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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70화 (70/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70화

70화

#19장 열풍

에밀리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항상 그러했다.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사람인 것이다.

그녀는 이번 사건을 통해서 최승호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키는 173정도에 외모는 그럭저럭 봐 줄만하고, 패션 센스는 꽝이다.

그런데 그게 또 반전 매력이란다.

전혀 매력 없어 보이는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온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뛰어난 머리.

지금 에밀리의 눈에는 결점마저도 장점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눈에 콩깍지가 낀 거다.

게다가 언론에서는 아메리칸 히어로라고 연일 띄워 주고 있었다.

또한 최승호가 창업한 페이스북은 얼마 전에 삼십만 명의 회원을 얻었다.

여기서 그칠 기세도 아니었다.

평소 에밀리가 갈망하던 진정한 셀럽의 삶이 바로 눈앞에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면 그게 바로 최승호였다.

어찌 보면 에밀리가 그토록 바라던 완벽한 이상형이 등장한 셈이다.

게다가 아직 한 번도 여자 친구를 사겨본 적이 없다고 한다.

에밀리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누군가가 눈앞에 먹기 좋은 진수성찬을 차려 놓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런 에밀리의 기세에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속앓이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최승호의 침착함과 용기, 결단력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던 두 사람.

바로 아멜리아와 다나였다.

사실 두 사람 모두 최승호의 남자다움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마음을 제대로 깨닫기도 전에 자신들의 절친인 에밀리가 아주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뒤늦게 호감을 품고 있던 두 사람은 나서기가 애매하게 되어 두 사람의 사이를 관망하고 있는 중이었다.

"초이, 우리 아빠가 네게 선물을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

다나 무어가 최승호에게 말을 건네었다.

에밀리와 다나, 그리고 아멜리아는 항상 같이 다녔는데, 에밀리가 최승호에게 다가가자 두 사람도 한 세트처럼 같이 따라온 것이다.

"선물이라니?"

최승호가 깜작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가지고 선물이라니. 마음은 고맙지만 사양할게."

"그게 사실은 그 녀석들이 우리 아빠에게도 접근을 했던 것 같아."

다나 무어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너희 아버지에게?"

다나 무어의 아버지는 아메리칸 헬스 케어 그룹의 회장 케네시 무어다.

제약 관련 사업을 하면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는 전미 20위권 안에 들어가는 거대 재벌의 주인이다.

"아빠한테 내 목숨 값으로 300만 달러를 요구했더라. 내 얼굴을 살아서 보고 싶으면, 그 돈과 탈출용 비행기를 준비해 두라고 했다는 거야."

"그렇다면 그때 우릴 데리고 가려고 했던 곳이……."

"그래, 우리 아버지가 준비해 둔 비행기와 돈이 있는 곳이었어."

"세상에 그래서 널 데리고 갔던 거구나. 이제 알았어."

승호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아무튼 네 덕분에 우리 모두 무사히 돌아왔고. 돈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서 네게 차를 하나 사 주시겠다는데. 어때?"

승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고맙지만 사양한다고 말씀드려."

"왜? 받지 그래? 차가 있으면 좋잖아. 지금처럼 걸어서 다니지 않아도 되고."

에밀리가 승호의 대답에 놀라며 물었다.

"으응, 그게."

사실 승호는 이미 차가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매일같이 스티브가 학교 근처까지 차로 데려다 주니 말이다.

승호는 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강혁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에 부담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해리 화이트를 비롯해서 극소수의 아이들은 강혁의 존재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이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처럼 자신을 아껴 주는 아이들에게까지 모든 것을 비밀로 한다는 것이 미안해졌다.

강혁이 숨겨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은 나 차가 있어."

"뭐?"

승호의 말에 모두들 놀랐다.

아키라 역시 그 중 하나였다.

"내게 후원자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있을 거야."

승호의 말에 아멜리아와 다나 무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나만 몰랐던 거야?"

에밀리가 황당하다는 듯이 아멜리아와 다나를 바라보았다.

"승호가 말하지 않기에 우리도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야. 혹시 원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

아멜리아와 다나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어휴, 알았어. 그렇게 미안한 표정 짓지 마."

에밀리가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 다른 비밀은 없어야 해 알겠지?"

에밀리가 두 사람에게 달려가 어깨동무를 하며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 빙긋이 웃으며 에밀리에게 말했다.

"물론이지. 에밀리."

"사실은……"

승호는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동안 후원자의 차를 타고 학교에서 십 분 정도 걸리는 스타벅스 앞에서 내린 후 걸어왔다는 걸.

"아니, 대체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한 거야?"

아키라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다른 사람의 표정 역시 비슷했다.

모두들 최승호에게 묻는 듯 했다.

"오해 받고 싶지 않아서 말이야. 후원자 형이 엄청난 부자라서 좋은 차를 가지고 있는데 그 차에서 내리면 아이들이 혹여 날 갑부 집 아들로 오해할까 봐. 난 그런 거 싫거든. 특히나 그런 오해는 말이야."

"앞으로는 학교에서 내려. 오해 같은 거 할 사람 없으니까. 사람들은 네가 부자라서 널 좋아하는 게 아니야."

"그럴까?"

최승호가 말했다.

"어이, 모두들 여기 모여 있었네?"

제임스 밀러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 뒤로 해리 화이트와 미셀 뒤봐가 모였다.

학교의 최고 셀럽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들어봐! 초이가 차가 있대."

"응? 그게 사실이야?"

제임스 밀러가 말했다.

"호오, 그랬군."

해리가 손을 턱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해리, 아쉽게 됐는데?"

미셀이 해리의 팔을 치며 말했다.

"……?"

최승호가 그런 두 사람을 의아한 듯이 바라보았다.

"사실은 해리가 네가 차가 없이 그냥 걸어 다닌다는 말을 듣고 매일 아침 차를 태워 줄 생각이었거든. 물론 하교 때도 말이야."

해리는 비밀 경호국에서 나온 경호원이 운전하는 방탄차로 학교를 다녔다.

일전의 일도 있어서 경호가 더욱 강화된 상태다.

학교가 유일하게 해리가 다른 곳보다 경호원의 보호에서 좀 더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해리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초이, 차가 있는데 왜 그동안 걸어 다녔어?"

해리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최승호는 다시 한 번 설명을 해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최승호를 중심으로 학교의 학생들이 계급을 따라 나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승호와 같은 여러 평범한 유학생들이나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부터 학교의 중간층을 형성하는 갑부들과 명사의 아이들, 그리고 로열패밀리들이 이전과 달리 잘 어울리고 있었다.

아키라는 그런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이런 날이 다 있네? 저 콧대 높은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평민들과 어울리고 있어.'

아키라는 자신도 모르게 최승호가 굉장한 일을 해 냈다고 생각했다.

'빠가야로, 아키라. 못난 녀석. 벌써 아버지의 말씀을 잊었어? 초이는 네 적이야. 네 여자를 뺏기고도 이런 생각이라니.'

아키라는 고개를 휘저었다.

아메리카 닛산의 사장인 아키라의 아버지 카나타 코우는 처음에는 최승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에 대해 고마워했다.

하지만 최승호가 미국 전역에서 유명세를 타게 되자 태도가 달라졌다.

코우 가문은 일본이 조선의 국권을 강제로 침탈하고 한양에 총독부를 세웠을 때 조부가 총독부의 일원으로 조선의 식민지배 계획과 실행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사람이었다.

이후로도 공을 많이 세워 일본 제국이 패망하고 일본 본토로 야반도주하기 전까지 한국에서 승승장구했던 사람인 것이다.

그가 총독부에 있을 때 많은 한국의 문화재를 일본으로 가져가기도 했다.

그런 가문의 역사가 있기에 한국에서 온 최승호가 유명해지고 학생 신분으로 개인 사업까지 한다고 하자 질투심이 폭발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키라에게 많은 질책이 떨어졌었다.

"아키라, 네 녀석은 어디가 어떻게 잘못 됐기에 우리 대일본 제국의 일개 식민지에 지나지 않았던 조선에서 온 촌뜨기 녀석보다 못 하는 거냐? 저 녀석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런 엄청난 일을 해냈어! 내 아들이지만 정말이지 너는 못났구나! 미국에서 몇 년이나 있었냐? 그런데 너는 그저 내 돈을 축내기만 하고 뭐 하나 잘난 구석을 못 보여 주는구나. 에이, 못난 녀석!"

아키라는 아버지의 질책을 떠올리자 분노가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     *     *

"뭐? 차이나타운에 가는데 데려다 달라고?"

"그래, 오늘 꼭 거기에 가야 하는 사정이 생겼는데 마침 우리 아빠가 바쁘셔서 못 데려다 주신데. 넌 기사 아저씨가 운전해 주신다며?"

"흐응, 하긴 잠깐 들렀다가 가는 거야 뭐, 알았어. 아키라. 데려다 줄게."

"너희들 차이나타운에 간다고?"

마침 같은 수업을 듣고 있던 에밀리가 물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샌디 블러드 머리카락이 교실 천정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금발과 함께 모래처럼 여러 가지 다른 색깔이 섞여 뭐라 표현하기 힘든 매력을 발산했다.

그런 에밀리를 지켜보던 아키라는 더더욱 최승호가 못마땅한 생각이 들어 남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으… 으응, 아키라가 볼 일이 있다고 해서."

최승호도 눈부신 에밀리의 매력에 약간 말을 더듬거린다.

똑바로 마주보기 힘들 정도로 에너지와 매력이 넘쳤다.

"그럼, 나도 데려다 줘. 초이. 오랜만에 차이나타운에서 놀다가 갈래."

에밀리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멜리아, 너도 가자."

"나… 나도?"

"그래, 오랜만에 맛있는 요리도 먹고, 쇼핑도 하자고."

"흠, 그럼 결정됐어. 초이 너도 우리랑 다니는 거다. 알겠지?"

"뭐? 나… 난 집에서 작업을……."

최승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아키라가 말했다.

"초, 초이, 같이 가는 거 어때? 너도 명색이 뉴요커라면 차이나타운에 한 번은 가야 하지 않겠어?"

"그런가?"

최승호의 머릿속으로 학교에서 처음 사귄 한국인 친구 킴이 한 말이 떠올랐다.

'아키라는 에밀리를 좋아하고 있어.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거절당했어. 유명한 이야기지.'

이전과 달리 자신에게 잘해 주고 있는 아키라가 같이 가자고 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에밀리 때문인 것 같았다.

최승호는 처음 에밀리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에 맹렬한 대쉬에 대해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점점 부담스러워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마음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에밀리 미안.'

"그래, 나도 갈게."

최승호가 승낙하자 에밀리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데 그때 최승호를 바라보는 아멜리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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