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59화 (59/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59화

59화

#16장 테러리스트

최승호가 다니고 있는 트리니티 스쿨은 뉴욕 맨허튼에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프렙 스쿨이다.

프렙스쿨은 College―Preparatory Schools의 약자로 명문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학교를 말한다.

3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닌 트리니티 스쿨은 1907년에 설립되었다.

트리니티 스쿨은 포브스가 선정한 최고의 프렙 스쿨 순위 1위에 랭크된 곳이다.

강혁이 최승호를 이곳에 보낸 이유였다.

"열심히 해. 초이."

"오늘도 고맙습니다. 스티브."

강혁의 경호원이자 운전사인 스티브는 커다란 덩치에 비해 해맑은 베이비 페이스의 소유자다.

요즘 스티브는 매일 아침 최승호를 학교에서 제법 떨어진 스타벅스 매장 앞까지 태워다 주었다.

원래는 학교 앞까지 태워다 주려고 했었다.

그런데 최승호가 이를 거절했다.

그 이유가 재미있는데 자신이 탄 차가 너무 화려하기 때문이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백색의 롤스로이드 팬텀.

이런 엄청난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학교 친구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학교에서 십 분 가량 떨어진 곳에서 내렸다.

사실 그럴 필요 없다고 강혁이나 스티브가 말해 주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승호는 남들이 자신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항상 학교까지 십 분 정도 걸어가는 것을 택했다.

천천히 학교까지 걸어간 최승호는 마침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동급생들과 인사를 건넸다.

"안녕, 초이."

"안녕, 존슨."

"안녕, 릴리."

스쿨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들어가는 몇몇 친구들과 인사했다.

부모님이 차로 데려다 주는 아이들도 상당수가 있고 직접 차를 몰고 온 친구들도 많았다.

미국은 만 열여섯 살이면 운전면허를 딸 수 있다.

그 중에서 부모님이 사 준 비싼 명품차를 몰고 학교에 도착한 아이들도 있었다.

대부분 학교에서 셀럽의 위치에 있는 아이들이다.

이곳 트리니티 스쿨의 구성원들은 대충 이러했다.

뛰어난 명사나 갑부의 자녀들이거나,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이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최승호는 아이큐가 무려 180이었다.

인류 전체를 통틀어서 상위 0.1% 안에 드는 천재인 것이다.

거기다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수년간 금메달을 휩쓸었던 경력이 있었다.

한마디로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인재인 것이다.

학교 측에서는 최승호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장학금을 주고 학비도 면제 시켜 주었다.

"헤이, 초이. 너 혹시 학교까지 걸어왔냐?"

한 동양인이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신장은 168정도이고, 머리는 코토리 베이지 색으로 염색을 해서 백색에 가까운 금발이다.

쇼트 컷에 오른쪽으로 가르마를 탔고 왁스로 머리를 스타일링해서 상당히 멋을 부렸다.

동양인의 이름은 아키라 유키.

평소 닛산 자동차의 미국 법인인 아메리카 닛산에서 근무하는 아버지에 대한 자부심이 큰 아이다.

워낙 부자와 유명 인사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로 유명하다.

"하숙집이 그리 안 멀어서… 괜찮아."

"흐흐, 그 거짓말 진짜냐?"

아키라 유키가 최승호를 놀리고 있을 때, 남녀가 섞여 있는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다가왔다.

대다수 백인이지만 그 중에는 동양인도 몇 명 있었는데 모두 일본인이거나 중국인이었다.

평소 아키라와 어울리는 아이들이다.

승호의 머릿속으로 한국인 재학생 크리스 킴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은근히 자기보다 못한 애들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녀석들이 있어."

"그래?"

"이 년 전에 인도에서 온 천재 소년이 있었는데"

"……."

"재들이 알게 모르게 괴롭혀서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어."

"뭐?"

"다행히 목숨을 건지고 학교를 자퇴했지."

승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고? 그런데 아무런 처벌도 없었어?"

"워낙 교묘하게 괴롭힌데다가 저 무리들 부모님들이 돈으로 무마했다는 소문이야."

크리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크리스는 승호에게 진심으로 충고를 해주었다.

"나도 저 녀석들과는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있어. 너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 그래? 알았어. 조심할게. 그런데 대체 누가 그런 거니?"

"아키라라고 그런 녀석들 중에서 행동 대장격인 놈이야."

"그래?"

승호도 가급적이면 그들과 엮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녀석들만 조심하면 돼."

크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하필 아키라 무리에게 걸려든 것이다.

"이번에 학기 여행가는 거 알고 있지? 12학년의 마지막 여행이 될 거야."

아키라가 말했다.

학기 여행은 한국으로 말하자면 수학여행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승호도 이번 여행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아, 알고 있어."

"이 주일이나 되는 긴 여행에다가 나사 우주 센터가 있는 휴스턴까지 갔다가 오는 거지."

"……."

아키라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비용이 엄청나!"

아키라가 자신 주위에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이들이 일제히 비웃었다.

"그런데 스쿨버스 비용도 못 내는 네가 갈 수 있겠냐?"

"……."

최승호는 아키라의 말에 기가 막혔지만 딱히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어때, 내가 빌려 줄까? 우리 아버지한테 말하면 그 정도 비용은 아무 것도 아니거든."

아키라가 비릿한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아, 아냐. 필요 없어."

"필요 없기는? 말 그대로 마지막 여행이라니깐?"

"그… 그게……."

"게다가 나사의 우주 센터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니깐?"

"……."

"너처럼 과학 괴짜한테는 버릴 수 없는 이벤트 아니냐?"

"그… 그야."

맞는 말이지만 승호는 황당했다.

아키라는 승호가 돈이 없어서 학기 여행을 포기할 것처럼 단정해서 말하고 있었다.

승호 입장에서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물론 승호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이번 여행을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이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만일 네가 우리들의 숙제를 도와준다면 비용 일체를 빌려 주지. 어때?"

아키라의 말에 뒤에 있던 아이들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 머리 좋다며? 아이큐가 180이라니. 숙제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겠지?"

"……."

"네게는 아주 좋은 돈벌이가 될 거야."

메리 페레즈가 말했다.

메리는 상당한 미인이라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은 아이다.

이들 무리에서는 여왕처럼 대접을 받고 있었다.

"좋으면서 뺄 필요 없어. 우리 숙제를 대신해 주면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우리 무리에 끼워 줄게 어때?"

짙은 갈색 머리의 백인 남학생이 말했다.

이름은 앤드류 레인.

트리니티 스쿨의 학생회장이면서 인기 넘버 1인 해리 화이트란 학생이 있다.

트리니티 스쿨에는 자신들만의 작은 올림포스 신전이 있었다.

해리 화이트는 이 신전에서 숭배 받는 네 명의 남신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무려 미국의 부대통령이다.

대입 준비를 위해 부모를 따라 워싱턴으로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았다.

갈색 머리에 신장은 178정도 공부와 운동 모두 잘하며 잘생기기까지 했다.

그런 해리 화이트의 하위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키도 크고 세련되어 보이는 외모도 비슷했다.

겉모습만 보자면 전형적인 상류층 백인 남성으로 모범생처럼 보이는 아이다.

하지만 평소 앤드류 레인은 해리 화이트를 심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메리 페레즈나 앤드류 레인 두 사람의 부모는 모두 금융 업계에 종사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얼마 전 회사를 옮겼는데 잘나가는 어느 신생 투자 회사의 임원들이라고 한다.

"하하, 모두들 고맙지만, 난……."

"헤이, 초이. 뭐하냐? 홈 룸 시간 늦겠다."

아키라 무리에게 둘러싸인 승호를 크리스가 보고 달려왔다.

크리스가 승호와 어깨동무를 하더니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아키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생각해 봐. 초이. 네게도 나쁜 일은 아닐 거야."

아키라의 말에 함께 모여 있던 아이들에게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 크리스."

승호의 말에 크리스가 눈썹을 움직이며 말했다.

"조심하라고 했잖아. 저 녀석들. 아무래도 널 표적으로 삼은 모양이야."

"하아~"

크리스의 말에 승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골치 아픈 녀석들에게 걸려든 예감이 들었다.

'어떻게 하냐? 진짜. 공부하고 페이스북 만들기에도 시간이 없는데.'

승호는 짜증이 몰려왔다.

'엉뚱한 녀석들이 성가시게 하네. 휴우~'

홈 룸 시간을 마치고, 첫 번째 수업은 수학이었다.

승호는 교실을 옮겼다.

수학 수업을 하는 교실로 들어가자 아멜리아 패닝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아멜리아 패닝이다.'

승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멜리아 패닝!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에 출연했다.

지금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할리우드의 여배우다.

그런 사람이 승호가 다니게 된 트리니티 스쿨의 학우였던 것이다.

지금은 활동을 멈추고 대학에 가기 위해 학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멜리아 패닝은 학생들의 숭배를 한몸에 받는 살아 있는 여신이다.

트리니티 스쿨의 미의 여신.

가히 사람들이 넋을 놓고 볼 정도로 아름다웠다.

빛에 따라 금발로도 은발로도 보이는 백금색의 머리 빛은 플래티넘 블론드라 불렸다.

신비로운 분위기에 엘프 같은 용모.

가히 미의 여신이라고 불릴만했다.

사실 아멜리아는 한국에 있을 때 최승호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패닝이 출연했던 하이틴 모험 영화 '하와이안 어드벤처'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볼 정도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여배우가 같은 교실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초이, 이 문제를 나와서 한 번 풀어 보겠니?"

수학 선생님인 루시 여사가 승호의 이름을 불렀다.

잠시 아멜리아를 훔쳐보며 망상에 잠겨 있던 승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예, 선생님."

정신을 차리고 칠판을 보니 문제가 보였다.

다행히 문제를 보자말자 머릿속으로 풀이가 나왔다.

승호는 앞으로 나가 칠판에 거침없이 문제의 풀이를 써나갔다.

승호가 문제 풀이를 모두 마치자 루시 여사가 칭찬을 쏟아냈다.

"역시 초이야. 어려운 문제인데 아주 잘 풀었어요."

승호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로 돌아가려는 순간 승호는 자신도 모르게 아멜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착각일까?

아멜리아가 언뜻 자신을 향해 웃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뭐, 뭐지? 내가 헛것을 잘 못 봤나?'

자리로 돌아온 승호는 자신이 망상에 사로잡혀서 뭔가를 잘못 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겨우 조금 까다로운 수학 문제 하나 푼 걸로 여신님이 자신을 향해 웃어줄 리는 없는 것이다.

'정신 차려. 최승호. 아멜리아는 해리 화이트 같은 남자랑 어울리지 넌 아니다. 정신 차려라.' 자리에 앉은 최승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럴 리가 없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아멜리아는 그런 최승호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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