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45화
45화
"루시!"
"회장님?"
루시는 깜짝 놀랐다.
설마 강혁이 직접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저도 왔어요. 루시."
랜시가 살짝 손을 들며 말했다.
"랜시!"
루시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감돈다.
하지만 금세 얼굴에 걱정이 어린다.
"회장님, 저…제 보험이 혹시……."
루시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말을 더듬거렸다.
강혁에 대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루시, 당신의 보험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강혁을 보는 루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와 같이 갑시다."
강혁이 머뭇거리는 루시를 데리고 랜시와 함께 접수처로 갔다.
"무슨 일이시죠?"
제니가 강혁과 랜시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루시 이 분인가요?"
두 사람 뒤에 있던 루시가 얼굴을 내밀었다.
"예, 맞아요."
강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니에게 말했다.
"우리 직원이 아무래도 부당한 경우를 당한 것 같더군요."
강혁의 말에 제니의 두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루시의 얼굴을 보고, 대충 어떤 상황인지 깨달은 것이다.
아무래도 골든타워에서 사람이 온 모양이다.
제니는 골든 타워 직원들이 모두 보험에 들어 있고, 회사 지정 병원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하지만…저 분 청소부 아닌가요?"
제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청소부라고 어떤 보험인지 확인도 안해 본 것 같군요."
강혁이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아닙니다. 저는 분명히 보험을……."
제니는 그제서야 자신이 보험 내용을 확인해보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청소부라는 사실을 알고는 기본 보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제니는 당황한 표정으로 루시의 보험을 확인했다.
"아…아니? 이럴 수가?"
루시의 보험은 미국의 민간 의료 보험 중에서도 가장 상위 클래스의 보험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자신조차도 받지 못하는 최고 수준의 보험이었던 것이다.
"이…이 분이 진짜 청소부라고요?"
"맞아요. 우리 골든 타워 회사의 최고의 청소부시죠. 일을 얼마나 잘하는데요."
강혁의 말에 여직원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청소부는 청소부잖아요. 그런 사람에게 이런 클래스의 보험을 들어주다니?"
"왜요? 그러면 안되나요?"
강혁이 딱딱하게 물었다.
"당신네 회사 오너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정말 돈 아까운 줄 모르는 사람이군요."
제니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봐요? 당신……."
제니의 말에 랜시가 발끈했다.
"전 여기 정직원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런 보험은 꿈도 못 꾼다고요."
제니는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랜시와 루시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병원장님과 대화가 필요할 것 같군요."
강혁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제니가 발끈 했다.
"아니, 당신이 뭔데 우리 병원장님과 대화를 한다는 거예요?"
병원장을 부른다고 하자 강혁을 향해 쏘아 부쳤다.
"제가 바로 골든 타워의 오너거든요."
제니의 당돌한 질문에 강혁이 담담하게 내뱉었다.
"뭐…뭐라고요?"
"그리고 매년 이 병원에 천만 달러를 기부하시기로 하신 분이죠."
랜시가 한쪽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두 사람의 말에 제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말도 안돼?"
"뭐가 말도 안된다는 거죠?"
"저…저 사람은 그냥 청소부잖아요. 그런데 진짜로 골든타워 회장님이라고요? 대체 왜?"
'그런 사람이 대체 왜 일개 청소부를 신경 쓰시는 거죠?'
제니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왜요. 그러면 안되나요?"
강혁이 시니컬하게 웃었다.
"자, 이제 내가 왜 당신네 병원장님과 대화를 하려는 건지 알겠나요?"
강혁의 물음에 그제서야 제니는 사색이 되었다.
매년 천만 달러를 병원에 기부하는 사람 면전에서 그 사람 욕을 한 것이다.
"죄…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게 죄송할 것은 없어요. 하지만 루시에게는 사과를 해야겠군요."
강혁이 루시를 앞으로 내밀었다.
제니는 창백해진 얼굴로 루시에게 사과를 건네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죄송합니다."
제니의 말에 루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걱정했던 것은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접수처 직원이 지레짐작으로 마음고생을 한 것이다.
잠시 후, 병원장이 내려왔다.
프래스비테리언 병원장 브랜던 야넷은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골든타워의 오너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직접 병원까지 찾아왔기 때문이다.
지난 번에는 해마다 천만 달러를 병원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거기다 자기 회사의 지정 병원으로 정했다고 한다.
골든 타워 직원들은 모두 최고 등급의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
병원으로서는 이래저래 덕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는 왜 온 걸까?
어쩌면 병원에 최고 사양의 의료기기를 지원할지도 모른다.
희귀병 질환 연구를 위한 기부금을 부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즐거운 기대로 강혁을 만나러 내려온 브랜던의 표정은 금새 창백하게 변했다.
"그…그게 사실입니까?"
자초 지정을 들은 브랜던 병원장이 깜짝 놀랐다.
"예, 병원장님. 정말 실망입니다."
강혁이 인상을 지푸렸다.
"매년 천만 달러 기부와 회사 지정병원을 철회해야 하는 게……."
강혁의 말에 브랜든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이 일이 이사진에 알려지면 병원장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
"회, 회장님, 고정하십시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분명하게 물겠습니다. 그리고……."
"아니, 그러실 필요는……."
"아닙니다. 저희 직원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병원장의 말에 접수처에 있던 직원들은 머리가 삐쭉 서는 느낌이었다.
브랜든 병원장은 루시에게도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 직원의 명백히 잘못한 일입니다."
자신은 평소 쳐다보기도 어려운 지위에 있는 병원장이 정말 죽을 죄를 지었다는 표정으로 사과를 했다.
루시는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에게 미안하다고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은 평생 자신의 몫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것이 있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자신을 위해 강혁이 직접 오지 않았다면 자신의 설움은 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새삼 강혁에게 감사한 마음이 샘솟아 올랐다.
"엄마, 다 들었어요. 전 엄마가 이렇게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일인 병실에 누운 바네사는 루시에게 빙그레 웃었다.
"그래, 바네사. 나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어."
루시는 이제야 딸에게 제대로 된 치료를 해줄 수 있게 되어 미안하고 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왜 그런 표정을 하는 거예요. 엄마."
"응? 하마터면 널 잃을 뻔 했잖니. 내 아기."
루시는 악성빈혈을 방치할 뻔 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하며 바네사를 안아주었다.
"걱정말아요. 엄마, 의사선생님이 치료를 받고 나면 건강해질 수 있을거라고 했는걸요."
"그래, 그래. 바네사."
루시는 바네사를 끌어 안고는 눈물을 흘렸다.
고교를 졸업하고, 미혼모가 된 후 지금까지 혼자 힘으로 딸을 키워왔다.
사막 같은 자신의 인생에서 딸 바네사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그런 딸이 앞으로 건강해진다니 루시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감사했다.
'오, 하나님. 우리 존 회장님을 축복하소서.'
바네사를 꼭 끌어안은 루시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윌슨 사장님, 회장님이 잠시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이리나의 연락을 바고 윌슨이 회장 집무실로 들어갔다.
"회장님, 오늘도 엄청난 수익을 올렸습니다."
윌슨이 집무실로 들어가며 웃으며 강혁에게 회사 실적을 알려주었다.
"윌슨 사장님, 지금은 그 애기를 하고 싶지 않군요."
윌슨은 강혁의 표정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회장님?"
강혁은 루시에게 일어난 일을 말해주었다.
"세상에?"
윌슨이 당황하며 말했다.
잠시 후, 강혁은 모든 사원들을 101층 사무실로 불러 모았다.
"여러분 우리들은 모두 한 가족입니다."
강혁의 말에 사원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앞으로 루시와 같은 일이 생기면 반드시 저나 윌슨 사장님에게 알려주세요. 아셨죠?"
"회장님, 사랑해요!"
"고마워요. 회장님. 루시와 바네사를 대신해서 감사드려요."
사원들의 목소리와 함께 장내에 박수가 가득했다.
사원들 모두는 루시에게 일어난 일과 강혁의 대처에 감동받은 눈빛이었다.
모두는 루시 같은 일개 청소부에게도 한 일에 대해 감동을 받았다.
루시에게 이렇게 했다면 자신들에게도 똑같이 대해주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윌슨 사장님, 집에 자녀들이 있으시죠?"
"예, 큰 애가 대학에 들어갔고, 둘째가 고등학생이죠."
"혹시 몇 학년인지 어느 반인지 아시나요?"
"예? 그…그게?"
"막내가 하나 더 있는 걸로 아는데 그 애는 몇 학년이죠?"
"아…그게 그러니까…."
"윌슨 사장님, 요즘 집에는 몇 시에 들어가세요?"
"9시나 10시쯤 들어갑니다."
"사장님, 앞으로는 정시 퇴근 하십시오."
"예?"
"앞으로는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해 인사고과에 넣을 겁니다."
"그…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혹시 가화만사성이란 말을 아시나요?"
"아, 아뇨. 처음 듣는 말입니다만."
"동양에서 전해오는 지혜의 말이지요. 성경의 잠언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그렇군요."
"가화만사성, 가정이 잘되어야 모든 일이 잘 된다는 뜻이지요."
"하아?"
윌슨은 강혁의 말에 조금 충격 받은 표정이었다.
"가정이 든든하게 받쳐주어야 아무 걱정 없이 회사 일을 열심히 할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죠."
"능률도 오를 거고요."
"으음……."
듣고 보니 그럴 듯하다.
"가족같은 회사가 우리 회사의 모토입니다. 그런데 정작 진짜 가족에게 잘 못한다면 의미가 없죠."
"…그건 그렇네요."
윌슨이 한숨을 쉬었다.
사실 자신이 요즘 회사일 때문에 가족에게 충실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이들이 올해 몇 학년인지도 가물가물했던 것이다.
"오늘은 이만 일하시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이건 명령입니다."
강혁의 말에 윌슨이 웃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어머, 당신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윌슨 부인이 이른 시간에 집에 온 윌슨을 보며 깜짝 놀랐다.
윌슨의 딸 에밀리도 아빠가 일찍 집에 오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빠, 혹시 회사에서 짤린 거야?"
윌슨이 새 직장을 가진 후로는 집에서 얼굴도 보기 어려웠기에 모두들 화들짝 놀란 표정이다.
"아냐, 사실 회장님에게 혼났어. 가정에 소홀한 사람은 회사일도 못한다며 집으로 돌려보냈어."
"그게 사실이야?"
윌슨 부인이 놀라며 물었다.
"앞으로는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을 인사고가에 넣기로 했으니 말 다했지."
"우와, 진짜? 그러면 아빠 앞으로는 우리랑 같이 시간 보낼 수 있는 거야?"
"맞아, 안 그래도 이번 주말에는 가족 여행을 가도록 하자고."
"이야! 존 회장님. 최고! 아빠도 최고야."
에밀리가 달려와 윌슨의 목에 매달리며 뺨에 키스를 했다.
오랜만에 윌슨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가화만사성이라… 회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
올리브 윌슨은 다시 한 번 강혁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윌슨 가족의 거실에 오랜 만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