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89화
89화
"이놈의 자식!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김대호는 연락을 받고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산속에서 기아와 탈수 상태로 발견되어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호송되어 온 것이다.
몸 여기저기에 잔잔한 상처들이 많았다.
다른 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김대호는 병실에 누워 있는 김시언을 보자마자 노발대발했다.
"아이, 이이는 진짜! 그만해요! 일단 애 건강부터 살펴봐야죠."
"이…이 놈의 자식."
겨우 화를 가라앉힌 김대호가 분기를 억누르며 자리에 앉았다.
"죄…죄송해요. 워낙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아, 아버지. 그…그게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김시언은 자시에게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으…으음. 그렇다는 말이지?"
김대호는 아들의 말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대체 아들 녀석이 납치했다는 그 여자의 정체가 뭐길래 미군 특수부대가 그런 일까지 벌인 것일까?
"일단 살았으니 됐다. 사실 이 일에 정말로 미국이 개입되었다면 우리로서는 방법이 없다."
김대호의 말을 김시언은 기꺼이 받아들였다.
한밤중에 자신을 헬기로 납치해가서는 자신이 저지른 모든 잘못들을 실토하게 만든 자들이었다.
거기에 대고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다.
"그…그런데 괜찮을까요?"
"뭐가?"
"제가… 그동안 저질렀던 일들을 다 말했거든요."
김시언은 자신이 납치당한 후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 병신 놈의 자식!"
김대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시언을 향해 불같은 노화를 터트렸다.
"여보, 진정해요!"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저 놈이 지금 우리 집안을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어."
"어휴, 알았으니까 진정해요."
"당신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는거야? 저 놈이 지금……."
"아잇, 이 양반아. 나도 귀가 있어."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해?"
"이봐요. 나도 알거 다 알아요."
"그런데 왜 그래?"
"이 양반아, 흥분 좀 가라앉히고 생각해봐요. 미군이 왜 저 애를 풀어 줬겠어? 응?"
"……?"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겁만 주고 보냈지."
"끄―응, 그놈들이 저 놈이 저지른 짓들을 다 알았다잖아!"
"그게 뭐 어때서요?"
"뭐?"
아내의 말에 김대호는 기가 막혔다.
"생각해봐요. 여긴 어쨌든 한국 땅이야. 그걸 알아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요."
"다…당신!"
"뭘 그런 눈으로 봐요. 어차피 당신도 알고 있잖아."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언론 쪽은 태우전자의 최민수 사장 쪽에서 막을 수 있었다.
뭐라 해도 대기업의 광고는 일간지에게 큰 유혹이니까.
그리고 검찰 쪽은 자신이 막을 수 있었다.
자국민 납치 및 성폭행 미수 혐의로 미국으로 끌려가지 않는 한 문제가 없었다.
한국에 있는 한은 안심인 것이다.
"휴, 저 놈이 미국으로 안 잡혀 간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사실 미군이 남의 나라에서 불법으로 사람을 납치해 간 것이라 풀어 준 모양이었다.
"그래요. 그러니 이번 일은 액땜했다 생각하고 맘 풀라고요!"
"에이잉, 저놈 때문에 내가 마음 졸인 일을 생각하면. 이번 일로 돈이 얼마나 깨진 줄 알아?"
"어휴, 당신도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 하지만 이 애는 우리 집 독자예요."
"이잇, 저 놈이 저 꼬라지인 것도 당신이 이렇게 매번 감싸주기만 해서야."
"어이구, 아직도 그렇게 소리 지를 셈이면, 어서 나가요. 애 건강해치겠다.
김대호는 마누라 등쌀에 병실에서 쫓겨났다.
"에잉, 남들은 아들 덕도 본다는데 이건 참!"
병실은 나서자 마침 태우전자 사장 최민수와 고려건설 장호걸이 보인다.
"아이고, 이거 모두들 안녕하셨습니까?"
김대호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의원님, 오랜만입니다."
김대호는 마침 잘 만났다며 최민수, 장호걸과 함께 아이들 일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비슷한 생각이었다.
하긴 이들과 자신의 힘이라면 이번 일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여기는 대한민국이니까.
일주일 후, 개각 하루 전 대통령 집무실.
"이번 개각은 이렇게 가기로 하죠."
박영삼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인사 자료를 점검한 후, 곽대명 비서실장에게 말했다.
명단을 살펴본 후 곽 비서가 물었다.
"김대호 의원을 다시 명단에 넣으셨군요?"
"뭐, 처음엔 자르려고 했는데… 이기용 의원이 부탁하더군."
"괜찮을까요? 이런 친구를……."
곽 비서의 말에 박 대통령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법무부 장관을 노린다는 사람이 자기 자식 단도리 하나 못 하다니 사실 실망이야."
박 대통령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이 의원에게는 내 빚이 있지."
박 대통령이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기용 의원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서였다.
적어도 박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기용 의원이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도 대통령님이 결국 후보가 되셨을 겁니다."
곽 실장의 말에 박 대통령이 미소를 지었다.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덕분에 손쉽게 된 것은 사실 아닌가."
박 대통령은 작성된 명단을 곽 비서에게 넘겼다.
"그럼, 발표는 언제?"
"내일 저녁 8시로 잡아. 9시 뉴스에서 국민들이 볼 수 있도록."
"예, 대통령님."
곽 비서가 허리를 숙인 후, 집무실을 나섰다.
대한일보 사회부.
"이봐, 최 기자."
"응? 왜 불러?"
"자네 전화 왔어!"
고개를 돌려보니 자기 책상 위 전화기가 울리고 있다.
동료 기자와 잡담을 나누던 최 기자는 재빨리 전화기로 다가갔다.
"대한일보 최창명 기자입니다."
―이봐, 외신 봤어?
전화기 너머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동양일보의 김 기자였다.
"응? 왜 그래?"
―지금 당장 외신 확인해봐. 난리가 났어!
"뭔데?"
―일단 확인해봐. 뉴욕 타임즈와 윌 스트리트 저널 아시아판 기사야!
최창명은 김 기자의 말에 재빨리 컴퓨터를 켰다.
야후가 등장한 후, 온라인으로도 미국의 최신 뉴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이게 뭐야?"
최창명이 기사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대한일보 사회부 부장 지승태가 뛰어들어왔다.
"난리 났다. 지금 CNN 틀어봐!"
"예?"
"어서!"
"예! 부장님."
사무실 한쪽에 놓여 있는 TV를 키고는 CNN채널로 돌렸다.
화면 속에 등장한 백인 여성이 서울의 남대문을 배경으로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잠시 후, 뉴욕에 위치한 방송국 데스크와 여성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미…미친!"
최창명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당장 출동해!"
지승태의 명령에 사회부 기자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박 대통령이 화가 난 얼굴로 석간을 책상 위에 던졌다.
"얼마 남았어?"
"그…그게 두 시간 후입니다."
"장우현으로 바꿔!"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그리고, 차 장관 불러."
"예, 대통령님."
곽 실장이 고개를 숙였다.
장우현은 검사 고검장 출신으로 십년 전 검찰을 나왔고 지금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기용 의원의 청탁 때문에 물먹을 뻔 했지만 언론보도 덕분에 원래대로 법무부 장관이 된 것이다.
'차 장관을 부르다니. 대통령님께서 어지간히 화가 나신 모양이군.'
차장관은 새로 임명될 장관 인선이 발표되면 일주일 후에는 전직 장관이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른다는 것은 당장 검찰 수사에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릴 모양이었다.
'김대호도 끝났군.'
곽 실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군대 내 사조직을 단칼에 날려버린 대통령이었다.
이번에는 아무리 검찰에 끈이 있어도 도망갈 구멍이 없어 보였다.
* * *
외신에서 터지자 국내의 모든 언론들에 취재 열풍이 불었다.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이번 일을 보도했다.
오죽하면 저녁 9시 뉴스 헤드라인이 새 내각의 개각이 아니었다.
네 사람의 범죄 행각에 대한 뉴스 뒤로 밀렸던 것이다.
이들의 범죄 행각에 전 국민이 분노했다.
특히나 외신에서도 보도가 되었다는 사실이 국가적인 망신이라며 더욱 분노를 부채질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성공으로 인해 국민들의 자부심이 상당할 때였다.
그런 자부심에 오물을 끼얹는 일이었다.
누구의 제보인지 이들의 범죄에 대한 내용들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마약 파티, 데이터 약물, 강간, 비디오테이프, 젊은 대학생과 연예지망생의 자살.
어떻게 알았는지 유명 변호사와 정신과 전문가들이 피해자들에게 접근해서 치료와 고소를 지원했다.
난리가 난 것은 경찰과 검찰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지시라는 말에 대검 중수부가 나섰다.
국내 언론을 외신이 계속 불을 지폈고, 대통령이 나서자 수사 상황을 매일 같이 보도했다.
네 사람의 부모들이 음으로 양으로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김대호와 장호걸은 검찰의 별건 수사에 걸려들었다.
별건 수사는 사실 검찰의 오랜 악습이다.
손보려고 작정한 자들에 대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털이식으로 수사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특별지시사항이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단단히 잘못 걸린 셈이다.
결국 검사 시절부터의 죄들이 드러나 조폭이던 장호걸의 청탁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이후 국회의원시절, 건설사 사장이 된 장호걸의 돈으로 선거 활동을 한 사실도 밝혀졌다.
결국 김대호는 스스로 대한국당을 탈당해야 했다.
이후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뇌물수수죄로 감방으로 직행했다.
장호걸의 건설회사는 압수수색과 세무조사를 당했고, 역시 뇌물죄로 감방에 들어갔다.
태우전자의 사장이던 최민수는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검찰이 별건 수사를 진행해서 정치권과 언론사에 뇌물을 건넨 혐의로 감옥에 처넣었다.
TM엔터테인먼트 사장도 별건수사에 걸려 뇌물청탁혐의로 감옥에 갔다.
그리고 투자자들과 은행권에서 빌린 돈을 갚으라는 독촉에 회사가 팔려나갔다.
회사를 인수한 것은 강혁이었다.
앞으로 한국의 연예계가 세계를 휩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강혁이 나선 것이다.
강혁은 막대한 자본과 미래지식을 통해 제대로 된 연예 회사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당사자인 네 사람의 말로도 비참했다.
병원에서 구치소로 옮겨졌던 네 사람은 1심 법정에서 법정 구속을 당했다.
네 사람 모두 마약 성분이 몸에서 검출되었다.
자신들의 범죄를 입증하는 강간 비디오테이프도 검찰에 익명으로 전달되었다.
변호사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증언도 이어졌다.
자살한 대학생과 연습생의 유족들의 비통한 심정을 담긴 기자회견과 진정서도 제출되었다.
네 사람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대통령의 단호한 입장표명이 이어지자 법원도 단호했다.
"죄질이 극히 중하여 11년 형에 처한다."
네 사람에게 1심 법정에서 내려진 선고였다.
마약은 가중처벌 받아 4년, 불법 촬영 1년, 강간도 가중처벌로 7년.
총11년이었다.
현재 법으로 줄 수 있는 최고형이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많은 건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