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77화
77화
"우리 학교에서 직업이 주식 트레이너인 분들 중 상당수가 골든 타워로 이직했어."
오스틴이 수긍하며 말을 이었다.
"조금이라도 잘나간다는 소리를 듣던 분들은 다 그랬잖아."
"그럴 수밖에 없지. 단순히 수익을 많이 올리는 게 다가 아니잖아?"
데이지가 약간 흥분한 듯 목소리 톤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 아빠, 지금 회사로 옮기신 후에 엄청 달라지셨는걸."
말을 하는 데이지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이전에는 돈밖에 몰랐는데 지금은 가정에도 충실하시고…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몰라."
"맞아, 우리 아빠도 그래."
메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친구들도 그러더라. 아빠가 달라졌다고. 집에도 일찍 들어오고. 엄청 다정해지셨다던데."
오스틴이 말했다.
"골든 타워 회사 지침이야.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가질 것! 가족들과 휴가 갈 때 보너스 지급."
메리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골든 타워 회장님은 무슨 자선 사업가라도 되냐? 왜 그러신데?"
"자선 사업가 맞아!"
오스틴의 말에 데이지가 웃었다.
"무슨 뜻이야? 데이지."
"말 그대로지. 오스틴. 존 회장님은 기부도 엄청 많이 하셔. 재단도 만들었는걸."
데이지가 대답하기도 전에 메리가 재빨리 말했다.
"그, 그래?"
오스틴은 당황했다.
"메리의 말이 맞아. 존 회장님은 돈만 아는 동양인 졸부와는 차원이 다른 분이야."
데이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자신의 부모님이 일하는 회사의 회장님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런 회장님 밑에서 일하는 아빠도 왠지 격이 달라진 느낌이다.
"이미, 우리 학교에도 엄청 많이 기부하셨다고 들었어. 그래서 장학금도 엄청 늘었다고 하더라."
"그… 그렇구나."
오스틴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단순히 돈 많은 재벌이라면 트리니티 스쿨에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진정으로 존경을 받으려면 단순히 돈이 많은 것으로는 안 된다.
사회에 많은 기부를 하고 재단을 만들어 타인을 도와야 비로소 인정받는 것이다.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부자가 된 동양인들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한 미국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가 청도교적 사상이 사회의 기저에 깔려 있는 미국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초이를 후원하고 있단 말이지?"
오스틴이 한풀 꺾인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러니까. 너도 빨리 정신 차려. 그러다 앤드류 꼴 난다고."
"무, 무슨 소리야. 난 앤드류랑 달라. 야, 가자. 찰스."
데이지의 말에 오스틴이 당황스러워하며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앤드류의 뒤를 이을만한 문제아였던 오스틴은 시작도 하기 전에 기가 꺾였다.
트리니티 스쿨의 문제아 그룹이 자연스럽게 해체되는 순간이었다.
* * *
최승호가 전미 언론을 통해 소개되자 한국이 뒤집혔다.
때는 96년.
문민 정권 시기.
경제적으로 자신감이 폭발하던 때였다.
미국이든 외국에서 한국인이 뭔가 성과를 이루었다고 알려지면, 크게 자랑스러워하던 때였다.
그런데 최승호가 한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다.
한국 유학생이 무려 중동의 극악한 테러리스트의 위협에 맞서 큰 활약을 했단다.
한국 언론은 미국 언론의 보도를 받아 양념을 과하게 친 후, 대서특필했다.
최승호가 구해 주었다는 사람들의 면면도 화려했다.
무려 미국 부대통령 아들과, 세계적인 대재벌의 딸, 할리우드 여배우였다.
최승호의 활약으로 학생들 모두가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내용이 신문과 매스컴을 뒤덮었다.
미국으로 특파원을 보내고, 최승호의 한국 집에는 기자들이 진을 쳤다.
강혁이 처음 계획했던 것 이상으로 화려한 데뷔였다.
"예? 인터뷰에 응하라고요?"
"그래, 적당히 대답해 줘. 다만 나에 대한 것만은 한마디도 해서는 안 된다."
"그… 그렇지만 왜?"
"언젠가는 이유를 알게 될 거야. 하지만 지금은 내 말을 따라줬으면 좋겠다."
강혁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결국 최승호는 학교에서 마련해 준 장소에서 미국까지 온 기자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지만 이미 언론에서 다루어진 내용을 넘지 않았다.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도 여럿 있었지만 최승호는 답변을 정중히 사양했다.
이 부분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최승호의 부모님은 일절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당연히 강혁의 존재에 대해서도 한국 언론은 알 길이 없었다.
단지 워낙 특출난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실제로 최승호는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있었다.
강혁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엄중하게 정보 유출을 막고 있어서 미국 언론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한국 언론은 당연히 접근이 불가능했다.
누군가 단서를 가지고 집요하게 취재를 한다면 최승호에게 후원자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까지 취재를 하려고 한 사람은 없었다.
트리니티 스쿨의 일부 학생들만이 존 강이란 이름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학교 당국과 미 정부도 최승호의 개인 정보 유출을 막고 있었다.
추가 테러에 대한 강혁의 우려를 학교와 미국 정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런 이유를 설명하자 처음에는 최승호의 모든 것을 취재하려던 한국 언론도 조심스러워졌다.
결국 인터뷰 이후에도 한국에서는 다양한 추측 기사만 난무하게 되었다.
"정말 대견하지 않니?"
TV앞에서 최성혜가 감탄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방송에서 최승호의 활약상에 대한 특집 방송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어머니."
신비로운 분위기의 소년이 소파에 앉아 어머니뻘의 여성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쩜. 무섭지 않았을까?"
최성혜의 반문에 신상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회귀 후 이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역사가 그의 기억과 달리 흘러간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억 속의 역사와 다른 사건이 발생했다.
'최승호? 그런 녀석도 있었나?'
불현 듯 마음속으로 강혁의 존재가 떠올랐다.
가슴 한쪽이 욱신거렸다.
있을 리가 없는 상처가 아파왔다.
신상현은 속으로 쓴 웃음을 지었다.
'저 친구는 왠지 당신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강혁 형사님.'
TV속에 등장한 최승호는 170 중반의 키에 약간은 숫기가 없어 보이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아이큐가 180이 넘는 천재였다.
'큭, 이런 재미있는 녀석도 있었단 말이지?'
신상현은 TV를 보며 속으로 신철호를 욕했다.
원역사에서 신상현은 신철호의 대저택에서 감금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삼강에서 정식으로 신상현의 정체를 언론에 노출하기 전까지는 유령이나 다름이 없었다.
12살 무렵 신상현은 거의 외부의 정보를 접할 수 없었던 것이다.
TV를 보던 신상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방송에서 소개한 한마디의 단어 때문이었다.
"페이스북?"
신상현이 벌떡 일어났다.
"어머? 왜 그러니? 아들?"
"아, 아니에요. 어머니."
상현은 표정을 추스르며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페이스북이라니? 대체 뭐야 저 녀석은?
황당하다는 표정이 가시지 않았다.
원역사에서 페이스북은 전 세계 온라인 광고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인터넷 기업이었다.
마크 저크버그가 2004년 19살의 나이로 하버드 대학교 재학 중 만든 회사다.
그런데 최승호?
신상현으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방송에서는 천재 소년이 만든 IT기업에 대해 칭송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미 한 주 전에 30만 명이었던 가입자가 일주일 만에 100만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사이트를 개설한 지 거의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다.
TV에 나온 최승호가 직접 페이스북을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부하느라 친구를 사귈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요."
"학교에서 준 페이스북이란 책이 있어요. 거기에 학생들의 사진과 프로필이 적혀 있죠."
"온라인상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페이스북이란 사이트를 만들게 된 거죠."
최승호의 말은 마크 저크버그와 비슷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신상현은 그 말을 반신반의 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저 녀석도 회귀자인가?'
TV속 최승호를 노려보는 신상현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한 달 만에 100만 명의 가입자가 300만 명이 되었다.
기하급수적인 증가세였고,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최승호 혼자서는 도저히 관리할 수 없어서, 정식으로 직원을 모집했다.
강혁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자 최승호 없이도, 회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직 학생인 최승호는 회사를 강혁과 직원들에게 맡겨 놓고 다시 공부에 집중했다.
페이스북은 100% 강혁의 돈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이제는 회사 운영도 사실상 자신이 아닌 강혁과 직원들이 담당했다.
그러다보니 최승호는 자신이 받은 10%라는 회사 지분도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자신감을 가져. 이 회사는 네가 시작한 거야."
"하… 하지만."
"일단 대학을 가. 배울 수 있을 때 배워 두라고. 그 후에는 싫어도 노예처럼 부려먹을 거니까."
강혁의 너스레에 최승호는 코끝이 찡해졌다.
"형, 정말 이 은혜는… 이 생에서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하, 얌마. 뭘 그렇게… 고마우면 나중에 갚아. 흐흐흐."
"꼭, 꼭 갚을게요. 형."
최승호는 울컥한 마음을 진정시키며 이를 악물었다.
'기다려요. 형. 하루라도 더 빨리 자라서 형을 도울 테니까.'
어둠 속에서 강혁이 사무실 한쪽에 앉아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스크린 속에는 강혁의 설명을 따라 정교하게 그려진 네 장의 몽타주가 비쳐지고 있었다.
"새끼, 잘 생겼네."
강혁은 25살 무렵의 신상현 그림과 그 옆에 걸려 있는 12살 남짓한 소년의 그림을 향해 이죽거렸다.
12살 소년의 그림은 25살 무렵의 신상현 그림에 기반 해서 그려진 그림이었다.
두 장의 신상현 그림 옆에는 왼쪽에 단안경을 걸친 노인과 상어 턱을 한 사나이가 그려져 있었다.
"신상현, 네가 만일 회귀자라면 반드시 최승호를 찾아오겠지."
어둠 속에서 강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와라. 제발."
뉴욕 공항에 선글라스에 양복 차림을 한 두 남자가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남자는 키가 180은 되었고, 짧은 머리에 상어를 연상시키는 턱을 가지고 있다.
와이셔츠 너머로 탄탄한 가슴 근육이 돋보였고, 근육질의 균형 잡힌 몸을 지녔다.
다른 한 남자는 그에 비하면 왜소해 보였고, 나이도 훨씬 더 들어 보였다.
다만 상당한 연륜이 엿보이는 것이 아무나 만만하게 볼 사내는 아니었다.
두 사람 모두 동양인으로 중년 사내는 상어 턱의 사내를 조금 두려워하는 느낌이다.
잠시 후, 택시가 다가오자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타고, 예약해 둔 호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