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84화
84화
―지금 어디세요?
"집입니다. 차량이 필요해요."
―바로 가죠.
이규철과의 전화를 끊은 강혁은 즉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집에 설치한 전화로 국제 전화를 걸었다.
띠띠띠 띠띠띠 띠띠띠.
통화음이 울리기만 했다.
강혁은 벽에 걸어 놓은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뉴욕은 지금 새벽이다.
얼마나 울렸을까?
마침내 최승호가 전화를 받았다.
―아―함, 이 시간이면 혁이 형?
"맞아, 승호야. 문제가 생겼다."
―……?
강혁은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그…그래요? 제가 어떻게 도와드려야 하죠?
"컴퓨터를 켜! 보안프로그램을 작동하고 통신으로 이야기하자."
―알았어요.
전화를 끊은 강혁은 잠시 후, PC통신으로 최승호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강혁이 개발한 보안프로그램을 작동시켜서 외부의 누구도 두 사람의 대화를 알 수 없게 했다.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대화체로 글자가 올라왔다.
[이리나 누나가 실종됐다고요?]
[내가 준 핸드폰으로 비상호출 신호가 왔다.]
[그래서요?]
[통화를 시도했는데 받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한 가지 다행인건 내가 준 전화기에 위치추적기를 달았다는 거야.]
[아하, 혹시나 했던 물건인데 다행이네요.]
강혁은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 핸드폰을 분해해서 직접 위치추적기를 부착시켜 놓았다.
회귀 전, 나름 어둠의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던 프리랜서 최승호에게 배운 거였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아직 자체적으로 위치추적을 할 수가 없다.]
[그럼 어쩌죠?]
강혁은 최승호의 물음에 잠시 대답을 못하고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했다.
잠시 후 강혁의 눈빛이 단호해졌다.
'날 따라서 한국에 온 녀석이야. 지켜줘야 해.'
[승호야, 날 믿니?]
[그럼요. 혁이 형을 못 믿으면 제가 누굴 믿겠어요?]
[내가 무슨 짓을 시켜도 날 믿고 따라 올 수 있니?]
[참네! 혁이 형은 날 두 번이나 날 구해줬어요. 지옥으로 가라면 갈거라고요.]
최승호의 단호한 답변에 강혁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잠시 부드러운 눈빛과 죄책감이 얼굴에 나타났다.
그러다 다시 단호해졌다.
'널 끌어들인 책임은 내가 지마.'
[우리쪽 서버를 모두 움직여줘.]
[예? 아, 기다려요.]
승호는 왜 그러는지 묻지 않았다.
다만 바로 다른 모니터로 명령을 실행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을 위해 강혁은 실리콘밸리에 별도로 거대한 서버실을 만들어 놓았다.
십만 개나 되는 서버가 전 세계의 미래 고객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준비됐어요.]
[알았어. 이제부터는 내게 맡겨.]
[혁이 형, 꼭 이리나 누나를 구해줘요.]
최승호는 한 번씩 본사를 방문했을 때 언제나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이리나를 생각하며 부탁했다.
[맡겨둬!]
강혁은 잠시 컴퓨터를 앞에 두고 갈등했다.
한 번 시작하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알기 때문이다.
'칼은 칼을 쥔 자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신 강혁 너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사실 이미 해킹을 위한 준비는 다 해놓았던 강혁이다.
다만 실행을 하지 않고 있었을 뿐.
마침내 결단을 내린 강혁은 컴퓨터의 CD룸에 해킹 프로그램이 내장된 CD를 넣었다.
미래의 지식을 이용한 해킹 프로그램이었다.
강혁은 현 시대 최고의 실력을 지닌 해커였다.
거기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바로 십만 개의 서버다.
서버란 사실 하나의 컴퓨터다.
강혁은 십만 개의 컴퓨터를 하나로 연결한 일종의 슈퍼컴퓨터를 가진 셈이다.
'그럼 시작해 볼까?'
강혁은 마우스와 자판을 움직여 한반도 상공에 있는 미국의 첩보위성에 접속을 시도했다.
십만 개에 달하는 서버가 구글과 페이스북을 위해 움직이는 일부를 제외하고 일제히 움직였다.
21세기의 최신 보안시스템을 해킹할 수 있는 강혁이었다.
20세기 말의 구시대 보안프로그램은 아무 문제거리가 될 수 없었다.
'빙고!'
미 첩보 위성에 접속을 성공했다.
강혁은 이리나의 핸드폰에 부착한 위치추적기의 주파수를 입력하고 즉시 추적에 나섰다.
얼마 안 가 위치추적기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포착했다.
강혁의 눈이 예리하게 화면 위를 주시했다.
'여긴 시외로 가는 고속도로인데? 대체 어떤 놈들이지?'
강혁은 위성의 카메라를 확대했다.
잠시 후, 승용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 떠들썩하다.
"야, 우리 시언이 오늘 백마 한 번 타보는 거냐?"
장전후가 김시언을 향해 말했다.
"시꺼, 오늘은 다른 애들도 불러서 파티다."
"내가 연락하지. 새로 들어온 애들 중에 괜찮은 애들이 있어."
한세현이 말했다.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한세현의 아버지가 연예기획사 사장이라 이런 일은 주로 한세현이 담당했다.
품속에서 모토롤라의 폴더폰을 꺼낸다.
아직은 대중적이지 않아 소수의 사람들만이 핸드폰을 사용할 때였다.
기계 자체도 비쌌지만 요금도 매우 비싸서 대중적이지는 못했다.
"아, 나야. 이번에 새로 들어온 연습생 애들 있지?"
―예, 작은 사장님
"그래, 내가 부른다고 하고.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갈까요?
"양평."
―예, 알겠습니다.
한세현이 전화를 끊었다.
한편, 강혁의 컴퓨터 모니터 위에는 한세현이 전화 건 상대편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통신감청을 통해 이들이 양평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급승용차, 핸드폰, 양평, 이 녀석들 부유층 집안의 자식들이구나.'
이리나를 납치한 자들의 정체를 깨달았다.
전화번호를 확인하니 TM엔터테인먼트라는 상호가 뜬다.
강혁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 *
"야, 늦었어. 빨리 타."
한세현에게 전화를 받은 매니저 김상수는 애들을 모으는데 시간이 걸려 조금 짜증이 났다.
늦으면 혼나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세현의 지시에 따라 애들을 실고 모종의 장소로 가면 항상 같은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은 거기서 사람이 더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네 사람이 함께 있었다.
이들은 그곳에서 파티를 열었는데, 처음에는 술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약에도 손을 댔다.
연습생 여자애들을 중에는 이들에게 잘 보여 스폰을 받으려는 애들도 있었다.
"매니저 오빠, 정말 그 사람들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그래, 알아두면 하나도 손해볼 거 없다니까?"
잠시 주저하던 연습생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 승합차에 올라탔다.
다들 눈앞의 경쟁자가 앞서나가는 것은 원하지 않는 것이다.
차에 올라탄 연습생 중에 그래도 불안한 여자애가 있었다.
"저기 거기가면 뭐하는 거예요?"
"응? 노는 거지 뭐. 파티야, 파티. 상류층 자제들이 여는 파티."
김상수 매니저의 말에 조금씩 연습생들이 경계심을 풀 때였다.
갑자기 운전석 문이 강제로 열리며 누군가의 팔이 쑥하고 들어와 김상수의 멱살을 잡았다.
"뭐, 뭐야? 당신?"
"나? 알 건 없고! 좀 물어 볼게 있어서 그러는데 일단 내려와!
강제로 차에서 끄집어내진 김상수의 두 뺨에 벼락같이 손바닥이 왕래했다.
파바~박!
"뭐? 그냥 파티? 이 X자식아!"
거침없이 내뱉어 지는 욕설과 함께 김상수는 두 뺨이 얼얼해질 정도로 얻어맞았다.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왜, 왜 이러세요?"
"이 X자식아! 내가 너네들 X짓을 모를 줄 알아?"
"무, 무슨 소리하시는 거예요? 그냥 파티하러 가는 거라고요?"
"파티? 파티 좋아하네. 지금 약하러 가는 거잖아? 약 하면서 저 여자애들하고 뒹굴려고 그러는거지, 응?
이규철의 말에 승합차 안에 있던 연습생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사실 나 들은 게 있는데."
연습생 중의 하나가 이규철의 말에 입을 열었다.
승합차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이전에 여기 연습생이었던 언니가… 파티에 갔다 온 후 자살했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좀 더 자세히 말해봐!"
동료들의 재촉에 연습생이 마지못해 자세한 사정을 말했다.
"그때도 저 매니저 오빠가 연습생들 데리고 갔는데, 일주일 후에 욕조에서 자살했대."
"헉! 그럼 설마 저 사람 말이 맞는 것 아냐?"
"사실 나도 비슷한 소문 들은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사실인가봐."
모두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승합차에서 내려 뿔뿔이 사라졌다.
"야, 어디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연습생들을 보며 김상수가 소리쳤다.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이규철의 손바닥이 뺨을 올려 부쳤다.
부어오른 뺨을 만지며 김상수가 독기 오른 눈으로 말했다.
"당신, 누군지 모르겠는데, 이거 실수하는거야!"
"실수? 실수는 누가 하는 건지 가르쳐주마."
이규철의 눈빛이 사납게 돌변했다.
먹이를 눈앞에 둔 늑대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가?
김상수는 돌변한 이규철의 눈빛에서 살기를 느꼈다.
"저…저기……."
"늦었어! 새꺄!"
야수처럼 웃는 이규철의 주먹이 사정없이 김상수의 얼굴로 떨어졌다.
"끄애―액!"
잠시 후, 김상수는 퉁퉁 불어터진 얼굴로 양평 별장의 주소를 불렀다.
"맞기 전에 말할 것이지."
멱살을 잡은 손을 놓은 후, 바로 뒤통수를 가격해 기절시켰다.
자신에게 풀려난 후, 연락을 취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이규철은 바로 핸드폰을 꺼내 강혁에게 연락을 취했다.
"회장님, 알아냈습니다. 주소는……."
―수고했어요. 그럼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예, 회장님. 저도 이쪽 일을 마무리한 후, 곧 쫓아가겠습니다."
양평별장의 주소를 알려준 후 전화를 끊은 이규철은 자신의 차에서 도구를 꺼냈다.
김상수의 입에 청테이프를 바르고, 꽁꽁 묶은 후 승합차 안에 밀어 넣었다.
나중에 누군가가 발견해서 구해주기 전에는 꼼짝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강혁이 스티브에게 말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스티브의 뒤에는 몇 명의 사내들이 네이비실 팀이 사용하는 병기와 복장으로 무장을 했다.
모두 미국에서 강혁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다.
현역에서 은퇴한 네이비실 팀 대원들을 비싼 연봉으로 계약해서 한국에 함께 온 것이었다.
스티브와 강혁도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군용 헬기가 이륙할 준비를 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강혁은 이규철에게 전화를 한 후, 다시 미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협조를 요청했었다.
지금 강혁의 사람들이 강남 세곡동에 있는 서울 공항에 와 있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강혁은 헬기에 탑승하며 미국 대사에게 전화했던 일을 떠올렸다.
―누구시라고요?
"존 강이라고 합니다. 대사님과 통화를 하고 싶은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강혁의 전화를 받은 대사관 직원은 곧 비서실에 연락을 취해 강혁의 연락을 알렸다.
"뭐? 존 강 회장이라고? 지금 바로 바꿔 주세요."
"예? 지금 응접실에 한국 정부의 외교부 장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더 기다리고 해!"
"아, 알겠습니다."
비서는 황급히 밖으로 나가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외교부 장관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박 장관님. 대사님께 갑자기 긴급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박한결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워싱턴에서 온 전화라면 받아야겠지요."
오늘의 일정은 이미 오래전에 상호간의 조정을 걸쳐 결정된 것이다.
일국의 장관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니 무척 중요한 일일 것이다.
워싱턴에서 걸려온 연락일 것이 분명했다.
박한결은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시간이라면 워싱턴은 아침일 텐데 대체 무슨 일일까?'
박한결은 미 대사가 자신을 뒤로 하고, 강혁과 통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