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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46화 (46/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46화

46화

뉴욕 존 F 케네디 공항.

뉴욕 양키즈 모자를 쓴 10대 후반의 동양인 남자가 게이트를 나오고 있다.

등에는 백팩을 메고, 커다란 여행 가방을 밀고 있다.

그의 옆에는 세련된 정장을 걸치고 많은 양의 무스로 머리를 빈틈없이 정돈한 30대 초반의 동양인이 작은 여행 가방 하나를 끌고 여유 있게 걸었다.

바위처럼 각이 진 얼굴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꼈으며, 움직임에는 절도가 있고 빈틈이 없었다.

단지 걷는 것만으로도 묘한 포스가 흘렀다.

30대 초반의 동양인 남자는 이규철이었다.

이규철은 강혁의 지시에 따라 최승호를 데리고 뉴욕에 온 참이다.

"여기야."

강혁이 게이트에서 나오는 두 사람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의 뒤에는 강혁과 비슷한 키의 흑인 남자가 서 있다.

잘빠진 검은색 정장에 귀에는 경호원들이 사용하는 소형 통신기가 꽂혀 있었다.

이규철은 흑인 남성의 눈빛을 보고 상당히 잘 훈련된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사장님!"

이규철이 반가운 얼굴로 강혁에게 다가가자 다저스 모자를 쓴 청년이 그 뒤를 따랐다.

"오, 네가 최승호구나."

이규철과 반가운 악수를 나눈 강혁이 다저스 모자를 쓴 청년을 향해 말했다.

"아, 예. 강혁 사장님이시죠?"

강혁은 최승호에게서 강한 눈빛을 읽었다.

이규철에게 들은 대로 정말로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자식, 사장님은 무슨 형이라 불러라."

"아…하하, 좀 더 친해지면요."

"하긴 오늘 우린 초면이지? 그래도 형이라 불러. 혁이 형하고."

"아… 예. 혁이 형."

강혁은 최승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앞으로 강혁의 행보에 최승호의 합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였다.

강혁은 처음부터 최승호를 살갑게 대했다.

실제로 회귀 전 강혁은 최승호와 형제의 정을 나누었었다.

그렇기에 다시 만난 최승호가 눈물나게 반가웠다.

"짜식, 그래야지."

강혁이 등 뒤의 흑인 남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개하지 내 보디가드 겸 운전수야. 스티브라고 해."

스티브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집채같은 손으로 이규철, 최승호와 악수를 나누었다.

가만히 있을 때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웃을 때는 꼭 애기 같았다.

갭 차이가 너무 커서 승호는 살짝 놀랐다.

"가지 스티브."

"예, 회장님."

강혁은 두 사람을 데리고 공항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멋지게 빠진 백색의 롤스로이드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규철과 최승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동차 보닛 위의 엠블렘 환희의 여신상이 햇빛을 반사하며 번쩍거렸다.

"뭐해? 타."

"아, 예."

두 사람은 처음 타보는 롤스로이드 팬텀이 신기해서 차 안팎의 여기저기를 살폈다.

6M나 되는 거대한 크기는 웅장하면서도 우아해 보였다.

최승호가 뒷문을 열자, 특이하게도 일반 차와 반대 방향으로 열렸다.

스티브가 운전석 쪽 문을 열자 마치 천사가 양팔을 크게 벌린 듯한 모양이 되었다.

운전사 보조석에 이규철이 올라타자 강혁이 말했다.

"집으로 가지."

"예, 회장님."

롤스로이드 팬텀은 맨허튼 42번가에 위치한 Atelier 아파트로 향했다.

아틀리에 아파트는 맨해튼의 럭셔리 랜드 마크 중 하나다.

맨해튼에 위치해있는 수많은 아파트들 중에서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했다.

이곳의 고층에서 내려다보이는 허드슨 강의 야경은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아름다웠다.

게다가 건물 내에는 테니스 코트와 농구 코트는 물론이고, 심지어 골프 연습장과 대형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까지 있었다.

"히야, 뉴욕까지 와서 이런 차를 다 타보네요. 이름이 뭔가요? 이 차?"

이철규가 물었다.

"롤스로이드 팬텀입니다. 1925년에 처음 판매되었죠."

휘이익~

강혁의 대답에 이철규가 입을 오므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엄…엄청 비싸 보여요."

최승호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6억 좀 넘어."

"헉!"

최승호가 놀란 표정을 짓자 강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너도 곧 살 수 있을 거야~"

"예?"

강혁의 말에 승호가 무슨 소릴 하느냐는 듯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강혁은 그런 최승호를 보며 씨익 웃었다.

잠시 후 차가 주차장에 도착했다.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강혁이 45층을 눌렀다.

이 건물 45층에는 펜트하우스가 있다.

잠시 후, 강혁이 두 사람을 데리고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을 본 이규철과 최승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왓! 넓… 넓다."

"히야, 엄청나네요. 사장님. 참 회장님이라고 할까요?"

"하하, 마음대로 부르세요."

강혁의 말에 이규철은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도 회장이라고 부르겠단다.

"회장님, 그런데 이 집말이에요. 대체 몇 평이나 되는 겁니까?"

"이곳에 처음 온 한국인 손님이니 내가 직접 안내해드리죠."

강혁은 두 사람을 이끌고 펜트하우스 내부를 안내해주었다.

420평이라는 어마어마한 면적에 방이 8개 욕실도 8개였다.

거실과 침실에서 내려다보이는 허드슨 강과 맨허튼의 스카이라인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내부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잘 살아 있었다.

"앞으로 승호 넌 여기서 머물 거다."

"예에?"

강혁의 말에 승호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짜식! 축하한다. 넌 인마, 봉 잡은 거야. 내가 그랬지? 형만 따라오면 앞길이 차앗, 하고 열릴 거라고."

이규철이 등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왜… 왜… 일면식도 없는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시죠?"

"궁금하니?"

"…예!"

최승호가 궁금함과 열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사실 최승호는 올해 18살로 내년에는 대입시험을 치러야 할 수험생이다.

그런 그가 왜 지금 이규철을 따라 뉴욕에 와있는 것일까?

강혁은 최승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이큐 180의 천재.

하지만 회귀 전에는 전 세계 정보기관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였던 범죄자.

강혁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미국으로 끌려가 평생 감옥살이를 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C.I.A 소속의 해킹부대에서 노예처럼 부림당하는 신세가 되었을 터였다.

회귀 전에도 국정원에서 최승호의 신분을 세탁하고, 존재 자체를 없애버렸다.

그 바람에 가족들과 생이별을 감당해야 했다.

이후로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은 꿈도 꾸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국정원의 프리랜서가 된 후에는 전 세계의 정보기관과 군사기업을 상대로 상당한 수완을 발휘하는 뒷세계의 실력자가 되었지만, 최승호가 원했던 삶은 아니었다.

"너 한국에 있을 때, 미 국방부 서버 해킹했지?"

최승호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누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그래서 따라온 거잖아요."

시무룩해진 승호를 바라보며 강혁이 말했다.

"그 건은 걱정 마. CIA든, FBI든 내가 책임지고 널 보호할 테니."

"예."

최승호가 시무룩해하며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사실 최승호의 해킹 사건은 아직 미 국방부도 모르고 있다.

그들이 이 사실을 눈치채게 되는 것은 최승호가 몇 차례 더 해킹을 시도한 후였다.

그런 사실을 강혁은 알고 있었지만, 최승호는 당연히 몰랐다.

최승호는 여느 때와 같이 이런 저런 사이트를 해킹하다가 재미로 미 국방성 서버를 해킹했었다.

그런데 만 하루 만에 검은 양복을 걸치고 선글라스를 낀 이규철이 자신을 찾아왔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이규철을 본 최승호는 등 뒤로 땀이 흐르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     *     *

96년 여름.

최승호는 방학 중이라 집에는 도서관에 공부하러 간다고 말하고 인근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게임을 하고 나오는 길에 벌어졌다.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 몸 좋은 아저씨가 pc방에서 나오는 자신을 뒤따르는 것이 아닌가?

최승호는 자신이 한 짓이 있었기 때문에 인근 골목길에 재빨리 몸을 숨겼다.

"어… 어떻게 하지? 설마 벌써 들킨 건가?"

자신의 실력이라면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에 시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자마자 수상한 사람이 자신의 뒤를 따른다.

최승호는 등 뒤에서 땀이 흘렀다.

안 그래도 집안 분위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자신까지 일을 만든 것이 아닌가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으아, 어쩌지? 이젠 집에 들어갈 수도 없어."

승호는 양손으로 머리에 올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답답한 현실이 싫어서 도피성으로 한 장난 때문에 집 안에 큰 화를 불러왔다.

"제기랄! 제기랄! 이게 아닌데……."

"새끼… 뭔 궁상을 이렇게 떨고 있냐? 응?"

"엇! 강… 강길태?"

머리를 감싸고 있던 팔을 풀고 고개를 들자 자신과 같은 반 일진이었던 강길태가 보였다.

사방으로 삐친 머리에 금발로 물들이고, 목에는 금목걸이가 걸려 있다.

강길태의 주위에는 같은 학년의 일진들이 서 있었다.

이들은 승호가 다니는 명성 고등학교의 악명 높은 불량배들이었다.

학 반의 왕따 주동은 물론이고, 빵 셔틀과 금품갈취를 일삼았다.

이들 가운데 가장 악독한 것이 바로 강길태로 이미 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한 처지였다.

"그러고 보니……그래, 생각났다. 니 이름이 최승호 맞지?"

"아…안 녕? 강길태!"

승호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뭐래? 이 새끼가!"

강길태의 똘마니 중 하나가 달려와 승호의 배에 킥을 날렸다.

커―헉하는 소리와 함께 승호가 배를 움켜지고 뒤로 나가 떨어졌다.

"어… 억……."

승호는 입가로 침을 내뱉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 사이 강길태의 똘마니들이 승호를 둘러쌓았다.

"야, 이것 봐라. 꼴에 옷은 좋은 걸 입었는데?"

승호는 마침 얼마 전에 어머니가 큰 마음을 먹고 사준 새 점퍼를 입고 있었다.

유명한 메이커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알아주는 중저가 브랜드다.

"아, 안 돼. 이건 어머니가……."

"뭐래는 거야? 이 빙신이……."

승호는 실컷 얻어맞고는 결국 옷을 내놓았다.

거기다가 가지고 있던 돈도 모두 뺏겼다.

그때, 웬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앗! 최승호~"

승호는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실 승호는 고개를 돌리기 전부터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동창이었던 민예린이다.

더 이전으로 돌아가면 같은 유치원을 다녔었고 당시에 두 사람은 단짝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거리를 두게 되었지만 말이다.

예쁘고 마음도 착해서 초등학교 6년 내내 반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던 여자아이이기도 했다. 그리고 승호의 첫사랑이다.

"당신들 뭐야?"

골목으로 들어선 예린이 강길태와 승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불량배들을 향해 앙칼지게 소리쳤다.

"누군가 했더니 민예린이잖아?"

"엇? 혹시 강길태?"

"맞아. 기억하고 있네?"

강길태도 최승호와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다.

그러다보니 민예린과 같은 반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승호는 생각했다.

'혹시 저 녀석도 예린이를 좋아했을까?'

초등학교 시절 당시 남자아이들 대부분은 민예린을 좋아했었다.

그러니 길태도 그랬을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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