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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76화 (76/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76화

76화

"사실은 내가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어요."

강혁의 말에 해리슨 실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존 회장님이 이번 일과 관련이 있다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페이스북을 창업한 초이가 내 피보호자이고, 그 사업에 내가 큰 투자를 했거든요."

"그… 그렇습니까?"

강혁의 말에 해리슨이 크게 당황했다.

"페이스북이라면 초이란 학생이 창업했다는 IT 회사 말입니까?"

아메리카 닛산의 사장인 카나타 코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그 이야기는 못 들은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강혁이 카나타 코우를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코우는 강혁의 얼음 같은 표정에 찔끔했다.

갑자기 등장한 동양인의 정체가 해리슨이 자랑했던 골든 타워의 회장이란 사실에 놀랐었다.

자신이 비록 아메리카 닛산의 사장이지만, 어디까지나 본사에서 파견된 일개 월급쟁이다.

본사에 돌아가면 기껏해야 상무이사인 것이다.

그런데 아직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약관의 동양인이 한 회사의 회장이다.

그것도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월가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투자 회사의 회장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얼음장 같이 쳐다본다.

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세계 금융계의 심장부에서 큰 명성을 얻으며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가 된 사람이라 생각하니 괜히 위축된다.

"그런데 이 세 학생이 공모를 해서 초이가 사용하던 노트북을 훔쳤더군요."

"……!"

"그 안에 있는 페이스북의 소스 프로그램을 훔쳐서 페이스북을 카피하려고요."

강혁의 말에 두 사람 모두 당황했다.

"이건 심각한 범죄입니다. 저희 회사 차원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설마, 그… 그럴 리가?"

강혁의 말에 해리슨과 카나타의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앤드류, 회장님의 말이 사실이냐?"

해리슨이 당황하며 물었다.

"아니에요. 전 하지 않았어요. 모두 저 녀석들이 꾸며낸 일이에요."

앤드류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 내어 울먹였다.

"전 그냥 이 녀석들이랑 어울리다가 억울하게 엮인 거라고요!"

강혁은 앤드류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에 간파했다.

'훌륭한 연기력이야. 이 길로 바로 배우로 데뷔해도 되겠군.'

"저, 저도 억울해요. 이건 전부 저 녀석이 한 짓이라고요."

아키라도 왕웨이를 가리키며 발뺌했다.

"아키라군. 자네는 분명히 초이에게 그날 차이나타운에 가자고 하지 않았나?"

강혁이 담담한 표정으로 아키라에게 물었다.

"그… 맞아요."

"그리고 왕웨이."

강혁이 한껏 위축되어 있는 왕웨이를 바라보았다.

"넌 아버지 부하를 시켜 차이나타운에서 초이의 노트북이 든 가방을 훔치게 했고?"

"예, 회장님."

"그렇다면 아키라, 대체 왕웨이는 초이가 차이나타운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미리 사람을 대기시켜 놓을 수 있었을까?"

강혁의 말에 순간적으로 아키라의 아버지 카나타 코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그… 그게… 저야 모르죠. 어쩌면 왕웨이가 초이를 미행한 것이 아닐까요?"

"그…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아키라의 말에 카나타 코우가 신색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

"왕웨이, 그게 사실이니?"

강혁이 물었다.

"아뇨, 아키라와 미리 짰어요. 그리고 이 일은 사실 모두 앤드류가 부추긴 거예요."

"뭐야? 왕웨이, 거짓말은 안 된다."

해리슨 레인이 급하게 말했다.

"왕웨이, 거짓말이니?"

강혁이 물었다.

"아뇨, 모두 사실입니다."

"네 말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있니?"

강혁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물었다.

"예, 있습니다. 회장님."

왕웨이의 말에 앤드류와 아키라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왕웨이."

"아키라는 알 텐데. 우리 두 사람이 같이 생각한 거잖아?"

"이, 이 배신자야."

아키라가 크게 당황하며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아키라?"

앤드류가 아키라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을 한 것은 왕웨이였다.

"이전부터 깨달은 건데. 우리가 실행은 했지만 사실 우릴 부추긴 건 항상 너였잖아."

왕웨이가 신랄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진작 너는 그 일에서 빠지고 구경만 했지."

왕웨이의 폭로가 거침없이 이어졌다.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너만 싹 빠져나가려고 말이야."

"그, 그건 사실이 아니야."

앤드류가 당황하며 말했다.

왕웨이는 그런 앤드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서 아키라와 함께 구입한 것이 있지."

왕웨이가 품속에서 볼펜 하나를 꺼냈다.

"그… 그건?"

아키라의 아버지 카나타가 물건을 알아보고 당황했다.

"뭐야? 뭔데 그러나?"

해리슨이 급히 물었다.

"녹음기가 장착된 볼펜이에요. SONY에서 만든 거죠. 아키라를 통해서 구입했어요."

왕웨이가 어딘가를 누르자 앤드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우리 페이스북인지 뭔지 망쳐버릴까?"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녹화된 음성이 진행될수록 앤드류와 아키라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아버지 해리슨 레인과 카나타 코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계획한 것은 분명한 범죄였다.

떨썩!

해리슨 레인이 무릎을 꿇었다.

"회, 회장님.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아직 어린 아이입니다."

"아, 아버지?"

"이 녀석, 어서 너도 무릎 꿇지 못해?"

해리슨이 눈을 부라리며 호통쳤다.

앤드류도 사태가 심각하게 흐른다는 것을 깨닫고 옆에 무릎을 꿇었다.

아키라의 아버지 카나타 코호도 이게 경찰서로 간다면 큰 문제가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엄연한 형사 사건이었다.

게다가 공모한 것이 분명한 정황이 녹음기에서 흘러나왔다.

문제는 그게 단순한 절도를 넘어 기업 범죄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닛산의 사장인 그 역시 이게 어떤 문제로 비화될 수 있을지 깨달았다.

페이스북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걸 창업한 초이는 현재 미국의 영웅이 되어 있다.

이걸 무단으로 도용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터진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의 닛산 본사에서 문제를 삼을 수 있었다.

카나타 코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본사의 녀석들이 날 죽이려 할 거야!'

떨썩! 하는 소리와 함께 카나타 코호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박듯이 숙였다.

일본특유의 풍습인 도게자다.

에도 시절부터 영주의 행렬이 있을 때 일반 서민들이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숙이는 것에서 유래했다.

사형을 당할 정도의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마지막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회장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아, 아빠!"

"네 이 자식. 뭐하고 있는 거냐? 당장 무릎 꿇고 빌지 못해!"

"알, 알겠어요."

아키라도 즉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박듯이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해리슨과 앤드류도 따라했다.

"회장님,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이구동성으로 외치며 머리를 조아렸다.

'허허, 이거 나 혼자 보기에 아까운 장면이군.'

강혁이 속으로 혀를 차며 이들을 바라보았다.

강혁은 한참을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후, 최승호에게 직접 용서를 구하라고 했다.

이들은 잠시 후 교장실로 불려온 최승호에게 도게자를 행하며 용서를 비는 굴욕을 감수했다.

이전에 괴롭힘을 당했던 인도의 천재 학생 로한 싱과 베트남 학생에게도 용서를 구하게 했다.

그리고 금전적인 보상도 하도록 조건을 걸었다.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면 저도 형사나 민사 사건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감, 감사합니다. 회장님."

앤드류와 아키라, 왕웨이를 비롯하여 세 사람의 아버지는 감지덕지한 표정으로 조건을 받아들였다.

학교 측에서도 상기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조건으로 자퇴를 허락했다.

모든 약속을 다 지킨 후 왕웨이는 아버지를 따라 미국을 떠나 홍콩으로 갔다.

왕방은 뉴욕에 있던 재산 대부분을 뺏긴 채, 서둘러 미국을 떠났다.

힘들게 키운 조직을 자기 손으로 넘겨야 할 때 피눈물이 흘렀지만 이미 배가 떠난 후였다.

왕방은 홍콩행 비행기에 올라탔을 때 비로소 안도의 표정을 떠올렸다.

마치 겨우 목숨을 구한 듯한 얼굴이었다.

실제로 그는 며칠이나 장삼의 손에 고통스럽게 죽는 악몽을 꾸곤 했다.

왕웨이는 그 후 홍콩에서 가난에 시달리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한편 앤드류의 경우는 아버지의 손에 군사 훈련을 받아야 하는 기숙사 학교로 쫓겨났다.

그리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말 그대로 가족들과 연이 끊어지고 유배를 당한 것이다.

학비도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원했다.

앤드류는 사실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결국 대입에 실패했고, 고교 졸업 후에는 동네 마트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화려한 날이 사라지고, 자신이 경멸했던 하류 인생을 살아야만 했다.

아키라 역시 아버지와 함께 일본으로 귀국했다.

본사에서 소문을 듣고 문제가 커지기 전에 두 사람을 귀국 시킨 것이다.

아키라는 일본 학교에 다시 편입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귀국 자녀라 일본말에 능숙하지 못했고, 한자도 잘 몰랐다.

자신은 평생 미국에서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키라였다.

자신도 모르게 잘난 체하고, 친구들을 무시하다가 반감을 샀다.

결국 친구들에게 미국 물 먹은 양키 새끼라며 심한 이지메를 당하게 되었다.

얼마나 심하게 당했는지 나중에는 학교를 자퇴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일체의 사회 생활을 거부하고 방에만 틀어 박혀서 나가지 않게 된 것이다.

세 사람의 말로가 하나같이 비참했다.

"뭐? 그 세 사람이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듯이 숙여서 초이에게 빌었다고?"

오스틴이 깜짝 놀랐다.

오스틴만이 아니었다.

데이지의 말을 듣고 있던 대여섯 명의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 내가 똑똑히 들었다니까."

친구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데이지가 발끈했다.

"세 사람이 털썩하고 무릎을 꿇고는 머리가 바닥이 닿도록 숙이고 빌었어."

"설, 설마. 그럴 리가?"

데이지의 단호한 표정에 오스틴의 얼굴이 당황스럽게 변했다.

"로한 싱에게도 똑같이 용서를 빌기로 했어."

"뭐? 그게 사실이야?"

도저히 믿기지 않은 말에 오스틴과 친구들이 반문했다.

"물론이지. 그리고 그 장면을 녹화해서 학교로 보내기로 했다니까."

아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뿐 만이 아니야. 돈으로 보상도 하기로 했어."

데이지는 놀라는 친구들을 보며 자신의 일이기라도 한 듯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헐~ 대박이다."

모여 있는 학생 중 한 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콧대 높은 앤드류가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아키라나 왕웨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사장 아들이었고, 왕웨이는 모두들 무서워하는 차이니즈 마피아의 아들이었다.

학교 내에서 기세가 등등했던 아이들인데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거의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려 사과했다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해보니 앤드류의 아버지라면 우리 부모님이랑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시는 분이잖아?"

데이지가 말했다.

"그래, 원래 다른 투자 회사의 임원이었는데 골든 타워로 옮기셨지."

메리 페레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빠 말로는 요즘 투자 회사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고 수익도 제일 많이 나는 곳이라고 하셨어."

"맞아, 그래서 우리 아빠와 함께 많이들 이직하셨지."

데이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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