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35화
35화
붕괴사고 현장을 떠난 강혁은 다시 이규철이 있는 병원을 찾았다.
크게 낙심해 있는 강혁을 이번에는 이규철이 위로했다.
"사장님, 제가 제대로 했다면 이번 일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제가 죽일 놈입니다."
이규철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이 사회 상류층들의 카르텔을 너무 만만하게 봤어요. 정말로 견고한 성을 구축한 자들입니다. 그 덕에 망했지만 말입니다."
강혁은 아직 대한일보와 시청이나 구청의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은 것을 그들만의 견고한 카르텔 때문이라고 보았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그게 삼양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 것은 오해였다.
"학연과 지연, 혈연으로 얽히고 설긴 자들입니다. 사장님은 최선을 다하셨어요."
이규철도 아쉬운 마음과 자책감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강혁은 그런 그를 위로했다.
"조금만 기다려 봐요. 이번에는 힘이 부족했지만 다음에는 다를 겁니다. 아니 제가 반드시 다르게 만들테니. 선배님, 제게 힘을 빌려 주십시오."
강혁의 말에 이규철은 그의 팔을 꼭 잡았다.
"물속에 뛰어들라면 물속으로, 불 속에 뛰어들라면 거기가 지옥 불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겠습니다."
이규철은 강혁을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미래를 읽는다는 것부터 범상치 않았다.
게다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돈과 생명을 서슴지 않고 희생하는 사람이 아닌가?
사실 이번 일 때문에 강혁이 쓴 돈은 이규철이 평생을 모아도 다 모을 수 없는 돈이었다.
거기다 붕괴 현장에 달려가 사람을 구하려다 까닥했으면 자신도 매몰 될 수 있었을 판이었다.
이규철은 이런 속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강철같은 사내의 마음속에 뜨거운 감정이 휘몰아쳤다.
"저는 이제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이제 여기 일은 당분간 선배님께 맡길 테니, 몸조리 잘하세요."
강혁은 이규철의 병문안을 끝으로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태평양을 건너며 강혁의 가슴은 새로운 결의를 몇 천 번이고 되새겼다.
'다시 돌아올 때는 반드시…….'
강혁은 좌석에 몸을 눕혔다.
눈을 감자 유라가 안쓰러워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미안해, 유라. 구하지 못 했어… 미안해.'
지나가던 스튜어디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강혁을 지켜보았다.
잠이 든 강혁이 어딘지 모르게 가위에 눌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해… 유라야, 경아야.'
무슨 꿈을 꾸는지 강혁이 몸을 이리저리 들척인다.
강혁의 눈가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나왔다.
* * *
"여보, 다음 달까지 집세를 내지 않으며, 여기서 나가야 해요. 알죠?"
윌슨 부인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벌써 퇴직한 지 삼 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뉴욕의 살인적인 집값은 또 다른 차원이다.
"하하, 알고말고. 걱정 마. 곧 자리를 구하면 해결될 테니까. 오늘도 면접이 있다고."
윌슨 씨는 아내에게 키스하고 자신 만만한 얼굴로 집을 나섰다.
하지만 사실 취업을 장담할 수 없었다.
50대 중반의 나이로 새로 취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원래 직장에서 받았던 연봉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직장은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있는 아들과 신입생인 맏딸의 대학 등록금과 막내딸의 사립학교 학비로 많은 돈이 들어간다.
거기에 뉴욕의 부촌에 위치한 저택의 월세, 가족의 의료보험료 등 나가야 할 돈이 많다.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려면 아무 직장이나 들어갈 수 없었다.
문제는 골드만삭스에서 자신과 부사장 자리를 두고 겨루었던 라이벌 아놀드가 관련 업종에 영향력을 발휘해서 자신의 취업을 막고 있다는 거였다.
자신이 골드막 삭스의 중역이었을 때는 친하게 지냈던 다른 회사의 사장이나 중역들이 막상 회사를 떠나자 모른 척했던 일을 생각해보면 지금도 화가 났다.
그들 중에는 일 잘한다고 자신의 회사에 중역으로 오면 어떻겠냐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지금은 안면을 몰수 하고 있었다.
"휘유, 잘 나갈 때는 그렇게 알랑 방구를 뀌던 작자들이……."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꾼 윌가의 인사들을 떠올리며 인생무상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은 신생기업이야. 아놀드의 입김도 약할 테고, 골드만삭스에서 중역으로 있던 내 경력도 층분히 먹힐 수 있는 곳이야. 사장을 뽑는다고 하지만, 꼭 사장이 아니어도 다른 곳에 자리가 있을 수 있어."
올리버 윌슨은 기대감을 안고, 면접이 있는 엠파이어 빌딩으로 차를 운전해 출발했다.
* * *
미국으로 돌아온 강혁은 제리와 데이빗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곧장 실리콘 밸리를 떠나 뉴욕으로 왔다.
강혁은 자본금은 3억 5천만 달러로 뉴욕에서 투자 회사를 세울 생각이었다.
회사 사무실로 건물을 임대한 곳은 뉴욕의 랜드마크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다.
911때 파괴되는 쌍둥이 빌딩도 있었지만 미래를 아는 강혁이 선택할리 없었다.
강혁은 아직 직원 한 사람 없지만 미래를 보고 101층 전체를 임대했다.
"흐음, 나쁘지 않군."
멀리 허드슨 강이 보이고 맨허튼의 빌딩 숲들이 장관을 이뤘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허드슨 강의 정경은 마치 수많은 보석들로 세공해 놓은 것 같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이고 장난감 같은 집들이 연이어 보였다.
101층에서 내려다보는 뉴욕 맨허튼의 정경은 정말이지 멋들어지는 것이었다.
마천루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사방이 유리로 된 넓디넓은 사무실 안에서 바깥을 훤히 내다보니 호연지기가 충만히 끓어올랐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사무실 밖에서 뭔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복도를 살폈다.
40대 중반의 백인 남자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흑인 여성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복장을 보니 모두 이 빌딩에서 일하는 청소업체 직원이었다.
"루시! 이틀 전에는 도대체 왜 말도 없이 결근한 거야! 하루 종일 연락도 안 되고."
"죄송해요. 하지만 바네사가 갑자기 열이 나서 어쩔 수 없었어요."
관리자로 보이는 남성의 말에 흑인 여성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두 말 할 것 없어! 오늘까지만 일하고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아요."
"제임스 팀장님!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아시잖아요. 여길 그만 두면……."
"그러면 결근을 하지 말았어야지. 알고 있잖아. 여기 일 얻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어."
"흑흑흑!"
루시는 눈물을 흘렸다.
비록 청소부 일이지만 빌딩을 청소하면서 버는 돈이 적지는 않았다.
미혼모로 혼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루시는 밤낮 없이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해고라니?
며칠 전 이제 10살이 되는 바네사가 갑자기 고열로 쓰러져 회사를 출근할 수 없었다.
회사에 연락할 시간도 없이 아이를 데리고 정신없이 병원을 이리저리 찾아 다녔다.
하지만 보험이 없는 루시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겨우 한군데서 바네사를 받아 주었을 때는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그래도 전화를 해서 사정을 알렸는데도 제임스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청소일이 고되지만 적지 않은 벌이였던 루시에게는 청천 벽력같은 소리였다.
강혁은 두 사람이 하는 대화를 듣고 대충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텅 비어 있는 101층 사무실을 살펴보았다.
"흠, 청소 상태가 훌륭한데? 여긴 어제 청소한 건가?"
강혁이 사무실을 살펴보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주자 루시가 보였다.
"사장님, 여기 청소를 하러 왔습니다."
"오! 이곳 사무실을 줄곧 당신이 해오셨나요?"
"예, 지금까지는 제가 해왔는데, 그만 해고가 되었어요."
"아? 그래요?"
"내일은 다른 사람이 오겠지만, 오늘까지는 제가 책임지고 청소해 놓겠습니다."
강혁은 루시를 다시 한 번 살폈다.
얼굴 표정에서 일체의 거짓을 느낄 수 없었다.
"이봐요. 루시라고 하셨죠?"
"예, 미스터―"
"존 강이에요."
"예, 존 씨."
"내일부터 우리 회사에 전담 청소부 및 사무실 물품 관리를 맡아주시면 안 될까요?"
"예?"
강혁의 말에 루시가 깜짝 놀랐다.
"연봉은 더 드리겠습니다. 부디 저희 회사에서 일해주시겠습니까?"
강혁의 말에 루시는 잠시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급히 고개를 숙이더니 눈물을 훔쳤다.
"감사합니다. 존 사장님. 최선을 다해서 일하겠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흐르는 눈물을 채 닦지 못하고 루시는 연신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강혁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강혁은 루시에게 그런 소리하지 말라며 내일 다시 회사로 와달라고 말했다.
강혁은 헤드헌팅 회사에 의뢰해서 실력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오늘은 자신을 대신해서 주되게 회사의 업무를 봐줄 사장 면접이 있는 날이다.
강혁은 면접 서류를 검토하고 한 사람씩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그럼, 윌슨 씨. 저희 회사에 사장이 되신다면 앞으로 어떤 업종을 위주로 투자하실 생각이십니까?"
강혁의 질문에 올리버 윌슨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강혁의 질문은 골드만삭스에 있을 때 라이벌 아놀드와 첨예하게 대립했던 주제이기도 했다.
'올 것이 왔구나. 어쩐다?'
사실 당시 윌가의 주된 투자 업종은 전통적인 강세 종목들에 대한 투자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금융계의 황제라 불리우는 워렌 버핏이 코카콜라에 투자한 돈으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95년 올 한 해만 해도 코카콜라 등 보유하고 있는 주식으로 38%의 고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작년에 79억이던 자산이 95년에는 107억 달러로 급증했다.
워렌 버핏을 따라서 윌가는 대부분 기존에 강세를 보이는 종목에 머물렀다.
신규 투자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윌슨의 생각은 달랐다.
"예, 저라면 새롭게 떠오르는 업종인 IT기업들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혁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유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강혁이 제리 양과 함께 야후를 설립한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은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대부분 함께 대학원 논문을 쓴 제리양과 데이비드 파일로가 야후를 설립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올리브 윌슨이 그런 이력을 알고 말했을리는 없었다.
"예, 지금 세계는 바야흐로 기술의 발달로 인한 새로운 흐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IT기술의 발달로 인한 정보화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올리브 윌슨은 입을 열자 막혀 있던 둑이 열리듯이 말이 솟아져 나왔다.
강혁은 그의 말 속에서 앞으로 미국 내에서 닷컴 열풍이라 불리우며 개나 소나 주식에 투자하게 되는 광풍의 씨앗들을 발견했다.
그의 말은 분명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미국인 대다수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것에 비해 기술의 발달은 그만큼 따라주지 못했다.
결국 닷컴 열풍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버블로 판명되어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끼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미래를 읽은 현명한 판단이 맞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타이밍이다.
강혁과 윌슨은 그 외에도 다양한 주제와 분야에 대해 심도 있는 질의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면접 시간이 모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