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78화
78화
#21장 접근
다음 날.
중년의 사내는 트리니티 스쿨에 나타났다.
"초이와 투자 관련 제안을 하고 싶다고요?"
"그렇습니다. 틀림없이 승호군에게도 좋은 만남이 될 겁니다."
"하하, 이것 참.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교장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중년 사내는 올슨 교장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사실 초이군에게 투자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올슨 교장의 말에 중년 사내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무 늦은 건가?'
"하지만 초이군은 더 이상은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올슨 교장의 말에 중년 사내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되면 플랜B로 가는 수밖에…….'
중년 사내의 정체는 이영자의 남편인 김성민이다.
원역사에서 최영혜의 국회의원 시절 그의 비서실장으로 언론에 알려졌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최영혜 정부의 그림자 실세로 불린 남자다.
김성민은 이제는 완전히 자신의 보스가 된 신상현의 지시로 최승호를 만나러 온 것이다.
마크 저크버그가 2004년에야 만든 페이스북과 거의 비슷한 개념의 사이트가 팔 년이나 앞서서 등장했다.
신상현으로서는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최승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쉽게 됐군요. 그런데 이렇게 먼 길을 왔는데 얼굴이라도 보고 갈 수 있을까요?"
김성민은 최대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한국에서 여기까지 태평양을 건너서 왔습니다. 교장 선생님."
"하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우리 초이군이 지금쯤이면 도서관에 있을 겁니다."
올슨 교장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몇 마디 나누더니 밝은 얼굴로 김성민에게 말했다.
"다행히 초이군이 만나보겠다고 하는군요. 여기서 기다리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성민은 훨씬 밝아진 얼굴로 올슨 교장에게 사의를 표했다.
잠시 후, 노트북 가방을 울러 멘 최승호가 나타났다.
"한국에서 오셨다고요?"
"그, 그래요. 만나서 반가워요. 승호군."
"하하, 저도 반갑습니다."
최승호는 밝게 웃으며 김성민과 악수를 나누었다.
김성민의 얼굴에 약간 의외의 눈빛이 돌았다.
'방송으로 볼 때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소심해 보였는데?'
김성민의 생각과 달리 직접 만난 최승호는 활발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사실 김성민의 추측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최승호가 여러 가지 경험을 거치면서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김성민의 제안으로 자리를 학교 인근의 스타벅스로 옮겼다.
"죄송해요. 멀리서 오셨는데… 그런데 사업을 하신다고요?"
"자그마한 사업체를 하나 운영하고 있어요."
김성민이 명함을 건네었다.
명함에는 ㈜대한 부동산 계발 컴퍼니라고 적혀 있었다.
미래에서 회귀했다지만 신상현의 지식은 매우 한정되어 있었다.
90년대 후반에는 초등학생이었으니 당시의 사회, 경제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었다.
게다가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는 의대생이었다.
그룹은 적장자인 신상현의 형이 이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출장지에서 신상현의 공작으로 갑작스런 심장마비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말이다.
당시 신상현은 일반적인 검사에게는 절대 걸리지 않는 약물을 사용했다.
형이 죽은 후, 신상현은 일약 그룹의 상무가 되지만, 경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은 뛰어난 머리를 사용해 빠르게 이해해 나가야 했다.
반대로, 신상현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뜨고 지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삼강그룹의 후계자가 된 후, 제일 먼저 공부한 것이 바로 삼강의 인맥들이었다.
누가 그룹에 도움이 될 자인지, 적이 될 자인지, 회유해야 할 자인지.
정계와 재계, 언론, 법조인들에 대해 신상현은 공부해야 했다.
여기에 대한 공부가 끝나면 삼강 반도체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야 했지만, 그 전에 강혁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다만, 1997년의 외환위기 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 사건 자체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의 부동산이 지속적으로 오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최영혜의 비자금으로 달러와 금을 사 모으는 한편, 부동산 관련 회사를 세웠다.
"부동산?"
"하하, 민망하네요. 땅장사 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자금은 많아요."
"말씀 낮추세요. 사장님. 나이도 훨씬 어린데."
"그럴까? 아무튼 우리도 승호 학생이 만든 회사에 관심이 많다네."
"그게 죄송하네요. 더 이상은 투자를 받아드리지 않기로 했거든요."
"그런가?"
몇 번 더 권유했지만 고개를 흔든다.
김성민은 더 이상 이빨이 먹히지 않을 것 같아 재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이미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신상현이 지시를 내린 것이 있었다.
"내 사견인데, 난 정말 우리나라를 빛낼 큰 인재가 등장했다고 생각해."
김성민은 최승호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떻게 페이스북이란 회사를 만들게 되었는지 캐물었다.
"방송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최승호에게서 방송에서 알려진 그 이상의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렇구나. 아무튼 대단해. 그런데 자네 회사에 어떤 사람들이 투자했는지 나도 좀 알 수 있을까?"
김성민의 말에 자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윌가의 투자회사들이 자금을 대고 있다고 말했다.
'음, 한국인은 개입하지 않았겠군.'
최승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김성민은 다시 한 번 최승호를 과하게 칭찬하며 아부를 떨었다.
신상현에게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남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을 주게나. 고국의 인재를 위해 내 뭐든지 하게네."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김 사장님."
김성민은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명함 한 장만 주고는 호텔로 돌아갔다.
'흐흥, 오기는 했는데… 강혁 형이 기다리는 사람은 아니네.'
최승호는 강혁이 보여주었던 몽타주의 사람이 아니라 아쉬워했다.
강혁의 손에는 몇 장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동안 방송이 나간 후, 최승호를 찾아왔던 사람들이다.
대부분 기자들이거나 순수하게 페이스북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오늘 최승호에게 연락이 온 사람도 그런 부류였다.
기다리던 박광수나 노집사가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12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신상현이 그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미국으로 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강혁은 아쉬운 마음을 삼키며 다음을 기다려야 했다.
'역시 회귀한 것은 나뿐인 건가? 아니면 신상현이 아직 너무 어려서?'
둘 모두 가능성이 있었다.
'어쩌면 역시 나 혼자 회귀한 것일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대체 신상현은 왜 사라진 걸까?'
회귀 이후, 강혁의 머리에 맴도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대체 신철호의 집에 있어야 할 신상현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강혁은 만의 하나의 가능성을 놓지 않았다.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두는 것.
강혁의 좌우명이다.
―뭐? 투자를 받지 않았다고?
호텔에서 걸려온 국제 전화를 받고 신상현은 얼굴을 찡그렸다.
'틀림없이 대박일건데 말이야. 할 수 없지. 정식으로 주식을 상장할 때를 노리는 수밖에.'
―알았어. 하지만 앞으로도 주목해서 봐야 할 녀석이야. 최소한 좋은 인상은 심어 놓았겠지?
"아, 예. 하지만 아무것도 받지 않으려고 해서… 명함만 한 장 건네고 왔습니다."
―…? 으음, 아직 어리니. 선물 공세는 역효과가 났을지도 모르지. 잘 했어.
"예, 아버님."
―광수는 어떻게 하고 있어?
"예, 지시하신 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숙소나 다른 필요한 것들 모두 챙겨주고 돌아와.
"예, 아버님. 제가 꼼꼼하게 챙기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김성민은 의자에 앉으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최승호 건은 마무리 된 셈이고, 이제 남은 건 하난가?"
샤크 박광수는 뉴욕 시내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긴가?"
건물 안에서는 건장한 성인 남성들이 도복을 입고 훈련하고 있었다.
'으음.'
날카로운 눈으로 대련하는 남자들을 살펴보던 박광수의 눈빛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와이셔츠 아래로 보이는 강한 근육들이 수련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술들에 반응하고 있었다.
'역시 실전적이군.'
박광수는 이미 UDT 근무 중 기본적인 초크와 암바 등의 기술들을 습득했었다.
특수부대는 이런 기술들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편견이 없었다.
유용하다 싶으면 국적에 관계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박광수 역시 몇 가지 기본기를 배웠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주짓수를 배운 적은 없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도복을 걸친 40대 후반의 중년인이 다가와 박광수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가 주짓수 도장인가요?"
"맞아요. 입문자이신가요?"
박광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 MMA에서 주짓수는 매우 큰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1996년의 주짓수는 이제 막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93년, 미국에서 UFC가 창설되었고, 그레이시 유술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신상현은 회귀 전, 당시 유행하던 MMA에 대해 나름의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박광수에게 주짓수와 레슬링, 무에타이의 습득을 지시했다.
회귀 전 박광수가 강혁에게 목이 부러져 죽임을 당했던 것이 나름 충격이었던 것이다.
신상현은 언젠가 박광수가 다시 강혁을 만나게 되면 다른 상황이 펼쳐지길 기대했다.
강혁에게 목이 부러저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절망에 빠뜨리기 바랐다.
뉴욕에는 그레이시 가문의 일원이 직접 가르치는 도장이 있었다.
박광수는 신상현의 명령으로 주짓수와 레슬링, 무에타이 등을 배우기 위해 뉴욕에 온 것이다.
복싱과 나이프, 특공 무술 등은 이미 박광수의 베이스 무술이었다.
여기에 나머지를 더해서 완벽한 종합 무도인이 되게 하는 것이 신상현의 계획이었다.
박광수는 주짓수 도장에 들어오자마자 대련을 신청했다.
"What? 미스터, 나와 대련하고 싶다고?"
마침 도장에는 그레이시 가문의 일원인 호이스 그레이시가 지도를 하고 있었다.
호이스 그레이시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그다지 강해보이지 않는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 박광수는 180이 넘는 키에, 몸 전체가 근육질로 된 강한 신체의 소유자다.
이미 사람을 여러 차례 죽여본 박광수는 눈앞의 사내가 자신을 이길 것 같지 않았다.
주짓수 기술에 대한 인정과 별개로 박광수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지도를 받고 싶지 않았다.
"날 이긴 다면 스승으로 삼아드리겠소."
"푸하하하핫! 크레이지~"
호이스 그레이시가 박광수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지만, 뭐… 투지는 마음에 드네. 미스터."
"박. 미스터 박이요."
"미스터 박. 그럼 저기서 이 옷으로 갈아입고 와요. 대련은 그다음에……."
호이스 그레이시가 내미는 도복을 받아든 박광수는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잠시 후, 관원들은 수련을 멈추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체육관 중앙에는 호리호리한 체격의 호이스 그레이시와 상대적으로 큰 덩치의 박광수가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