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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43화 (43/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43화

43화

신시아는 정장 차림의 검은 머리 동양인 강혁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안젤라와 주변인들에게 몇 차례 당시의 상황을 들었다.

몇몇 이야기는 과장되어 있어, 신시아는 존 강을 신비로운 동양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위더슨은 아들 마크의 묘지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올라갔다.

그곳에는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작은 나무 하나가 서 있었다.

위더슨은 그곳에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평소와 같은 근엄하고, 냉정한 얼굴로…….

'누구 하나 날 존경하는 놈들이 없군.'

위더슨은 언덕 아래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보며 역겨움을 느꼈다.

그저 위더슨을 통해서 어떻게 한자리 해보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 중에는 기회만 있으며 그를 밟고 서려는 사람도 있고, 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는 험담하는 사람도 있다.

만날 때마다 존경한다는 둥 배우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를 경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저 놈들 중에 적어도 감히 날 무시할 수 있는 놈들은 없지. 이 아이언 페이스 래리 위더슨을 말이야. 감히 어느 놈이 내 앞에서… 크크큭…. 큭. 빌어먹을… 대체 나는 뭘 위해서 살아온 걸까.'

래리는 인정받는 사업가였다.

전미 4위에 해당하는 시티 은행의 총재다.

그의 한마디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움직이기도 했다.

냉정한 그의 판단은 항상 칼처럼 정확했다.

그 와중에 발생하는 희생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들의 장례식에서 자그마한 언덕에 올라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었다.

자신의 성공한 인생이란 것이 너무나 보잘 것 없이 느껴졌다.

저 많은 사람들 중 자신을 진심으로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아내는 언제부터인가 자신과 거리를 두려했고, 딸은 자신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마크는 이제 세상에 없다.

자신을 닮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한 사람이 사라졌다.

래리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큰 키의 검은 머리 동양인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동양인이 이 정도로 큰 키를 가진 경우는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래리 역시 잠깐 동안은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이 분명해진 순간에는 얼굴을 굳혔다.

그는 혼자 있고 싶었고, 좀 더 생각에 잠겨 있고 싶었다.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이 자식은 뭐야? 나랑 이야기를 나누고 알랑방귀라도 껴서 뭐라도 얻어 볼 요량인 놈이냐?'

누군가 다가오면 의심부터 하는 래리였다.

"이봐, 누군진 모르지만……."

래리 위더슨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위엄 있게 말했다.

"존 강이라고 합니다."

"아― 자네가?"

위더슨은 존슨 의원을 통해 강혁에 대해서 들었다.

마크를 찾아준 사람이었다.

그는 조금 표정을 풀었다.

하지만 강혁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차이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자네에겐 감사 인사를 해야겠지만, 지금은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군."

"위더슨 씨, 사실 마크는 당신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랑했죠."

강혁의 밑도 끝도 없는 갑작스런 말에 래리는 역정을 냈다.

"…자네가 뭘 안다고……."

래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마크와 그의 불화는 가까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다.

"저는 이번 사건에 대한 F.B.I의 리포터를 읽었어요. 마크의 소지품에 오래된 낚시 찌가 있더군요. 특이하게도……."

"낚시 찌?"

"오렌지색이고, 문어 모양이더군요. 마크의 차에 달려 있었죠."

"…마크가 그걸? 아직도 지니고 있었다고?"

래리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이다.

래리는 벌써 오랜 과거처럼 느껴졌다.

아직 작은 마크였을 때의 이야기다.

그때 그 작은 아이는 오롯이 래리의 마크였다.

"당신이 기념으로 준 거죠. 마크와 첫 번째 낚시 여행에서."

"그… 그 녀석이 그 날 월척을 낚았지. 처음 한 낚시에서 말이야. 내 아들 마크는 그런 놈이었어."

"마크는 항상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그랬나?"

래리는 뭔가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순간 그것이 뭔지 몰랐다.

오랫동안 래리가 알지 못했던 거다.

언제였을까?

그가 눈물을 흘린 것이…….

래리는 낯선 방문자 앞에서 양손을 올려 얼굴을 감쌌다.

강혁은 무너질 것 같은 노년의 신사를 안아주었다.

강혁은 마크를 생각하면 금세 죄책감에 휩싸였다.

자신이 뭔가를 했다면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혁은 그들의 차가 발견된 장소와 오두막이 있던 숲의 이름을 알뿐이었으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크를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게 한 사람들에게 아픔을 느꼈다.

신시아가 깜짝 놀란 음성으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 엄마. 아빠가 울어요."

"뭐? 무슨 소리니. 너희 아빠가 설마 그럴리가?"

그런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설마 저런 광경을 볼 줄은 몰랐다든가,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는 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손을 얼굴에 파묻고 눈물을 흘리는 남편을 본 에밀리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막으며 눈물을 흘렸다.

"다, 당신… 역시…. 그저 참고 있었던 거군요."

남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에밀리와 신시아는 언덕 위로 걸어갔다.

그들의 남편이자 아버지를 향해…….

"여보……."

"아빠……."

에밀리와 신시아는 흐느끼고 있는 래리와 그를 안아주고 있는 강혁의 곁으로 다가가 양쪽에서 끌어안았다.

멀리서 그들을 본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한 가족인 것처럼 보였다.

'…존.'

안젤라는 언덕 아래서 그들을 올려다보며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강혁에게 흥미를 가진 것은 안젤라만이 아니다.

장례식에 온 래리 위더슨의 동종업계 관계자들도 처음 보는 동양인의 등장에 의아해했다.

그런데 그가 래리 위더슨의 아이언 페이스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고 상당히 놀라워했다.

그 중에는 세계3대 투자자라 불리는 금융계의 제왕들도 있었다.

"저 친구 대체 정체가 뭐야? 내 생전에 래리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줄이야."

3인 중 하나인 짐 로저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내가 좀 들은 게 있어. 저 젊은 친구 투자 회사를 운영한다는군."

워렌 버핏이 뭔가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투자회사? 어딘데?"

짐 로저스가 흥미롭다는 듯 묻는다.

"…골든타워."

누군가가 나직이 내뱉었다.

"…골든타워라면!"

워렌 버핏이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최고의 펀드매니저라 불리는 조지 소로스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강혁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기록적인 수익을 올린 걸로 요즘 우리 업계에서 화제를 일으킨 회사지."

강혁은 금융계의 제왕들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느새 포옹을 풀었다.

그는 마음의 빚을 진 마크의 가족들과 대화하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언덕 위로 안젤라가 천천히 다가갔다.

윌 존슨과 마릴린은 그런 그들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이 마치 한 가족처럼 보였던 것이다.

"여보, 만일 안젤라가 안정을 찾을 수만 있다면, 난… 상관없어요."

"무슨 말을 하는진 알겠지만, 지금 우린 그저 가만히 지켜봅시다. 운명의 신이 어떤 길을 열어 줄지 우린 아무도 모르니 말이요."

존슨 의원이 말에 마릴린은 말없이 남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불행한 일을 당한 딸의 앞날에 언젠가 안식과 행복이 깃들길 기원하며…….

마크의 장례식을 치룬 강혁은 일주일 후, 오래 전부터 계획해두었던 일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는 실리콘 밸리의 북서쪽에 위치한 스탠포드 대학을 찾았다.

여의도의 4배에 달한다는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때문에 강혁은 자신이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과 컨택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미 대학 쪽에 연락을 취해서 약속장소를 잡았다.

하지만 그 약속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10분가량 약속 장소 인근에서 헤매던 강혁은 현지인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만나기로 했던 피자집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인가?"

강혁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피자에 뿌리는 핫소스 냄새가 희미하게 났다.

주위를 둘러보자 이미 사진으로 몇 번 보았던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젊은 시절 얼굴이 보였다.

이 둘은 아직 대학원생이다.

젊은 두 사람은 기대와 초조가 뒤섞인 얼굴이었다.

그들은 허름한 탁자 위에 팔을 올리고는 서로에게 농담을 날리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혹시 래리와 세르게이?"

강혁의 말에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나며 강혁에게 인사를 나누었다.

"혹시 존 씨? 맞군요. 맙소사. 진짜였어."

세르게이가 믿기지 않는 듯 손을 입가에 가져갈 때, 래리는 강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래리 페이지입니다."

"존 강이에요. 저도 두 분을 만나서 반가워요."

흥분한 두 사람을 진정시키며 겨우 인사를 나누었다.

강혁은 피자와 몇 가지 음료를 시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강혁이 주문하는 사이 두 사람은 서로 호들갑을 떨며 상기된 얼굴을 거두지 않았다.

자신들과 같은 스탠포드 출신인 제리 양과 존 강이 세운 야후라는 기업은 인터넷 검색 그 자체를 의미했다.

존 강은 두 사람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목표였다.

"자아, 그럼 이제 말해보죠. 얼마를 원하나요?"

강혁의 직설적인 말에 세르게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배…백… 아, 아니 80만 달러요."

"하하하하."

세르게이의 말에 강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죄송해요. 존, 세르게이가 세상 물정을 아직 잘 몰라서 그래요. 50만 달러는 어때요."

래리의 말에 강혁은 더욱 배를 잡았다.

강혁의 웃음에 두 사람은 당황했다.

얼마를 불러야 할지 서로를 타박하며 얼마가 적당하다며 다투었다.

"존, 존 생각에는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강혁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세르게이. 그걸 제게 물으면 어떡해요?"

세르게이의 등을 후려치며 래리가 몸을 바로 세웠다.

"흠흠, 저기 조금 무리라면 50만은 어때요."

"뭐야? 45만이면 돼. 그것만 해도……."

세르게이가 래리를 말리며 말했다.

"200만 달러 드리죠."

갑작스러운 강혁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다.

원래 자신들이 생각했던 가격의 두배를 부른 것이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다른 기업에 자신들의 특허를 100만 달러에 팔려고 제안했었다.

"예? 이… 이백만 달러?"

래리의 반문에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더해서 이 검색엔진으로 직접 회사를 키워보는 건 어때요. 자본은 제가 밀어드리죠. 두 사람을 사장으로 고용하고, 회사 지분도… 두 사람에게 각각 5%씩 나눠 드리죠. 어때요?"

"조… 존."

두 사람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강혁의 손을 굳게 잡았다.

사실 두 사람은 돈만 있다면 굳이 기술을 팔지 않고 자신들만의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은행에서 제대로 된 투자를 받지도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의기투합해서 만든 새로운 검색엔진 페이지랭크를 팔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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