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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39화 (39/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39화

39화

강혁은 윌슨 사장에게 투자 수익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회장님, 말씀하신 회사들이 모두 엄청난 주가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공격적인 투자를 지시한지 삼 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윌슨 사장의 말대로 그야말로 광풍이었다.

시쳇말로 닷컴이란 단어만 붙어도 주가가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 이상 치솟았다.

그야말로 닷컴 열풍이라 할만 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IT버블의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사람들이 언론의 과대포장과 몇몇 회사들의 기록적인 주가시세를 보고 너나 할 것 없이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다보니 묻지마 투자가 이루어졌고, 어제의 보잘 것 없던 신생기업들이 오늘은 무지막지한 주가시세를 기록하는 유니콘 기업이 되었다.

강혁은 그 중에서도 역사적인 기록을 올렸던 기업들만 골라서 투자를 했으니 그야말로 기록적인 수익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투자금이 현재 주식 시세로 210억 달러입니다."

수치를 보고하는 윌슨의 목소리가 떨렸다.

뒷자리는 모두 빼고 말했지만 강혁이 들고 있는 보고서에는 뒷자리까지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3억 달러에서 시작한 투자가 210억 달러에 달했다.

엄청난 수익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오를 추세다.

엄청난 투자 성공이라 사장인 윌슨의 기가 살 법도 했지만 사실 이 일에 윌슨이 한 일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투자회사 운영이 처음인 강혁이 초반에 대실패를 겪으면 그 틈을 이용해서 조언하고 그렇게 신뢰를 쌓으려 했다.

이후에 실질적인 회사의 실세가 될 생각이었는데 웬걸, 강혁이 직접 투자를 지시한 기업들은 모두 기록적인 수익을 올렸다.

마치 미래를 알고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제는 어쭙잖은 조언은커녕 강혁이 한 말이라면 지나가는 개를 보고 고양이라고 말해도 받아들여야 할 분위기였다.

회사 전체가 강혁의 기록적인 투자 성공에 고무되어 있었다.

회장의 말에 그대로 따르기만 했는데도 그들에게 떨어진 수당이 엄청났던 것이다.

"닷컴 열풍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 기조가 유지될 테니 제가 지시하는 대로 계속 주식을 매입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강혁은 구체적으로 어떤 회사의 주가를 언제 팔고 어떤 주식을 얼마나 남겨 두어야 하는지까지 세밀한 지시를 내렸다.

모두 앞으로의 주가 동향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승호, 그 녀석 집에서 읽어 두었던 책들이 큰 도움이 되었어. 지금은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주식이지만 앞으로 몇 년을 못가 역풍이 불 거야. 그때 폭락한 똘똘한 기업들 주식을 다시 사 모으면 몇 배, 아니 몇 십 배로 수익을 남길 수 있겠지.'

강혁이 한국에서 세웠던 계획을 다시 곰곰이 생각하며 검토해나갈 때, 회장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존 강입니다."

―메릴린이에요. 존, 우리 아이가 뭔가 큰일을 당한 것 같아요.

"지금 당장 댁으로 가죠."

기다리던 전화다.

강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미 몇 차례나 확인했던 날짜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마크와 안젤라의 시체가 발견된 것은 지금부터 이틀 후.'

앞으로 삼 년 간에 걸쳐 커플들을 대상으로 엽기적인 살인 행각을 벌렸던 데이트 커플 살인범의 첫 등장이었다.

앞으로 전 미국에 그 악명을 떨치게 된 첫 번째 사건이다.

미국의 상류층 자녀들이 피해자가 된 이 사건은 매스컴이 달려들면서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고, 미국 대통령까지 움직이게 만들었다.

F.B.I의 집요한 수사 끝에 결국에는 범인이 잡혔지만, 그전까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젊은이들은 수십 쌍이나 되었다.

강혁은 미국에서 연수를 받으면서 수없이 많은 사건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도 그 중 하나였다.

'당시 부검 결과를 보면 아직은 희망을 걸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밤 내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에 달려 있어.'

강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     *     *

윌 존슨 상원의원의 집은 땅값이 비싼 뉴욕에서도 상당히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대저택이었다.

윌 존슨 역시 미국의 유서 깊은 가문의 후예로서 적지 않은 부를 가지고 있지만, 부인인 마릴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텍사스 석유 재벌인 조지 헌트의 외동딸로서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은 윌 존슨이 공화당 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강혁이 한국에서 삼양백화점 붕괴 사건을 겪은 후, 이미 견고하게 구축된 한국의 기득권 세력을 움직이기 위해 접근한 이유이다.

윌 존슨은 미국의 역사와 함께 해온 가문이다.

거대한 인맥은 물론이고, 석유재벌가문의 거대한 부를 힘입어 거대 정당인 미국 공화당을 움직이는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강혁은 마릴린에게 초대를 받은 손님이었기에, 정문을 통과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집사의 안내를 받아 곧 저택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강혁이 들어서자 거실에 모여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존,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마릴린이 손수건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강혁에게 다가섰다.

"마릴린, 마음고생이 여간 아니었겠군요."

"당신이 다녀간 뒤 걱정이 되었지만, 마침 안젤라와… 참! 안젤라는 제 딸이에요. 그 아이와 연락을 주고받았기에 그 후로는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흑!"

마릴린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근엄한 표정을 한 윌 존슨 상원의원이 다가왔다.

"자네가 존인가? 마릴린에게 들었네. 우리 아이의 신변에 위험한 일이 닥칠 거라고 말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의원님."

강혁의 말에 윌 존슨이 더 할 수 없이 기묘한 표정을 떠올린 것과 함께 곧 엄한 얼굴을 드러냈다.

"만일 네놈이 날 속이려고 하는 거라거나, 혹시나 범인과 내통하고 있다면 내 맹세코 네 놈을 감옥에 쳐 넣어버릴 거야."

윌 존슨의 엄포를 강혁은 부드럽게 넘어갔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번 사건을 돕겠습니다."

강혁의 부드러운 응대에 윌 존슨은 더 뭐라 할 수 없었다.

윌의 얼굴에는 의심과 기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는 이성적인 사람이라 마릴린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길 거라고 예견했다는 남자를 무조건 내칠 수는 없었다.

시쳇말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개똥이라도 약에 쓸 판이었다.

"잠깐만요. 존슨 의원님. 지금 그 남자의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강혁의 말에 윌이 더 밀어붙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한 남자가 앞으로 나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잘 정돈된 짧은 머리, 건장한 체격에 지적인 얼굴. F.B.I 수사관 리암 스캇이었다.

강혁은 이미 이번 사건에 대한 파일을 읽어 보았었기 때문에 전설적인 수사관 리암 스캇이 첫 번째 케이스를 맡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리암은 몇 년 후 9.11 테러가 터지자 크게 괴로워하게 된다.

당시 테러 관련 수사기관이나, 방첩기관에 있었던 상당수가 리암처럼 자신의 실수로 테러를 미리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가졌다.

리암은 F.B.I를 나와 아프가니스탄 전에 참전했다.

이후 C.I.A에 스카웃되어 중동에서 활약하다가 한국 지부를 거쳐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나중에는 C.I.A국장까지 올라간 인물이다.

강혁이 이번 사건에 개입하려고 했던 수많은 이유 중의 하나에는 바로 리암 스캇이 있었다.

강혁은 그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든가, 아니면 최소한 자신을 믿는 사람이 되게 만들고 싶었다.

두터운 파일 속의 기록으로만 만났던 리암 스캇을 실물로 보게 된 감상도 잠시였다.

F.B.I 내에서도 전설로 남아 있는 수사관을 상대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넌 할 수 있어. 아니 해야만 해. 강혁.'

"안녕하세요. 존 강이라고 합니다. 에이전트 스캇."

리암 스캇은 강혁과 악수를 나누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강혁을 보았다.

"잠깐, 내가 이름을 말했었나?"

스캇의 말에 강혁은 그저 빙긋 웃었다.

스캇은 사람들의 얼굴을 돌아보았지만 다들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누구도 스캇의 이름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좋아, 적어도 준비성은 인정하지. 들어오면서 경찰들이 하는 말을 주워 듣기라도 한 모양인데, 미리 말해두지만 난 영매 같은 것은 믿지 않아."

리암 스캇이 말하는 것은 멘탈리즘에서 핫리딩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상대의 정보를 최대한 미리 알아내어 마치 어떤 초월적인 능력을 통해 알아낸 것처럼 말하는 기법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상대에게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콜드 리딩이라고 한다.

강혁이 얼마 전 파티에서 마릴린과 대화하는 도중에 윌 존슨이 비서와 불륜 중이라는 것을 알아낸 것도 콜드 리딩이다.

"저는 영매 같은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능력은 있지요."

"오, 그럼 증명해봐. 내가 이 자리에서 트릭을 파헤쳐주지."

스캇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사건은 이 집 따님인 안젤라와 그의 약혼자인 마크 위더슨이 몰던 차가 원래 예정했던 여행지가 아닌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 사건이죠?"

"경찰이나 F.B.I나 지역 경찰이나 아무튼 지인 중 누군가가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야. 계속해봐."

스캇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앞으로 이틀 뒤 두 사람의 시체가 프레즈노 방면 84번 도로에서 발견될 거예요."

강혁이 승부수를 던졌다.

강혁의 폭탄선언에 마릴린이 실신했고 거실에 있던 관계자 대부분이 질색을 했다.

특히 윌 존슨은 쓰러진 아내를 돌보는 동시에 고함을 쳤다.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거야!"

윌 존슨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되었다.

존슨 가문의 고용인들이 그를 진정시켜야 했다.

"그걸 어떻게 알지?"

모두가 부산을 떠는 가운데 스캇은 냉정 무비한 얼굴로 강혁을 향해 말했다.

"제 눈에 보입니다."

*     *     *

"뭐요? 영매라고요? 그건 아니고 비슷한 거? 대체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러니까 지금 존슨 상원의원 댁에 영매는 아니지만 비슷한 능력을 가진 동양인 남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이틀 후에 실종된 두 사람의 시체가 프레즈노 방면 84번 도로에 나타날 거고,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여기 그린 우드를 샅샅이 뒤져보라고 했다고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프레즈노 방면 84번 도로에서 30km 떨어진 비실리아 시의 보안관인 넬슨은 뉴욕에서 걸려온 전화에 기가 막혔다.

이 모든 일의 사단은 베이커즈필드에서 발견된 젊은 커플의 자동차였다.

지금 그곳 지역 경찰관들은 총동원되어 20대의 젊은 커플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50km는 떨어진 비실리아의 그린우드 숲을 뒤지라니.

그것도 영매 같은 남자의 말이 근거? 대체 어떤 미친놈이 이런 명령을 내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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