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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92화 (92/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92화

92화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하자 이미 제복을 입은 경찰들 여러 명이 도착해 있었다.

강혁과 나경필이 해야 할 일은 현장보존업무를 돕는 거였다.

사건현장은 일반 아파트 가정집이었다.

집 안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매뉴얼에 따라 집 앞에 노란색 폴리스 라인을 쳤다.

둘은 함께 아이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강혁은 우선 책상에 있는 물건들을 살폈다.

아이들의 낙서나 그림이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강혁은 커다란 파란색 플라스틱 박스 안에 아이들의 물건들을 챙겼다.

책상 위에는 사진이 있었다.

시간이 일제히 멈추었다.

강혁의 의식이 사진 속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9살짜리 여자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교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강혁이 현실에서 손목을 잡고 있는 바로 그 여자아이 연지였다.

'이런 빌어먹을!'

강혁의 의식이 사진을 보면서 놀라고 있을 때였다.

기억 속의 나경필이 사진 속 연지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충격을 먹은 표정이다.

멍하게 사진을 바라본다.

"하ㅡ 기가 막혀서!"

그때 잠바를 걸친 낯익은 형사가 연지의 방으로 들어왔다.

북천경찰서 수사팀 형사 박형석이다.

"왜? 무슨 일인데?"

박형석 형사에게 동기인 나경필이 물었다.

"그게, 알고 보니 오늘이 죽은 아이 소풍날이야."

"예? 소풍날이라고요?"

강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 안에서 증거품을 모으고 있던 경찰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박 형사를 바라보았다.

"계모한테 딸이 또 한 명 있는데, 친 딸이지. 그 아이는 오늘 소풍을 보냈다는 거야."

"그럼 이 아이는?"

나경필이 사진 속 연지를 바라보며 묻는다.

박형석 형사가 고개를 내저었다.

"학교에는 감기몸살이라고 했다는군."

"아이는 어떻게 죽은 거지?"

나경필이 떨리는 표정으로 물었다.

"부검의 소견으로는 50kg 이상 나가는 성인이 위에서 아이의 몸을 수십 차례 밟았단다."

"……!"

방 안에 있던 경찰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이후 사건조사를 통해 알게 된 연지의 사망 이유는 기가 막힌 것이었다.

연지가 죽은 날은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날이었다.

그런데 현장체험학습 날, 계모는 자신의 아이만 학교를 보낸 것이다.

연지는 감기몸살로 아파서 결석한다고 담임에게 전화했다.

계모가 전화하는 것을 연지는 옆에서 듣고 있었다고 한다.

전화가 끝나자 자신도 현장학습에 보내달라고 울면서 애원을 했다.

그리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 연지는 이불로 감싸인 채 수십 차례에 걸쳐 짓밟혔다.

어른의 몸무게가 어리고 어린 여자아이의 몸뚱이에 가해진 것이다.

이후 계모는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으나 결국 사망하고 만다.

당시 검시관에 따르면 갈비뼈 수십 군데가 금이 가고 부러졌다고 했다.

온몸에는 시커멓게 변한 멍으로 뒤덮여 있었고, 오래된 상처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미 오래 전에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골절 상처가 다수 발견됐다.

병원 기록에는 아이의 부주의로 인한 골절상으로 적혀 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당시에도 아이에게 지속적인 폭행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빌어먹을!'

강혁의 의식이 기억 속에서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을 쳐다보았다.

[6월10일 금요일]

'오늘은 6월5일 일요일이다. 5일 후에 죽는다는 건가?'

의식 속의 시간이 다시 움직였다.

'이 아이는 앞으로 며칠 후에 죽는다!'

의식의 세계에서 돌아온 강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배 경사님!"

강혁이 소리를 높였다.

"아니, 애들 몸에 멍 좀 있는 것 가지고 이 난리야?"

배덕만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혁이 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것 같다며 두 아이의 팔과 다리에서 찾은 멍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두 아이를 파출소 내 사무실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과자를 주었다.

아이들이 사무실로 들어간 후, 강혁이 나오자 배덕만이 그에게 화를 냈다.

"분명히 이게 다가 아닐 겁니다."

강혁이 배덕만에게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파출소의 막내 경찰로 항상 선배들의 귀염만 받던 모습과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

그런 강혁을 보며 배덕만이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야, 너 이런 사건이 얼마나 골치 아픈 건지 알아?"

"그래, 막내야. 애들 때는 원래 다 맞으면서 크는 거야. 민법915조 징계권 몰라?"

교대 근무를 위해 온 박 경장이 강혁을 타이르며 말했다.

민법915조는 부모가 아이에게 훈육을 위해 징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아뇨, 선배님. 그런 단순 훈육차원이 아닐 겁니다. 이 아이들이 그동안 받은 고통은……."

강혁이 진지하게 말하자 박 경장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네가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아. 네가 직접 보기라도 했냐?"

박 경장이 강혁의 황당한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소리를 높였다.

"애들이 파출소까지 찾아 왔잖아요. 왜 그랬겠습니까? 참다, 참다 안 되니까 온 거 아니겠어요?"

강혁이 맞받아쳤다.

그동안 막내라고 선배들 말에 일언반구 대든 적이 없던 강혁이 소리를 높인 것이다.

잠시 파출소 안에 정적이 흘렀다.

모두들 그가 이럴 줄은 몰랐기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허허, 거참. 알았다 알았어. 그런데 알고 있냐?"

박 경장이 허허 웃더니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말을 이었다.

"이런 거는 잘못 건드리면 벌집에 대가리를 쑤셔 넣는 거나 다름이 없다. 이 녀석아!"

"아이고, 놔나 봐. 우리 막내가 어떻게 하나 한 번 보게."

배덕만이 풋하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 뭐하시는 거예요. 다들 안 말리시고."

강혁의 2년 선배인 김 순경이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 역시 배덕만과 박경수와 같은 생각이었다.

강혁이 짚을 들고 불길로 뛰어드는 것이 뻔히 보인 것이다.

"얌마, 선배들이 이런 일 안 겪어 본 것 같아? 이거 잘못 건들면 너만 다쳐!"

김 순경이 강혁을 향해 소리를 높이며 말을 이었다.

"그쪽 부모한테 민원 들어오고, 난리난다."

"그래, 좋은 말 할 때 그만 둬라. 이건 기소도 안 돼."

배덕만이 코웃음을 쳤다.

"기소가 될지 안 될지는 해봐야 아는 거 아닙니까?"

강혁이 선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멍청아, 다 사실이고, 진짜 학대나 폭행이 있었어도 웬만하면 검사님이 도로 돌려보낸다."

배덕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맞다. 막내야. 네가 아직 몰라서 그래. 검사들도 이런 사건은 대부분 돌려보낸다니까."

김순경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중에 너 혼자 그쪽 부모한테 욕 처먹고, 민원 들어오고……."

"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 진짜 열 받았으면 아마 고소도 할 걸?"

배덕만이 한쪽 다리를 흔들며 빈정거렸다.

"네 경찰생활. 시작하자마자 끝날 수도 있다."

박경수 경장이 강혁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강혁은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제가 책임집니다."

"뭐?"

배덕만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일 잘못되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강혁은 황당해하는 선배들을 뒤로 하고, 전화기를 들어 아동청소년계로 전화를 걸었다.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선배들이 한 말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에 화가 났다.

지금은 97년도다.

아동학대가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며 사회의 공분을 산 것은 2000년대가 되어서였다.

그러고도 아동학대에 대한 특례법이 제정된 것은 다시 10여년이 지난 후였다.

지금은 말해 뭐하겠는가?

이들이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의 서글픈 현실인 것이다.

더 아픈 것은 강혁이 회귀 전 시대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2014년 아동학대에 대한 특례법이 만들어진 후로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강혁은 그런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

'얼어 죽을~ 진짜 젠장할이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파왔다.

'좋아, 한 번 해보자. 바꿔 보는 거야. 내가 가진 힘으로…….'

강혁의 눈에 새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     *     *

"존, 자주 전화를 주니 반갑군 그래."

"죄송합니다. 귀찮게 해드리는 건 아닌지?"

"무슨 소리야. 난 오히려 아주 반가운데. 그래 이번에는 무슨 일인가?"

커트 와이엇이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커트, 언론 쪽을 움직여 주셨으면 해요."

"흐흐흐, 지난번엔 제법 화려했지. 그래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사실은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알게 됐어요."

강혁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가 부모의 학대로 죽을 수도 있어요."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지. 말만 하게."

커트는 강혁의 설명에 상당히 격분했다.

한국에서 수많은 심장병 아이들의 수술을 도왔던 커트였다.

아동학대에 대한 강혁의 설명에 상당한 우려를 표했다.

미국은 이런 문제에 대해 엄벌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럼, 부탁드려요. 커트."

"염려 말게. 바로 움직이지."

커트의 말에 강혁은 안도하며 전화를 끊었다.

*     *     *

"자, 이제 됐다."

짧은 단발머리에 예쁘장한 용모를 한 젊은 여경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두 아이의 옷을 입혔다.

여경의 이름은 하수연이다.

잠시 후 두 아이와 함께 하 순경이 사무실에서 나오자 강혁이 물었다.

"선배님, 아이들은 어떻던가요?"

강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강 순경, 추측이 맞았네요."

아직 20대 후반에 불과한 젊은 여경의 얼굴에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으로 가득했다.

한쪽 눈가에는 살짝 눈물도 보인다.

파출소 안의 선배들도 하 순경의 말에 살짝 당황한 표정이다.

"그, 그래요?"

"하… 온몸이 멍투성이야. 아무리 계모라고 해도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그래."

어린 여경의 목소리가 분노로 휩싸였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 수 있었다.

하 순경의 말에 파출소 선배들의 낯빛이 변했다.

"그 정도로 심해?"

박 경장이 하수연에게 물었다.

"예, 아주 피멍이 들었네요."

"그래?"

조금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쯧,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어."

배 경사가 말했다.

"난 어릴 때 안 맞아 보고 큰 줄 알아?"

"그게 다가 아니에요. 이 애는……."

하수연이 배덕만의 말에 화가 난 표정으로 민우를 바라보았다.

"등이 벌겋더라구요. 세상에, 어제 저녁에 엄마란 사람이 애 등에 뜨거운 물을 갖다 부었어."

"아니 왜?"

하수연의 말에 박 경장이 놀라며 물었다.

"그게 그 엄마란… 아니, 그 표현 쓰기도 싫어. 그 여자가……."

흥분하며 말한 내용은 모두를 경악에 빠뜨렸다.

"뭐? 밥을 늦게 먹었다고?"

"맞아요. 그게 말이 돼요? 그리고 이틀을 굵기고 청양고추 10개를 먹였답니다."

"허……."

배덕만도 그제야 조금 심각성을 느꼈는지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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