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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40화 (40/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40화

40화

#11장 예언자

"앞으로 늦어도 3시간 후면 연방판사의 사인이 들어간 수색영장이 발급될 거요. 젠장, 한 말 또 하게 하지 말아요. 이미 법무부 장관이 지역 경찰 동원령에 사인을 했단 말이요. 그래요. 빌어먹을, 법무장관 사인이 들어간 명령서를 팩스로 보냈으니 확인해 봐요. 앞으로 30분 정도 후면 캘리포니아 지부에서 F.B.I 현장 요원들이 도착할 거요. 거기 지시를 따라요. 그래요. 지금 바로 소집해요."

리암 스캇 요원은 지역 보안관과의 전화를 끊으면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 황당해했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의 의심을 받던 존 강이란 이름의 동양인은 상원의원 부부에게 둘러싸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된 계기는 사실 리암 스캇이 만들어 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틀 후 시체가 나오면 가장 먼저 너를 감옥에 집어넣고 범인과의 공모여부를 조사할거라고 호통을 쳤다.

그때 리암 스캇이 물었던 것이다.

"제 눈에 보입니다."

"네 말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뭐야?"

"모두들 제 말을 믿기 힘드신 거 압니다. 이렇게 하죠. 원래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 일을 하는 건 꺼리지만 젊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 오늘만은 예외로 하죠."

강혁은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자신을 아무도 없는 장소에 두고 그 사이에 리암 스캇 요원의 차 키를 이곳 거실의 아무 장소에나 숨겨두면 자신이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서커스 같은 짓은 집어치우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때마침 정신을 차린 마릴린이 끼어들었다.

존 강의 말을 믿을 수 있을지 없을지 시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능력을 가진 것을 증명해낸다면 모두들 그의 말을 경청해달라고 했다.

3분쯤 후 강혁은 고용인의 손에 이끌려 다시 사람들이 모여 있던 거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강혁은 무슨 담력으로 이런 짓을 벌린 것일까?

그에게 진짜 초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 한 어떻게 몰래 숨겨둔 장소를 찾는다는 말인가?

사실 이런 식의 숨겨둔 물건 찾기는 멘탈리즘을 마술의 형태로 소개하는 멘탈 매직에서 자주 선보이는 마술이다.

강혁이 거실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자, 그럼 쇼를 시작해볼까요?"

강혁은 양손을 들어 45도 각도로 폈다.

그리고 마치 숨겨둔 열쇠를 뭔가 초월적인 능력으로 찾는 듯이 사방으로 움직였다.

사람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강혁의 움직임을 쫓았다.

그런데 강혁은 그때 몰래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을 읽고 있었다.

특히 열쇠를 숨겨놓았을 스캇을 살폈다.

특정 위치로 움직이는 순간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으로 강혁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강혁에게 이런 기술은 마치 물을 마시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미세 표정과 몸짓을 읽을 수 있는 강혁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자, 열쇠는 어디보자. 여기 신사 분 쟈켓 주머니에 들어 있군요."

강혁은 같은 F.B.I 요원인 버넷의 자켓 안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스캇의 차 열쇠를 꺼내었다.

그러자 숨죽인 채 강혁이 물건을 찾는 것을 지켜보던 마릴린이 제일 먼저 다가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오, 존. 저는 처음부터 당신을 믿고 있었어요. 부디 우리 안젤라를 꼭 찾아주세요."

"마릴린, 걱정 마세요. 저들이 내 말을 믿기만 한다면 지금이라도 따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강혁의 말에 존슨 의원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그게 사실인가?"

"제 눈에 보였거든요."

이 말이 상황을 반전시켰다.

처음 열쇠를 찾기 전 했던 말이며, 어떻게 열쇠를 찾았는지 물었을 때 했던 말이다.

그리고 강혁은 정확히 열쇠를 찾아냈다.

"우리 딸이 어디에 있는지 안단 말인가?"

"따님과 마크는 그린 우드 숲 속에 있는 오두막 지하에 감금되어 있어요. 수색을 빨리 서둘러야 해요. 그 숲은 상당히 넓거든요. 그리고 아무래도 마크의 상태가 이상해요. 아뇨, 아직 따님은 확실히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틀 후에는……."

강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존슨과 마릴린은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 대통령의 의자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저도 지금 당장 그린 우드 숲 수색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스캇이 말했다.

이 모든 일이 황당하기 거지 없는 일이었지만 그는 움직였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래도 되죠? 그곳에서 제가 할 일이 있을 겁니다."

강혁이 말했다.

"오, 그래 주겠나?"

윌 존슨 상원 의원이 눈에 띠게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 거절하려고 했던 스캇 요원은 마지못해 강혁의 동행을 허락했다.

잠시 후 그들은 헬기를 타고 공항으로 간 후, 소형 항공기로 캘리포니아 주의 군용 공항에 내렸다.

그리고 다시 헬기를 타고 그린우드 숲에 도착했다.

강혁과 스캇이 헬기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인근 지역의 경찰 수색 요원들과 F.B.I에서 파견된 현장요원들로 가득했다.

현장 지휘는 리암 스캇이 맡았다.

*     *     *

안젤라는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자신의 약혼자는 이미 숨이 끊어졌다.

마크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안젤라는 그제야 자신이 마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달았다.

"우우욱~ 마…크, 마…크, 크흐흑……."

얼마나 오열했을까?

천장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행복했을 자신들의 여행을 악몽으로 만든 남자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저벅 저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막아두었던 문이 열리며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헤이, 안―녕. 자기."

남자는 낮에 주유소에서 봤던 남자다.

안젤라는 주유소 사장이 남자를 벤이라고 불렀던 것이 기억났다.

벤은 마치 연인인 것처럼 굴었다.

"자기야. 내가 뭘 가지고 왔는지 알아?"

벤은 위에서 사다리를 내렸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그는 음식과 물을 내놓았다.

안젤라는 꼬박 하루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벤이 내놓은 음식을 팔이 묶인 상태에서 먹었다.

"이봐, 저 친구는 왜 안 움직이지?"

벤이 다가가 마크를 살피더니 숨을 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안젤라는 순간 슬픔과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지금은 그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도망칠 기회를 노려야 했다.

벤이 뒤에서 뭔가를 하는 사이 안젤라는 가지고 온 음식을 다 먹었다.

어제처럼 언제 다시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몰랐다.

도망치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안젤라는 부모님이 자신을 찾으리라고 믿었다.

"자, 대충 준비는 끝났군."

대체 무슨 준비가 끝났다는 걸까?

안젤라는 두려웠지만 뒤를 돌아보았다.

"맙소사!"

벤은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몸을 돌리자 안젤라가 본 것은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벤이 자신의 약혼자 마크의 옷을 입고 있었다.

마크는 벤이 입고 있던 작업복을 입고 소파 같은 곳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마크의 손을 고정시켜 턱을 괴게 만들었다.

"멋지군. 벤~ 거기서 잘 보고 있으라고."

벤 아니 스스로를 마크로 생각하는 남자가 안젤라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허니, 미안해. 외로웠지. 마침 내가 일이 좀 바빠서 말이야. 하지만 믿어줘. 내가 어디에 있었든, 무엇을 하고 있었든 관계없이 1분 1초도 널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걸."

벤은 부드럽게 안젤라의 금발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키스를 했다.

안젤라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깨달았던 것이다.

벤은 마크가 보는 앞에서 자신을 범하려는 것이다.

만일 마크가 살아 있었다면 두 사람 모두 극도의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안젤라는 살아 있는 것이 원망스럽다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안젤라는 강한 여성이었다.

어떤 순간에도, 어떤 수치를 당한다고 해도 자신의 영혼만은 건들 수 없다고 여겼다.

'난 네가 겁나지 않아.'

"넌 마크가 아냐!"

안젤라의 외침에 벤이 번득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외쳤다.

"넌, 내 포로야. 내 거라고. 내 소유물이야. 넌 내게 널 뺏겼어."

"아니, 그렇지 않아. 네가 내게 무슨 짓을 하건. 난 나의 것이야. 넌 그저 벤일 뿐이지. 시골 촌뜨기에 전기 수리공 벤. 그게 바로 너야. 넌 결코 마크가 될 수 없어."

안젤라는 마크를 떠올렸다.

언제나 다정했던 마크, 영리하고 위트 있으며, 정의로웠다.

나와 함께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꿔보자고 했던 마크. 안젤라는 마크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젠장! 네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 해주지!"

벤의 목소리가 갑자기 험악해졌다.

그리고 안젤라의 뺨을 세게 때렸다.

"악!"

옆으로 쓰러지는 안젤라의 손목에 걸려 있는 순결 팔찌가 보였다.

미국의 보수 기독교계에서 10대 임신 등을 예방하기 위해 펼쳤던 캠페인을 떠올렸다.

"푸하하! 너 혹시 아직 처녀야?"

벤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오오, 마크. 네 여자 친구를 내가 처음으로 맛보게 되는 모양이군. 넌 틀림없이 천국에 갔을 거야."

벤의 고개가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안젤라가 깍지를 낀 양손으로 벤의 턱을 올려쳤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벤이 뒤로 굴렀다.

어느샌가 안젤라는 다리를 묶고 있던 줄을 풀어 놓고 있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사다리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 벤이 뒤에서 잡아당기는 바람에 앞으로 꼬꾸라졌다.

두 사람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이어졌다.

싸움은 안젤라가 실신하면서 멈췄다.

양손이 묶여 있는 안젤라가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헹, 이 벤이 네 첫 남자이자 마지막 남자가 될 거야. 오늘을 영원히 기억해둬."

벤은 안젤라의 상의를 거칠게 벗겨갔다.

그때 뭔가 강한 충격음이 오두막 문 쪽에서 들려왔다.

벤이 고개를 위로 돌려 무슨 상황인지 귀를 기울일 때, 여러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와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그때 안젤라도 잠시 잃었던 의식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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