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62화
62화
"안녕하세요? 존 강 회장님이죠?"
"그렇습니다."
"F.B.I 특별수사관 쿠퍼 포웰입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쿠퍼 포웰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곳에 F.B.I 수사관 리암 스캇과 뉴욕 지부장 에단 스미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리암 스캇이 반갑게 강혁을 맞이했다.
"예언가 양반. 다시 만나서 반가운데 이런 일이라서 안타깝군."
"그러네요. 리암."
가벼운 포옹과 악수를 나눈 후, 에단 스미스 뉴욕 지부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소문의 주인공을 이렇게 보네요. 존 회장님."
에단 스미스가 말했다.
"미안해. 이번 일이 있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네. 아는 사람도 지부장님뿐이야."
리암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난 번 사건 때도 뉴욕 지부에서 사건을 조사했었다.
윌 존슨 상원 의원의 압력과 자신과의 친분을 생각한 리암이 최대한 강혁의 능력을 숨겼다. 하지만 이런 일을 비밀로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어차피 이렇게 되리라는 것은 강혁도 사실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미리 아무에게나 말하지 말아 달라고 굳이 부탁을 했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리암 같은 사람에게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고단수였다.
이 수에 걸려든 것은 리암만이 아니었다.
강혁은 뉴욕 지부로 오기 전 윌 존슨 상원 의원과 딸인 안젤라와 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통화를 했다.
96년도에는 모토롤라에서 나온 최초의 폴더 폰 스타 택이 있었다.
크기는 94 x 55 x 19mm로 아주 작았다.
무게는 88g에 불과해 본격적인 휴대용 전화기의 시대를 이끈 작품이다.
"존, 나네. 이번에 자네 도움이 필요해서 리암과 내가 뉴욕 지부장에게 자네 이야기를 했네. 약속을 어겨 미안하네."
"아닙니다. 저도 아무에게나 알리지 말라고 했던 것이지. 이런 일이라면 어쩔 수 없죠. 게다가 제가 보호자로 있는 아이도 이번 일에 말려든 것 같으니 어차피 제가 개입을 했을 겁니다. 덕분에 수사팀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수고를 덜었습니다."
"그런가? 다행이군. 하지만 자네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지 않은 것은 미안하네."
"그 사과 받아들이지요. 윌."
두 사람은 지난 사건 이후, 서로 이름을 부르는 막역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잘 부탁하네. 스미스 지부장이 말해 주겠지만 이번 일은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사건이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윌."
"자네가 그렇게 말해 주니. 든든하군. 참, 안젤라가 자네와 통화하고 싶어 하는데 통화해 보겠나?"
"바꿔주세요. 윌."
강혁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통화를 허락했다.
잠시 후, 전화기로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젤라 존슨이다.
지난 번 사건 후, 안젤라와는 만나게 될 일이 없었다.
하지만 항상 그녀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약혼자를 그렇게 보냈으니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고통이 어떤 것인지는 강혁이야말로 정확히 알고 있었다.
"존?"
"안젤라,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저는 잘 지냈어요. 사실 못 지낼 이유도 없었죠."
"다행이네요."
"하지만 모르겠어요. 제가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제가 정상인 건지도 모르겠어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활기차게 지내다가 다음 날에는 하루 종일 우울하게 지내요."
강혁은 안젤라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녀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님은 그런 절 지켜보며 불안해 하시죠. 그렇다고 제게 뭘 요구하시지는 않아요. 마크가 죽은 후 저는… 뭔가가 바뀌었어요. 더 이상 내가 아는 내가 아닌 것 같아요. 당신은 대체 어떻게 견디고 있는 건가요?"
안젤라의 말에 강혁은 숨을 들이켰다.
어떻게 견디고 있느냐고?
나는 견디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집 안에 혼자 있을 때면 총구를 입 안에 쑤셔 넣고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오직 복수를 위한 한 가닥 희망만이 그를 버티게 하고 있다.
강혁은 자신의 속에 있는 말을 해줄 수 없었다.
다만 자신의 주치의가 자신에게 해 준 말을 건네었다.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안젤라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견디려고 노력하지 말아요. 안젤라. 그런 건 억지로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강혁의 말에 전화기 너머로 잠깐의 침묵이 돌았다.
"그렇군요. 맞아요. 제가 너무 무리했나 봐요. 존,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이 오히려 제게 독이 됐나 보네요."
"도움이 되었나요?"
"예, 생각 이상으로요. 존에게 전화한 것이 정답이었어요."
"혹시라도 제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를 주세요. 다음번엔 윌을 통하지 말고 직접 전화하세요. 기다릴게요."
강혁은 안젤라가 자신에게 전화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말을 해 주었다.
"고마워요. 존. 또 당신이 필요해지면 전화 드릴게요."
"언제든지… 안젤라. 당신에게는 제 전화기가 언제나 열려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존. 저도 당신께 언젠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지금은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지만."
"그런 날이 온다면 저도 기꺼이 도움을 요청할게요. 안젤라."
강혁이 웃으며 말했다.
안젤라도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강혁은 윌과 안젤라와의 통화를 떠올리며 뉴욕 지부장 스미스를 바라보았다.
"자, 이제 말씀해 보세요. 알 카에다가 무엇을 요구하던가요?"
강혁의 말에 스미스 지부장은 깜짝 놀랐다.
아직 자세한 내용은 말도 꺼내지 않았다.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도 말해 주지 않았다.
납치 사건이라는 것은 윌 존슨 상원 의원을 통해 미리 알았다고 해도 어떤 단체의 짓인지는 자신들도 백악관에서 연락이 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 대체 어떻게 안 것일까?
'자아, 이제 존의 마술을 지켜보라고요. 스미스.'
리암 스캇이 놀라는 지부장의 얼굴을 보며 통쾌하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리암이 강혁의 능력에 대해서 말했을 때 스미스 지부장은 매우 회의적이었다.
심지어 수사관으로서 리암 스캇의 능력을 그동안 과대평가했다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만일 윌 존슨 상원 의원의 영향력이 아니었다면 강혁이 여기까지 오기도 어려웠다.
"알 카에다는 90년대부터 우릴 적대시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지고 있는 단체에요."
스미스 지부장이 강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았는데… 게다가 우리도 방금 안 사실을 대체 어떻게… 혹시?'
스미스 지부장은 순간 강혁이 테러리스트들과 한통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테러리스트들과 한통속이 아닙니다."
강혁이 웃으며 잘라 말했다.
"아. 미안합니다."
"스미스 지부장님. 그저 제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네요."
정보기관 소속이 아닌 일반인들은 알 카에다의 존재를 많이 알지 못하던 시절이다.
이 시대에 언론을 통해 주로 언급되던 중동 테러리스트들은 대부분 헤즈볼라였다.
헤즈볼라는 알 카에다의 전면적인 등장 이전 가장 악명 높았던 테러 단체였다.
약 사천 여명에 달하는 대원을 지닌 중동 최대의 교전 단체다.
당시는 헤즈볼라라면 미국 입장에서는 이를 갈던 시기였다.
83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있던 미국 해병대 건물을 향해 헤즈볼라가 공격을 한 일이 있었다.
자살 특공대가 약 12,000 파운드의 폭약을 실은 트럭을 몰고 돌진해서 약 241명의 사망자를 냈다.
92년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에 폭탄을 실은 차량으로 돌진해서 29명이 죽고, 242명이 부상당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중동 테러하면 헤즈볼라를 떠올리던 시절인 것이다.
"그…그렇군요. 그런데 내가 그런 질문을 할지는 또 어떻게 아셨죠?"
아직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강혁은 자신이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먼저 말했다.
스미스 지부장은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절 부르신 이유 중에 하나겠지요. 지부장님."
물론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만한 대화 내용이기는 했다.
하지만 스미스 지부장은 윌 존슨 상원 의원과 리암 스캇 요원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상기했다.
그리고 강혁이 지녔다는 신비로운 능력에 대해 가졌던 의구심을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
스미스 지부장의 얼굴에 얼떨떨한 표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강혁은 대체 알 카에다가 아이들을 납치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을까?
미국 부대통령의 아들과 명사의 자녀들, 할리우드의 여배우가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되었다면 전 세계적으로 크게 언론에 회자될 이야기였다.
하지만 96년에 이런 이야기가 언론에 회자된 적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이 사건은 언론에는 일체 알려지지 않았다.
학부모들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정부에 비밀 서약을 했었다.
당시에 아이들이 어떻게 무사히 부모들의 품에 돌아왔는지 아는 사람은 정부 내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실을 강혁이 알 수 있었을까?
사실 강혁은 미국 연수 중 미국 C.I.A와 F.B.I에 자문해 주고 있던 엘리엇 쿠퍼 박사를 만났다.
쿠퍼 박사는 테러 및 살인 사건의 수사의 전문가였다.
강혁은 그에게 테러리스트나 범죄자의 심리를 읽어 내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테러리스트 특히 알 카에다와 같은 광신적인 믿음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들의 심리를 공부했다.
그때 강혁은 이번 사건에 대해 일부의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알 카에다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조금 전 백악관에 납치범들이 보낸 영상이 도착했어요. 백악관에서 수사를 맡은 우리 쪽으로 보냈는데 함께 보시죠."
회의실 안의 TV로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AK―47 자동 소총을 들고 아랍어로 무언가를 말했다.
화면 아래로 영어 자막이 흘렀다.
48시간 안에 아부 무사브 파드힐을 석방하지 않으면 한 시간에 한 명씩 인질을 사살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브 무사드 파드힐은 C.I.A에서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알 카에다의 지도부 중 한 명이야. 요르단 자르카 출생으로 1980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해서 소련군을 대항해서 싸웠어. 전쟁이 끝난 후에는 요르단으로 귀국해서 과격한 이슬람 운동에 참여했고, 이때부터 알 카에다의 요르단 지부를 지휘했지."
"그렇군요."
"워낙 과격분자에 위험인물이라. 폭발물 소지 혐의로 우리 쪽에서 붙잡은 후에 요르단 정부에 넘겼어."
"그 뒤로 어떻게 되었죠?"
"지금은 요르단 형무소에 있지. 30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야."
그저 소지 혐의만으로 30년 형을 받은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흉악한 테러리스트였다.
강혁은 그의 이름을 어디선가 들은 듯한 생각과 함께 머릿속의 기억 서랍장이 열렸다.
'아브 무사드 파드힐?'
9.11 테러 사건을 일으켰던 주동자 중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아브 무사드 파드힐은 오사마 빈 라덴의 충실한 지지자 중 하나다.
9.11 테러의 막후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던 인물이었다.
이 자가 9.11에서 활약했다는 것은 이번 사건으로 요르단 형무소에서 풀려났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