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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32화 (32/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32화

32화

#9장 붕괴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야. 여기 전체가 붕괴된다고 우리도 곧 여길 나가야 해!"

"흥, 꼭 매를 벌겠다. 그거군. 좋아."

오태산이 다시 목검을 귀 옆으로 올려세웠다.

최강 살인검의 검격을 다시 보여주려는 거다.

강혁은 다시 일격을 허용하면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어쩌지? 일격을 피한다고 해도, 저 녀석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방법이 없어.'

당혹스러워하는 그때,

불현듯 강혁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무술을 수련하던 장면이었다.

*     *     *

"발경이라고요?"

"그래. 발경을 익혀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한 사람의 권사라고 할 수 있지."

강혁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아직 젊었다.

강혁이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언제나 수련은 남들이 볼 수 없는 짙은 어둠이 깔린 시간에 행해졌다.

3대에 걸쳐 이어진 무술의 전수는 언제나 이렇게 비밀스럽게 행해졌다.

이 날, 강혁은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발경을 전수받게 되었다.

"인간의 반사 신경을 까마득히 넘어서는 속도. 몸속의 에너지를 한 점에 모아 그 찰나의 순간 상대의 몸 안에 전달하여 폭발시키는 것이 진정한 발경의 경지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 일격이 적중하면 상대는 반드시 죽는다."

아버지의 설명에 젊은 강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싸움은 좋아했지만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게… 꼭 죽여야 하나요?"

"발경에 적중되면 상대는 죽는다."

"그런 걸 어떻게 사용해요."

"죽여야만 하는 상대에게 쓰면 되지."

"아버지는 써보셨나요?"

"아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배워는 놓고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어떻게 알아요? 한 번도 사용을 안 해 봤으면 위력이 진짜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요?"

"보여줘?"

"예!"

어린 강혁의 표정이 금세 바뀐다.

아버지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앞에 다가갔다.

"잘 봐라."

"예."

강혁의 아버지는 나무 앞으로 다가가 손바닥을 올렸다.

그리고 다시 내리고는 강혁을 쳐다보았다.

"……?"

"봤냐?"

"뭘요?"

"발경!"

"……?"

강혁이 본 것은 그저 나무에 손을 올리는 모습뿐이었다.

"뭐하시는 거예요. 참,나? 웃기지도 않네요."

강혁이 피식 웃을 때였다.

가만히 있던 나뭇가지가 갑자기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

강혁은 깜짝 놀랐다.

분명히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그런데 나뭇가지가 풍차처럼 돌았다.

그리고 나뭇잎을 우수수 떨어뜨렸다.

자신이 잘 못 본 것이 아니다.

눈앞에 떨어져 있는 엄청난 수의 나뭇잎이 그 증거다.

"이…이게 설마."

"그래, 이게 바로 발경이다. 네가 평생 추구해 나가야 할 타격의 궁극적인 경지지."

*     *     *

오태산이 검을 치켜세우고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

저렇게 거리를 조금씩 좁히다가 한순간에 간격을 좁혀 일격을 날릴 것이다.

강혁은 오태산이 검을 세운 바깥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오태산도 걸음을 옮긴다.

상대가 나보다 한 걸음 옆으로 벗어나면 벗어난 한 걸음만큼 불리해지는 법이다.

그러니 그 차이를 빨리 메꾸어야 한다.

그런데 강혁의 걷는 방식이 기묘하다.

보통 앞으로 마주보면 발끝도 앞을 향하는 법이다.

그런데 발끝이 바깥쪽을 보고 있다.

허리를 중심으로 하체와 상체가 서로 엇갈려 보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오태산은 처음 보는 보법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하체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움직이는 것은 처음 보았다.

강혁의 움직임은 내가권 용형 팔괘장의 피정사격이란 보법이다.

상체는 상대를 정확히 쳐다보는데 반해 하체는 상대의 바깥쪽이나 안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형태였다.

이를 처음 상대해보는 오태산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오태산은 상대의 움직임에 현혹되지 않으려 안간 힘을 썼다.

왼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강혁을 따라 왼쪽으로 돌았다.

그런데 어느새 강혁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돌고 있다.

오태산은 뛰어 들어갈 타이밍을 계속 놓치고 있었다.

'이런 젠장! 무슨 이런 움직임이 다 있지?'

오태산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좋아, 그렇다면!'

그는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전술을 변경했다.

강혁이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드는 순간이었다.

예의 원숭이 울음과 함께 한 걸음을 뛰어 들며 목덜미로 일격을 날렸다.

하지만 강혁의 속도는 더 빨랐다.

일격이 날아드는 괘도를 피해 오른쪽으로 한 걸음 더 달아났다.

그때였다.

오태산의 강력한 일격이 중간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은 듯 멈췄다.

그리고 괘도를 바꾸며 강혁의 허리춤으로 다시 날아들었다.

일격에 뼈를 부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는 목검이다.

그러다보니 목검의 무게 역시 보통의 수준을 넘어섰다.

사실 오태산의 목검 속에는 쇠붙이가 들어 있었다.

보통의 검사가 휘두를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지금 그의 손목과 어깨에는 엄청난 과부하가 걸려 있었다.

휘익, 휙!

강혁의 팔괘 보법은 마치 다리에 롤러가 달린 듯이 빨랐다.

검격의 방향을 바꾸어 허리춤을 뒤에서 가격하고 있는 오태산의 검은 미처 강혁을 따라 잡지 못했다.

강혁의 몸이 순간적으로 상대의 사각지대로 돌아 들어갔다.

"앗!"

강혁이 순간적으로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깜작 놀란 오태산의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그 순간, 오태산의 사각지대로 들어선 강혁의 발바닥이 바닥을 비비며 회전했다.

발바닥과 연동되어 허리와 어깨가 돌아가더니 이어서 팔과 함께 손바닥도 회전했다.

그리고 강혁의 손바닥이 오태산의 옆구리에 닿았다.

'억!'

오태산이 옆구리에 닿은 손바닥의 느낌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런데 타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뭐… 야? 아무 위력이 없……."

그런데 갑자기 오태산의 몸이 빙그르르 회전했다.

다리가 들려지면서 머리부터 바닥으로 처박혔다.

쿠당탕탕!

오태산의 몸이 벽과 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헉… 헉! 겨우 성공 했어."

강혁은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보여 주었던 경지와 위력에는 아직 많이 못 미쳤다.

하지만 흉내는 낼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이 …이런 위력이라니……."

온몸에 타격을 입은 오태산은 힘이 쭉 빠져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혁은 진짜 위력이 나왔더라면 오태산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와 자신의 차이는 현격했다.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단지 손바닥을 올려놓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발목부터 시작해서 허리와 어깨, 손목까지 관절을 돌려 위력을 증폭시켜야 했다.

그러고도 위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쿠르르릉! 쿠르르릉!

"이… 이것은?"

강혁은 커다란 진동 소리에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5시 50분.

삼양백화점 붕괴 사건에 대한 방송에서 나온 바로 그 시간이다.

57분이 되기 전 4층과 5층에 들렸던 이 거대한 진동 소리에 백화점 직원들 일부는 소리를 지르며 대피를 했었다.

하지만 더 아래층에 있던 사람들은 미처 듣지 못하고 그대로 있다가 참사를 당했던 것이다.

"이… 이 소리는?"

바닥에 처박혀 있던 오태산이 놀라며 두 눈을 크게 떴다.

강혁은 재빨리 방송실로 들어가 전원을 키고, 마이크를 들었다.

애애애애앵!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백화점 전 층에 울렸다.

"이제 곧 백화점이 붕괴됩니다. 손님 여러분 빨리 대피하세요. 몇 분 후에 백화점 건물이 무너집니다. 빨리 대피하세요. 실제 상황입니다. 직원들은 빨리 손님들을 대피시키세요!"

애애애애앵!

"이제 곧……."

강혁의 목소리가 들렸다가 바로 끊어졌다.

직원들은 의아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잘 되었던 방송 상태가 갑자기 나빠진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지?"

지하 매장에서 식료품을 고르고 있던 40대 아주머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요?"

아주머니 옆에서 야채를 보고 있던 젊은 여인이 말했다.

여인의 옆에는 6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엄마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엄마, 오늘 저녁 반찬은 뭐야?"

"응? 오늘 저녁? 글쎄 오늘은 뭘 해볼까나? 성민이는 뭐가 먹고 싶은데?"

"나? 난 동그랑땡!"

"동그랑땡? 호홋, 그래 알았어. 아들. 오늘은 동그랑땡 해줄게."

"정말? 나 동그랑땡 저기서 봤어. 가자. 엄마."

"그래? 그럼 가볼까?"

여인이 고사리같은 아들의 손을 잡고 동그랑땡이 있는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식품 매장의 손님들과 직원들은 안내 방송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무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     *     *

"수진아, 들었니?"

"응, 들었어. 사실일까?"

"조금 전에 뭔가 진동같은 게 느껴지던데? 넌 못 느꼈니?"

"나도 느꼈어."

김애라의 말에 홍수진이 말했다.

"빨리 여기서 나가자."

두 사람은 바로 매장 밖으로 나가 손님들에게 소리쳤다.

"손님 여러분. 여기 있으면 위험해요. 빨리 백화점 밖으로 나가세요!"

강혁의 방송과 함께 직원들이 대피하라고 말하자 2층 매장에 일대 소란이 일었다.

백화점 붕괴 7분 전이었다.

홍수진이 김애라와 함께 매장 내의 손님들을 이끌고 백화점을 빠져 나가려고 할 때였다.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걸친 일련의 사내들이 일사분란하게 손님들을 이끌고 바깥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위험합니다. 빨리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세요."

검은 색 양복 차림의 사내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저 사람들 누구지?"

홍수진이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글쎄? 우리 백화점 보안 요원들은 아닌 것 같은데?"

김애라 역시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 사람이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빨강색 원피스를 입은 우아한 중년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그 여인의 옆에서 일사분란하게 지시를 받고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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