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63화
63화
#17장 테러리스트 (2)
강혁의 머릿속으로 또 하나의 퍼즐이 맞춰졌다.
엘리엇 쿠퍼 박사가 자신에게 테러리스트들의 심리에 대해 강의할 때 보여 주었던 파일이 있었다.
대부분의 내용들이 블록처리 되어 있어서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추해 보면 그 속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테러리스트가 아이들을 구금하고 있는 장소를 알아낸 후, 구출 작전이 벌어졌어. 하지만 그 와중에 학생 여러 명이 희생되었고, 진압하던 대원들도 상당수가 사고로 죽었지.'
'젠장, 원래 승호는 거기에 없었어야 해. 하필… 만일 뭔가 잘 못 되서 승호가 희생자에 포함 되면 어쩌지?'
강혁의 마음이 바빠졌다.
"미국 정부의 입장은요?"
"우린 테러리스트들과는 협상을 하지 않아. 하지만 이 일은 아직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어. 잡혀 있는 사람들의 부모들도 하나같이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고 말이야."
"부모들이 가만있지 않겠군요."
"벌써 아메리칸 헬스 케어의 무어 회장이 뒤에서 정치권을 움직이고 있어서 저 녀석이 풀려날 가능성은 높아.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범행은 과격분자라는 것 외에는 그저 폭탄 소지 혐의뿐이니깐 말이지."
스캇이 말했다.
사실 폭탄 소지 혐의라는 것도 억지로 만들어낸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아브 무사드의 진짜 죄목은 알 카에다의 요르단 지부장이라는 것이다.
'역시 일단은 역사대로 흘러가는 건가?'
강혁의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였다.
'아브 무사드를 풀어 줬지만 아이들 몇 명은 여전히 풀려나지 않은 거야. 그렇지 않으면 진압 작전이 펼쳐질 리가 없지. 또 다른 요구를 했는데 그건 미국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었겠지.'
"풀려나기 전에 아브 무사드를 만날 수 있을까요?"
강혁이 스미스 지부장을 향해 말했다.
* * *
컨테이너 트럭은 몇 개의 도시를 지나가더니 어느 순간 숲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모두 얼굴에 검은 두건이 씌어져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평탄한 도로가 끝나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갔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지쳐서 잠이 든 아이들도 있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몇 시간이나 달리던 승합차들이 멈춰 섰다.
그때 대부분의 아이들이 잠이 들어 있었다.
"모두들 내려! 빨리 움직여! 여기는 보이 스카우트가 아니야!"
아랍 엑센트가 강하게 섞인 영어로 남자들이 소리쳤다.
아이들은 겁에 질린 채 테러리스트들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
아이들이 얼굴에 씌어진 두건을 벗은 것은 저택으로 생각되는 건물 안으로 들어온 후였다.
'여기가 어디지?'
승호는 두건을 벗은 후, 시야가 확보되자 주변을 살폈다.
26명의 학생들과 두 명의 교사가 눈을 뜬 곳은 거대한 저택의 홀이었다.
"너, 너, 너, 그리고 너, 여기로 모여!"
검은 마스크을 쓴 남자 중 하나가 소리쳤다.
아랍식 악센트가 전혀 섞이지 않은 미국 본토박이 발음이었다.
"당신 미국인이에요?"
해리 화이트가 불려 나가며 물었다.
"닥쳐! 난 미국인이 아니라 영광스런 알라신의 전사다!"
"배신자!"
해리 화이트가 소리쳤다.
그러자 복부를 향해 주먹이 날아들었다.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해리 화이트가 몸을 기역자로 꾸부리며 신음성을 흘렸다.
루시아나 선생님이 그만해! 라고 소리쳤다.
아이들은 짧은 비명을 질렀다.
몇몇 아이들은 해리의 이름을 불렀다.
"까불지 마! 꼬마. 여긴 네 투정을 받아 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지."
복부를 갈긴 남자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잠시 후, 해리와 미셸 뒤봐, 다나 무어, 그 외 몇 명의 아이들이 불려 나와 테러리스트 앞에 섰다.
모두 명사의 자녀들이었다.
"컨테이너 박스에는 너희들 부모님이 너희들 몸에 심겨둔 GPS 장치 신호를 막는 장치가 되어 있었지. 이 집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만에 하나 너희들이 이 집을 나가게 되는 일이 생기면 문제가 복잡해지지. 그러니 너희들은 여기서 검사를 받아야 해."
라켓 모양의 전자기기로 몸수색을 했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의 몸과 치아에서 초소용 GPS 추적기를 제거했다.
몸속에 주사한 추적기도 별도의 기계로 빨아들였다.
마지막 희망이 사라지는 동시에, 이 일을 벌인 자들이 상당한 전문가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강혁은 블록으로 가득한 서류 더미에서 본 것들을 통해 몇 가지 사실들을 추측하고 있었다. 첫 번째로 이 사건은 언론에 일절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테러 진압 작전에서 대원 여러 명이 죽고, 인질도 몇 명이 희생되었다.
그런 사실을 감안하면 테러 진압 작전이 도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면 언론이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비교적 이번 사건이 조기에 종결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F.B.I는 아이들이 납치된 장소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작전은 어쩌다가 인질까지 죽게 만들었지?'
강혁은 진압 작전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다.
'인질이 죽었는데도 왜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대부분이 명사의 자녀들이었다. 언론이 모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명사의 자녀들이 죽었다면 분명 언론에 알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 장학생들… 권력은 없고, 재능만 있는 유학생들이 희생된 것이라면? 보상비를 받고 입을 다물었을 수도. 작전의 실패 원인이 정부 측에 있었거나, 중요 인사의 자녀들이 다른 아이들의 희생에 연루되어 있다면, 더더욱 사건을 은폐하려 했을 것이다.'
강혁은 몇 가지 의문점을 품은 채 벽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거대한 모니터를 응시했다.
스미스 지부장과 스캇 요원 그리고 쿠퍼 포웰 요원과 함께 모니터를 통해 요르단 감옥에 있는 아브 무사드를 보고 있었다.
그는 양손이 결박된 상태에서 탁자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미국 측 요원이 앉아 있었다.
"이쪽 마이크로 말하면 우리 측 요원이 듣고 아브 무사드에게 말할 겁니다."
스미스 지부장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스미스 지부장님."
강혁은 거대한 모니터를 통해 아브 무사드를 바라보았다.
아브 무사드는 9.11 테러 이후, C.I.A의 추적을 받다가 결국 미국 측에서 날려 보낸 드론의 미사일 폭격으로 죽게 된다.
CNN 방송을 통해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강혁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만일 내가 이 사건을 조기에 해결해서 이 녀석이 끝까지 감옥에서 못 나오게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강혁은 자신이 미래를 크게 바꿔 놓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CNN 방송에서 내보낸 특집 뉴스에 의하면 9.11 테러 사건에서 아브 무사드가 한 역할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강혁의 마음이 갈등에 휩싸였다.
9.11 테러를 막거나 아니면 테러 날짜가 변경되거나 테러 자체의 방식이나 영역이 달라질 수 있었다.
9.11 테러 이후의 세상을 생각하면 막아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강혁이 알고 있는 미래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결국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지금은 승호와 아이들을 무사히 구하는 일에만 집중하자. 미래가 어떻게 될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
결정을 내린 강혁의 두 눈이 빛났다.
마이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뭐라고? 서크게하녹 주립 공원이라고?"
브룩스 켈리 F.B.I국장이 되물었다.
"그곳에 30명에서 40명 정도의 사람이 지낼 수 있을 만한 저택을 중심으로 찾아봐야합니다.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이 필요합니다."
에단 스미스 뉴욕 지부장이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이봐, 자네 진심이야?"
대체 어디서 단서를 얻은 것인지 스미스 국장의 확신 어린 목소리에 브룩스 켈리 국장은 당혹해 했다.
수사가 시작 된 지 몇 시간도 흐르지 않아서 납치범이 있는 위치를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자세한 상황은 지금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대대적인 지원을 받고나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나면 에단 스미스 지부장의 자리는 보장할 수 없었다.
"진심입니다."
스미스 지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휴우. 좋아. 부디 행운이 따르길 기도하지."
브룩스 켈리는 어지간히 분명한 단서를 잡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지원을 승낙했다.
전화를 끊은 스미스 지부장이 강혁과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만일 이게 아니면 난 모가지야."
에단 스미스 지부장이 입가를 동그랗게 말며 말했다.
"내 경력도 날아가겠죠."
스캇 요원이 말했다.
두 사람의 말에 쿠퍼 포웰이 말했다.
"전 아무것도 걸려 있지는 않지만 존 회장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군요."
모두의 시선이 강혁을 향했다.
"기다려 보세요. 틀림없이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강혁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혁은 조금 전 화상으로 만났던 아브 무샤드와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 * *
"이번 납치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나요?"
강혁을 통해 아랍어로 아브 뮤샤드에게 미국측 요원이 물었다.
아브 무샤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봐, 대답을 하라고!"
아브 무샤드의 옆에 서 있던 다른 미국측 요원이 윽박질렀다.
그때 강혁이 마이크를 대고 말했다.
"진정해요. 아브 무샤드는 이미 대답을 했어요. 그러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강혁의 말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되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존?"
스캇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딱딱한 어투로 말했다.
에단 스미스 지부장과 쿠퍼 포웰 요원은 한숨을 쉬었다.
'뭐야? 이 친구?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저 녀석 이미 대답했어. 녀석은 이번 납치 사건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어."
강혁이 말했다.
"뭐라고?"
강혁의 말에 모두가 어안이 없는 표정을 지으며 놀란 음성으로 되물었다.
"지금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긴 제가 가진 어떤 능력 때문에 부르신 거니 영문을 모르시겠지만 일단은 끝까지 지켜봐 주시죠."
스캇은 초조한 표정으로 강혁을 바라보았다.
쿠퍼 포웰은 긴장된 얼굴로 스미스 지부장을 쳐다보았다.
이제는 에단 스미스 지부장이 결단을 내릴 차례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에단 스미스가 말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은 끝까지 해 보지."
에단의 말에 강혁이 사의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스미스 지부장님."
다시 강혁이 마이크를 향해서 말했다.
"아이들을 납치한 테러리스트들은 자네 부하들인가?"
미국 측 요원이 아랍어로 아브 무샤드에게 질문할 때 강혁의 두 눈은 뚫어져라 아브 무샤드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미국측 요원의 질문에 아브 무샤드는 이번에도 아무런 말없이 묵비권을 행사했다.
'맞군! 9.11테러 때 항공기를 납치해서 쌍둥이 빌딩에 들이 박은 녀석들과 연결되어 있는 놈들이야.'
강혁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어려 있었다.
강혁은 CNN 특집을 통해 아브 무샤드가 드론 미사일 공격에 죽음을 당했을 때 보도되었던 내용들을 기억했다.
아브 무샤드가 요르단에서 키운 그의 부하들은 9.11 테러 사건 때 항공기 납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었다.
그런데 강혁은 대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아브 무샤드에게서 어떻게 답을 얻어 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