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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80화 (80/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80화

80화

―올리브 사장님, 혹시 괜찮은 식당 좀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식당이요?"

―그래요. 이리나에게 저녁을 사주기로 약속했었는데, 그만 깜빡 잊고 있었네요.

"쌍동이 빌딩에 좋은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제가 지배인을 잘 알아요. 거기로 하시죠."

―그래요? 좋습니다. 거기로 하죠.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회장님."

―하하,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올리브 윌슨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혹시 일만 아는 우리 회장님이 드디어?'

이리나를 회장실 비서로 뽑은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정말 예쁜 여성이기 때문이다.

스펙도 좋았지만 누구나 한 번 보면 반할 정도로 매력적인 용모를 하고 있었다.

아직 27살에 불과한 강혁이 매일같이 일에만 파묻혀 지내는 것이 안쓰러워 이리나를 발탁했었다.

그런데 이 목석같은 존 회장은 미인 보기를 길거리의 돌보듯 했다.

처음 기대했던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다행인 건 이리나의 일솜씨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상당히 괜찮았다.

그래서 회장 비서로 추천했던 올리브 사장의 면이 섰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저녁식사를 한다고 하자 살짝 기대가 되었다.

'그래 이제 우리 회장님도 젊음을 만끽하셔야지. 흐흐, 혹시 내가 큐피트가 되는 건가?'

올리브의 상상력이 하늘로 올라갈 때, 강혁은 이리나에게 약속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었다.

"어머? 저 거기 알아요. 뉴욕에서 제일 유명한 레스토랑 중 하나잖아요."

―마침 VIP석이 하나 비었더군. 다행히 예약을 할 수 있었어.

강혁이 전화를 끊자 이리나에게 비서실 직원들이 다가왔다.

"이리나 들었어. 회장님과 저녁식사를 한다며."

"응, 그렇게 됐어."

"좋아, 따라와. 이대로 가면 우리 비서실 명예에 먹칠을 하는 거라고."

"뭐? 그… 그게 무슨……."

이리나는 자신보다 서너 살 많은 비서실 언니들에게 그대로 끌려나갔다.

쌍둥이 빌딩 최상층에는 뉴욕에서 제일가는 레스토랑이 운영 중이었다.

뉴욕의 명소 중 하나로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곳인데, 마침 예약이 가능했던 것은 운이 좋았다.

일반석이 아니라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VIP석이 마침 남았던 것이다.

시간이 되어 강혁이 회장실을 나섰다.

이리나가 근무하고 있는 장소는 회장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설치되어 있는 부스였다.

때는 이미 근무 시간이 지난 후였기 때문에, 아무도 없었지만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이리나가 나타났다.

"이리나, 멋진데?"

"어머, 고마워요. 회장님."

강혁의 칭찬에 이리나가 싱글벙글 웃었다.

"이렇게 예쁘니 남자친구가 정말 좋아하겠어."

강혁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어머, 회장님. 전 남자친구 없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남자 친구가 없다니. 세상 남자들이 눈이 다 삐었구만."

강혁이 의아스런 표정을 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강혁의 말마따나 이리나의 요정 같은 면모는 확실히 뭇 남성의 간장을 녹일 만했다.

평소 칼처럼 정확한 이리나의 성격답게 업무 중에는 항상 정장을 입었다.

검소한 성격답게 비싸지 않지만 깔끔한 여성용 정장차림의 이리나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런데 지금은 저녁 식사 약속이라 화려하게 꾸미고 온 것이다.

세련되게 다듬은 금빛머리카락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평소 업무를 위해 뒤로 질끈 묶은 포니테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리나의 평소 모습도 매우 예뻤지만 한껏 치장한 지금은 급이 달랐다.

아름다운 드레스는 이리나의 요정 같은 외모와 날씬한 몸매를 훨씬 돋보이게 만들었다.

어깨 너머로 넘어간 너울과 심풀하면서도 예쁜 장식들은 사람인지 여신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강혁의 칭찬에 이리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리나는 평소 강혁이 자신을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회장님 평소 태도를 보면 그다지… 정말 내가 예쁘긴 한 걸까?'

이리나는 어릴 때부터 예쁘다는 소리를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그래서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많은 남자들이 자신에게 구애를 해왔었다.

그런데 강혁은 전혀 달랐다.

자신을 보통의 여자들과 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대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았다.

강혁 또래의 남자들에게 시달려왔던 이리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젊은 나이에 엄청난 성공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강혁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엄청 오만하고, 여자를 좋아하고, 향락을 즐길 것 같은 이미지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강혁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런 평가에 고개를 흔든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엄청 카리스마 넘치고 자신의 결정에 단호한 것은 맞다.

하지만 평소에는 부하들의 의견에 대해 귀를 열고, 잘 받아주는 다정한 상사다.

게다가 예언이라고 할 정도로 정확한 업무 지시와 평범한 사람은 생각하지 못할 판단력!

부연해서 따라오는 놀라운 결과물은 부하들에게 깊은 신망과 카리스마를 가져다주었다.

지금은 회사 내에서 강혁의 판단에 대해 이견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강혁 역시 평소에는 부하들의 판단에 대해 깊은 신뢰를 보였다.

젊은 나이에 회장이 된 사람이라 아랫사람을 깔보는 그런 모습도 없었다.

그 나이의 젊은이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밤마다 클럽을 찾는다거나 여자를 만나러 다니는 경우도 없었다.

오히려 수도승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자신을 절제하고, 일에 목숨 건 사람처럼 일했다.

회사에서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몇 번이나 보았던 것이다.

이리나는 그런 강혁을 존경하고 있었다.

직장 상사가 아니라 남자로서 강혁에 대해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여자의 직감이라고 할까?

한 번 좋아한 사람 외에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남자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리나는 자신이 강혁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오늘의 저녁 식사에 대해 조금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상사와 부하에서 조금은 로맨틱한 관계가 되기를 말이다.

강혁은 아름답게 치장한 이리나를 보며 젊은 시절의 이유라를 떠올렸다.

복지관 강당에서 우연히 만났던 이유라는 강혁의 눈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였다.

두 사람이 처음 데이트하던 날이 떠올라 강혁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어머, 회장님이 웃고 있어. 조금은 통한 걸까?'

이리나는 공을 들여 치장한 효과가 있는 것 같아서 살짝 마음이 설렜다.

"그럼, 갈까?"

"예, 회장님."

이리나는 자연스럽게 강혁의 팔을 양손으로 감싸 안았다.

강혁은 살짝 놀랐지만 이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사실 강혁의 눈에 이리나는 귀여운 조카뻘로 보일 뿐이다.

강혁의 외모는 20대이지만 속은 40대 중반의 아저씨였다.

귀여운 조카에게 저녁을 사준다는 기분이 들어 흐뭇한 마음으로 이라나의 손길을 허락했다.

'우리 경아가 그대로 컸다면, 언젠가 나도 멋지게 차려 입은 경아를 데리고 식사를 했겠지.'

문득 죽은 딸이 떠올랐다.

강혁은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딸에게 못해준 것을 이리나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경아도 이리나처럼 예쁘게 컸을 텐데.'

꽃처럼 아름다운 이리나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문제는 그런 강혁의 표정을 이리나가 조금 오해한 것이다.

'회장님이 날 마음에 들어 하고 있어. 목석같은 남자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봐.'

몇 번이나 자신을 훔쳐보며 슬며시 웃는 강혁을 본 이리나는 점점 가슴이 두근거렸다.

혼자서 몇 번이나 상상해보았던 젊은 재벌 회장과의 아름다운 로맨스가 떠올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두 사람은 승용차로 이동했다.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강혁은 평소 자신이 직접 운전하는 차량으로 걸어갔다.

딸 생각이 나서 몇 번이나 이리나를 바라보았는데 이리나는 그때마다 배시시 웃었다.

마치 화사한 장미꽃이 피어나는 듯한 아름다움이었다.

그런 이리나를 보니 아빠 미소가 절로 나왔다.

"오늘은 제가 제대로 모시지요. 공주님."

주차장에는 빨간색 스포츠카가 서 있었다.

섹시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날렵한 외형과 시대를 선도하는 멋진 스타일

공기역학을 고려한 낮고 각진 차체, 보는 사람의 시선을 한 번에 끌어당기는 번쩍이는 빨간 색.

이탈리아의 명품 스포츠카,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로드스터였다.

이리나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강혁의 옆자리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자 부르릉거리는 엔진음마저 심상치 않았다.

이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왜 명품 차, 명품 차 하는지 알겠어. 이런 기분인가?'

빨간색 람보르기니가 엠파이어 빌딩의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저녁 퇴근 시간이 막 지나서 뻥 뚫린 도로로 날렵한 차체의 슈퍼카가 달렸다.

과잉기억증후군의 영향으로 강혁은 뉴욕 시내의 모든 도로 사정을 시간대별로 꿰고 있었다.

살아 있는 내비게이션이며, 인공지능 빅데이터가 바로 강혁이었다.

도로 사정을 십분 감안하면서 이리나에게 람보르기니의 승차감을 맛보여주기 위해 외곽도로를 달렸다.

"와아! 회장님. 정말 대단해요."

강혁이 조금 전 묘기 같은 운전 솜씨를 보여주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차선을 넘나들며 몇 대나 되는 차량을 지나쳤던 것이다.

얼핏 위험해보였지만 조금의 오차도 없이 매끄럽게 빠져나왔다.

잠시 후, 거의 사람이 달리지 않는 외곽도로가 나왔다.

"그럼, 가 볼까?"

강혁의 얼굴에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이 떠올랐다.

이리나는 순간 가슴이 멎는 것 같았다.

'이런 표정도 보여 지을 줄 아는구나.'

항상 근엄하게만 보였던 강혁이 살짝 가면을 벗고 자신만의 내밀한 얼굴을 보여준 듯했다.

이리나의 볼이 살짝 상기되었다.

'회장님의 이런 모습도 좋아.'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로드스터가 순식간에 가속하며 최대 속도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쌍둥이 빌딩 최고층에 자리한 퓨전 고급 레스토랑의 홀 안에는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로 가득했다.

홀 한편에서는 화려한 드레스를 걸친 피아니스트가 유려한 손가락으로 멋진 연주를 하고 있다.

홀 안의 자리를 가득 채운 손님들은 연주를 감상하며 군침이 도는 요리들을 즐겼다.

미슐랭 별 다섯 개를 받은 뉴욕 최고의 식당이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가벼운 웃음소리, 대화를 나누는 소리, 음식을 먹는 소리, 각양각색의 소리가 어우러져 있었다.

이곳 식당의 문이 열리며 강혁이 들어섰다.

그의 옆에는 한눈에 보아도 헉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미인이 서 있었다.

이리나는 눈부신 드레스를 입고 강혁의 팔을 가볍게 붙들고 식당으로 들어섰다.

깔끔하고 멋진 제복을 입은 직원이 앞으로 나와 강혁과 이리나에게 인사하며 물었다.

"손님, 지금 자리가 만석입니다만 혹시 예약을 하고 오셨나요?"

"예, 존 강입니다."

강혁의 말에 종업원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존 강 회장님. 이쪽으로 오시죠."

종업원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눈부신 미인의 등장에 잠시 얼이 빠졌다.

게다가 그런 아름다운 여인을 동양인이 데리고 왔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일본인인가 싶었지만 키가 190을 넘는다.

자신이 아는 일본인 중에 아니, 동양인 중에 이렇게 키가 큰 남자는 없었다.

170후반인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여러모로 종업원은 기가 죽은 상태로 강혁을 부러워하며 자리로 안내했다.

VIP석은 따로 방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셰프가 직접 나와 오늘의 요리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갓 잡아온 바다가재를 이용한 해물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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