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85화
85화
―존 강 회장님. 워싱턴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늘 귀국 하신 거죠?
"예, 그렇습니다. 캐리 대사님."
월리엄 캐리 미 대사는 임명장을 받고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물이다.
그가 미국 대사로 임명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친구인 화이트 부대통령의 입김이 컸다.
두 사람은 대학 동문으로 집안끼리도 왕래하는 친분이 깊은 사이다.
―이번에 존 회장님이 우리 미국을 위해 해주신 일들은 정말 몇 번을 감사해도 모자라는 일입니다.
"아닙니다. 캐리 대사님. 조금이라도 미국과 미국 정부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제가 영광입니다."
―하하, 화이트 부대통령에게는 이미 당부를 들었습니다. 뭐든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씀하시죠.
캐리 대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은 말입니다. 제 밑에 직원에게 큰 일이 생겼습니다."
강혁은 캐리 대사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캐리 대사는 강혁의 설명을 듣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미국 국민에게 발생한 일이니 회장님만의 일이 아닙니다. 바로 협조해드리죠.
강혁까지 헬기에 탑승하자 헬기 조종사가 이륙을 시도했다.
투타타타타타타타타!
미국 군용 헬기 블랙호크 두 대가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몇 분 후면 도착할까요?"
스티브가 헬기 조종사에게 물었다.
"기상이 좋으니, 20―30분이면 도착할 겁니다."
조종사의 말에 스티브가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헬기 조종사가 스티브에게 윙크를 건네더니 공중에서 크게 선회하며 양평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리나는 커다란 침대 위에 눕혀져 있었다.
김시언은 마치 아름다운 여신을 바라보듯 하얀색 시트 위에 드러누운 이리나를 바라보았다.
"흐흐, 좋은 꿈 꾸라고. 잠시 후에 내가 천국을 보여줄테니."
침대에 앉아 이리나의 금발을 매만지던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일층으로 내려갔다.
"야, 재미 좀 봤냐?"
"흐흐, 아직… 파티는 이제 시작이잖아. 맛있는 건 제일 마지막에 먹어야지."
"크… 웃기는 자식."
김시언은 최남길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양주를 땄다.
"애들은 언제쯤 오는 거야?"
김시언의 말에 한세현이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한 30분 정도 후면 도착할 거야."
"그럼 그 전에 우리끼리 한 잔 할까?"
"난 싫어. 시작도 하기 전에 취하는 건 사절이거든."
김시언이 장전후를 바라보았다.
"난 언제나 환영이지."
장전후가 잔을 내밀자 잔에 양주를 가득 부었다.
"짜식, 역시 넌 남자 중의 남자야."
두 사람의 아버지가 서로 긴밀한 관계라 아들들도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은근히 김시언이 장전후를 이용해 먹는 관계라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의 아버지인 김대호와 장호걸이 그렇듯이.
하지만 장호걸이나 장전후가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면 김대호가 든든한 뒷배가 되어 장호걸의 사업을 보호해주고 있었다.
크게 보면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인 것이다.
"그건 그렇고. 어디 내나봐."
"이번에 들여온 거 말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다. 어딨어?"
김시언의 말에 최남길이 씩 웃으며 품속에서 뭔가를 내놓는다.
세관의 눈을 피해 한국으로 밀수입된 고농도의 헤로인이었다.
"이걸 술에 몰래 넣어서 먹이면 얼마 안 가 완전 뿅 간다."
살짝 손에 묻혀 코에 가져간 김시언의 눈이 살짝 돌아간다.
"굿― 오늘 밤은 우리 모두 홍콩 가는 거다."
김시언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서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야, 술만 쳐 마실 거냐? 안주는?"
"우리 애들이 준비해올 거야. 기다려."
장전후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현재 별장에는 장전후의 수하들이 잔심부름과 경호를 담당하고 있었다.
검은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자들이 별장을 철저하게 지켰다.
별장 안은 그야말로 네 사람의 작은 왕국이었다.
이 안에서 김시언은 황태자였고, 다른 세 사람도 비슷한 지위를 유지했다.
오늘은 네 사람뿐이지만, 이들은 대규모 파티를 이곳에서 열기도 한다.
각자의 친구를 부르고 또, 그 파트너들을 불러 마약파티를 벌리는 것이다.
염연히 대한민국에서 금지되어 있는 약물들을 하고는 죄책감도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에게 법의 집행자들은 항상 꼬리 내린 개들이었다.
간혹 개중에 이빨을 들이대는 자들이 있었지만 그 끝은 언제나 자신들이 승자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권력보다 위에 있는 것은 없었다.
그것이 비록 법과 정의일지라도 말이다.
바텐더 복장을 한 사내들이 들어와 테이블 위에 술과 안주를 배치한다.
이들은 장전후의 수하들이 운영하는 클럽 직원들이다.
"야,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연락도 없고?"
최남길이 짜증난 표정으로 한세현을 바라봤다.
확실히 올 시간이 지났다.
"기다려 봐."
한세현도 약간 빡이 친 얼굴이다.
매니저에게 삐삐를 쳤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답답한 한세현이 다시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뭐라고? 애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고?"
"예, 도련님. 게다가 내일부터 회사에 안 나오겠답니다. 대체 무슨 일이죠?"
"김상수는?"
"그게 저희도 찾고 있는데 어디로 갔는지 안보입니다. 차는 있는데……."
콰앙!
한세현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모두들 무슨 일인가 그의 얼굴만 바라본다.
전화를 끊은 그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망했다. 다들 안 온단다."
"이런, 이런, 이거 누가 우리 한세현 얼굴에 먹칠을 한거지?"
"김상수 이 XX가 애들 놓치고 잠수 탔다."
"흐흐, 웃기는 자식이네. 아무래도 우리가 손 좀 봐줘야겠네?"
장전후가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뿌드득 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일이라도 애들 좀 데리고 가서 군기 잡아주마."
"그놈, 잡으면 연락해. 내가 직접 손 봐줄 테니까."
"오! 우리 세현이 진짜 화났나 보네. 그렇게 해!"
장전후가 웃으며 말했다.
"손봐주는 건 그렇다 치고. 이제 어쩔거냐? 우리 넷인데 여자가 하나야."
최남길이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뭐, 그건 걱정 마. 강 부장!"
장전후가 부르자 건장한 체격에 하얀 양복을 걸친 남자가 나타났다.
"도련님. 부르셨습니까?"
"뭐 별일 아니고, 양평에도 우리가 운영하는 클럽 있지?"
"예, 가끔 어르신들 따로 모시는 비밀 요정이 있습니다."
"우리가 갑자기 여자가 부족해졌네?"
"알겠습니다. 바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강 부장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더니 커다란 벽돌 같은 전화기를 들었다.
"그래, 도련님이랑 친구 분들 모실 애들이 필요해."
전화를 마친 강 부장이 다시 돌아와 허리를 숙인 후 상황을 설명했다.
"현직 대학생 애들로, 아직 여기 물이 덜 든 아이들을 준비했습니다."
강 부장이 말에 최남길이 웃는다.
"우리 강 부장님, 확실히 우리 취향을 잘 안다니까"
"칭찬 감사합니다."
강 부장이 다시 돌아가자 모두들 술을 한 잔씩 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 부장이 여자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인근에 비밀 요정을 운영한다더니 정말인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각자 알아서 사내들 옆에 앉았다.
모두 외모가 출중한 여자들이다.
"좋아, 맘에 들었어. 오늘 강 부장이 힘 좀 썼네."
"모두 현역 여대생들인데 다들 모델이나 탤런트 지망생들입니다."
"오! 그래?"
최남길이 싱글벙글 거렸다.
"이 정도면 만족하십니까?"
"우리 한세현이 긴장해야겠다. 강부장이 데리고 온 아이들. 다들 괜찮은데?"
김시언이 웃으며 말했다.
"인정!"
한세현이 피식 웃으며 순순히 인정했다.
오늘 자신이 데리고 오기로 했던 애들보다 오히려 한 수 위의 미모들이다.
모두들 술잔을 들고 건배를 외치며 마신다.
한바탕 질펀한 작태들이 펼쳐질 모양이다.
김시언이 말했다.
"좋아, 너희들은 애들이랑 놀아. 난 이제 올라갈란다."
"오! 김시언. 이제 시작하려고?"
"갑자기 기다리기 지루해져서 말이야."
김시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은 약봉지를 챙겼다.
모두들 김시언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럼 넌 내 옆으로 와!"
김시언 옆에 앉았던 여자를 향해 최남길이 말했다.
눈에는 이글거리는 탐욕으로 가득했다.
김시언은 그들을 뒤로 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침대 위에는 아직 이리나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김시언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마취제의 기운이 사라질 때였다.
방 안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 술잔을 올려놓았다.
들고 온 술을 잔에 부은 후, 약을 탔다.
"흐흐, 내가 뿅 가게 해주지."
술에 약을 탄 후, 김시언은 상의를 벗었다.
꾸준히 운동을 해서 관리해 온 몸이 들어났다.
"그럼 시작해 볼까?"
침대 위로 올라가자 이리나는 몸에 뭔가 체중이 실리는 느낌이 들었다.
"으응… 무거워."
이리나가 가냘픈 눈을 뜨자 눈앞에 웬, 낯선 남자가 보였다.
"…누구?"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기억 안 나? 내가 가르쳐 줬잖아. 손오공."
"아! 낮의 그 사람."
이리나의 순진무구한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
자신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그럼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맞아! 그때 나와 함께 움직였으면 좀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김시언이 윙크를 하며 말했다.
"나…나쁜 사람!"
가냘픈 팔을 휘둘렀다.
빠악―
김시언은 불시에 뺨을 얻어맞았다.
"…흐흐흐."
김시언은 이미 약이 든 술을 먹은 상태였다.
뺨을 맞은 통증보다 흥겨운 유희를 즐기는 마음이 더 컸다.
"자, 이리와. 나랑 놀아보자고."
김시언이 이리나를 덮쳤다.
"No, 싫어!"
이리나의 비명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지며 특수부대 복장을 한 사내가 뛰어들었다.
1층에서도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김시언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불청객을 바라보았다.
스키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야시경 고글을 낀 사내의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꼼짝 마!"
사내가 머리에 권총을 겨누자 김시언은 얼어붙은 채 양 손을 올렸다.
야시경 고글을 낀 사내가 고갯짓으로 이리나에게 일어서라고 신호를 보냈다.
이리나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사내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이리나 창 쪽으로 가."
영어로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낯이 익다.
이리나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어서!"
이리나는 물어 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창가로 가서 섰다.
그러자 로프에 몸을 매단 특수요원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녀의 몸에 구명줄을 매달자 곧 허공으로 사라졌다.
김시언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자신이 약을 너무해서 환상을 보고 있나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퍼억―
고글을 낀 사내의 매서운 주먹이 턱에 날라온 것이다.
큭!
입에서 피비린내가 나고 통증이 느껴졌다.
"이 개자식―"
퍼억!
복부에 묵직한 주먹이 날아왔다.
김시언의 입에서 걸죽한 것이 올라왔다.
커―헉!
고통에 겨워할 때 갑자기 눈앞에 별이 보였다.
고글을 쓴 남자가 권총으로 뒤통수를 가격한 것이다.
―아래층 청소 끝났습니다.
강혁의 귀에 낀 통신장비로 스티브의 음성이 들려왔다.
"여기도 끝났다."
강혁은 김시언의 뒷목을 잡아 아래층으로 질질 끌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