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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36화 (36/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36화

36화

#10장 골든타워

"수고 하셨습니다. 윌슨 씨. 그럼 결과는 우편으로 이번 주 안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예, 회장님. 저는 불러주신다면 회사를 위해 분골쇄신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꼭 좋은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강혁과 인사를 마친 윌슨은 좋은 기분으로 면접장을 나섰다.

윌슨은 분명 좋은 인상을 남겼다고 확신했다.

그런 윌슨의 기분이 급전직하한 것은 면접장을 나선 그의 눈에 들어온 한 남자 때문이었다.

'저…저 친구가 왜?'

윌슨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윌 가에서 떠오르는 천재로 이름 높은 저스틴이었다.

자신과는 아예 급이 다른 인물이 사장 면접에 온 것이다.

조금 전까지 기분이 좋았던 윌슨의 마음은 급전직하했다.

"망했다."

윌슨은 머리를 감싸쥐며 면접장을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머리가 식자 좀 더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어차피 처음부터 사장자리가 아니어도 되는 거였잖아. 그 밑이라도 기회만 얻을 수 있다면……."

윌슨은 마지막까지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길을 나섰다.

아직 집으로 돌아가기는 이른 시간이라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했다.

윌슨의 발걸음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     *     *

"여보, 에밀리가 이번 학기 여행을 가려면 5천 달러가 필요한데… 어떡하지? 다음 주에는 내야 해."

"아, 잊고 있었다. 나사로 간다고 했지 아마?"

윌슨의 부인 에벌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수학여행에 해당하는 학기 여행에 드는 경비가 500만원이 넘어갔다.

2주에 걸친 장거리 여행이라 경비가 많이 드는 것이다.

윌슨의 둘째 딸 에밀리가 다니는 학교는 뉴욕에서도 알아주는 사립학교였다.

학기 여행도 아무 곳이나 가지 않았다.

물론 반드시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에밀리는 학교에서 손꼽히는 셀럽이었다.

만일 에밀리가 학기 여행을 가지 못한다고 알려지면 크게 실망하는 것을 넘어, 좌절감이 장난이 아닐 것이다.

"월세도… 내야 해."

에벌린의 말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잘 나갈 때는 돈이 마르는 날이 없이 부유층의 생활을 즐겼다.

많이 번만큼 많이 썼던 탓에 모아 놓은 돈이 많지 않았다.

이제 윌슨은 뉴욕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가 온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고향인 뉴저지로 돌아가자고 말하려던 윌슨의 눈에 우편물이 띄었다.

'저건… 혹시?'

윌슨의 머릿속으로 지난 주 봤었던 면접이 생각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편물을 들었다.

그러다 면접장에서 보았던 저스틴의 얼굴이 떠올랐다.

윌슨의 기대감이 급속히 가라앉았다.

'거절 통보겠지. 그래도 혹시 다른 자리가 있을지도?'

희미한 기대감에 의지한 채 우편물을 개봉한 윌슨의 눈에, 흰 편지지에 인쇄되어 있는 세 문장이 보였다.

[올리브 윌슨 씨, 축하드립니다. 본사(골든 타워)의 사장으로 발탁되셨습니다. 목요일 오전 10시까지 회장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윌슨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했다.

저스틴의 등장에 기대를 접었던 사장자리에 전격적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때 부인인 에벌린이 돌아보았다.

"당신 나 불렀어?"

"응, 불렀어. 불렀지."

윌슨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어머? 당신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에벌린의 물음에 윌슨이 그녀를 꼬옥 안았다.

"어머? 왜 그래?"

"새 직장이 생겼어."

"정말?"

윌슨의 말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이 많았던 에벌린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진짜야."

윌슨이 약간 울먹이며 말했다.

"하아, 다행이다. 난 사실 당신이 날 부르기에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하는 줄 알았어. 나 사실 뉴욕생활을 접는 게 싫었거든. 당신 고향에 내려가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하하!"

윌슨은 사실 고향에 내려가자는 말을 하려고 했다고 말할까 했지만 그만 두었다.

"그건 그렇고. 직책은 뭐야? 그게 중요하지. 설마 당신보고 허드렛일을 맡기는 건 아니겠지?"

"에벌린, 날 뭘로 보고. 이제부터 난 골든 타워 회사의 사장이야."

"뭐? 사장!"

에벌린이 깜짝 놀라며 윌슨을 끌어안았다.

"축하해. 당신. 당신은 축하받을 자격이 있어."

"고마워. 여보."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

*     *     *

골든 타워 회장실.

사장에 취임한 올리브 윌슨은 강혁과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신생 회사의 뼈대를 세우기 위한 조직도와 새로 뽑아야 할 직원들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누었다.

이제 막 생겨난 회사로 아직 조직의 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강혁 역시 이런 부분은 경험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윌슨 사장의 생각대로 조직을 한 번 꾸려보세요. 아무래도 투자 회사는 처음인 저보다는 백배 낫겠지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우리 회사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혁이 자신의 의견을 100%로 받아들이자 윌슨은 상당히 고무되었다.

"그런데 회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면접장을 나설 때 저스틴을 봤습니다. 윌가의 떠오르는 천재라 불리우는 저스틴을요."

윌슨의 말에 강혁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깨닫고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왜 윌슨 씨를 뽑았나, 이건가요?"

"그, 그렇습니다. 회장님."

윌슨이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혹시 기억나시나요? 면접 중에 제가 이력서 중에 특이한 이력이 있다고……."

강혁의 말에 윌슨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면접 중 강혁은 윌슨이 낸 이력서에서 눈에 띄는 내용을 발견했다.

"인상적인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력서를 보는데 특이한 내력이 있군요."

"예? 어떤 이력을 말씀 하시는 건지?"

"삼 대째 군인 집안이시군요. 윌슨 씨도 5년간 군복무를 하셨고요."

"예, 장교로 복무하다가 그만두고 금융인으로 변신했지요."

윌슨은 군인이었던 과거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미국의 경우 군인에 대한 예우가 한국과는 매우 달랐다.

군인이었다는 것에 대해 윌슨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제 아버님은 한국 전쟁에서 무공 훈장을 받기도 했죠. 그 계기로 저도 젊은 시절 한국에서 2년 간 근무하기도 했고요."

"그렇군요. 그럼 다음은……."

강혁은 알았다는 듯 이야기가 길어지려는 윌슨의 말을 멈추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과거의 기억에서 돌아온 윌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의아하시겠군요. 하긴 제가 도중에 말을 끊고 화제를 전환했었죠. 하지만 사실 저는 그때 윌슨 씨를 우리 회사의 사장으로 발탁하기로 마음을 정했었습니다. 그 결정은 저스틴 씨와 면접을 한 후에도 바뀌지 않았고요. 아, 여담입니다만 저스틴 씨도 IT기업을 주목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그랬나요?"

강혁의 말에 윌슨의 표정이 매우 밝게 빛났다.

윌가의 떠오르는 천재 트레이더와 자신의 생각이 같았다는 것에 고무된 것이다.

"그…그런데 왜?"

윌슨은 사실 자신을 뽑은 이유가 IT기업에 대한 견해가 강혁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자신을 발탁한 이유를 물어본 것이기도 했다.

"저는 사실 한국인입니다."

"예? 그…그러신가요?"

"저희 할아버지는 일제 식민지 시절 한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열혈 투사이셨고요. 그 덕분에 부모님과 제가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요. 그리고 사실 저도 특전사 출신의 군인이었답니다."

"놀랍군요."

"윌슨 씨와 저스틴 씨는 사실 업무 능력에서 큰 차이는 없다고 봤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셨던 부모님이 있으실 뿐 아니라 직접 저의 조국에서 군인으로 복무하셨던 윌슨 씨를 뽑아야겠다고 제 가슴이 시키더군요. 하하하."

윌슨은 비로소 강혁이 자신을 사장으로 발탁한 이유를 알고 살짝 감동했다.

강혁이 자신의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는 열혈남아라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애국심이 남다른 분이군.'

윌슨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강혁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그러자 강혁 역시 일어나 마주보며 경례를 붙였다.

자신의 나라를 위해 헌신했던 남자에 대해 상호간에 경의와 존경을 표시한 것이다.

*     *     *

한 달 후, 윌슨의 피나는 노력으로 골든 타워는 제대로 된 회사의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자신이 사장이 되기 전에는 골격만 있던 회사에 말 그대로 피와 살을 붙인 셈이었다.

그 덕에 강혁도 한시름을 놓았다.

야후에 있을 때도 회사 조직과 운영은 제리와 데이비드가 다했었다.

자신은 기술적인 부분과 사원 교육을 담당했었다.

회사 조직과 운영에 대해서는 잼병인 것이다.

모든 것을 윌슨에게 맡기다가 보니, 강혁에게도 개인 비서가 생겼다.

윌슨이 직접 나서서 인원을 뽑았고, 최종적으로 세 사람의 후보를 올렸다.

하나같이 출중한 재원에 미모도 뛰어났다.

강혁이 아직 미혼이라 그쪽(?)으로도 신경을 쓴 것인데, 문제는 강혁 본인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27에 불과한 젊은 회장이었다.

미혼의 여성이라면 최고의 데이트 상대라고 할만 했다.

하지만 강혁의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과 회사 두 군데뿐이었다.

사장으로 취임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강혁의 생활패턴을 알게 되었다.

윌슨은 그래도 회사 내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 비서의 외모에 신경을 섰다.

윌슨 나름의 배려인 셈이다.

현재 회장의 수행비서가 된 이리나는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구소련의 벨라루스 출신이었다.

옅은 금발 머리에 지중해를 연상시키는 푸른 눈동자와 백인이지만 동양인을 연상시키는 선이 고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치 80년대 한국의 십대들을 열광케 했던 프랑스의 유명 여배우 소피 마르소를 연상시키는 외모였다.

173정도의 키에 모델을 해도 될 정도로 밸런스가 좋은 균형 잡힌 몸매를 가졌다.

이 정도면 젊은 남성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혹할 미모일 것이다.

하지만 미혼에 일밖에 모르는 회장을 위한 윌슨 사장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강혁은 이리나를 비롯한 미혼의 여성 보기를 길가에 돌멩이 보듯 했다.

오늘은 윌슨의 밤낮을 가리지 않은 노력으로 골든 타워가 비로소 정상적인 투자 회사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후, 회사의 첫 투자를 위한 회의를 하는 날이었다.

자본금 3억 5천만 달러가 작은 돈은 아니지만, 윌가의 잘나가는 금융회사와 비교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한 작은 회사였다.

한 번만이라도 투자에 실패하면 엠파이어 빌딩에 임대해 있는 회사 사무실을 빼야 했다.

아무래도 시작은 안전한 투자를 위주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강혁의 생각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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