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48화
48화
"저를 후원하신다고요?"
"그래, 너만 오케이 한다면 미국 유학에 학비부터 숙박비 모두 무료다."
"왜? 저를?"
"한 번 키워볼 만한 인재라고 하시더군. 자세한 이야기는 본인이 직접 최군을 만나서 이야기하겠다는데, 어떻게 할래?"
아이큐 180의 천재, 중학교 1학년 때 출전한 국제 올림피아드 수학 부문 금메달.
한때는 전국구 천재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중1 가을 집안에 우환이 들었다.
최승호의 아버지 최대한은 서울대 공학과를 나온 수재였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개인 연구 끝에 특허를 낸 자동차 에어백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대부분 수입한 에어백을 사용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성공한다고 생각한 최대한은 은행과 주변 친구, 친지들에게 최대한 돈을 끌어 모아 회사를 세웠다.
처음에는 최초로 국산화한 에어백을 여기저기서 계약할 것처럼 굴었기에 큰 성공을 꿈꾸었다.
그러나 국내 자동차 회사는 모두 단합이라도 한 것처럼 최대한과 계약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서로 계약을 하자고 요구하던 회사들이 말이다.
결국 크게 손해를 보고 공장을 처분하게 되었고, 특허는 헐값으로 태우에 팔려나갔다.
그 덕에 빛 더미에 앉게 된 최대한은 한국 대기업들의 행태에 분노하며 연일 폭음으로 지새웠다.
그러다 결국 간경화를 일으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날이면 날마다 빚쟁이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모친은 그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당했다.
그 모습을 눈앞에서 본 최승호는 그만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을 시작했다.
공부에 손을 놓은 최승호는 외부세계에서 고립되어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했다.
자연스럽게 이전부터 흥미가 있던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해킹의 세계로 빠져 들였다.
"저… 전 못가요. 말씀은 고맙지만, 아버지는 아프시고, 어머니 혼자… 모르시겠지만 날마다 빚쟁이들이 찾아와요."
최승호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모두 알고 있네. 최군, 만일 최군이 우리 사장님을 따르기로 한다면 아버님의 빚을 모두 갚아드리고, 병원비도 모두 부담하시기로 했네."
"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만일 이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을 후원하겠다는 사장이라는 작자가 앞으로 자신을 노예처럼 부려먹는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최승호는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주일 후, 놀랍게도 매일같이 찾아오던 빚쟁이가 더 이상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약속을 지킨 것이다.
미국의 사장님이 보낸 변호사가 찾아왔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진 수십억의 빚이 모두 변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자초지정을 묻는 어머니에게 변호사는 병원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다고 한다.
"예? 우리 아이를 후원하시겠다고요?"
"예, 저희 사장님은 미국 야후의 기술이사로 재직하시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버신 분입니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투자회사를 운용하시면서 억만장자가 되신 분이죠. 그분이 예전부터 최군을 주시하시면서 오랜만에 등장한 인재라며 기대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최근 최군의 집안사정을 아시고 크게 안타까워하셨죠. 고국의 인재가 이런 일로 날개가 꺾여서는 안 된다며 아버님의 빚을 모두 갚아드리고, 병원비도 무상으로 지원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더해 최군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도록 학비와 체류비용 일체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최군에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은 인재로 자라주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 날 최승호의 가족은 모두 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왜 저죠? 그리고 정말로 제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나요?"
"왜라고 묻는다면 옛 친구에 대한 보은이라고 할까? 나도 남에게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단다. 그 친구 덕에 지금의 기업을 일으켰지.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성공하지 못 했을 거야."
강혁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최승호를 바라보았다.
강혁이 지칭한 옛 친구란 회귀 전의 최승호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현재의 최승호가 알리는 없었다.
오히려 최승호는 강혁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받은 선의를 다시 자신에게 베푸는 일종의 선의의 연쇄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승호는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세상에는 정말로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을 돕는 사람들이…….'
강혁이 정말로 자신에게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최승호는 큰 감동을 받았다.
사실 최승호는 미국으로 오기 전, 만일 강혁이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고 말 그대로 노예처럼 부려먹는다고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 달리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내가 말했잖니. 내 조건은 네가 훌륭한 인재로 커주는 거라고 말이야. 만일 네가 마음에 걸린다면, 졸업하고 나서 우리 회사에서 일해 줘."
"큭, 회장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할게요. 어떻게든 훌륭한 인재가 되어서 회장님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갚을게요."
최승호는 강혁의 회사가 일류 기업일거라 생각했다.
이 정도 부를 이룬 사람의 기업이니 당연할 것이다.
결국 은혜를 갚으라는 말은 돌려서 자신의 졸업 후 취업까지 책임지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지금 고2니까, 여기 사립고등학교에 들어가. 이제 곧 다음 학기가 시작 될 거야. 네가 내 은혜를 갚고 싶다면 스탠포드에 입학해. 어때, 할 수 있겠어? 1년 만에 미국 최고 대학에 붙으라는 말인데?"
"하… 하고말고요. 이래 봐도 태어나서 지금까지 공부로 남 밑에 들어간 적이 없어요. 해낼게요."
"좋아, 그럴 결심이 섰다면 다른 건 모두 지원하지. 방과 후에도 널 도울 수 있도록, 최고의 선생님들을 붙여줄게."
이건 그야말로 관운장에게 적토마를, 손오공에게 근두운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고의 천재에게 최고의 선생님까지 붙여준다니 강혁이 진짜 마음먹고 서포트를 해줄 모양이었다.
"휘유, 저 녀석 머리에 그런 도우미까지 있다면 내년에 스탠포드 입학은 문제없겠는데요?"
"뭐, 평생 한국에서만 살아왔던 아이니, 맨땅에 헤딩하라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내가 할 수 있는 도움이라면 해줘야지."
사실 강혁의 머릿속에는 최승호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그 계획 속에는 내년에 최승호가 스탠포드의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가야 했다.
강혁은 최승호가 다른 과도 아니고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하도록 할 자신이 있었다.
그것도 강혁의 지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말이다.
멘탈리즘의 기본은 상대의 마음을 자신의 뜻대로 상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 멘탈리즘의 대가인 강혁에게 이미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해킹에 빠져있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강혁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최승호가 컴퓨터 공학과를 자원해서 가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사실 최승호에게 파격적인 지원과 후원을 하는 대가로 그 어떤 보답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족쇄가 될 터였다.
강혁은 최승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의 영혼까지도 철저하게 자기 사람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승호야, 네게 결코 나쁜 일이 되게 하지 않겠다. 회귀 전에 네가 원했던 인생. 내가 살게 해줄게.'
최승호는 어린 나이에 재미로 시도했던 미 국방부 해킹 사건이 평생 족쇄가 되었다.
양지로 나가지 못하고 신분을 숨긴 채 뒷세계에서 외롭게 살아야 했다.
부모님과도 생이별을 감수해야 했다.
나중에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두 분을 몰래 돕기는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부모가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었다.
강혁은 그런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치면서 살아가는 최승호를 강혁은 보고 싶었다.
'넌 인마, 내가 인정하는 진짜 천재 아니냐. 이 미국에서 네 재능을 십분 발휘하며 살아가봐. 내가 도와줄 테니.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짜식.'
강혁은 최승호를 흐뭇한 눈으로 봐라보았다.
이제 최승호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커준다면, 앞으로 자신을 대신해서 거대 기업들을 운영할 그림자를 얻게 될 것이다.
최승호는 강혁이 이뤄나갈 기업 집단을 운영하는 총독이 되어, 신상현의 눈을 속일 최강의 방패가 되어 줄 터였다.
* * *
다음날 아침. 강혁은 집사가 내온 아침을 최승호, 이규철과 함께 먹었다.
사실 강혁은 평소 아침을 거르는 경우가 많았다.
굳이 거르던 아침을 먹은 것은 두 사람을 위해서였다.
아침을 모두 먹은 강혁은 미리 준비한 대로 최승호에게는 스티브에게 시켜서 뉴욕 투어를 시켜주었다.
"와우, 롤스로이드 팬텀~ 오늘은 신나는 하루가 되겠는데요?"
하루 만에 상당히 밝아진 최승호를 보며 강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 표정 오랜 만이네."
"예?"
"하하, 아냐. 좋은 시간 보내도록 해. 그리고 이거 받아."
강혁이 검은색 카드 하나를 꺼내어 최승호에게 건네었다.
"어? 이건 왜?"
"카드야. 한도 제한은 없다. 우리 집에 안 쓰는 방은 많으니까. 관광 끝나고 컴퓨터 상가에 들러서 네가 필요로 하는 기자재, 원하는 대로 마음껏 구매해."
"저…정말요?"
최승호가 깜짝 놀라 물었다.
"물론이지. 스티브, 잘 부탁해~"
"예쓰, 보스. 자~ 가자구. 양키즈 보이."
스티브가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쓴 최승호를 보며 말했다.
스티브가 최승호를 태우고 아파트를 벗어났다.
강혁이 이규철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도 가죠."
"예, 회장님."
잠시 후, 아파트 주차장에서 한 대의 차가 빠져나왔다.
부르릉 울리는 엔진 소리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섹시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날렵한 외형과 시대를 선도하는 멋진 스타일, 공기역학을 고려한 낮고 각진 차체와 보는 사람의 시선을 한 번에 끌어당기는 번쩍이는 빨간 도색까지.
이탈리아의 명품 스포츠카,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로드스터였다.
"와우, 회장님. 이건 진짜 죽이는데요?"
맨허턴 거리를 가로지르는 디아블로의 승차감에 이규철은 조금 흥분한 느낌이었다.
강혁은 자랑하는 드라이빙 솜씨를 십분 발휘하며 거리를 질주했다.
뉴욕 사람들도 슈퍼카가 지나가자 한 번씩 바라본다.
이규철은 신이 나서 물었다.
"회장님, 이건 얼마에 산거예요?"
"1억 천만 달러."
"예? 에이~ 장난치지 마세요. 무슨 차 한 대 가격이……."
"진짜예요~ 1억 천만 달러. 제가 얼마 전에 람보르기니 회사 자체를 그 가격에 인수했어요."
"……!"
이규철은 강혁의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