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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72화 (72/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72화

72화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처음인 사람을 위해서 말하자면 여기 가장 기름진 목덜미부터 먹으면 돼. 여긴 설탕에 찍어서 먹고, 껍질과 살을 함께 잘라낸 부위는 소스에 찍어 먹어. 마지막으로 전병에 파하고, 마늘, 오리, 오이 등을 넣고, 소스를 넣어서 싸서 먹으면 돼."

아멜리아의 설명이 끝나자 모두들 입가에 침이 감돌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기다란 나무젓가락을 사용해서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목덜미에 있는 두툼하고 기름진 껍질을 찢어서 설탕에 찍어 입에 가져갔다.

모두들 잠시 말이 없었다.

"이건… 대체?"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에밀리였다.

"아빠가 좋아하셔서 우리 가족은 몇 번이나 북경 오리 요리를 먹었어. 그런데 이건 맛이 완전히 다른데? 그동안 내가 먹었던 북경 오리 요리는 대체 뭐였지?"

"충, 충격적이야.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북경 오리 요리는 분명히 껍질이 바삭했는데, 이건 촉촉해. 그런데 더 맛있어."

아키라가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난 뉴욕만이 아니라, 홍콩에서도 몇 번 북경 오리를 먹었다고. 이런 맛이 아니었어."

"으음, 이건 거기네."

다나 무어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구이궁푸 (계공부―桂公府)"

"아, 역시 다나야. 넌 속일 수가 없네?"

아멜리아가 살짝 혀를 내밀었다.

모두들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다나 무어를 바라보았다.

"작년에 아빠를 따라서 북경에 간 적이 있어. 거기서 서태후의 오빠였던 사람이 지냈던 집, 그러니까 왕부에 갔는데 말이야. 특이하게도 문화재로 지정된 곳인데 요리점이 있더라고 거기서 먹은 북경 요리 맛이야."

"다나 말이 맞아. 여기 오리는 정확히 북경식 북경 오리 구이를 하는 곳이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다른 곳은 북경식이 아니라는 말이야? 그게 말이 돼? 요리 이름도 북경 오리 구이잖아?"

"그게 감독님에게 들은 말로는 맨허튼 차이나타운은 주로 중국의 광둥성 사람들이 이주해 사는 곳인데, 북경과는 라이벌 의식이 있어서 원래의 방식과 달리 바삭한 맛으로 변형된 요리법으로 북경 오리 구이를 했다는 거야. 홍콩도 마찬가지이고, 광둥성 사람들이 요리한 북경 오리 요리는 껍질을 바싹하게 만들었다는 거지. 하지만 원래 북경 오리 구이의 맛은 지금처럼 촉촉한 맛이야."

"그럼, 이것이 진짜 오리지널 북경 오리 구이 맛이란 거야?"

에밀리가 물었다.

"맞아, 에밀리."

다나가 젓가락으로 껍질과 살을 함께 잘라낸 부위를 과일 소스에 찍어 먹으며 말했다.

"으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환상적인 맛이야."

최승호가 세 번째로 목덜미의 껍질을 설탕에 찍어 먹으며 말했다.

최승호를 끝으로 모두 젓가락질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이 싸움에서의 승자는 최승호였다.

일본보다 미국에서 더 오래 자란 아키라를 비롯하여 모든 아이들이 평생 젓가락질을 해 온 최승호를 당할 수는 없었다.

능수능란하면서도 화려한 승호의 젓가락질 앞에서 모두는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요리를 먹고 나오자 마침 중국인들이 거리에서 화려한 탈을 쓰고 사자놀이를 하고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과 뉴요커들은 거리에 서서 그들의 공연을 감상했다.

최승호 역시 인파에 묻혀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앗! 뭐하는 짓이야?"

인파 속에서 누군가가 승호의 어깨에서 가방을 낚아챘다.

깜짝 놀란 승호가 가방을 훔쳐간 사내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 지나가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승호가 당황하며 뛰어가자 같이 있던 아이들도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야?"

승호가 어딘가로 뛰어가자 아키라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누가 초이 가방을 훔쳐 갔나봐."

에밀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뭐?"

에밀리의 말에 모두들 놀라며 승호가 뛰어간 곳으로 따라갔다.

잠시 후, 모두는 헉헉거리며 망연자실해 있는 승호를 만날 수 있었다.

"초이, 괜찮아?"

아키라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응. 난 괜찮아. 하지만 가방을 잃어 버렸어."

"휴, 그나마 다행이다. 난 네가 큰일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걱정했어."

아키라가 말했다.

"아키라 말이 맞아. 초이. 여긴 뉴욕이야. 함부로 따라 갔다가 큰일을 당할 수 있어."

다나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래? 하지만 가방에 내 노트북이 있어서."

"초이, 하지만 노트북보다는 목숨이 더 소중하잖아. 속상하겠지만. 이만한 걸 다행으로 여기자.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하는 건 어때?"

아멜리아가 말했다.

에밀리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게 해. 초이. 지금은 경찰에 신고하는 게 우선이야."

"그래야겠지?"

최승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노트북에 하루 종일 작업했던 것들이 들어 있는데, 몽땅 날리게 생겼어. 휴우~'

승호는 열심히 작업했던 것을 잃어버리게 되어 마음이 심란했다.

아키라는 낙담하는 최승호를 보며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해냈구나. 왕웨이.'

그의 두 눈이 작게 번득였다.

"흐응, 그래? 다친 곳은 없고?"

강혁이 물었다.

"예, 전 괜찮아요."

"그래, 그만하길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온 최승호는 회사에서 강혁이 돌아오자 한탄하듯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노트북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니 이미 스티브가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주었을 것이다.

승호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강혁이 말했다.

"그런데 노트북에 페이스북의 소스 프로그램이 들어 있지 않았니?"

"그렇죠. 하지만 소매치기가 그런 걸 알겠어요?"

승호가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강혁 역시 승호의 말에 수긍했다.

설마하니 처음부터 승호의 노트북을 노리고 가방을 훔쳤겠는가?

하지만 일말의 걱정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군 시절부터 시작된 강혁의 안 좋은 습관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놓고 행동하는 것 말이다.

특수 부대에서 근무하면서 한 번의 판단 착오로 동료나 팀 전체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기에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다.

이 습관은 형사 시절 몇 번이나 강혁을 위기에서 구해 주었다.

안일한 판단으로 놓칠 수 있었던 범인을 마지막까지 추적해서 잡았던 일이나, 동료가 조폭에게 칼침을 맞고 생사를 헤맬 때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죽을 위기에 닥친 피해자를 구사일생으로 구해 주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여러 가지 경험을 거치면서 지금은 강혁의 뼈 속에 새겨지는 것을 넘어, 영혼 속까지 새겨진 습관이었다.

'이 일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본다면……?'

"글쎄, 만일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네 가방을 훔친 거라면?"

손가락을 턱에 가져가며 생각에 잠겨 말을 꺼내었다.

강혁이 자신의 행동 루틴대로 이번 일을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혁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았다.

"예? 의도적으로 훔쳤다고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니?"

강혁이 승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 전혀요."

승호가 당황하며 말했다.

강혁은 승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은 그렇겠지.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요지경이라.'

"만일 그런 거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강혁은 자신에게 자문자답하듯이 허공에 눈의 초점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그… 그게… 만일 의도적으로 훔친 거라면… 다른 귀중품은 없으니 당연히 제 소스 프로그램을 노린 걸 테고."

"만일 그렇다면 그걸로 누군가가 페이스북을 도용할 수 있겠지."

강혁이 어딘가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대답했다.

"하, 하지만 그럴 리는 없어요. 그리고 제 노트북은 제가 보안을 엄격하게 걸어 놓아서 아무나 풀지도 못 해요."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만일 의도적으로 이런 일을 벌였다면 당연히 전문가를 불러서 암호를 풀려고 하지 않을까?"

강혁은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정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가방을 훔친 것처럼 생각하며 승호와 대화를 진행했다.

"그, 그렇다면 말이 달라지죠. 일주일 정도면 풀 수 있을 거예요."

최승호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만에 하나 강혁의 우려가 사실이라면 이제 막 성공 가도를 달리려는 페이스북에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었다.

누군가가 페이스북의 소스 프로그램을 가져가 비슷한 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다면, 날개를 달고 나려는 페이스북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소송에 들어가면 이길 수 있겠지만 지루한 법정 공방에 회사를 키울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것이다.

"어, 어쩌죠?"

승호가 그제야 당황하며 말했다.

"하하하, 긴장 풀어.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니까 말이야."

"그…그렇죠? 휴―우"

최승호가 한숨을 쉬며 긴장을 풀었다.

'그래, 설마. 누가 날 노리고 노트북을 훔쳤겠어?'

승호가 마음속으로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지금처럼 학생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얻기 전 아키라를 비롯한 아이들이 자신을 노렸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승호는 애써 그런 기억들을 몰아냈다.

'괜찮아, 그럴 리는 없을 거야.'

"뭐, 어째든 일단은 경찰서로 가 보자. 범인에 대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 차이나타운에는 누가 가자고 한 거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강혁이 물었다.

만일 정말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훔친 것이라면 최승호가 그곳에 간다는 걸 미리 알고 있어야 했다.

"아키라라고. 같은 반 친구예요. 원래 절 좀 괴롭히던 아이였는데, 그 사건 이후로는 친해졌죠."

승호의 목소리가 처음 말을 시작할 때보다 말을 마칠 때 작아졌다.

예전 기억 때문인지 약간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흐흠, 그 아이가 차이나타운에 가자고 했단 말이지?"

"예, 맞아요."

강혁은 생각에 잠겼다.

만일 아키라가 가자고 한 것이라면 범인은 아키라라는 아이와 공모를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단순히 관광객이나 돈 많은 동양인을 노린 소매치기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다.

하지만 강혁은 최악의 가능성에 대한 행동 원칙에 따라 생각하며 계속 물었다.

"그 아이에 대해서 네가 아는 모든 걸 말해다오."

강혁의 말에 최승호는 천천히 아키라에 대해 자신이 아는 걸 하나둘 말하기 시작했다.

"호오, 그렇게 널 괴롭히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꿔서 너와 이제는 절친처럼 지낸다는 말이지?"

"그, 그렇죠. 하지만 당연한 거 아닐까요? 그래도 제가 그 애 목숨을 구해 준거나 다름이 없는데"

"흐흠. 그러기는 했지. 그건 그렇고, 너랑 같은 학년에 올리브 윌슨 사장의 딸이 있었을 줄이야? 에밀리라고? 그런데 재미있게도 아키라가 그 앨 좋아했단 말이지. 벌써 여러 번 거절당하기도 했고."

"예, 예. 그렇지만 그렇다고 설마……."

최승호가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가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어요."

승호는 자신의 친구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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