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91화 (91/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91화

91화

"흐음, 우리 나 경장님, 잘 하고 계시려나?"

"뭐? 나 경장? 크크, 그 숙맥이 연애를 한다고? 아서라. 얼마 못 가 깨질 거다 그 커플."

오늘 야간 근무를 함께 서게 된 배덕만 경사가 나경필을 비웃었다.

"그런 소리 마세요. 틀림없이 잘 될 거예요."

"풋, 네가 나 경장을 몰라서 그래. 지금까지 선이든 소개팅이든 잘된 적이 없어요."

"이번엔 모르죠."

강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배덕만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내기할까?"

"내기요?"

"그래, 앞으로 한 달 안에 나경사가 깨진다에 만원을 걸지."

"좋아요. 저는 안 깨진다에 만원 겁니다."

"크크, 점심값 굳었다."

"후회하실 걸요?"

"절대 그럴 일 없다. 이 녀석아. 내가 나 경장을 안 지가 얼만데?"

배덕만이 강혁을 비웃었다.

"나중에 웃는 자가 누구일지 두고 보자고요."

"흐흐, 그래 두고 보자."

파출소 문이 열리며 오토바이 모자를 쓴 남자가 들어왔다.

"치킨 시키셨죠? 양념 반 간장 반 맞죠?"

"예, 맞습니다."

강혁이 치킨을 받아들고 돈을 계산했다.

"치킨이 왔구나, 치킨이 왔어."

배덕만이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함께 야간근무를 서게 된 근무조들은 모두 네 사람이었다.

모두 모여서 테이블 위에 치킨을 펼쳐 놓고 먹기 시작했다.

"이야, 누군지 몰라도 신라 치킨 사장 떼돈을 벌었겠다."

배덕만이 다리 하나를 잡으며 싱글벙글이다.

"신라 치킨요? 진짜 맛있죠?"

강혁과 동기인 신하림 순경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두말하면 잔소리지."

신하림과 같은 근무조인 두 해 선배 최경택 순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신라 치킨은 6개월 전, 갑자기 한국에 등장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치킨 전문점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에 다양한 메뉴가 특징이었다.

이미 양념치킨이 등장한 후였고, 간장치킨도 경상도 지역에서 존재했다.

하지만 신라 치킨은 지금까지 등장했던 양념치킨과 간장치킨의 맛을 초월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강혁은 미래에 등장하는 치킨의 맛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에 엄청난 자본을 들여 연구실을 꾸리고 결국 맛의 재현에 성공했다.

게다가 마늘치킨, 파치킨, 닭강정, 바베큐치킨, 찜닭까지 이후 등장할 모든 치킨들을 구현했다.

여기에 더 다양한 맛을 위해 연구 개발을 계속 지시했다.

신라 치킨의 등장은 업계에 큰 바람을 일으켰다.

기존의 켄터키치킨과는 전혀 다른 한국형 치킨의 탄생이라며 각광 받았다.

"6개월 만에 벌써 6번째 가게를 열었다고 하더라. 그 덕에 우리도 먹는 거지만."

배덕만이 치킨의 맛에 감탄을 터트리며 말했다.

"대단하네요. 한 달에 가게 하나가 새로 생겼네요."

최경택이 맞장구를 쳤다.

신라 치킨의 인기는 정말 대단해서 식사 때가 되면 긴 줄이 가게 앞에 섰다.

"그거 알아? 이번에 마늘치킨이 나왔는데, 그게 또 기가 막혀요."

"마늘치킨요?"

강혁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한번 먹어봐. 반할 걸?"

"우리 다음에 시켜보죠!"

신하림이 눈을 번뜩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하자고."

배 경사가 흔쾌히 말했다.

강혁은 모두의 반응에 속으로 웃었다.

자신의 기억대로 치킨가게는 대박을 터트리고 있었다.

미래에 한국인의 입맛은 물론이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국형 치킨이다.

'올해 외환위기가 닥친다. 많은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오지.'

이들 실업자들이 자영업으로 전환하면서 프랜차이즈의 갑질에 희생당했다.

강혁은 자신이 직접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이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에 오자마자 '신라'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가게를 오픈했다.

신라 레스토랑은 그중 하나였다.

회귀 전 한국에 미식 열풍이 불었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계획한 일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후 국민 소득이 더욱 늘면서 자연스럽게 미식 붐이 일어나게 된다.

음식 프랜차이즈는 분명 성공할 아이템이었다.

현재 강혁은 신라 치킨, 신라 피자를 서울에서 먼저 선보이고 있었다.

이후 한식 프랜차이즈도 준비 중이었다.

음식점이 다가 아니었다.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또 하나의 국민 음식, 아니 음료.

커피 전문점도 계획에 있었다.

스타벅스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 토종 커피 전문점을 전국적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미래의 한국은 국민 대다수가 커피를 즐기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강혁은 중저가 브랜드로 단숨에 전국적인 기업을 만들 자신이 있었다.

스타벅스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클 수 있었던 전략을 벤치마킹할 생각이다.

아직 스타벅스가 시작도 하지 않은 전략을 말이다.

그의 눈은 국내를 넘어 해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 브랜드를 올해가 가기 전, 대중의 기억에 새겨놓을 것이다.

이를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계획하고 있었다.

내년 외환위기로 인해 본격적인 정리해고의 광풍이 불게 된다.

그때 이들 브랜드로 전국적인 프랜차이즈 가맹점 모집을 생각하고 있었다.

'외환위기는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희생을 최대한 줄이는 수밖에.'

강혁은 신라 치킨을 맛있게 먹으며 약간 침울해졌다.

국민들이 어떤 고생을 하게 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생스럽지만… 막아서 될 일도 아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내부의 모순을 없애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이후에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불면서 노동시장이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된 점도 있다.

강혁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좋은 점은 살리면서 나쁜 점은 최대한 줄일 방법을 생각하자니 골치가 아픈 것이다.

"이놈아, 젊은 놈이 웬 한숨이냐? 그것도 맛있는 거 먹으면서. 뭔 고민 있어?"

"아, 아닙니다."

강혁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래? 뭔 일인지는 모르지만 고민 있으면 말해!"

"예, 배 경사님."

사실 배덕만은 말뿐이라는 것을 강혁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하고 있는 고민을 배덕만이 들어도 해결책을 줄 수 없었다.

'자, 고민은 그만하고 업무나 보자.'

다음 날, 일요일 오전 8시 30분.

파출소 문이 열리며 9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빼꼼히 얼굴을 들이민다.

양갈래로 머리를 땋았고, 입은 옷은 깨끗하지만 오래됐는지 허름해 보인다.

여자아이가 방문한 것은 마침 강혁이 근무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였다.

함께 당직근무를 섰던 배덕만이 무슨 일인가 싶어 책상 너머로 얼굴을 내민다.

"뭐~냐?"

걸쭉한 목소리에 여자 아이가 움찔거린다.

"응?"

배덕만이 아이의 행동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아이가 머뭇거리더니 세 살 정도 더 어려보이는 남자아이와 함께 들어왔다.

둘 모두 깨끗하고 밝은 풍의 옷을 입었고, 여느 아이들과 다름이 없었다.

다만 표정이 조금 어두워 보였다.

"무슨 일이냐? 꼬마야?"

배덕만이 물었다.

그런데 여자아이가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배덕만을 머뭇거리며 쳐다볼 뿐이다.

배덕만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이 시간에 어른도 없이 아이 둘이 파출소를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싶다.

"꼬마야, 무슨 일이니?"

주간 교대근무자인 박경수 경장이 물었다.

이제 막 근무 교대가 이뤄진 경찰들이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제복을 입은 파출소 근무 대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스런 표정을 지었다.

8시 30분이면 사실 이른 아침이다.

이런 시간에 아이 둘이 왜 파출소를 온 것일까?

그때 마침 볼일을 다 본 강혁이 돌아왔다.

"응? 어린 손님이네? 무슨 일이니?"

강혁이 다정한 말투로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귀여운 여자아이가 잠시 고개를 돌려 강혁을 바라본다.

그 눈빛에 힘이 없다.

여전히 머뭇거릴 뿐 말이 없다.

그는 아이의 행색과 얼굴 표정을 살폈다.

'…이 아이들…….'

아이들이 말이 없자 배덕만은 짜증이 났는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얘들아, 여긴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에요. 노는 곳이 아니야. 할 말이 없으면 집으로 돌아가!"

강혁이 갑자기 배덕만의 어깨를 손으로 탁하고 집었다.

"뭐, 뭐야? 인마?"

"하하ㅡ 배 경사님. 그래도 어렵게 왔는데 무슨 일인지나 물어보죠."

자신을 쏘아보는 배덕만에게 강혁이 너스레를 떨었다.

"에잉~ 알아서 해라."

강혁이 여자아이에게 다가갔다.

"우리 친구 예쁘게 생겼네? 이름이 뭐예요?"

강혁의 물음에 여자아이가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연다.

"…연. 지."

강혁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너는?"

강혁이 웃으며 뒤에 서 있는 남자아이에게 이름을 물었다.

"박. 민. 우."

누나의 뒤에 숨어서 이름만 짧게 말했다.

강혁을 경계하는 표정이다.

"너희들 무슨 일로 온 거니? 아저씨한테 말해봐."

"…그게… 그……."

연지가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다문다.

"괜찮아. 무슨 일이든 다 말해봐. 이 아저씨가 들어줄게."

강혁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다시 한 걸음 더 다가가자 연지가 갑자기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민우의 손을 잡고는 아예 몸을 돌려 문가로 달려갔다.

"그래, 볼일 없으면 돌아가. 여긴 놀러 오는 곳이 아니야. 알겠지?"

배덕만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타깝게도 다른 경찰들 표정 역시 별다르지 않다.

다들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뿐 다시 물어볼 생각이 없다.

그러나 강혁은 아이들에게 급히 달려갔다.

'안 돼, 이 아이들은 틀림없이…….'

"얘, 잠깐만!"

강혁이 문을 여는 연지의 손목을 잡았다.

"그냥 갈래요."

연지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 강혁을 쳐다보았다.

"너… 엄마가 때렸구나? 맞지?"

그의 말에 연지와 민우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연지가 강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군.'

강혁은 가슴이 아파왔다.

아이들의 겉모습은 여느 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이 어둡고 눈이 죽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팔의 움직임이 정적이었다.

이 또래의 아이들은 팔의 움직임이 활기차고 동적이다.

그에 비해 두 아이의 팔 움직임은 전혀 달랐다.

강혁이 두 아이들을 살펴보고 가정폭력을 짐작했던 결정적인 이유다.

다시 한 번 아이들의 모습을 살폈다.

과잉기억증후군인 강혁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 기억들은 어떤 계기가 있으면 다시 재생되거나 뜬금없이 떠오른다.

연지와 민우의 얼굴을 살펴보자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강혁의 눈가가 파리하게 떨렸다.

'이 아이들은?'

강혁의 의식이 순식간에 과거의 기억 속으로 날아갔다.

*     *     *

"업무협조 들어왔어. 나 경장, 강 순경하고 같이 사건현장으로 출동해."

"예, 소장님."

강혁은 순찰차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무슨 사건인지 아직 못 들었지?"

나경필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들었어요. 아동폭행치사 사건이라면서요."

"맞아, 조금 전에 병원에서 9살짜리 여자아이가 숨졌는데 갈비뼈 서른 군데가 부러졌단다."

"뭐라고요?"

"부모는 계단에서 굴렀다는데 의사가 폭력을 의심해서 경찰에 신고했어."

"미친!"

강혁이 운전대를 돌리며 엑셀을 밟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