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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8화 (28/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28화

28화

#8장 악의 발화 (3)

강혁은 그 후, 매장과 각 층을 돌아다니며 넌지시 건물의 위험을 상기시켰다.

매장 직원들은 그런 강혁에게 다양한 반응을 나타냈다.

짜증을 내는 건 양반이고, 화를 내고 면전에서 쏘아붙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강혁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5층에 가까이 있어서, 이미 이전부터 건물의 안전 상태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직원들이었다.

"저 사람 말이 사실일까?"

4층 가전 및 가정용 매장의 직원인 이규리는 떫은 감을 씹은 듯한 얼굴로 강혁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바로 위 5층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때문에 강혁의 말에 예사로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두달 전 4월에 5층 천정에 균열이 일어났었고, 5월에는 균열에서 모래가 떨어졌다.

그리고 5층 바닥에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해서 4층 매장 직원들도 의심스런 눈초리로 4층 천정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딱히 4층에는 균열 현상이 없어서 안심하고 있었지만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규리 씨,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하게 하고 있어요?"

"아, 최 대리님. 사실은 조금 전에 어떤 사람이 말이에요."

이규리는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최 대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머, 최대리님 왜 그러세요?"

"사실은 내가 들었거든. 진동소리."

"예?"

"알다시피 내가 상품의류부자나, 그래서 물품 재고 관리 때문에 창고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데 분명히 들었어."

"…좀 더 자세히 말해봐욧!"

"4층인지 5층인지 아무튼 갑자기 뚝뚝! 드르륵! 하더니 웅 하고 2~3분간 진동을 느꼈어."

"어, 어머 그래요?"

"응, 그래서 나도 아침부터 좀 찝찝하던 중이거든. 그 사람이 뭐라고 했다고?"

"5시 30분쯤에 지체하지 말고 손님들과 함께 빨리 대피하라고 했어요. 얼마 안 있어 백화점이 붕괴된다고."

"흠, 그것 참……."

최대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길한 예감에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뭐라고요? 그런 사람이 들어왔어요?"

오선화 팀장은 2층 매장에서 근무하는 김애라의 말에 깜짝 놀랐다.

"예, 키는 190 정도에 슈트핏이 정말~ 와우!"

"예?"

"아, 아뇨. 그리고 선글라스를 꼈어요. 한눈에 보면 알걸요."

김애라가 팀장에게 호들감을 떨었다.

"하, 지금 남자 외모에 그렇게 들뜰 때예요? 가뜩이나 회사 분위기가 이상한 판에."

"예? 팀장님. 혹시 회사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김애라의 말에 오선화 팀장은 잠깐 당혹스런 기색을 보였다.

"예? 아뇨, 전혀 아니에요. 안 좋은 일이라뇨. 그런 일 없습니다. 그럼 저는 경비실에 알려야 하니. 그만 가보세요."

"예, 팀장님."

김애라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다시 매장으로 돌아가자 오선화 팀장은 곧장 경비실로 연락을 취했다.

"뭐? 이상한 소릴 하는 사람이 매장을 돌아다닌다고?"

"예, 부장님. 이미 경비실에는 연락을 취해 놓았습니다."

"잘했어. 오 팀장.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예, 부장님."

전화를 끊은 박 부장은 곧장 전무실로 연락을 했다.

오 전무는 마침 회의실로 가려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뭐라고? 그런 놈이 있어? 일단 잡아서 가둬놔. 어디서 보낸 놈인지 알아야겠어."

"예, 전무님. 알겠습니다."

오 전무가 회의실로 들어서자 회의실에는 김 회장과 김인수 사장, 백화점 건설을 맡았던 삼양건설의 김인태 사장이 와있었다.

차준배 시설 이사와 건축과 이철수 차장도 함께 있었다.

"시작해봐."

김 회장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김인수 사장의 눈짓에 이철수 차장이 모두를 바라보며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예, 회장님. 그리고 임원 여러분. 우선 이 사진을 보시죠."

이철수 차장이 화이트보드에 붙어 있는 사진들을 임원들 앞에 보여주었다.

사진들은 건물에 이상이 발생한 부분들이 찍혀 있었다.

사진을 확인한 김 회장과 임원들의 표정이 확연히 심각하게 변했다.

"다른 층도 이래?"

김 회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다행히 이런 현상은 5층에만 있습니다."

이철수 차장의 대답에 김 회장의 표정이 다수 누그러졌다.

"그나마 다행이군. 그건 그렇고 대책은 있는 거야?"

"우선 건물 전체에 대한 긴급 조사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당분간 백화점 건물을 전면 폐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차장이 대답했다.

"그 정도야?"

오 전무가 놀라며 물었다.

"예, 삼양건설 쪽 기술자들이 지금 점검을 하고는 있는데,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만지려면 아무래도 처음 설계와 시공을 맡았던 우영건축 쪽에서 안전검사를 해야 합니다."

삼양백화점은 처음에는 삼양아파트에 딸려 있는 종합상가 건물로 설계가 되었다.

그런데 백화점으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많은 구조 변경과 재건축이 이루어다.

따라서 기존 설계 원안과 현재 백화점의 형태를 비교하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런 부분이 먼저 확인이 되어야 재보수를 하든 재건축을 하던 할 수가 있는 일이다.

이철수 차장의 말에 김인수 사장이 말을 이었다.

"회장님, 지금 당장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오전에 조사를 해야 오후에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 조사를 하고 나서 다시 모이자고."

"예, 회장님."

임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김 회장을 비롯해 모든 임원이 회의실을 나간 뒤 오 전무가 김인수 사장에게 다가갔다.

그는 백화점에 나타난 이상한 인물의 행적에 대해 말했다.

"뭐야? 그런 놈이 있어? 대진건설 쪽인가?"

"그쪽은 아직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하긴 영업 상무란 놈이 그렇게 당했으니. 겁을 먹을 만도하지."

김인수 사장의 말에 오 전무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께서 절 거두신 이유죠."

오 전무의 말에 김인수의 어둡던 얼굴이 좀 밝아졌다.

"오 전무 공이 컸어."

"과찬의 말씀입니다. 사장님."

"그러면 서인태 쪽인가? 원래 그놈이 겁이 없거든."

김인수는 서인태의 집에 찾아갔을 때 당했던 모욕감을 떠올렸다.

다음 날이라도 기사를 쓸 것처럼 굴었던 대한일보가 지금까지 잠잠한 것은 의뢰인인 대진건설 쪽에서 이번 건을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시청이나 구청쪽에서도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서인태야. 서인태. 이놈이 좀 잠잠하다 했더니. 기회를 노린 거였나? 당장 잡아놔. 알겠어?"

"예, 사장님."

오전 11시 5층 식당가

강혁은 5층 식당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수선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천정에서 물이 새고, 바닥이 가라앉았다.

천정에는 균열이 일어나 오늘 장사는 망쳤다는 분위기였다.

강혁은 5층 로비를 지나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런… 정말 심각하군."

옥상 바닥에 커다란 네모 형태로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은 펀칭이라는 현상으로 무량판 구조의 건물에서 바닥과 지판이 기둥으로 전달할 수 있는 하중을 넘어섰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옥상의 바닥이 쳐지고, 기둥이 바닥을 뚫고 올라오고 있었다.

즉, 건물이 본격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대로 옥상이 무너져 내리면 그 하중이 곧장 아래층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붕괴는 연쇄적으로 발생하여 큰 건물도 단숨에 무너져 내리게 되는 것이다.

강혁은 옥상에서 거대한 세 개의 냉각탑도 보았다.

사고 후, 삼양백화점의 중요한 붕괴 원인으로 지목된 그 냉각탑이다.

원래 이 세 대의 냉각탑은 지하층에 넣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지하층의 공간을 최대한 넓히려는 욕심으로 최고층인 옥상으로 옮겨졌다.

건물이 받을 영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였던 것이다.

최초 냉각탑의 위치는 옥상의 동쪽 편이었다.

하지만 인근에 삼양아파트가 있었다.

냉각탑에서는 큰 소음이 일어난다.

아파트 주민들은 연일 발생하는 냉각탑의 소음에 대해 끊임없이 민원을 넣었다.

이 때문에 백화점 측은 냉각탑의 위치를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이때 백화점 측은 크나큰 실수를 하게 된다.

이 실수는 이후 백화점 붕괴의 큰 단초가 되었다.

원래 무거운 물건은 크레인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무거운 물건을 잘못 이동시키다가 건물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양백화점은 돈을 아끼겠다는 이유로 크레인을 사용하지 않았다.

결국 냉각탑 아래에 롤러를 설치하는 방법을 택했다.

엄청난 무게의 냉각탑이 옥상 판 위를 천천히 압력을 가하며 이동했다.

이때 옥상판과 지지구조물 위로 막대한 압력이 가해졌던 것이다.

건물 붕괴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여겨지는 5E 지주 부근이 이때 충격을 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게다가 거대한 냉각탑이 운행할 때 발생하는 진동은 지속적으로 옥상과 5층 구조물, 건물 전체의 기둥에 영향을 주었다.

강혁은 허탈한 눈으로 어처구니없는 대참사의 발단을 지켜보았다.

강혁이 우울한 표정으로 옥상문으로 다가갈 때였다.

"여기 계셨네요. 고객님. 꽤나 찾아 다녔답니다."

옥상 위로 올라온 검은 양복 차림의 보안요원이 강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키는 175 정도의 사내였다.

짧은 스포츠머리에 준수한 얼굴이다.

"절 찾았다고요?"

"예, 저희 사장님이 고객님을 잠시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정중한 말투였다.

하지만 따라가지 않으면 완력을 동원하겠다는 뜻을 슬쩍 내비친다.

"글쎄요. 제가 좀 바빠서. 나중에 따로 찾아뵙겠다고 전해주시죠."

강혁은 백화점 보안요원으로 보이는 사내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잠깐."

사내의 손이 강혁의 어깨를 만졌다.

강혁은 재빨리 오른손으로 사내의 손을 잡아채려 했다.

관절기를 걸 생각이었다.

탁!

하지만 강혁의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내의 손이 다시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강혁이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다.

다시 강혁의 어깨에서 사내의 손이 느껴졌다.

이번에도 강혁이 재빨리 손을 뻗었지만 사내의 손은 잡히지 않았다.

'빠르다.'

강혁이 마침내 발걸음을 멈추었다.

"재미있는 재주를 가지셨군요."

"하하, 뭘요. 별거 아닙니다."

"이대로 한 걸음만 더 가면 제 뒤통수가 무사할 것 같지 않네요."

"하하, 눈치가 빠른 고객님이시군요. 그럼 이제 저와 같이 갈 생각은 드셨습니까?"

"안타깝지만 오늘은 제가 바빠서 말이지요."

"으음, 그것 참 유감이군요."

사내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사내가 오른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로 왼손을 뻗었다.

쉬익.

순식간에 허공에 서너 개의 잔상이 생기며 강혁의 얼굴을 강타했다.

퍼억~

강혁의 광대뼈가 발갛게 물들었다.

"오오! 피하셨군요."

주먹을 회수한 사내가 놀란 표정으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강혁이 사내의 잽에 맞기는 했다.

하지만 강혁이 정타를 피했다는 사실에 놀라는 표정이었다.

강혁은 사내의 회수 동작으로 상대가 복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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