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41화
41화
'여기가 어디지?'
잠시 의식이 날아갔던 안젤라는 뉴욕의 집에서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와 차를 마시며 하하호호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약혼자 마크가 자신을 데리러 왔었다.
"마크, 이제 출발하는 거야?"
마크가 자신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외쳤다.
"정신 차려! 안젤라."
번쩍.
눈을 떴다.
나무로 된 천장이 보인다.
안젤라는 잠시 현실과 환각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이상하다.
벤이 자신의 몸 위에 타고 있었다.
그제서야 안젤라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깨닫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데 벤이 자신을 보지 않고 있다.
그제서야 안젤라 역시 누군가 오두막에 들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쾅
굉음과 함께 막혀 있던 문이 열렸다.
벤은 재빨리 몸을 움직여 숨겨두었던 총을 꺼내들고 안젤라의 손을 잡아 끌었다.
오두막 지하 아래로 철제 사다리가 내려지며 완전 무장한 경찰들이 내려왔다.
"손들어! 총을 내려놔!"
경찰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여러 개의 레이저 불빛이 벤의 몸 위로 쏘아졌다.
벤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는 총구를 안젤라를 향해 겨누며 말했다.
"쏘지 마! 안보여? 난 인질이 있다고. 쏴 버릴 거야."
"여러분, 조금만 진정하시죠."
긴박한 상황 속에서 들려오는 차분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키가 190 정도는 되어 보이는 동양인이 서 있었다.
"당신 뭐야?"
"나? 음…이름은 존이야. 널 찾아낸 사람이지."
"F.B.I야?"
"F.B.I는 여기 이 친구지."
강혁은 자신의 옆에 서서 벤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스캇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넌 뭐야?"
"나? 난 널 매우 잘 아는 사람이야."
"뭐라고? X까지마!"
"벤, 7살 때 어머니가 알콜 중독인 아버지의 학대를 피해 집을 떠났지?"
"뭐? 그걸 어떻게 알았어? 집에 갔다 온 거야?"
"집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잖아? 결국 알콜 중독으로 죽은 아버지 외에는 너 밖에 없지."
"X까!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맞아, 넌 결국 해방 받았지. 어머니 대신 구타와 학대를 당한 건 너였으니까. 괴물 같은 아버지가 없는 지금이 너에겐 천국 같겠지."
"대체 뭐야?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벤은 강혁이 자신에 대해 하나하나 까발리자 무척 당황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냐고? 네가 고등학교 때 짝사랑하던 케이티가 널 바보 취급하고, 학교에서 너만 보면 괴롭히던 밥하고 붙어먹는 걸 지켜봐야 했다는 건 알지."
"닥쳐!"
벤이 극도로 흥분하며 강혁을 향해 머리를 완전히 돌리는 순간 총구가 흔들렸다.
그때 강혁의 손이 한차례 흔들리는가 싶더니, 벤이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어느새 나이프가 그의 손등에 꼽혀 있었다.
"덥쳐!"
순식간에 경찰들이 달려들어 벤을 제압했다.
그의 팔에는 곧 수갑이 채워졌고, 안젤라는 경찰들의 품에 안겼다.
여러 경찰들에게 호위되어 오두막을 벗어나는 순간 안젤라는 강혁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에서 벤은 자신을 쏜 후, 스스로 머리에 총을 겨눠 자살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이 자신을 구했다.
'이제 다 끝났어.'
안젤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의 별들이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안젤라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극심한 긴장감과 피로에 실신하듯 정신을 잃었다.
"마크, 여긴 우리들의 서재야. 그리고 여긴 안방. 어때 내가 직접 고른 침대야."
20대의 신혼부부에게 어울릴만한 밝고 색감이 멋진 침대와 침대보였다.
젊은 감각이 빛나는 인테리어가 방안 여기저기를 빛냈다.
"여기는 아기 방이야. 여기에 예쁜 침대를 놓을거야. 마크? 왜 그래?"
마크가 안젤라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올렸다.
기쁘면서도 슬픈 표정이었다.
안젤라는 왜 그래? 라고 외치며 잠에서 깨어났다.
"엄마?"
"안젤라."
자신을 바라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하고 있는 마릴린을 보고서야 안젤라는 자신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은 자신의 방이다.
오랫동안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건강을 돌보아주었던 주치의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닥터 해리스는 안젤라에게 다가가 간단히 체크를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마릴린과 존슨은 다시 한 번 안젤라를 안으며 안도를 표했다.
"여기서 쉬고 있으렴. 우리는 거실로 내려가서 널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해야겠다."
안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방을 나서자 안젤라는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긴박하던 순간 자신을 구해주었던 동양인이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슬퍼보였던 사람.
그의 얼굴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 사람 이름은 뭐였을까?'
* * *
홀에는 이 사건을 수사했던 핵심 관계자들이 와있었다.
존슨 의원이 개인적으로 감사를 표하고자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는 수색 요청에 응해주었던 F.B.I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해 주었다.
그리고 강혁에게 다가갔다.
"이번 일로 우리 가족은 미스터 존에게 큰 은혜를 입었어요. 우리 존슨 가문은 이래보아도 미국에서 제법 힘이 있답니다. 우리 집안사람들 중에는 법무장관을 지냈던 사람도 몇 분 계시고, 의원이나 시장, 주지사를 지낸 분도 여럿 있지요. 그러니 앞으로 미국에서 지내면서 혹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내게 연락해요. 내가, 아니 우리 존슨 가문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힘을 다해 돕겠소."
"이이 말이 맞아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도 텍사스에서 석유회사를 몇 개 운영하고 있는데, 귀여운 손녀를 구해주어서 감사하다고 존에게 전해달래요. 아버지의 힘도 상당해서 존이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데 어려운 일을 겪으면 언제든지 도와 줄 수 있을 거예요."
"딱히 무슨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닙니다. 제가 지닌 능력은 만능이 아니라서 제가 보고 싶은 것이 있다고 보이는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예, 일종의 계시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니 따님을 구한 건 제가 아니라……."
강혁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릴린과 존슨이 신에게 감사를 표했다.
사실 강혁이 이런 식으로 말한 것은 그가 딱히 신앙심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앞으로 자신을 귀찮게 할 가능성을 줄이고, 자신이 던진 떡밥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강혁의 능력을 이용하려고 하면, 계시가 없어서 모른다고 발뺌하기 좋게 말을 만들어 둔 것이다.
동시에 강혁이 필요에 의해 이들을 이용하려고 할 때는 갑자기 뭔가가 보였다고 하면서 정보를 제공하면 이들은 그것을 믿을 것이다.
"자네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거라고는 믿지 못했는데 정말로 있었군."
"죄송하지만 제 능력을 아무에게나 말하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군요. 게다가 이 능력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일방적으로 보이는 것이라 제가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알겠네. 내 명심하지. 이 일로 자네를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도록 입단속을 단단히 시키겠네."
"감사합니다. 의원님."
강혁은 감사의 인사를 마치고 나자 스캇이 다가왔다.
그는 만일 강혁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로 마크와 안젤라의 시체가 이틀 후 오두막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협조에 감사를 표했고 두 사람은 서로 전화번호를 나누며 친분을 다졌다.
이로서 강혁은 자신이 의도했던 것은 모두 얻었다.
비록 한발 늦어서 마크는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안젤라는 구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미안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검시 보고서와 진술서에 적힌 대로였어. 마크는 두개골이 깨졌는데, 범인과 조우했을 때 당한 상처였지.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지만 안젤라는 그 후로 며칠은 더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접근한 거였는데, 죽었을 목숨을 하나라도 살릴 수 있었으니. 다행이야.'
미국을 움직이는 파워 가문과 인연을 맺기 위한 의도적인 접근이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강혁은 마음의 짐이 조금이나마 덜어졌다.
강혁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저택을 나섰다.
존슨 의원의 집은 매우 커서 정문까지는 상당히 많이 걸어 나가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급히 뛰어왔는지 숨이 가뿐 목소리였다.
"저기, 잠깐만요."
강혁이 고개를 돌리자 수척해진 모습의 안젤라가 보였다.
안젤라의 방에서는 창문을 통해 밖을 볼 수 있었다.
저택을 빠져나가는 강혁의 모습을 보고 안젤라가 급히 내려온 것이었다.
"존슨 양, 좀 더 쉬시지 않고요."
"안젤라… 안젤라라고 불러요. 친한 친구들은 모두 그렇게 부르거든요."
"안젤라, 혹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건가요?"
"이름이… 이름을 알고 싶어서요."
안젤라의 말에 강혁은 살짝 놀랐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물어 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었을 텐데……
"존이라고 불러요."
강혁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건가요?"
"……!"
강혁은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 아이가 어떻게……?'
의문이 들었지만 강혁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인지……."
강혁은 뒷말을 채 다 끝내기도 전에 안젤라의 얼굴에서 배어나오는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익숙한 슬픔이었다.
강혁은 그제야 미소를 거두며 가면을 벗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겁니다. 그러니……."
"존은… 시간이 해결해 주던가요?"
안젤라의 물음에 강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니요. 유감스럽게도……."
'시간은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
강혁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이 미치도록 슬퍼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