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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7화 (27/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27화

27화

두 사람은 즉시 잡담을 멈추고 매장으로 나갔다.

삼양백화점은 국내에서 해외 명품을 본격적으로 런칭한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1층에는 90년대인데도 불구하고 디올과 샤넬, MAC, 랑콤 같은 해외의 고급 화장품 브랜드가 입점해 있었다.

2층의 여성용 의류 매장에는 유명 디자이너의 고급 브랜드와 메이저급 명품 브랜드가 즐비했다.

3층 남성용 매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스나 베네통 같은 중저가 브랜드만 입고 다녀도 사람들이 너희 집 좀 사는구나? 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이런 시절에 구찌, 버버리, 페레가모, 베르사체, 막스마라 등 매우 비싼 브랜드들이 즐비했다.

삼양백화점이야말로 국내에서 본격적인 해외 수입 매장의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는 해외 수입품에 대해 사회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했다.

사회 일각에서는 삼양백화점을 사치 1번지라며 비아냥거리는 시선도 있었다.

홍수진과 김애라는 해외 고급 브랜드를 주로 판매하는 2층 여성 의류 매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회에서 알아주는 유명 인사나 연예인들을 많이 상대했고,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편이었다.

*     *     *

오전 9시.

5층 식당가 전주 비빔밥 전문점 남풍.

"아, 아니? 이게 왜 이래?"

사장인 박희수는 개점 준비를 하다가 바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식당 바닥이 여기저기에서 돌출부위가 올라와 있는 것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2m 가량 되었다.

박희수는 깜짝 놀라 식당 전체를 살펴보다가 천정을 올려다 보았다.

천정도 원래 높이 보다 조금 내려 온 것이 보였다.

"아이고머니나. 이게 무슨 일이야?"

박희수는 즉시 전화기를 찾아 시설과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시설과 차장 이철수가 젊은 남자 직원 한 명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무슨 일이죠?"

"아이고, 이 차장님. 큰일 났어요. 여기 좀 보세요."

현장을 살핀 이 차장과 손 대리의 낯빛이 흐려졌다.

"차장님, 저길 보시죠."

손 대리의 말에 이차장이 고개를 들어 내려 앉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다른 곳도 살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손 대리의 말에 이 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차장은 박 사장을 말로 진정시킨 후, 다시 식당 밖 5층 로비로 나왔다.

"5층 기둥 쪽을 가보자."

이 차장이 말했다.

"예, 차장님."

두 사람이 이동 중에 갑자기 손 대리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이 차장을 불렀다.

"차장님, 저기!"

손승택의 말에 이 차장은 그가 손으로 가르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을 잊었다.

5층 천정이 비틀려 내려앉아 있는 것이 육안으로 보였다.

이 차장은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즉시 기둥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고, 손 대리도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곧 기둥이 있는 곳에 서서 세심하게 기둥을 살폈다.

"여깁니다. 차장님."

손 대리가 가리킨 곳에 20cm 정도의 금이 가 있었다.

우동 전문점 양지.

사장 겸 주방장인 김필성은 오늘 장사를 위해 우동 육수를 만들고 있었다.

육수에 들어갈 야채와 건어물을 칼로 다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천정에서 물이 새어 나왔다.

"엇ㅡ 차거! 뭐야? 물이 새잖아?"

천정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확인한 김 사장은 즉시 밖으로 나가 시설과에 전화를 넣었다.

"뭐야? 이미 5층으로 갔다고? 알았어요."

전화를 끊은 김 사장이 밖으로 나왔을 때 마침 이 차장과 손 대리가 기둥을 찾아 뛰어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을 발견한 김 사장은 뭔가 큰 문제가 생겼다고 직감했다.

"이봐, 이 차장!"

두 사람을 따라 나선 김 사장은 두 사람이 기둥에 생긴 금을 관찰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가게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김 사장님. 저희가 살펴보겠습니다."

손 대리가 대답했다.

그때 냉면집에서 직원처럼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고 두 사람 쪽을 보더니 소리쳤다.

"이 차장님, 여기도 좀 봐주세요. 천정이 내려왔어요."

냉면집 직원의 말에 이 차장과 손 대리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두 사람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뭐야? 5층 식당가 전체가 그렇다고?"

삼양백화점 사장 김인수는 이철수 차장의 보고에 화들짝 놀랐다.

"예, 사장님. 직접 가서 보셔야 할 듯싶습니다."

"알았어. 어서 가보자고."

김인수 사장은 아무래도 건물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함께 5층 식당가를 돌았다.

그의 말대로 5층 천정에 균열이 가고, 바닥이 내려앉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 사장은 긴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오전 10시.

백화점 문이 열리며 하나둘 손님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평일 오전이라 사람들이 아직 많지는 않았다.

홍수진은 매장 정리를 마치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 수진아. 저기 남자 손님 좀 봐."

"누구?"

"저 사람 말이야. 정말 멋지지 않니?"

애라의 호들갑에 고개를 돌리니 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가 선글라스를 끼고 매장을 살펴보고 있었다.

운동을 했는지 체격이 건장하고 슈트핏이 너무 멋져보였다.

그 모습에 애라가 호들갑을 떨 만했다.

"얘, 가을이면 결혼할 애가 외간 남자한테 너무 들뜨는 것 아니니?"

"뭐 어때, 나 아직은 미스걸랑?"

"어휴, 그래. 실컷 좋아해라."

"어머, 저 남자 여기로 온다."

남자가 매장 쪽으로 다가오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홍수진은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살짝 놀랐다.

생각 이상으로 잘 생긴 미남자였다. 입고 있는 옷도 외국의 유명 브랜드다.

'이런 사람의 애인은 어떤 여자일까?'

여자 매장을 혼자서 방문하는 남자의 목적은 대부분 연인의 선물을 사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녀가 보고 있는 남자는 바로 강혁이었다.

홍수진은 강혁의 여자 친구를 몰래 부러워하며 얼굴에 한껏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홍수진이 고개 숙여 인사할 때 강혁의 날카로운 눈은 순간적으로 홍수진의 얼굴 표정과 몸짓 그리고 명찰을 보았다.

순간 강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잠시 뭔가 생각에 잠긴 듯 하던 강혁이 입을 열었다.

"저기 말씀 좀 묻겠습니다."

"예. 고객님.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오늘 혹시 이 건물에서 이상한 소리 못 들으셨나요?"

"예?"

강혁의 질문에 홍수진과 김애라 두 사람은 표정이 굳었다.

왜냐하면 이미 직원 교육 시간에 팀장으로부터 몇 차례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내부 시설 공사 중인데, 외부에서 백화점을 음해하려는 사람들이 악독한 조작 기사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외부 사람에게 백화점 건물과 관련해서 질문이 들어오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팀장에게 알리라는 교육을 받았다.

이런 교육을 받은 두 사람이라 강혁의 질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소리라니요? 고객님.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홍수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건물 전체가 웅 하고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나요?"

회귀 전 삼양백화점 붕괴 사건을 다룬 특집 방송에서 들었던 내용이었다.

강혁은 그것을 기억하고 매장 직원에게 묻고 있었다.

직원들에게 붕괴 사고가 일어나기 전 빨리 대피시키기 위해 경각심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강혁은 붕괴 사고에서 살아남은 직원 중 하나가 방송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건물에 금이 가고, 조금 내려앉았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아무도 건물이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강혁은 그들에게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생각이다.

최후의 순간 한 사람이라도 자력으로 탈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혀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만."

김애라가 웃으며 대답했지만, 강혁은 금세 그 말이 거짓말이란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얼굴표정을 통해 김애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흐흠, 들은 적이 있군. 다행이야.'

"아, 그러시군요."

"네, 그런 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강혁은 태연하게 말을 했다.

"만일 그런 소리가 들리신다면 건물 전체에 이상 조짐이 있다는 뜻이니, 윗분들에게 알리시고, 직원 분들도 손님들과 함께 대피하세요……."

"손님, 저희 백화점은 지은 지 5년도 채 되지 않았어요. 그런 건물이 무너지긴 왜 무너져요?"

김애라가 당차게 말했다.

홍수진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은 내심 살짝 걱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미 직원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이상한 소문이 있었던 것이다.

사장이 백화점 건물 증축과 개조를 너무 자주해서 건물이 정상이 아니라는 소문이다.

백화점 직원 치고 이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커다란 건물이 갑자기 무너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다만 조금 이상이 있는가보다 하는 생각뿐이었다.

"지금은 미친 소리처럼 들리시겠지만 꼭 기억해두세요. 오후 5시 30분이 되면 여기 있지 마시고, 건물 밖으로 피신하세요. 아셨죠?"

오후 5시 57분 5층 옥상이 무너져 내리면서 10여초 만에 A동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이날 약 15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매장에 있었다.

이들은 백화점이 무너져 내릴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다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수천 톤의 콘크리트와 철근에 파묻히고 만다.

그래서 강혁은 이미 지하 매장부터 한 바퀴 돌고, 1층을 지나 2층으로 온 것이다.

지하 매장에서는 강혁이 한 말들을 놓고 직원들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꽃이 피고 있었다.

대부분 강혁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진동소리를 듣게 될 위층 사람들은 좀 더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라 믿었다.

한편, 두 사람은 강혁의 말에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팀장이 말했던 백화점을 중상 모략하려는 외부 사람이 분명하다 생각했다.

김애라가 쏘아붙이려는 것을 홍수진이 손짓으로 말렸다.

교육 받은 대로 자신들은 팀장에게 알리면 된다.

"그럼 고객님,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

두 사람은 깍듯이 허리를 숙여 강혁에게 인사를 했다.

강혁은 두 사람의 차가운 반응을 보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홍수진, 저 여자를 만날 줄이야.'

두 사람을 뒤로 하고 강혁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삼양백화점에는 유리로 된 관람형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강혁은 홍수진을 알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아버지가 한 말을 기억한다.

"아침에 월급날이라고 선물을 사오겠다고 말하고 출근한 딸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먼저 간 아내를 대신해 혼자서 어린 딸을 키웠는데… 그런 내 딸이……."

흐느끼던 노인의 음성을 기억했다.

그 노인의 딸 이름이 바로 홍수진이었다.

강혁은 나직하게 말했다.

"이번엔 부디 살아서 아버지께 무사히 가시길… 홍수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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