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79화
79화
"자, 뭐든지 해봐요. 미스터… 팍"
호이스 그레이시가 입가를 올리며 말했다.
"잠시 후에 그 미소가 그대로 있을지 궁금하군."
박광수가 맹렬하게 대쉬하며 펀치를 휘둘렀다.
쉬, 쉬쉭~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과 함께 무지막지한 펀치가 허공을 갈랐다.
박광수는 눈앞의 사내가 갑자기 사라지며 자신의 양 다리를 잡아 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딜~"
박광수의 경험에서 이런 태클은 싸움 못하는 녀석들이 시도하는 것이다.
주먹을 들어 등을 내리치거나 목덜미를 내리치면 그대로 게임이 끝이다.
박광수의 주먹이 목덜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호오, 터프하네."
호이스의 오른쪽 무릎이 바닥에 붙으며 주먹을 피하는 동시에 박광수의 다리를 잡았다.
쿠웅~
눈 깜짝할 사이에 박광수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 여세를 그대로 살리며 호이스의 몸이 박광수의 몸 위로 올라탔다.
마운트 자세가 펼쳐진 것이다.
구경하던 관원들의 입에서 응원소리, 휘파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승기가 넘어 온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박광수는 순식간에 자신이 넘어진 것에 의아해 하면서도 재빨리 호이스의 얼굴을 향해 펀치를 날렸다.
그런데 자신의 오른쪽 주먹이 호이스의 뺨에 닿으려 할 때였다.
살짝 고개를 돌려 주먹을 피한 호이스가 팔을 감아왔다.
관절기를 시도한 것이다.
'아차!'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순간, 호이스의 몸이 팔을 감아오며 번개처럼 암바를 걸어왔다.
자신의 팔 전체를 감아버린 호이스의 두 다리가 목까지 압박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익!"
힘으로 버텨보았지만 지렛대의 원리를 이길 수는 없었다.
호이스의 몸이 돌아가며 두 사람의 몸이 십자 형태를 이루었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암바가 걸렸다.
"이… 이…익!"
"미스터, 빨리 포기하라고. 버틸수록 더 힘들어."
호이스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닥…쳐!"
박광수는 사고 이후로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암바에 걸린 상태에서 남은 주먹으로 호이스의 복부와 옆구리를 향해 타격했다.
"허허! 진짜 터프한데?"
호이스 그레이시의 눈빛이 어느 순간 변했다.
그대로 팔을 부러뜨리려던 호이스는 순간 뭔가를 생각했다.
박광수는 자신의 팔에 걸려 있던 암바가 느슨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함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팔을 감고 있던 호이스 그레이시가 어느새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윽!"
호이스 그레이시는 박광수가 몸을 일으키는 사이 그의 등 뒤를 파고 들어 목에 초크를 걸었다.
"이런 터프한 남자를 봤나~ 마음에 들어. 크크큿."
호리호리한 남자의 팔뚝이 박광수의 목 아래를 파고들었다.
버텨보았지만 경목맥을 통해서 머리로 공급되는 산소가 점점 사라졌다.
눈앞이 흐릿해지는 순간 박광수는 그대로 기절했다.
"헤이~ 깨어났어?"
"……?"
정신을 차린 박광수는 그제야 자신이 잠시 기절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팔을 살펴보니 다행히 부러지지 않았다.
팔을 부러뜨리기 직전 호이스가 힘을 푼 것이다.
'하지만 그 바람에 목을 잡혔어.'
박광수는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팔 하나와 목숨을 뒤바꾼 셈이다.
"뭐해, 빨리 일어나서 운동 시작해야지. 날 스승으로 모시겠다며."
호이스 그레이시의 말에 박광수는 씨익 웃으며 일어났다.
그의 눈에서 붉은빛이 감돌았다.
'마음에 드는 군. 주짓수라고 했나? 익혀주지.'
박광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호이스 그레이시의 가르침을 따라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호이스 그레이시는 UFC 챔피언이었다.
그것도 1회, 2회, 4회를 연속으로 석권한 무적의 챔피언.
현재의 박광수로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기술을 가진 남자였던 것이다.
* * *
강혁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101층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 서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투명 유리창 너머로 뉴욕 맨해튼의 정경이 보였다.
까마득히 아래에는 작은 성냥갑 같은 건물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국으로 온지 거의 2년이 흘렀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에서 100만 달러에 달하는 사업 자금을 확보한 것이 첫걸음이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말레이시아의 삼강그룹이라 불리는 황용그룹의 장자를 구해주며 황용패를 받았다.
헨리 첸을 생각하니 얼굴에 지긋이 미소가 떠올랐다.
얼마 전, 차이나타운에서 황용패를 사용했더니 강혁에게 작은 카드를 보내 온 것이다.
역관의 가게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받았다.
카드에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고, 강혁은 그 후, 헨리 첸과 전화로 인연을 이어갔다.
중화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객가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힘이었다.
92년 이후,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을 사용하며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객가만의 네트워크를 사용한다면 앞으로 중국 대륙에서도 신사업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에게 맡긴 구글은 눈에 띄게 전 세계로 그 이용자를 확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창업한지 몇 달 되지 않았는데 벌써 천만 달러의 광고 매출을 올렸다.
한화로 120억에 달하는 놀라운 수치였다.
다들 구글이 벌어들인 수익에 놀라는 눈치다.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하지만 강혁은 그런 반응을 보고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2011년도에 미국 내 웹 광고만 800억 달러에 달했던 미래의 구글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수익이다.
페이스북도 새로 영입한 전문경영인의 진두지휘 아래 순항하고 있었다.
내년에 최승호가 대학에 들어가도 당분간은 아무 문제없을 정도로 조직 정비를 해놓았다.
미국 내 인맥도 탄탄하게 만들어 두었다.
무엇보다도 현 행정부 내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도울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 컸다.
부통령인 애런 화이트는 자신의 가장 큰 지지자였다.
현 대통령인 클링튼 역시 이번 대선을 치루고 나면 자신의 적극적인 지지자가 될 것이다.
미리 떡밥을 뿌려 놓았으니, 시간은 강혁의 편이었다.
선거가 끝난 후, 강혁이 해두었던 예언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면 놀라서 전화를 걸어 올 것이다.
강혁은 그날을 기대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F.B.I 뉴욕 지부의 에단 스미스는 앞으로 국장까지 올라갈 사람이었다.
강혁이 어떤 사람인지 눈앞에서 본 터라 앞으로 강혁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예상되었다.
투자 회사 골든 타워의 수익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이다.
올리브 윌슨이 어제 자신에게 가져다 준 서류에는 300억 달러를 넘긴 수익이 찍혀 있었다.
3억 달러에서 시작한 투자회사가 30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전 미국을 강타한 닷컴 열풍과 함께 올리브 윌슨의 기량이 적절히 발휘된 결과였다.
강혁은 간단히 현재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추정 가치를 적어보았다.
[골든타워 약 300억 3천만 달러.
람보르기니 1억 5천만 달러.
구글 약 1억 3천만 달러.
페이스북 약 천만 달러.
그 외 대진건설 300억.]
조용히 종이에 적혀 있는 기업들과 추정 가치액을 살펴본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자금은 준비된 것 같군. 하지만 아직도 부족해……."
97년은 외환위기가 일어나는 해다.
수없이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여 많은 실업자들을 양산했다.
달러가 부족해서 국가가 부도가 난 해였다.
강혁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이용해서 나라도 살리고 기업도 인수할 계획이었다.
한 방에 강혁이 대한민국 내의 기득권 세력과 대결할 힘과 기반을 가질 기회였다.
강혁의 두 눈이 결의로 번득였다.
몇 개월 후면 강혁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순경 시험을 치룬 후, 경찰학교에 입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알파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국정원 해외파트출신 박정철 팀장, 정보경찰 출신 신소희 두 사람을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현재 총 인원수는 다섯 명.
이들은 한국에서 강혁의 손발이 되어 움직여줄 사람들로 통칭 알파 팀이라고 불렀다.
다행히 팀장이 될 박정철 전 요원의 딸은 심장병 수술이 잘 진행되어 지금은 회복 중이었다.
이규철 역시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는데, 비슷한 일을 경험한 터라 더 감정 이입이 되었나보다.
정보경찰이었던 신소희는 약혼자의 죽음과 누명을 혼자서 벗겨보려고 노력 중이었다.
강혁이 신소희의 억울함을 반드시 풀어주겠다고 약속하자 두말하지 않고 팀에 합류했다.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각기 재능과 한이 있는 사람들을 모았다.
이들 모두는 현재 퇴직한 C.I.A 교관에게 모종의 장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강혁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 몇 개월이 지나면 이들의 훈련도 대충 마무리가 된다.
눈을 감으면 삼양백화점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한민국의 기득권들이 형성한 자기들만의 이너서클을 깰 수 있었다면 말이다.
처음에는 신상현의 손에 죽었던 가족들과 억울하게 죽어갔던 피해자들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점점 더 그 대상이 확대되고 있었다.
힘이 주어지니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도 더 커지고 있는 셈이다.
강혁은 형사 생활을 하면서 많이 보아왔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한 일들을 당하는지…….
알량한 돈과 권력을 믿고 사람들이 얼마나 악해지는지를…….
강혁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힘을 사용하고 싶었다.
"한 번 해보자.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강혁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창밖으로 향했다.
화려한 맨해튼의 시내가 한꺼번에 내려다 보였다.
'기다려라! 내가 간다. 이 강혁이가…….'
* * *
"이걸로 하지."
강혁은 비서인 이리나가 건네준 카탈로그에서 마음에 드는 자가용 비행기를 선택했다.
한국과 미국을 쉽게 오가기 위해 전용기를 구입할 생각이었다.
이전에 삼양백화점 붕괴사건 때, 이규철과의 연락이 끊어졌을 때부터 생각했던 일이다.
우선 일반 비행기를 이용할 경우, 비행기 수속부터 탑승까지 대기해야 할 시간이 너무 많았다.
순수하게 뉴욕에서 한국까지 비행기로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만 해도 11시간 30분이었다.
강혁으로서는 그런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앞으로도 한국과 뉴욕을 오갈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강혁이 선택한 기종은 걸프스트림 Ⅳ였다.
헐리웃 스타 톰크루즈가 소유하고 있는 기종으로도 유명하다.
구입 비용은 3600만 달러로, 한국 돈으로는 400억이 훌쩍 넘어갔다.
승선 인원은 두 명의 승무원과 19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다.
내부 구조도 매우 럭셔리하다.
모든 좌석이 소파형 좌석으로 되어 있고, 1개의 응접실과 2개의 거실이 있다.
가죽시트는 베이지색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었다.
이것만이 아니다.
잠을 잘 수 있는 개인방과 작은 식당, 샤워실, TV가 설치된 럭셔리한 거실이 있었다.
비행기 안에 각종 편의시설이 구비되어 있는 것이다.
최대 7820km를 날수 있고, 비행기의 고도는 4만8천 피트에 이르렀다.
일반적인 항공기가 3만 피트 이하로 운행하는 것을 생각하면 훨씬 높은 고도를 나는 것이다.
높은 고도를 나는 이점은 우선 소음이 매우 적게 나서 정숙한 비행이 가능하다.
여기에 4만 피트의 고도에서 운행하는 항공기도 적어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다.
대다수의 항공기들 머리 위에서 나는 셈이다.
게다가 걸프스트림Ⅳ 자체가 마하1(정확히는 0.88)에 가까운 속도로 날 수 있었다.
일반 비행기가 서울에서 뉴욕까지 11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하면 걸프스트림은 45분가량이 더 빠르다
기동성을 필요로 하는 강혁에게 맞춤형 비행기인 셈이다.
"예, 회장님. 알겠습니다."
이리나의 눈빛이 연청빛의 동체를 자랑하는 멋진 자가용 비행기를 바라보며 반짝거렸다.
"참, 지난번에 못 했던 약속을 오늘 지키도록 하지."
"예? 약속이라면?"
"내가 저녁을 사주기로 했잖아. 이리나."
"아, 그랬죠. 전 사실 반쯤 포기하고 있었어요."
"하하, 그랬어? 미안해. 이리나."
"아뇨, 회장님 바쁘신 건 제가 제일 잘 알잖아요."
강혁은 이리나의 일처리 솜씨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면서 나름 신경을 써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