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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6화 (26/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26화

26화

이규철이 살모사 눈빛의 사내를 바라봤다.

사내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군용 나이프가 전등 빛에 반사되며 날카롭게 빛났다.

"난 원래 칼잡이야. 그러니 불공평하다고 하지마."

이태성의 눈빛이 붉게 변했다.

나이프가 현란하게 움직이며 허공을 비산했다.

나이프는 쏜살같이 이규철의 가슴팍으로 날아들었다.

그 타이밍은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 전까지 사람들의 눈을 현혹하듯 아름답게 춤을 추던 나이프의 움직임이 단 한순간, 가슴팍으로 날아든 것이다.

휘리릭~

규철의 양손이 동시에 움직였다.

왼손이 나이프를 쥔 이태성의 손등을 막았다.

오른손이 팔꿈치 안쪽을 잡아채는 듯하더니 허공에서 교차하며 쌍원을 그렸다.

"크아악……."

이태성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이규철의 가슴을 향해 날아간 나이프가 어느새 이태성의 어깨에 박혀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규철의 팔이 이태성의 목을 잡았다.

쾅.

딱딱한 사무실 바닥에 이태성의 몸을 처박았다.

"크어억!"

이태성은 그저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꺼억꺽 거렸다.

이규철은 이태성의 어깨에 박은 칼을 뽑았다.

이태성의 피에 젖은 나이프를 이마에 갖다 대고 옆으로 쓱 닦아내자 피가 이규철의 이마에 한일자로 칠해졌다.

이규철은 이태성의 나이프로 이태성의 두 뺨에 V자로 피칠을 했다.

마치 배고픈 호랑이가 사냥감을 쳐다보듯 남아 있는 조폭들을 노려보았다.

조폭들의 얼굴에 당혹해하는 눈빛이 흘렀다.

"어이~ 내가 오늘 그대들에게 잊을 수 없는 피의 밤을 만들어 드리지."

칼날로 얼굴에 피를 묻힌 이규철의 얼굴이 야차처럼 변했다.

휘익.

이규철이 바람처럼 몸을 날려 조폭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쏜살같이 나이프를 찌르고 빼내기를 반복했다.

푸슉.

그때마다 이규철을 향해 주먹이나 쇠파이프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조폭들은 쇠파이프를 떨어뜨리거나, 제대로 서 있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손목과 발목의 힘줄이 잘려나간 것이다.

순식간에 바닥에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신음성을 내뱉는 한 무리의 사내들로 가득했다.

괜히 이규철이 707특임대의 전설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소장님, 괜찮으세요?"

"사장님, 고마워요."

"뭘요. 저 때문에 이렇게 다치신 건데요. 아무튼 일단 병원부터 갑시다."

조폭들에게 얻어맞은 상처 때문에 얼굴과 몸이 상한 소장을 부축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차에 올라탄 규철은 병원으로 차를 돌렸다.

규철의 차가 골목길을 돌아 나설 때였다.

대로에서부터 사거리 직진 방향으로 운행하던 트럭이 갑자기 턴을 하더니 규철의 차를 옆에서 들이박았다.

콰앙!

덤프트럭에 밀려난 차가 벽에 처박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트럭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기절한 이규철과 흥신소 소장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곧 두 사람을 차에 실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     *     *

대한일보 사장의 응접실.

"야, 서인태, 대진건설에서 어떤 조건을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도 똑같이 아니, 더 얹어줄테니까. 특집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그 기사 막아줘."

"흐흠, 글쎄. 과연 네가 감당할 수 있을까?"

"뭐? 야, 날 뭘로 보고? 우리 백화점이 한 달 매출이 얼마인 줄 알아? 아무렴 그 정도도 감당 못할까?"

서인태의 눈빛이 미묘하게 빛난다.

"알지. 우리 김인수 사장님이 얼마나 벌이가 좋은지. 그런데 만일 백화점이 정말 무너진다면?"

"헛소리들 하지 마. 우리도 다 계산하고 있어.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거, 벽에 금 좀 간 거가지고 다들 호들갑 떨고 말이야."

"흐흥, 그래? 하지만 말이야. 난 아무래도 대진건설 쪽이 마음에 든단 말이야. 너네랑 달리 아주 손이 크더라고. 게다가 세상을 알아. 누구한테 줄을 써야 유리한지 말이야."

서인태가 와인을 입가에 가져가며 김인수를 비웃듯이 바라본다.

"야! 서인태.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가만히 안 있을 줄 알아?"

"가만히 안 있으면 어쩔 건데?"

서인태가 비웃듯이 바라보았다.

"훗, 혹시 너네의 그 알량한 똘만이들 믿고 그러는 거냐?"

"뭐?"

"어쩌냐? 내 뒤는 판검사들이 봐주는데 말이야. 너네 똘만이들 싹 다 잡아들이면 그땐 어쩔건데? 김인수, 엉? 말해봐!"

서인태가 쾅하고 앞에 놓여 있는 탁자를 내리쳤다.

그때 김인수 앞에 놓여 있던 와인잔에서 술이 튀어 얼굴에 묻었다.

"이… 이 자식!"

"넌 말이야. 나하고 동창이라는 거 말고, 나한테 비빌 수 있는 게 처음부터 하나도 없었다는 거 모르냐? 어디서 똑같이 굴어."

김인수의 얼굴이 모욕감으로 붉어 졌다.

"어디 두고 보자. 네 잘난 대한일보, 서 씨 일가. 앞으로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지 내가 두고 보겠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인수가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빙신 새끼, 훗.'

김인수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서인태는 전화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누구지?'

자리에서 일어나 와인을 손에 들고 전화기를 들었다.

"예? 아…아버님. 하지만… 대체 왜?"

잠시 대화를 나눈 후, 전화기를 잡고 있던 손이 내려갔다.

그리고 의문의 표정이 서인태의 얼굴에 가득했다.

*     *     *

이규철은 조용히 눈을 떴다.

주변을 둘러보자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팔에는 링거 바늘이 꼽혀 있었다.

"어머? 환자가 정신을 차렸어요."

간호사처럼 보이는 여자가 병실을 나가자 잠시 후,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뛰어왔다.

그리고 눈에 불빛을 비추고 여기저기를 살핀다.

"누군지 기억나세요? 이름 말해보세요."

"이규철."

"나이는요?"

"34세."

의사가 이규철의 몸 상태를 살피는 동안 누군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키는 190이 넘어보였다.

깔끔하면서도 짧은 머리에 고급 슈트가 상당히 잘 어울려 보이는 20대 중반의 남자였다.

"사장님?"

이규철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강혁이 말렸다.

"그대로 누워 있어요. 규철 씨는 일주일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어요."

"예? 제가 일주일이나 누워 있었다고요?"

"그래요."

강혁이 부드러운 얼굴로 이규철을 바라보았다.

"아, 사장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삼양, 기사 실렸습니까?"

이규철은 깨어나자마자 삼양에 대해서 물었다.

대한일보에서 특집으로 연재한다고 했었다.

거기서 움직이면 시청에서도 움직일 예정이었다.

"아윽."

갑자기 통증이 느껴지자 의사가 주의를 줬다.

"환자 분은 일주일 가까이 혼수상태에 계시다가 지금 막 깨어나신 겁니다.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아, 예."

"그럼 다른 곳은 이상이 없는 것 같으니 두 분 말씀 나누십시오."

의사와 간호사가 모두 병실을 빠져나왔다.

"어떻게 됐나요?"

그가 기대에 찬 눈으로 물었다.

강혁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신문에 아무 것도 실리지 않았다고요? 그럴 리가?"

"시청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모두 돈만 받고 입을 닫았어요. 전화를 해도 받지 않습니다."

"이~ 개xx들… 아얏……."

"무리하지 말고 푹 쉬어요. 선배님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갈비뼈가 세 개가 부러지고, 목과 다리에도 금이 갔어요.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하, 하지만… 사장님.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강혁은 달력을 바라보았다.

"내일입니다."

"예? 내일이라고요?"

'대체 난 며칠이나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던 거야?'

이규철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대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저도 돕겠습니다. 앗, 아야."

"마음만 받을게요. 선배님. 이제부터는 제게 맡기세요."

강혁의 눈이 빛났다.

그는 갑자기 이규철과의 연락이 끊어지자 문제가 생겼다고 직감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 급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규철을 찾았을 때는 일성 흥신소 소장과 함께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였다.

지금은 깨어났지만 당시에는 두 사람 다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주었다.

정신을 잃은 두 사람을 새벽 무렵 누군가 병원 앞에 버리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강혁은 자신 때문에 큰 화를 입은 두 사람에게 미안함과 참담함을 느꼈다.

'두 사람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내일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강혁은 정신을 차린 이규철의 앞에서 그렇게 다짐을 했다.

*     *     *

1995년 6월 29일 오전 7시.

"아빠, 오늘 월급날이야. 저녁에 돌아오면 선물 사드릴게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집을 나서며 말했다.

"녀석, 선물은 무슨, 돈 아껴서 시집 가는데 보태야지. 아무 것도 사오지마."

"무슨 소리에요. 아빠. 그냥 받아요.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갖다 오너라."

홍성진(58세)은 일찍 아내를 잃었다.

혼자서 당시 10살이던 딸을 키웠다.

그렇게 작디작던 아이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선택했다.

그게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공부도 잘하고 싹싹하고, 이쁜 딸은 고등학교만 나왔지만 남들이 다 부러워할만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바로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삼양백화점이다.

"이제 시집보내야 할텐데."

작던 아이가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어 시집을 보낼 나이가 되었다.

홍성진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젊은 아내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여보, 우리 수진이가 올해 벌써 23살이요. 그 조그만 아기가 벌써 이렇게 컸어. 이제 우리 수진이 시집만 보내면 내 할 일은 다 한 거요."

아내의 사진을 보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내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당신 다시 만날 때 부끄럽지는 않겠어. 당신도 하늘나라에서 우리 수진이 잘 보살펴 줘요."

홍수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삼양백화점에 취업을 했다.

지금은 2층 여성복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 최고, 최대를 자랑하는 삼양백화점에 취업한 것을 매우 자랑스러웠다.

수진은 매장에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 아침부터 부리나케 서둘렀다.

집 앞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걸려 백화점 앞에 도착한 수진은 탈의실로 가서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얘, 수진아, 들었니?"

"뭘?"

"어제 물류실 이 계장하고 4층 가전매장에 영숙이하고 물류실 창고에서 몰래 만나다가 박 팀장님한테 들켰데~ 풋."

같은 백화점에서 일하는 친구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뭐?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진짜라니까. 벌써 백화점 전체에 소문이 쫙 펴졌어."

"두 사람 전부터 수상하기는 했는데. 그건 그렇고 너도 가을쯤에 결혼하기로 날 잡았다며? 축하해."

"헐, 벌써 소문났냐? 어제 미라 언니한테만 살짝 얘기한 건데?"

"이것아, 이미 1층에서 3층까지 소문 다 돌았어. 오늘 오후쯤에는 백화점 전체가 다 알걸?"

"큭! 여긴 뭔 비밀이 없어. 기다리면 내가 알아서 다 알려 줄 건데."

두 사람이 잡담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들어왔다.

팀장이었다.

"수진 양, 애라 양. 잡담 그만하고. 빨리 개장 준비해야지."

"예, 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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