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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83화 (83/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83화

83화

김시언은 삼장법사를 어떻게 설명할까하다가 복잡한 설명보다는 단순하게 대답했다.

"스님이요. 몽크."

"아? Tripitaka!"

이리나가 되물었다.

Tripitaka는 삼장법사의 영어명이다.

"설마 저게?"

"아뇨, 저건 삼장법사를 모시고 서역으로 갔던 손……."

손오공을 영어로 뭐라고 부르는지 몰라서 대충 말했다.

"맨 앞에 서 있는 건 삼장법사를 모시고 가던 원숭이 그리고 돼지……."

"오! Monkey King Sun Wukong ,Monk Pig, Friar Sand!"

"맞아요. 손오공! 뒤에 나오는 게 저팔계, 사오정, 그 다음에는 동물들이에요."

"하아, 학교에서 배운 게 다 나오네."

이리나는 그제야 자신이 서양문화권이 아닌, 동양문화권의 나라에 왔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런데 왜 Journey to the west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저기에 있나요?"

이리나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들이 또 예뻐서 김시언은 그저 흐뭇하다.

"그게 하하, 일종의 부적 같은 건데 나쁜 건 물러가고, 좋은 건 들어와라……."

이리나는 김시언의 설명을 대충 이해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고마웠어요. 그럼. 안녕."

그녀가 손을 흔들며 근정전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김시언은 뭔가 더 수작을 걸어보려다가 그녀가 휙하고 가버리자 그만, 할말을 잃었다.

"참네, 어처구니가 없네."

돈 많고, 외모 되고, 항상 남들이 떠받들어 주는 생활을 해왔던 그에게 드문 상황이었다.

그러고 보면 처마마루의 토기들 원래 이름도 어처구니다.

아니 사실 어처구니라는 말 자체가 저 토기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허허, 어처구니가 없네?"

이 말은 궁궐을 지을 때 저 어처구니를 깜박 잊고 올리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한 말이다.

사람들이 기와 얹은 사람들 즉, 기와장이들을 바라보며 혀를 차며 했던 말인 것이다.

'허허, 어처구니가 없구만! 어처구니가 없어. 이 사람들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여기서 유래된 말이었으니, 어처구니를 앞에 두고 김시언이 제대로 한 방 먹었다.

"큭, 시언아. 보기 드문 일이야. 네가 차였네."

최남길이 김시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웃었다.

퍽―

가벼운 타격음과 함께 최남길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지만 웃는 낯이다.

"걱정 마. 이미 뒤는 다 설계 해뒀으니까."

금발머리에, 귀에는 피어싱을 한 청년이 다가오며 말했다.

"확실해?"

"못 믿어?"

"아냐, 네가 했다면… 믿어야지."

김시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금발 청년은 한참 잘 나가는 연예기획사 TM의 사장 아들이다.

나이는 24살 이름은 한세현.

종종 이들에게 파트너를 엮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보는 눈이 높은 한세현에게도 이리나의 외모는 특출났다.

연예 기획사 TM은 몇 개의 아이돌 그룹을 연이어 성공시켰다.

한창 업계에서 이름 빨을 날리는 기획사로 유명했다.

그런 아버지를 닮았는지 평소 머리 쓰는 일은 한세현이 맡았다.

"야, 다 준비됐어. 여기 있지 말고, 어디 가서 기다리자."

무리 중 가장 키가 큰 청년이 다가와 말한다.

청년의 이름은 장전후.

아버지가 중견 건설업체인 고려건설의 사장 장호걸이다.

김시언의 아버지 김대산과는 호형호제하는 인물로 김대산이 검사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원래 장호걸은 건설업으로 성공하기 전에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던 자다.

그래서인지 아들인 장전후도 유도와 복싱을 익혀 한주먹하는 인물이다.

평소 혼자서 다섯 명 정도는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주먹에 자신이 있다.

행동력이 있어서 한세현이 계획을 세우면 장전후가 일을 진행했다.

90년대 강남의 부유층 자녀들을 일컬어 오렌지족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다.

이들 네 사람은 강남에서는 유명한 오렌지족이었다.

고급 승용차를 끌고 거리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발견하면 "야~ 타!"하고 외쳤다.

비싼 양주와 고급 승용차, 양담배는 기본이고, 몰래 마약까지 하면서 향락을 즐겼다.

이들은 경찰의 눈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부모들이 뒤에서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았어. 야, 이동하자."

김시언의 말에 모두들 입가를 끌어올리며 차로 이동했다.

"와아, 아름다워!"

이리나의 입에서 연신 아름답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근정전 등을 구경한 후에 경회루를 찾았다.

거대한 연못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누각은 눈을 어지럽혔다.

그러다 불현 듯 강혁이 생각났다.

"치, 이런 곳엔 혼자서 오는 게 아닌데. 그래, 회장님이랑 함께 꼭 여기에 놀러 오는 거야."

이리나는 예쁜 두 눈을 반짝거리며 자신만의 작은 목표를 세웠다.

멀리 미국에 있는 집을 떠나 한국까지 온 것은 나름 각오와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에서 연봉의 두 배를 버는 동안 동생들의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것이다.

그리고 강혁과의 관계를 상사와 부하에서 좀 더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시키길 원했다.

이리나는 경회루위에서 아름다운 연못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졌다.

연못을 내려다보는 순진한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경복궁을 관람한 후, 잠시 쉬었다가 택시에서 내린 곳으로 갔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서 택시기사에게 삐삐를 쳤다.

[8282]

택시기사의 무선호출기 즉, 삐삐의 번호를 친 후 8282라고 치면 빨리 연락하라는 뜻이다.

지금의 경우는 빨리 오라는 뜻으로 미리 택시기사와 약속을 해두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다리던 택시가 오지 않자 한 번 더 호출을 했다.

[82828282]

빨리 오라는 뜻이다.

이리나가 택시기사에게 배운 한국식 약속이었다.

당시 삐삐가 유행하면서 호출번호를 누른 후, 연인들 간에는 뒤에 1004를 붙이기도 했다.

[101023535]는 열렬히 사모한다는 뜻으로 통용됐다.

나름 최신 IT기술에서도 낭만이 흐르던 시대다.

"하아, 어쩌지?"

택시가 오지 않자 이리나가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이리나를 향해 뛰어오며 손짓을 하는 중년의 택시기사가 있다.

"어이쿠, 늦어서 미안해요. 혹시 이름이 이리나?"

"엇, 맞아요. 어떻게 아셨죠?"

"아하, 맞구만."

택시 기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은 이 씨가 급한 일이 생겨서, 날 보냈어."

"아, 그렇군요."

이리나가 그제야 늦은 것을 이해했다.

"약속을 어겨서 미안하다고 반만 받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

"오! 저는 좋아요."

"그래? 그럼 어서 타요."

이리나는 갑자기 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들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택시에 올라탔다.

"그럼 아가씨, 어디로 갈까?"

"명동으로 가주세요."

"명동? 알았어."

택시 기사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택시 문이 좌우에서 열리며 낯선 남자 둘이 올라탔다.

"꺄―아!"

이리나가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는데도 택시기사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내 택시의 문이 닫히더니 어딘가로 출발했다.

"당신들 뭐에요?"

"우리? 하하,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금발에 귀걸이를 한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잠시 잠이나 자두라고."

반대쪽에 앉은, 키 크고 완력이 있어 보이는 남자가 이리나의 코를 손수건으로 막았다.

이리나는 잠시 반항했지만 서서히 의식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회장님~'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가까스로 힘을 내어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열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중앙의 단추를 힘겹게 누른 후 마침내 의식을 잃었다.

*     *     *

강혁은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눈 후, 방 열쇠를 받아들고, 문을 열었다.

한쪽 구석에는 이규철이 보내 준 짐들이 박스에 담겨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강혁은 먼저 방을 쓸고 닦기 시작했다.

이미 아주머니가 청소를 해서 깨끗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직접 닦아 두고 싶었다.

대충 청소가 끝나자 강혁은 제일 먼저 컴퓨터가 들어 있는 박스를 열었다.

순경 시절 자신의 방에는 없던 물건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까지 신상현이 알 리는 없었다.

자신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미국 유학을 다녀와서 부터다.

신상현의 편집증적인 자료집에도 이 당시의 자신에 대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순경 시절의 자신이 언론에 나올 일이 없는 것이다.

강혁은 미국에서 공수해온 최신형 컴퓨터를 설치한 후, 모뎀을 연결했다.

96년도라 아직 팬티엄Ⅱ가 나오기 전이었다.

강혁은 아쉬움을 참으며 팬티엄PRO를 마이크로프로세스로 사용하는 586컴퓨터를 사용했다.

그래도 본격적인 64비트 컴퓨터였다.

이전의 32비트짜리 486컴퓨터에 비하면 엄청난 진화다.

운영체제는 윈도우 95였지만 강혁의 실력이면 이 시대에서는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다.

컴퓨터 설치를 끝낸 후, 가재도구를 옮기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땀방울이 얼굴에 맺힐 무렵 마침내 짐 정리를 거의 마치고 다리를 바닥에 눕힐 수 있었다.

이규철이 신경을 많이 써서 별도로 사야 할 것이 거의 없었다.

옷가지부터 주방도구까지 일체를 박스에 넣어서 운반해 놓았던 것이다.

"아이구, 이젠 좀 쉬어 볼까?"

공항에서 집으로 곧장 온 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방을 치웠다.

강행군으로 피곤이 몰려왔다.

강혁은 가스보일러를 작동시키고 이불을 따뜻하게 덮은 후, 잠시 몸을 벽 한쪽에 기대었다.

삐이익―

강혁의 핸드폰으로 긴급호출 신호가 울렸다.

"무슨 일이지?"

강혁이 핸드폰을 꺼내 폴더를 손가락으로 틱하고 올리자 이리나의 번호가 떴다.

"이리나?"

강혁은 재빨리 전화기를 귀에 가져가 물었다.

"이리나, 무슨 일이야?"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직감적으로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즉시 전화를 끊었다.

가까운 곳에 범인이 있다면 전화기의 존재를 최대한 늦게 알게 해야 한다.

바로 스티브에게 연락했다.

―헤이, 보스. 무슨 일이에요?

한 잔 했는지 즐거운 목소리다.

"스티브, 이리나와 함께 있어?"

―아뇨, 몇 시간 전에 관광하러 갔죠.

"누군가와 함께 간거야?"

―아뇨, 혼자 갔어요.

강혁의 질문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고 스티브의 목소리가 달러졌다.

―무슨 일이죠?

"비상호출번호로 내게 전화가 왔는데 대답이 없어."

―……! 지금 당장 찾아 나서겠어요."

"기다려! 일단 준비만 하고 내가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 스티브."

―알겠어요. 보스.

전화를 끊은 강혁은 이규철에게 전화를 했다.

―어이, 보스. 한국에 오신 걸 축하드립니다.

이규철이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선배, 문제가 생겼어요."

이규철은 딸이 장기 입원해 있는 병원에 있었다.

하지만 강혁의 심상치 않은 전화를 받자 바로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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