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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37화 (37/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37화

37화

"윌슨 씨, 저는 앞으로 IT업계야말로 황금노다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야후나 넷스카이프 등에서 보듯이 앞으로 상장할 회사들 중에 야후의 뒤를 이을 회사들이 적지 않아요."

"예, 회장님. 정확히 보셨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던 골드만삭스에서도 IT업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제가 몇 가지 안이……."

"윌슨 사장님, 지금부터 제가 지시하는 회사의 주식들을 공격적으로 매집하세요. 알겠습니까?"

강혁은 윌슨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가 유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체적인 미래를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이번 일에는 반드시 자신의 지시를 정확히 따라야 했다.

"일단 명단을 한번 보여주시죠. 혹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강혁은 윌슨에게 명단을 건네었다. 명단에는 IT버블 시대에 주가가 폭등했던 대표적인 회사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회사들이 많이 있군요."

윌슨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대로 실제 조사를 해보면 그다지 실속 있는 회사들이 아닌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야후와 넷스카이프와 같이 꿈의 주가를 실현하는 회사들이 등장하고, 이를 언론들이 대서특필하는 시점이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언론이 바람을 불게 될 시기가 온다.

그렇게 되면 나라 전체에 광풍이 불게 될 것이다.

그 전에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야 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닷컴이란 명칭만 붙어 있으면 개나 소나 투자를 하게 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될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높은 수익을 올릴 겁니다. 걱정 말고 주식을 사 모으세요."

명단을 살펴본 윌슨은 처음 들어보는 회사들의 이름에 의아심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모시는 회장은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야후를 상장시켜 하루아침에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다.

지금 충고를 해보았자 먹혀들지 못할 것이 뻔했다.

본인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자만심이 가득할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충고라고 조언을 했다가 괜히 밉보일 우려가 있었다.

지금은 한발 뒤로 물러나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다.

'충고는 스스로 한 투자가 기대이하로 나왔을 때, 그때가 좋겠지. 그때가 되면 전문가인 내 의견은 뭐냐고 묻기 시작할 테고… 안타깝지만 지금의 실패가 나중에는 오히려 덕이 될 수도 있어.'

윌슨은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시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후훗, 그때가 되면 내 뜻대로 회사가 굴러가기 시작할 거고. 회장님에게 돈을 벌어다 드릴 수 있겠지. 나에 대한 신뢰도 지금보다 훨씬 더 깊어질 테고. 후훗.'

마음속으로 나름 큰 그림을 그린 윌슨은 고개를 숙이며 일단 한발 물러섰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윌슨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속마음은 좀 달랐지만 말이다.

그런데 강혁은 그런 윌슨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윌슨의 얼굴 표정이 미세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했던 것이다.

'후훗, 윌슨 씨. 지금은 믿기지 않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알게 될 겁니다.'

강혁 역시 웃으며 물러나는 윌슨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윌슨 씨, 오늘 우리 회식이라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회식이요?"

강혁의 말에 윌슨이 활짝 웃었다.

사실 한달 동안 윌슨의 업무량은 적지 않았다.

아직 모든 인원이 다 갖춰진 것이 아니라 혼자서 동분서주 한 일이 많았던 것이다.

회식을 하자는 말에 윌슨이 기분 좋게 웃는 이유였다.

"저야 좋죠. 대환영입니다."

"그럼 그렇게 결정된 것으로 하고, 우리 회사 직원 모두 같이 갑시다."

강혁이 웃으며 말했다.

윌슨의 표정을 보니 지금 잠시 휴식을 주는 것이 적절한 시점인 것 같았다.

신생 회사로써 본격적인 발돋움을 하기 직전 사기 진작을 위해서도 좋았다.

강혁이 윌슨 사장과 집무실을 나오자 넓은 사무실에 10여 명 남짓한 직원들이 보였다.

아직 시작이라 직원 수가 많지 않았다.

"여러분 잠시 주목해 주세요."

윌슨 사장의 말에 분주하던 데스크가 멈추고 모두의 시선이 강혁과 윌슨을 향했다.

"오늘은 이만 일을 멈추세요. 회장님이 우리 모두에게 저녁을 사시겠다고 합니다."

"와우! 회장님 만세!"

"우리 회장님 멋쟁이!"

여기저기에서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구석에서 사무실을 청소하던 루시가 고개를 숙이며 남들의 시선을 피해 몸을 숨겼다.

강혁의 예리한 눈이 그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루시! 뭐해요."

"예? 존 회장님, 저는 지금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잘못한 일이 없는데요?"

루시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실수를 한건 아닌지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강혁은 씨익 웃으며 루시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서 준비하시라고요. 같이 가셔야죠."

"네? 저도 말인가요?"

"그럼요. 루시도 같은 회사 식구잖아요."

강혁의 모습에 윌슨 사장과 직원들은 잠시 충격을 받았다.

물론 강혁의 말대로 루시는 청소부였지만 골든타워의 정직원이었다.

하지만 설마 강혁이 루시까지 데리고 갈지는 몰랐던 것이다.

"맞아요. 루시. 어서 준비하세요. 회장님이 쏘는데 설마 빠지시는 건 아니겠죠?"

사무실 내 재간둥이인 젊은 로버트가 얼굴 가득 유쾌한 표정을 지으며 루시를 독려했다.

모두들 루시에게 함께 가자고 외쳤다.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내 루시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루시가 청소할 때 입는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자, 그럼 다들 준비된 것 같으니 갈까요?"

강혁이 찡긋 눈을 윙크하며 모두에게 말했다.

신생기업 골든 타워의 유쾌한 회식 타임이었다.

'회장님… 회사 직원들을 정말 아끼시는군요.'

윌슨 사장은 무리를 이끌고 앞장서서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강혁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다른 직원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강혁이 허드렛일을 하는 청소부까지 챙기는 모습을 본 직원들은 가슴 한켠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루시처럼 자기들도 똑같이 챙겨줄 거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     *     *

공화당 상원위원 윌 존슨은 차기 선거를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뉴욕에서 자선 파티를 열었다.

그의 부인 마릴린은 연신 파티에 온 유명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며 남편의 재선을 위해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휴, 일라이자 물 좀 주세요."

일라이자는 남편의 선거 캠페인을 돕는 여성 매니저였다.

"마릴린, 힘을 내세요."

"물론이지. 그이는 지금 어디 있지?"

"줄리어스 시장님을 만나고 있어요."

일라이자의 말에 마릴린은 웬일인지 언짢은 기색을 띠었다.

"알았어. 다음은 누구지?"

"저 사람이에요."

일라이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 동양인이 서 있었다.

190은 되어 보이는 큰 키에 멋진 슈트를 입고 있는 남자였다.

평소 동양 남성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과는 확연히 다른 인상에 마릴린은 눈을 끔벅거렸다.

"배우같은 남자로군. 저런 멋진 동양인은 처음이야."

마릴린이 작은 목소리로 일라이자에게 말했다.

"맞아요. 마릴린, 저도 아까부터 몰래 훔쳐보고 있다니까요."

"뭐하고 있는 거야. 일라이자. 나보다 네가 가야지."

"킥, 마릴린이 절 위해 나서 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호오, 이런 여우같으니. 좋아. 내가 힘 좀 써주지."

일라이자에게 윙크를 건넨 마릴린이 강혁에게 다가갔다.

*     *     *

눈을 떴다.

어둠이 주변을 온통 감싸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안젤라는 손목과 발목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가 어디지?"

주위를 돌아보았다.

시간이 지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조금씩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젤라는 자신이 어딘가 창고 같은 곳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포와 분노가 동시에 엄습했다.

두려움에 떨던 안젤라는 문득 자신이 앉아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가 누워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저기요!"

안젤라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팔과 다리가 묶여 있었지만 몸을 굴려 엎드려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저기, 이봐요."

안젤라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딘가 눈에 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크? 마크! 일어나봐. 마~크."

몸을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미동도 없자 불길한 예감이 든 안젤라는 마크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보았다.

"마… 마크!"

안젤라의 눈에서 눈물과 함께 오열이 터져 나왔다.

마크는 안젤라의 약혼자였다.

한 달 후 식을 올리기로 한 두 사람은 대학 졸업 기념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 중이었다.

그런데 마크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죽은 것이다.

안젤라는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     *

"정말 아름다운 숲이야! 마크"

"그렇지? 이런 곳에 별장 같은 집을 짓는 거야. 어때?"

"찬성이야. 여름이면 아이들과 함께 매 년 오는 거야."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5km 정도 더 가면 강도 있어. 여름철 피서로는 제격이지."

두 사람은 자가용으로 여행 중에 만난 아름다운 숲의 정경에 취해 차를 세워놓고 주변을 감상 중이었다.

도로 옆에 나있는 수없이 많은 나무들과 맑은 공기, 자연이 주는 정취에 두 사람은 흠뻑 빠져들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차로 돌아왔다. 더 늦기 전에 예약한 숙소로 가야 했다.

"응? 시동이 안 걸려."

마크가 몇 번 더 시도를 해보았지만 금세 시동이 꺼져버렸다.

두 사람은 당혹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가까운 마을까지 10km는 더 걸어야 했다.

"30분 전에 주유한 곳으로 걸어가든지 계속 걸어가서 마을로 들어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 어떻게 할까?"

"난 마을로 갔으면 해. 기억나? 주유소 직원이 좀 짜증나게 했잖아."

"오, 널 뚫어져라 쳐다보았지."

안젤라는 누구나 감탄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탐스러운 금발머리와 지중해같이 푸른 눈동자, 어머니 쪽 조상 중에 있다는 프랑스 귀족의 피가 섞인 매혹적인 용모였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여배우 같았다.

거기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한 마음씨는 여자들마저 그녀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마크는 대학 내내 안젤라에게 접근하는 남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그녀는 보수적인 미국 남침례교 신자에다가 10대 시절 혼전 순결을 맹세했었기 때문에 남자 친구를 사귀는데 매우 신중했다.

마크는 그녀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신께 감사했다.

사실 두 사람이 결혼을 앞두고 있지 않았다면 안젤라는 이번 여행조차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의 그 팔찌를 봤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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