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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51화 (51/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51화

51화

#14장 현인과 악마

"제 아들 같은 친구입니다. 골든 타워라고 투자 회사를 운영해서 최근에 돈을 좀 많이 모았지요."

래리의 설명에 커트 와이엇이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커트 와이엇이요."

"존 강이라고 합니다. 와이엇 씨."

"래리의 친구라면 내 친구이기도 하지. 편하게 커트라고 부르게."

"커트, 오늘 밤 파티는 정말 즐거웠어요. 항상 이런 식인가요?"

"하하, 맞아. 내 생일 파티는 언제나 이런 자선 파티라네. 그래서 이 친구는 생일날 볼 일은 없었는데 말이야."

커트가 윙크를 하며 래리를 바라보았다.

"아들네미가 죽고 난 후, 저도 인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 친구 덕이 켰죠."

래리의 말에 커트가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래리를 위로했다.

"마크는 정말 좋은 녀석이었어. 자네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네."

커트 와이엇은 허드슨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 후 강혁을 바라보았다.

"존, 자네가 투자 회사를 운영한다고 하니. 자네를 위해 늙은 내가 인생을 살면서 알게 된 작은 지혜 하나를 알려주고 싶군."

커트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강혁을 바라보았다.

"커트의 말은 들어서 나쁠 것 없다네, 존."

래리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사실 래리는 내 말을 듣지 않았지."

커트가 윙크를 하며 말했다.

"사실이야. 지금은 후회하고 있지만 말이야."

"하하, 사실 별건 아니네."

커트가 말했다.

"돈은 말일세. 쌓여 있을 때는 죽은 것이라네. 돈은 돌아야 생명을 살리지."

"……!"

커트의 주름진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자네나 나 같은 부자들이 모아 놓은 돈들은 말일세. 만일 그 돈들을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그것들은 우리가 죽을 때가 되면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네."

"……!"

"하지만 만일 그 돈들을 우리가 타인이나 세상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 돈들은 늘 살아 있는 우리들의 영원한 유산이 될 걸세.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는가?"

커트가 강혁을 바라보았다.

"세상을 위해 쓴 돈은 영원히 남는다네."

말을 마친 커트가 허공을 응시하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커트, 저는 아직 인생에 대한 깊이가 많이 부족합니다만, 커트는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 건가요?"

강혁은 진지하게 눈앞에 있는 노년의 신사에게 물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재벌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부자 앞에서 강혁은 순수한 호기심과 함께 존경심을 품었다.

"하하, 그게 궁금한가?"

커트는 노년의 지혜로 가득한 눈빛으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     *     *

1942년 폴란드 바르샤바.

20세의 젊은 커트 와이엇은 부인과 함께 가짜 여권으로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는 열차에 올라탔다.

그와 부인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경계심이 어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폴란드는 나치의 지배하에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가 극에 달해 있었다.

만일 폴란드를 탈출하지 못한다면 그와 부인은 그의 동족들처럼 수용소로 끌려가게 될 상황이었다.

"이제 됐어. 여보."

이제 막 신혼의 단꿈을 꾸던 그들은 나치의 점령으로 하루아침에 고향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희망을 놓치는 않았다.

두 사람은 좌석에 앉아 손을 꼭 마주 잡았다.

그런 두 사람을 열차 안 마주보는 좌석에 앉아 있던 노부부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바라보았다.

"젊은 부부가 보기 좋구려."

백발의 노인이 너털거리며 웃었다.

노인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곱게 나이든 여인도 두 사람을 향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커트와 그의 부인 엘리엇은 노부부의 칭찬에 말없이 수줍어했다.

젊은 커트 부부를 태운 열차는 마침내 뱌르사바를 떠나 폴란드 국경선을 향해 달렸다.

이곳만 지나면 나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맞잡은 손을 꼭 잡았다.

'여기만 벗어나면 우린 자유야.'

커트가 사랑스런 눈으로 엘리엇을 바라보았다.

엘리엇은 그런 커트를 누구보다 믿고 신뢰했다.

마침내 열차가 국경을 벗어나기 전 마지막 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열차의 출발이 더디다.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역 안으로 역무원과 함께 나치의 게슈타포(비밀경찰)가 나타났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왜 열차의 출발이 지연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치의 불심검문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역무원과 함께 무장한 군인 두 사람, 그리고 나치의 친위대인 게슈타포 복장을 입은 남자 하나가 열차에 앉아 있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신분을 확인해갔다.

그들이 서서히 자신들의 좌석 쪽으로 다가오자 엘리엇은 남편 커트의 손을 꼭 잡았다.

마침내 매부리코에 회색 눈을 가진 30대 중반의 게슈타포가 군인들과 함께 커트와 엘리엇의 자리로 왔다.

먼저 그는 노부부의 여권을 확인하고는 문제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곧 여권을 돌려주었다.

커트에게 고개를 향하자 커트가 여권을 꺼내어 그에게 넘겼다.

회색 눈의 게슈타포는 커트의 생김새를 유심히 살피더니 여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내저었다.

"흥,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지. 역겨운 돼지 놈~ 가짜 여권으로 어딜 도망가려고. 두 사람 모두 체포해."

돼지는 이 시기 유대인들을 향한 흔한 욕설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게스타포의 말을 듣자 말자 유대인이 몰래 국경을 넘으려다가 비밀경찰에게 잡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슈타포의 말에 앞자리에 앉아 있던 노부부가 크게 놀랐다.

노인이 일어나 무서운 인상의 게슈타포를 향해 항의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선량한 우리 폴란드의 국민인데, 대체 당신들이 왜 잡아가는 거요?"

"영감, 이들은 모두 더러운 유대인들이요. 이들은 위대한 우리 제 3제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기생충 같은 놈들이란 말이요. 아리안족의 위대한 영도자이시며 제 3제국의 최고 사령관인 히틀러 총독각하의 명령을 따라 제국을 좀 먹는 벌레 같은 유대인들은 모두 집단 수용소로 보내기로 했으니 영감은 좋은 말로 할 때 간섭할 생각 말고 여행이나 즐기시오."

매부리코를 한 게슈타포의 무서운 눈초리에 노인은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노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노부인이 노인의 손을 잡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따라와!"

회색눈의 게슈타포의 말에 커트는 저항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요. 나는 유대인이 아니요. 당신이 뭔가 착각하고 있나본데, 나는 내 아내와 함께 스페인에 있는 친척집에 가는 중이란 말이요."

"흥, 누굴 속이려고 이러시나. 더러운 유대인 놈이."

남편 커트와 게슈타포의 실랑이를 보며 엘리엇은 이미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커트의 항변에도 게슈타포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말로 해서 따라오지 않으면 강제로 커트와 자신을 열차에서 내릴 생각이었다.

"이봐, 뭘 보고만 있는 거야."

역무원과 군인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군인들이 커트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커트는 자신을 향해 총구리가 겨눠지자 양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흥, 역겨운 돼지 놈, 어서 여기서 내려. 당신도!"

회색 눈의 사나이가 엘리엇에게도 내리라고 명령했다.

"내 아내는 유대인이 아니요."

커트가 소리쳤다.

"흥, 이제야 바른 말을 하는군. 결국 넌 유대인이란 말이지?"

커트가 아내라도 살리기 위해 자신은 유대인이지만 아내는 아니라고 말할 참이었다.

갑자기 열차의 1등칸에서 한 신사가 걸어 나왔다.

"이봐, 뭐하는 짓이야? 이 부부는 내 친구들이다. 나와 함께 스페인으로 여행 중이었는데, 대체 어떤 간 큰 녀석이 내 친구들을 건드리는 건가?"

회색 눈의 사내가 갑자기 등장한 남자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사내의 양복 깃에는 나치당원을 상징하는 배지가 걸려 있었다.

"당신은?"

신사가 회색 눈의 사내에게 여권을 건네었다.

그러자 게스타포가 갑자기 순한 양처럼 얌전해졌다.

"내 친구들에게 상관하지 말고 당장 여기서 꺼지게!"

회색 눈 사나이는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신사의 말을 따라 병사들과 함께 열차에서 내렸다.

그들이 떠나자 커트 부부는 그 신사에게 크게 감사의 말을 건네었다.

"전혀 모르는 사이인 저희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아니에요. 쥐꼬리만 한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작자는 내가 가장 혐오하는 인간이니 그리 감사할 것도 없소. 그래, 이것도 인연인데 스페인까지 가는 동안 함께 말벗이라도 하면서 여행을 즐기는 것은 어떠시오."

커트 부부는 그 길로 1등 칸으로 옮겨 그 신사와 함께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여행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커트 부부가 쉴 수 있도록 호텔에 방을 잡아 주었다.

거기다 포르투갈 행 열차표와 신분증 그리고 여행경비까지 손에 쥐어주었다.

커트 부부는 이후 뉴욕에 정착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모두 종결된 후, 은인을 찾기 위해 몇 번이나 스페인을 찾았다.

그 후로도 수십 년 동안 그 신사를 수소문했지만 결국은 찾지 못했다.

*     *     *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던 커트가 강혁을 향해 말했다.

"내 평생 의문 중 하나가 생면부지인 우리 부부를 그분이 왜 나서서 도와주었을까? 그 분을 만나지 못해서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가끔은 혼자서 그 때 생각을 하지."

말을 하는 커트의 얼굴이 잠시 설명하기 힘든 빛으로 밝게 빛나는 듯했다.

강혁은 커트가 비록 그 사람을 만나 직접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답을 얻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얼굴이 매우 평온했던 것이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서 고향을 떠날 때 신에게 한 가지 기원을 했다네."

커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만일 무사히 폴란드를 벗어날 수만 있다면 평생을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고."

"……!"

"뉴욕에 정착해서 처음 시작한 일이 우표 판매상이었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지. 하지만 수익의 10~20%는 빈민들을 돕거나 생명을 구하는데 썼다네. 폴란드를 떠나며 신에게 했던 맹세, 그리고 생면 부지였던 우리 부부의 생명을 구해 주었던 스페인의 신사를 생각하면서, 그 신사가 내게 베풀어 주었던 것을 다른 이들에게도 베푸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느끼며 살고 있지. 자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군."

지금처럼 부자가 아닌 가난한 시절부터 자신이 신에게 한 맹세와 은인의 도움을 잊지 않고 타인을 돕기 시작했다는 말은 강혁에게 큰 울림이 되어 다가왔다.

"커트는 자네 나라와도 인연이 깊지."

함께 커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래리가 말했다.

"한국하고요?"

강혁이 놀란 표정을 짓자 커트가 반색하며 물었다.

"자네 한국인이었군?"

"예, 한국에서 왔습니다."

강혁이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커트는 1970년대부터 자네 나라에서 심장병이 있는 어린이들을 미국으로 데려와 수술을 시켜주었다네. 나중에는 생명의 선물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는데, 80년대에 레이건 대통령이 낸시 여사와 함께 공군 1호기로 한국의 심장병 어린이 두 명을 미국으로 데려와서 수술을 시켜준 것이 시작이지. 그 일을 주도한 것이 커트였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말이야. 원체 언론에 나서는 걸 싫어하거든."

래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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