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67화
67화
#18장 영웅 탄생
"흐음, 처음 폭발로 모두 처리한 건가?"
"왜 그래?"
"아니야. 누군가 따라 왔다면 지금쯤 쾅 하고 폭발해야 하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말이야."
"그럼 잘 된 거잖아. 자 빨리 가자고."
"알았어."
영국식 엑센트를 쓰는 아브 무샤드의 동생이 해리 등을 총으로 위협하며 앞쪽으로 몰았다.
전직 레인저 대원이 맨 뒤에서 혹시 모를 추격자를 경계하며 이동했다.
잠시 후 이들은 차량을 숨겨 놓은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저택으로부터 수 킬로미터 벗어난 곳이었다.
저택 주변에 펼쳐져 있는 미군의 포위망을 벗어난 곳에 차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너희들 빨리 차에 올라타!"
사내의 말에 최승호와 해리 등은 도피를 위해 준비된 SUV 차량에 올라탔다.
아이들이 차량에 오르자 아브 무샤드의 동생이 말했다.
"인질이 네 명이나 필요하지는 않아. 여기서 우리 일을 훼방한 놈을 처리하고 가자고."
아브 무샤드의 말에 전직 레인저 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이왕이면 인질들 앞에서 죽이라고. 그래야 우리말을 고분고분 들을 테니 말이야."
"흐흐흐, 좋은 생각이야. 역시 자넨 다른 미군들과는 다르군."
아브 무샤드의 동생이 말했다.
"내 비즈니스를 망쳐 놓은 놈이라 사실은 내가 직접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군. 자네가 처리해. 난 새로운 트랩을 설치할 테니까. 우리를 추적할 시간을 최대한 늦추고 싶거든."
"오케이."
아브 무샤드의 동생이 말했다.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먼저 SUV 차량에 올라탄 승호와 해리, 아멜리아, 다나 네 사람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친구들과 떨어져서 자신들만 이곳에 있게 된 것에 대해 겁을 집어먹었다.
"너무 걱정 마. 틀림없이 우릴 구하러 올 거야."
승호가 말했다.
하루 만에 구출대가 온 것은 강혁이 페이스북에 해킹 프로그램을 깔아 놓았기 때문이다.
강혁이라면 반드시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초이, 넌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니?"
다나가 말했다.
아멜리아도 이에 동조했다.
"맞아, 난 겁이 나 죽겠는데……."
"그래, 넌 정말 대단해. 구출대가 온 것도 너의 해킹 프로그램 때문이라며?"
해리 화이트가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로 승호를 바라보았다.
"아, 사실은 그게……."
문이 덜컹 열리며 운전석에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남자가 올라탔다.
아브 무샤드의 동생이면서 이번 작전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요르단 무자헤딘을 조직한 장본인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이번 작전이 망쳐진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게다가 조직원들 중 상당수를 잃게 된 것이 그의 가슴을 타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들은 부하이기 이전에 그의 가족이며 동지였다.
"꼬마, 기분이 좋은 모양이군. 네 녀석 장난질에 군대가 왔으니 말이야. 그런데 그거 알아? 다른 녀석들은 살아서 돌아가도 넌 어려울 거다."
영국식 영어 악센트로 말하는 사내가 최승호를 향해 거친 말투로 겁박했다.
모두들 그의 위협적인 말에 겁에 질렸다.
최승호 역시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민예린의 얼굴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버지, 엄마, 예린아. 내가 여기서 죽는 걸까?'
승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을 때였다.
"왜냐고? 지금 죽을 거니깐."
사내가 총구를 승호의 머리에 겨누었다.
모두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흘러나왔다.
여자들을 눈을 찔끔 감았다.
퍼―억!
소리와 함께 사내의 머리에 총알이 날아와 박혔다.
소리가 들린 것과 동시에 피가 터져 나오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모두가 놀라며 짧은 비명을 지르며 얼어붙었다.
"저격수야. 고개 숙여."
해리 화이트가 말했다.
모두 겁에 질려 고개를 숙이는 가운데 최승호가 하얗게 얼굴이 질린 가운데서도 운전석을 바라보고 말했다.
"키가 꼽혀 있어."
네 사람의 시선이 서로 얽혔다.
"어쩌지? 지금 운전하면 위험하지 않을까?"
아멜리아가 말했다.
"총을 쏜 사람은 우리 편일거야. 우릴 향해 총을 쏘지는 않을걸."
최승호가 말했다.
"문제는 난 운전을 못해."
"내가 할게."
해리가 말했다.
사실 세 사람 모두 운전면허가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이럴 때 여자에게 운전대를 맡길 사람이 아니었다.
시체를 옆으로 치우고 해리가 운전대에 올라탔다.
그때 운전석 문을 쾅쾅거리며 누군가가 외쳤다.
"당장 문을 열어!"
"해리!"
승호가 소리쳤다.
해리가 엑셀을 밟자 차가 앞으로 튀어나갔다.
탕! 탕!
총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다들 머리 숙여!"
차가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사이 어둠 속에서 한 알의 총알이 전직 레인저를 향해 날아들었다.
타―앙!
소리와 함께 전직 레인저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칼에 베인 듯한 뜨거운 충격과 이어지는 고통에 사내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강혁은 야간투시경으로 사내가 있던 장소를 살폈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
상대가 특수전의 달인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 짧은 순간에 몸을 감추었어. 고수다.'
판단이 내리자 행동은 더욱 빨랐다.
강혁은 주변을 살폈다.
마침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아직 컴컴한 어둠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강혁은 바위를 옮기고 자신의 방탄복과 야전상의를 벗어 덮은 후, 그 위에 작은 바위를 놓고 헬멧으로 덮었다.
그리고 아브 무샤드를 저격했던 총기 M4카빈을 어딘가를 겨누는 모양으로 보이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야전상의와 헬멧, 총기 위를 수풀로 덮은 후 다른 장소로 옮겼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런 싸움은 인내력의 싸움이었다.
먼저 움직여서 위치를 들키면 게임오버였다.
하지만 시간이 상당히 흘렀는데도 나타나지 않자 각종 잡념이 강혁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과연 날 찾으러 올까?
어쩌면 이미 멀리 도망쳤는데 내가 뻘짓을 하고 있는 거라면?'
강혁의 총을 피한 후, 이곳을 이탈했을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았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강혁의 행동은 말 그대로 뻘짓에 불과했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강혁은 당장이라도 일어나 다시 장비를 갖춘 후, 놈을 쫓고 싶었다.
게다가 점점 몸의 체온이 내려가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실수 한 거야. 놈이 날 찾아 올 리가 있나? 도망쳤지. 바보 같군.'
강혁은 순간 몸을 일으킬 뻔 했다.
'아니야, 놈은 그런 은밀한 트랩을 사용하는 자야. 자부심이 남다르겠지. 그런데 내가 놈의 트랩을 눈치 채고 은밀히 따라와 동료를 죽였어.'
그런 자들은 프라이드에 죽고 프라이드에 사는 자들이라고 확신했다.
'자신의 명성을 때로는 목숨보다, 돈보다도 중요하게 여기지.'
강혁은 겨우 몸을 일으키고 싶은 유혹을 참았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덫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권총으로 겨루었다.
차가운 촉감이 강혁의 목 뒤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총을 내려놓고 양손을 올려."
나직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강혁은 조심스럽게 권총을 내려놓고 양손을 올렸다.
"영리한 놈이군. 저런 덫을 놓고 기다리다니."
사내가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강혁이 허탈한 음성으로 물었다.
"내 트랩을 피했잖아? 난 트랩을 놓을 때 상대의 등급을 매겨서 트랩을 만들어. 네가 피한 트랩은 일종의 상급자용이지. 자신을 전문가라 여기는 놈들 대부분이 저기에 걸려 넘어지지. 하지만 만일 피하는 녀석들이 있으면 달인이라는 뜻이고, 그런 녀석이라면 이런 트릭 정도는 쓸 줄 알았지. 그건 그렇고 고개를 돌려 봐."
강혁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런 얼굴이군."
사내가 짧은 감탄성을 흘렸다.
언젠가부터 강혁은 남자가 보아도 멋지다고 할 만한 분위기가 어려 있었다.
단순히 잘 생겼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남자든 여자든 강혁을 본 사람은 우수에 어린 강인한 눈빛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을 발하는 강혁의 눈빛은 사내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인상을 주었다.
"흐흥, 주변 여자들이 평소 자네에게 환장을 하겠군."
"……?"
강혁의 사내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물었다.
"당신 대단하더군.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하지?"
"흐흣, 그런 질문은 하도 들어서 이제는 신물이 나. 대답은 지옥에서 해 주지. 먼저 가 있으라고."
사내가 권총을 들어 강혁의 뒤통수를 겨누었다.
그리고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타―앙!
어둠을 울리는 총성과 함께 강혁의 뒤통수를 겨누었던 사내가 쓰러졌다.
옆구리를 움켜지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강혁이 말했다.
"늦었어요. 선배님."
"회장님, 무사하십니까?"
이규철이 숲에서 걸어 나왔다.
아이들은 모두 무사히 구출되었다.
네이비 실 팀의 희생이 컸지만 인질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다행히 목숨은 건진 에릭 대위가 정신을 차린 후, 네이비 실 팀을 대신해서 강혁에게 감사를 표했다.
"존 회장님. 우리 국민의 목숨을 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안 할 수 없군요. 특히 해리 부통령의 아들이나, 아멜리아 양이 희생되었다면 우리 미국 국민들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겼을 겁니다. 우리 팀의 실수를 만회해 주셨어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걸요."
강혁이 에릭 대위의 말에 손사례를 쳤다.
하지만 네이비 실 팀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모두 에릭 대위의 선창에 따라 강혁을 향해 거수경례를 붙였다.
강혁도 그들의 경례에 맞경례를 하며 서로에 대한 경의를 표시했다.
에릭 대위가 손을 내리자 강혁도 손을 내린 후, 악수를 나누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의 등을 맡겼던 사이라 전우애가 피어났다.
"참, 동료 분이 잡은 녀석은 75레인저 연대의 특수전 부대 출신으로 잠입, 탈출, 폭탄물 설치의 전문가라고 합니다. 그 쪽으로는 전 세계에서도 탑 급이라고 불리는 녀석이었어요. 이름은 네이슨 블랙. 수년 전 불명예제대를 한 후, 어둠 속에서 해결사 노릇을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이런 일까지 할 줄이야."
"불명예제대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 녀석 게이더군요."
"게이요?"
"예,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정부에서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동료에게 밝히면 군복무를 할 수가 없죠. 그래서 블랙은 군을 나옵니다. 제대 후에 불법으로 야매 의사한테 성전환 수술을 받은 모양인데, 그때 수술이 잘못되었답니다. 그 후 몇 번 더 수술을 받았는데 의사가 더 이상 수술을 하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해서 결국은 중단했다고 하는군요."
클린턴 정부 시절 93년부터 시행되었던 이 정책은 일명 Don't ask, don't tell 정책이라고 불린다.
동성애자가 자신의 성적 취향을 지휘관이나 동료들에게 공개적으로 밝히거나, 반대로 특정인에게 성적 취향을 묻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다.
이를 어길 시에는 강제로 전역시키는 정책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폐지했다.
"그랬군요."
강혁은 왜 네이슨 블랙이 마지막까지 레인저 대원이었던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지 대답을 해 주지 않았던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름 고통이 있는 사람이었군.'
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최승호를 만나러 갔다.
"뭐라고? 내 동생이 죽었다고?"
자신을 심문하던 미국인 요원의 말에 아브 무샤드는 고통에 찬 눈물을 흘렸다.
"알라께 맹세코, 내 동생의 죽음과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아브 무샤드는 알라께 죽음의 맹세를 했다.
자신의 목숨이 다하지 않는 한 반드시 동생의 복수를 할 것이라고…….
알 카에다 최고의 과격분자가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맹세코 동생을 죽인 자의 목숨을 끊어 버리겠다고 죽음의 서약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