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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69화 (69/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69화

69화

"왕웨이, 여기 있었네?"

앤드류 레인이 왕웨이에게 다가왔다.

"하이, 앤드류."

왕웨이가 앤드류에게 손을 들고 인사를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의 표정이 모두 좋지 않다.

두 사람 모두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최승호가 트리니티 스쿨의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모여든 아이들은 다양한 학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유치원에 해당되는 학생부터 최고 학년인 12학년까지 나이, 인종,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다양하게 모여서 최승호와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해 달라고 했다.

앤드류와 왕웨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트리니티 스쿨에서의 마지막 학기 여행을 다녀오니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애초에 자신들의 발톱의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던 촌구석 동양인이 학교의 영웅이 되어 있는 것이다.

원래 학기 여행이 끝나면 최승호를 괴롭히려고 했던 두 사람이다.

특히나 앤드류 레인은 최승호를 먹잇감으로 점찍어 놓고 있었다.

지루한 학교생활을 즐겁게 해 줄 괴롭힘의 대상으로 여긴 것이다.

행동 대장으로 같은 동양인인 아키라와 왕웨이를 내세울 생각이었다.

이미 모든 계획이 다 짜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라니?

만일 자신들이 최승호를 건들면 학교만이 아니라 미국 전체가 들고 일어날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처럼 열광적일 시기에는 피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어쩌냐? 저 꼴을 이대로 지켜만 봐야 하냐?"

앤드류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어쩌겠어? 학교의 영웅이라는데, 요즘은 어딜 가나 초이 이야기야. 아주 귀에 박힐 지경이라니깐?"

왕웨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녀석이 학교의 영웅이라니, 세상에 어쩌다가?"

앤드류는 이해를 못 하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 죽이 맞아 최승호를 씹어대었다.

"레이, 앤드류."

두 사람을 향해 아키라가 걸어왔다.

"어이, 아키라. 너 뭐하냐? 너도 빨리 뛰어가서 사인 받아 와야지?"

"집어치워. 레이. 안 그래도 열 받아 죽겠는데."

아키라의 말에 앤드류와 왕웨이가 의아해했다.

며칠 전만 해도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줬다니 어쩌니 하면서 최승호를 괴롭히는 일에 자신은 손을 떼겠다고 했던 것이다.

"뭐야? 전에 말한 거완 다른데? 물론 이쪽이 더 좋지만 말이야."

한동안 아키라와 멀어져 있던 두 사람은 아키라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자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흥, 초이 녀석. 이젠 지겨워. 영웅이라며 치켜세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아키라의 얼굴이 잔득 일그러졌다.

"오우, 그렇지! 이래야 우리 아키라지. 반갑다 친구."

앤드류가 희희낙락거리며 말했다.

아키라 역시 앤드류와 왕웨이에게 주먹과 어깨를 부딪치며 동지애를 표현했다.

"그래서, 우리 탕아께서는 어떻게 돌아 온 거야? 말해 봐."

아키라가 아주 짜증이 난다는 듯이 말했다.

"페이스북. 요즘 잘나가는 거 알지? 언론에서 몇 번 띄어 줬다고 매일 몇 만 명씩 가입자가 늘고 있잖아."

"그래, 들었어."

왕웨이가 질투어린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가 넌 대체 뭐하는 놈이냐고 하더라. 한때 우리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온 시골뜨기가 미국의 영웅이 되고, 자기 회사를 세울 때 넌 내 돈으로 먹고 마시고 놀기만 했지 대체 뭘 했냐 면서……."

"그 것 뿐이야?"

"그리고 에밀리가 저 녀석한테 홀딱 넘어간 것 같아."

일그러져 있던 아키라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뭐? 너 에밀리 좋아했잖아."

"끄응~"

아키라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에밀리는 원래 잘나가기는 했지만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아멜리아나 다나같은 최상류층 아이는 아니었다.

다만 워낙 학교에서 인기가 많고, 옛날부터 세 사람은 한 사람처럼 뭉치고 다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 사람과 같은 급으로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키라는 에밀리의 경우 자신과 엮일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에밀리가 자신이 얕보고 있던 초이에게 반했다.

"하하, 친구. 열받을 만 했네. 사실은 나도 우리 대장한테 똑같은 소릴 들었거든."

왕웨이가 말했다.

"너도 들었다고?"

아키라가 물었다.

"그래, 가족들이 다 같이 주말 저녁에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을 때였어. 하필 대학에 가 있던 형이 와 있을 때였지."

왕웨이의 형은 콜럼비아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모범생으로 학교에서 공부보다는 문제를 일으키는 왕웨이와는 전혀 달라 부모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왕웨이는 어릴 때부터 잘난 형과 비교를 당하며 살아왔다.

그로 인해 형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자기보다 재력이 부족하거나 만만한 상대를 만나면 아키라나 앤드류 등과 함께 괴롭혀 주는 것으로 열등감을 해소했던 것이다.

"이번 주말이면 초이가 쇼에 나온 날 아니야?"

앤드류가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왕웨이는 그의 질문에 얼굴을 굳으며 대답했다.

"저 녀석이 나와서는 마치 자기 때문에 친구들을 구한 것처럼 엄청난 뻥을 치더군. 어차피 가만히 있었어도 군대가 와서 구해 줬을 건데 말이야. 안 그래? 그 애들은 미국 부통령 아들이고, 세계적인 여배우인 아멜리아도 있었잖아? 그뿐이야? 다나 무어는? 그 애 아버지는 억만장자잖아? 그녀석이 아무 짓 안했어도 결국 구출 되었을 거라고! 게다가 그 후에는 페이스북인지 뭔지 거지같은 걸 가지고 나와서 홍보하는데 내 창자가 꼬이는 것 같았지. 내가 초이가 한 말은 다 거짓말이고 페이스북 같은 건 금방 망해서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거라고 했더니 망할……."

왕웨이가 지금도 분통이 터지는지 씩씩거렸다.

"하필 형이 있는데서 넌 내 돈으로 흥청망청 쓰기만 하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냐며 머리를 때리더라."

"야, 우리 페이스북인지 뭔지 망쳐버릴까?"

앤드류가 말했다.

"응?"

왕웨이와 아키라가 동시에 앤드류를 보았다.

"어떻게?"

아키라가 물었다.

"뭐, 나도 모르지. 하지만 생각해 보면 방법이 없을까?"

앤드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얼핏 보면 학생회장인 해리 화이트처럼 전형적인 모범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질이 나쁜 앤드류 레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앤드류 레인의 진면목을 잘 몰랐다.

왜냐하면 지금처럼 자신은 바람만 넣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을 뒤에서 휘파람 불며 지켜보기 때문이다.

"그 녀석 요즘 노트북을 가지고 다녀. 학교에서 작업을 하더라고."

아키라가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맞아. 나도 본 적이 있어. 지금도 가지고 왔을 걸?"

왕웨이가 말했다.

"흠, 그건 나도 들어본 기억이 있어.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해야 할 일이 많이 늘었다고 그때 뭐라고 하더라. 소…소스……."

앤드류가 뭔가 생각이 나는 듯하면서도 생각이 나지 않는 듯이 말했다.

"소스 프로그램."

아키라가 앤드류가 하려고 하는 말을 눈치 채고 말했다.

"맞아, 페이스북의 소스 프로그램을 노트북에 넣고 다녀서 학교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고 했어."

앤드류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혹시?"

왕웨이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 노트북만 있으면 페이스북 프로그램을 복제 할 수 있다는 거지."

아키라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왕웨이와 앤드류는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넌지시 입가를 올리며 서로를 바라보는 세 사람의 눈에서 뭔가가 화학 작용을 일으켰다.

"흐흐, 학교에서는 위험해. 우리가 한 짓이라는 걸 들켜서는 안 돼."

앤드류가 말했다.

역시나 위험을 회피하고 소정의 목적을 이루는 데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이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자신들이 한 짓이라는 걸 들키지 않고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그건 걱정 마.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부하들이 있는데 이런 일에 써 먹기에는 좋아."

왕웨이가 말했다.

말을 하는 왕웨이의 작은 눈이 번뜻거렸다.

앤드류는 그런 왕웨이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뚱땡이. 잘 해봐. 이 노란 뚱땡이 원숭이는 역시나 내 말을 잘 듣는다는 말이야. 그리고 우리 돌아온 탕아 노랭이는 어떻게 쓸모있게 움직이려나?'

앤드류가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왕웨이 나도 할게. 끼워 줘."

"네가 끼어들면 눈치채지 않을까?"

"요즘 저 녀석과 사이가 좋아.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야."

실제로 납치 사건이 해결된 후, 아키라는 최승호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고, 그동안 자신이 못 되게 행동했던 일이 대해서 사과했다.

승호는 그런 아키라의 모습에 깜짝 놀랐고 아키라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지금 두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이좋은 친구였다.

만일 승호를 속이려면 아키라가 그 일에 가장 제격이었다.

"흐흐, 좋아. 금상첨화네. 널 의심은 하겠지만 확신은 하지 못하겠지. 크크. 만약 사실을 알게 되면 화병이 나서 죽을지도 몰라. 네가 어떻게? 라면서 말이지."

"에 투 부르테?(Et tu, Brute?)"

앤드류가 갑자기 라틴어로 소리쳤다.

그 뜻은 "부르투스 너 마저?" 란 뜻으로 세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명대사다.

로마의 황제였던 줄리어스 시저가 친구이며 동지였던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를 보고 외쳤다는 유명한 대사로, 일반적으로 믿었던 상대에게 배신을 당할 때 사용되는 인용문이다.

앤드류는 유명한 시저의 명대사를 내뱉으며 두 사람을 독려했다.

"좋은 생각이야. 아키라. 딱 좋은데? 이거야말로 진정한 배반이자. 진정한 복수지. 감히 네 여자를 뺏었잖아. 에밀리 말이야. 네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뒤늦게 온 녀석이 뺏어 가면 되겠어? 엉?"

앤드류의 부추김에 아키라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키라!"

최승호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아키라와 포옹을 했다.

두 사람은 그 사건 이후 그야말로 절친처럼 지냈다.

잠시 후, 에밀리가 쪼르르 다가왔다.

언제 봐도 에너지가 넘치는 비타민 같은 여자다.

"하이, 초이. 왔어? 내가 우리 차 태워 준다고 했잖아. 혹시 또 걸어온 거야?"

"아아, 그게. 음, 미안해."

최승호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머리를 끄덕였다.

평생을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왔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여자는 생애 처음이라 최승호로서는 좋으면서도 조금 난감했다.

학교에서 지금 소문이 자자했다.

학교의 치어리더 단장이며 뉴욕시 최고의 치어리더라 불리는 에밀리 윌슨이 동양인 남자에게 빠졌다고.

그런데 그 동양인이 초이라는 말에 모두들 이해가 간다는 반응이었다.

학교의 삼 대 여신 중 한 사람이 열렬한 감정 표현과 함께 대쉬하는데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지금의 최승호는 핫한 남자였다.

에밀리에 말에 아키라는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는 조용히 질투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키라가 에밀리 윌슨을 그저 속으로 좋아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몇 번인가 꽃다발을 보내기도 하고, 연서 같은 것을 적어서 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었다.

그런데 자신이 거절당한 여신이 자신이 철저하게 무시했던 식민지 조선에서 온 유학생에게 열렬히 구애를 하고 있다.

속이 불에 타는 것 같았다.

아키라는 질투라는 이름의 지옥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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