 잘되어야 하건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결국 건설 회사 홍익은 다른 회사들의 질시와 비아냥 속에서 환상처럼 사라졌다.

삼양백화점 붕괴 사건 후, 정부는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안전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는 참으로 처참한 것이었다.

[전체 고층 건물의 1/7(14.3%)은 개축이 필요한 상태였다.

전체 건물의 80%는 크게 수리할 부분이 있었다.

전체 건물의 2%만이 안전한 상태였다.]

홍익이 지은 건물들이 2%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건설 비리 관련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홍익과 최삼우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강혁은 반드시 최삼우를 재기시킬 생각이었다.

"그 분을 꼭 찾으세요. 앞으로의 한국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분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이 믿는 분이라면 저도 믿습니다."

전화 너머로 이규철의 우직한 답변이 들려온다.

이규철은 강혁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단순히 투자한 회사를 키울 사람이라서 찾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안전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 찾는다는 말이 감동이 되었다.

작년의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떠올르자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그런 분이야 말로 우리 나라에 필요하다는 사장님의 말씀. 정말 맞는 말이다.'

이규철은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반드시 최삼우를 찾겠다고 다짐했다.

*     *     *

삼양백화점 사장실에 김인수 사장과 강 비서, 그리고 몇몇 임원들이 모여 있다.

김인수는 얼굴이 벌겋게 변해 씩씩 거렸다.

"야, 이 새끼야. 넌 그거 하나도 처리를 못해?"

김인수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강 비서가 옆에서 쩔쩔매며 식은땀을 흘린다.

"죄,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엎드려! 이 개XX야!"

"사, 사장님!"

사장의 호통에 강비서가 벌벌 떤다.

"뭐해? 빨리 안 엎드려? 네가 오늘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알, 알겠습니다. 사장님."

강 비서가 바닥에 팔굽혀펴기를 하듯이 엎드린다.

김인수가 골프채를 들고 강 비서 앞에 섰다.

사장실에 모여 있는 몇몇 임원들은 강 비서를 외면하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내가 하루만에 알아내라고 했지! 그런데 3주가 지나도록 못 알아내? 그때 내가 내린 아픔을 잊었나봐? 응? 견딜 만했나 보네?"

"아, 아닙니다. 사장님."

이미 3주 전 강비서는 오늘과 같은 곤혹을 치른 모양이다.

"내가 오늘 네 놈의 정신머리를 고쳐주마. 엉?"

퍽! 퍽! 퍽!

골프채가 사정없이 강 비서의 몸뚱이에 내려쳐졌다.

나중에는 급기야 옷이 찢어지고, 피가 사방으로 튄다.

"사, 사장님. 그만 고정하시지요."

보다 못한 임원 중 하나가 김인수 사장을 말렸다.

김사장이 씩씩 거리며 콧바람이 거세게 새어나왔다.

"이 자식아. 내가 10년만 더 젊었어도, 넌 오늘 이 자리에서 죽어 나갔어! 엉?"

한 마디 대꾸를 할 법도 하건만. 이미 곤죽이 된 강 비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이런 이 친구 기절했군?"

김인수 사장을 말리던 임원 옆에, 말없이 서 있던 사내가 다가가 강 비서의 상태를 확인했다. 나이는 30대 후반으로 보인다.

여자처럼 머리를 길렀는데 어깨까지 내려왔다.

여름인데도 장갑을 끼고 있고 비수처럼 날카로운 눈매와 높은 콧대를 가진 미남이다.

종이도 갈라버릴 것 같은 날카로움과 태산 같은 중후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 사내의 이름은 오태산.

현재는 삼양그룹의 전무이다.

처음부터 삼양그룹 소속이었던 것은 아니고 김 회장이 외부에서 발탁한 사람이다.

오태산 전무가 강 비서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사람을 불러 병원으로 보냈다.

"저 자식 저렇게 비리비리해서 어디다 써먹겠어?"

직원에게 업혀 사장실을 빠져나가는 강비서를 보며 김 사장은 혀를 찼다.

"사장님, 제 밑에서 튼튼한 놈으로 하나 골라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태산 전무가 말했다.

"그렇게 해. 쯧."

김인수가 담배를 꺼내자 오 전무가 라이터를 꺼내 담뱃불을 붙여주었다.

다른 임원들도 라이터를 꺼내고 싶었지만 오 전무의 존재감에 감히 나서지 못한다.

깊이 들이마신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김인수는 몸을 책상 앞에 기대었다.

"이제 어쩌지? 대한일보 놈들이 이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건데 말이야?"

"사장님이 대한일보 사장을 직접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그래도 지금까지의 인연이 있는데 문전박대는 하지 않을 거 아닙니까?"

오 전무가 말했다.

"직접 만나서 얘기를 해본다?"

"예, 그리고 이상한 게 있습니다."

"……?"

"우리가 그동안 광고비로 막대한 돈을 퍼부었습니다. 게다가 앞으로도 중요한 고객인데, 그걸 무시하고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상회하는 뭔가가 있었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게 뭔지를 알아야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전무의 말에 김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일보도 문제지만 대진 놈들이 우리 쪽에 칼을 겨눴어. 이젠 전쟁이야."

"회장님 말씀을 들어보면 부도 직전의 회사에 자금을 수혈한 사람이 이 일을 주도하고 있다고 했으니. 그 사람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난들 그걸 몰라서 그래? 어떻게 찾을 거야."

"사장님. 이번 일은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오 전무가?"

"예, 제 밑에 있는 녀석들 중에 이런 일에 특화된 애들이 있습니다."

오 전무가 데리고 있다면 조폭을 의미한다.

사실 오태산 전무는 검도와 복싱 실력으로 이름 난 주먹들을 제압한 인물이다.

그가 결성한 TS파는 짧은 시간 동안 한강 이남을 지배하는 신흥세력으로 떠올랐다.

삼양그룹의 김회장은 그런 오태산의 잠재력을 높이 사서 그와 그의 부하들을 그룹의 휘하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편, 잠시 고민하던 김인수 사장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말 안 나오게 조심해서. 오 전무가 한 번 알아봐."

"맡겨 주십시오. 사장님."

오 전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는 서인태 이 자식이 대체 무슨 꿍꿍인지 알아야겠어."

김 사장의 두 눈이 사납게 변했다.

*     *     *

서울 데일리 신문사

"이 기자, 이리 와봐."

"예, 편집장님."

젊은 여기자가 편집장이 앉아 있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책상 위에 구겨진 노란 봉투가 보인다.

"너, 아직도 이거 해보고 싶어?"

배추 머리 편집장의 말에 여기자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그, 그럼요. 헤헤."

"좋아, 한 번 해봐."

노란 서류 봉투를 받아든 여기자의 얼굴의 의혹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죠?"

"응? 뭐가 문젠데? 하기 싫어?"

"에이~ 하기 싫긴요. 그게 아니라, 갑자기 왜 마음을 바꾸셨어요?"

한 달 전만 해도 큰 광고주를 건드리는 일이라고 결사반대를 했던 사안이다.

갑자기 취재가 허락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게…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대한일보 쪽에서 움직이나봐. 이건으로."

"저, 정말요?"

"그래. 너도 잘 알잖아. 대한일보가 움직이면 어떻게 되는지?"

"없던 죄도 만들 수 있는 곳이죠."

"그래. 그러니까, 우리도 준비는 해두자고."

"하앙, 그러니까 남들 뒷꽁무니만 쫓으시겠다?"

"이놈이~ 하기 싫으면 다른 기자 줄까?"

"아니요, 할게요. 해요. 한다고요."

여기자는 행여나 다시 뺏어갈까봐 서류를 품에 안고는 쌩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송배 씨, 우리 가요."

"잠깐만요. 이거 마저 먹고."

20대 후반의 남자가 책상위에 높인 떡을 입에 털어 넣으며 일어났다.

"에이 그렇게 먹고 또 부족해요?"

"흐흐, 나야 항상 부족하지."

입에 묻은 떡 부스러기를 털어낸 박송배는 카메라를 메고 따라 나선다.

*     *     *

"와우, 이건 아예. 변신 수준인데?"

박송배가 눈을 끔벅끔벅 거렸다.

매일 봐왔던 사이지만 머리를 풀고, 안경을 벗고 제대로 차려 입은 이진주는 완전히 사람이 달라보였다.

눈에는 컨텍트렌즈를 낀 모양이다.

"침 흘리지 마요. 송배 씨."

"엉? 침?"

당황한 박송배가 입가를 손으로 만졌지만 침은 어디에도 없었다.

"킥~"

이진주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녀는 당당한 걸음으로 삼양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박송배는 카메라를 가방 안에 감추고는 이진주의 뒤를 따라나섰다.

이진주는 단순히 쇼핑을 하러 온 사람처럼 행동했다.

지하 3층에서 시작해서, 지상 5층까지 이진주는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문건에 나와 있던 부실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문건에서 지적했던 상당 부분에 보수가 이루어져 있었다.

갈라진 부분들은 이미 시멘트로 보수가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흠, 나름 보수 공사는 실시했나본데? 이걸로 괜찮은 걸까?'

부실시공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이진주라 딱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자 실망했다.

이미 삼양백화점 쪽에서는 대한일보 등의 취재에 대비해 보수 공사를 실시한 이후였다.

"쩝, 늦었어. 좀 더 빨리 움직였어야 하는 건데."

백화점 5층 로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흘러나왔다.

이대로 돌아가면 허탕을 친 셈이다.

그녀는 박송배에게 보수한 부분들을 몰래 사진을 찍으라고 지시를 했다.

아무튼 찍은 사진들은 다시 전문가들에게 문의를 해볼 생각이었다.

"이봐요. 송배 씨, 우리 식사라도 해요."

"어, 기다리던 말이야."

송배의 말에 이기자가 피식 웃었다.

"우리 저기 가요."

이진주의 눈에 중식당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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