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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93화 (93/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93화

93화

#25장 어린 방문자 (2)

"하…아."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지만 직접 들으니 강혁은 가슴이 저려왔다.

저 작은 몸에 때릴 때가 어디 있다고 피부가 검게 변할 때까지 모질게 손을 댔단 말인가?

게다가 겨우 밥을 늦게 먹었다고 등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는 말인가?

이틀을 굶기고 청양고추를 먹였다는 말에는 어이가 없는 것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숫제 고문이 아닌가?

강혁은 화가 치밀어 올라 어금니를 앙 다물었다.

"사진은 찍었으니, 이제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도 받고 의사 소견서도 받아야겠네요."

"상처가 심한가보죠?"

강혁의 물음에 하 순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같이 가죠."

하 순경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제부터 당직근무 서지 않았어요? 피곤할 텐데?"

사실 강혁은 지금부터 휴무였다.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 가지고."

하수연은 강혁의 눈빛을 보고 이대로 돌아갈 사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호호, 우리 후배님 알고 보니 아주 열혈 경찰이었네?"

"아닙니다. 이 정도는 누구나……."

"어휴, 칭찬할 때는 솔직하게 받아들이라고요."

하수연이 웃으며 말했다.

"아, 예. 선배님."

"선배라~ 우리 나이도 같던데 이제 서로 말 놓자. 응?"

강혁은 한 기수 위인 하수연의 말에 그제야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까?"

하수연이 그의 등을 툭 쳤다.

"그럼 이제 가자고."

그녀는 강혁과 말을 놓게 되자 기분이 좋았다.

이전부터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키도 크고, 균형 잡힌 몸매에 나름 괜찮게 생겼다.

북천경찰서의 젊은 여경들 사이에서 강혁은 이래저래 입소문이 돌고 있었다.

"배 경사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어여 가봐."

배덕만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갯짓을 하며 배웅했다.

그대로 배덕만은 집으로 갈 채비를 했다.

'뭐야, 이 선배는?'

파출소 막내인 강혁과 달리 이번 일에 시큰둥한 표정인 배덕만에게 하수연은 혀를 찼다.

사실 그에 대한 경찰서 내 동료들의 평가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윗사람에게만 잘 보이려 알랑 방구 끼고, 동료나 아랫사람은 무시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여경들에게는 음담패설에 성희롱이 잦았다.

몇 번이나 진정이 들어갔지만 그때뿐이라, 배진상이라며 뒤에서 씹을 정도다.

한편 강혁보다 한 기수 위인 하수연은 강혁이 소속된 북천경찰서 아동청소년 계다.

경찰서에서 당직 근무 중 강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은하파출소로 달려왔다.

그녀는 나름 한 인물 하는 귀여운 용모로, 경찰서 내에서 총각 경찰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하 순경은 아이들과 함께 강혁이 운전하는 순찰차를 탔다.

"근처 소아과로 가요."

하순경이 말했다.

"아뇨, 좀 더 큰 병원으로 가죠."

"……?"

"애들 엑스레이도 한 번 찍어 봤으면 해서요."

강혁이 말했다.

"쯧, 이 아이들 몸에 상처가 한두 군데가 아니군요. 이런 건 구른다고 생길 상처가 아니에요."

두 아이를 진찰한 40대 초반의 중년 의사가 어이가 없는지 혀를 찼다.

"여기를 보세요."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여기 화살표 찍은 부위들이 모두 골절이거든요."

"그 말씀은?"

하수연이 물었다.

"뼈가요, 한 번 부러졌다가 다시 붙는데 6개월이 걸리거든요."

"……."

"그런데 중간 중간에 새로운 뼈가 자란 부위와 붙은 자국이 있어요."

"그렇다면?"

"이건 옛날에 생긴 상처, 저건 나아가는 상처, 이건 얼마 전에 생긴 상처예요."

아직 작은 몸집에 불과한 두 아이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옛날에 생긴 상처는 최소한 6개월 전에 생긴 겁니다."

"……!"

의사의 말에 하수연의 얼굴이 놀람과 고통으로 물들었다.

'오랫동안 상습적으로… 개자식들'

강혁은 의사의 말에 남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계모란 여자와 남편이란 작자들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 인간으로서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렇게 학대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연지를 발로 밟아 죽였다.

9살짜리 여자아이를 발로 밟아서 갈비뼈 30군데를 부러뜨려 죽인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강혁은 머리가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일단 멍 자국 같은 피부상처는 치료가 끝났습니다만 애들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의사가 안타까운 얼굴로 물었다.

"그게… 쉽지 않아요."

하수연 순경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97년도.

2000년대에 들어서야 아동학대 사건들이 매스컴에 노출되었다.

그리고 범죄 예방을 위한 법률은 2014년이 되어서야 제정된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줄여서 아동학대특례법.

그러나 특례법 제정 이후로도 아동학대 범죄는 계속 되었다.

법과 제도가 많이 정비되긴 했지만 여전히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점들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97년도는 그런 법조차도 감지덕지한 상황이다.

그러니 하 순경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이다.

특례법이 없는 지금은 제도적으로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금은… 우리 쪽에서 조치를 해도 결국은 원 가정으로 다시 돌려보내야 해요."

"예? 아니 이 아이들을 도로 돌려보낸다고요?"

중년의 의사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법이 그래요."

하수연 순경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허허, 그것 참. 쯧쯧."

의사 선생님이 다시 한 번 엑스레이 사진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생님, 저기 이 사건을 기소하게 되면 지금 해주신 말씀 그대로 증언을 부탁드립니다."

"아, 그럼요. 걱정 마세요. 꼭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순경이 아이들을 다시 불렀다.

"연지야, 민우야. 언니랑 경찰서에 가자. 언니가 맛있는 과자도 주고 짜장면도 사줄게."

"짜장면요?"

민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야, 신난다!"

민우가 일어나서 양 손을 들고 진찰실 안을 뛰었다.

연지도 얼굴을 활짝 폈다.

"그렇게 좋냐?"

"예, 아저씨."

연지와 민우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저씨가 탕수육도 쏜다."

강혁이 웃으며 말했다.

"야호! 탕수육, 짜장면!"

아이들 입가에 까르르 웃음꽃이 피어났다.

'세상에 저런 천사 같은 애들을…….'

강혁은 마음이 저려왔다.

―예? 복지 시설을 만들라고요?

이규철이 다시 되물었다.

"아뇨, 그건 시간이 너무 걸려요. 일단 먼저 사들여요.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알파 팀에게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제 지시를 따르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일단 그 계모를 구속시켜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 아이들을 돌볼 곳도 필요해.'

강혁은 5일밖에 시간이 안 남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법이 안 된다면, 법을 초월한 힘을 사용할 수밖에…….'

강혁은 이규철에게 건 전화를 끊었다.

북천 경찰서 아동청소년계로 짜장면과 탕수육이 배달 왔다.

그리고 보니 시계가 이미 12시가 다 됐다.

"야, 짜장면이다."

"민호가 제일 좋아하네!"

하수연이 웃으며 말했다.

"연지야, 너도 많이 먹어라."

"예, 아저씨."

연지가 배시시 웃는다.

천사 같은 미소다.

이런 아이가 계모의 폭력으로 죽는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강혁은 울컥하는 마음을 숨기며 짜장면을 비볐다.

다시 시계가 1시를 가리켰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진술을 받던 하 순경이 아이들과 함께 조사실에서 나왔다.

"잘 끝났어?"

강혁이 물었다.

그런데 하 순경의 표정이 이상하다.

눈가가 붉게 물들고 얼굴이 분노로 가득했다.

"그 계모란 사람… 어떻게 같은 사람으로서 이럴 수가 있어?"

"아니, 왜 그래?"

하수연에게 다가가 진술서를 받아들었다.

"이런… 이 인간이 진짜!"

강혁은 한숨이 나왔다.

"세상에 아이가 오줌을 쌌다고 세탁기에 넣고 돌렸어!"

하 순경이 분노에 찬 얼굴로 말했다.

강혁도 신문 기사에서 본 내용이다.

당시 계모 채미라는 민우가 오줌을 쌌다는 이유만으로 5살짜리 아이를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다.

주어진 시간 안에 밥을 다 먹지 못하면 손가락으로 입을 찢거나 물을 대량으로 먹였다.

자신의 딸에게 아이들이 험한 말을 했다며, 팬티 차림으로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벌을 세웠다.

계단에 발을 대고 엎드려 뻗쳐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밀기도 했다.

게다가, 연지와 민우는 반드시 학교에서 대변을 누어야 했다.

만일 집에서 화장실을 가게 되면 변이 묻은 휴지를 입에 물고 있게 했다.

심지어 어떤 날에는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아이의 머리를 밀어 넣어서 연지는 기절을 한 적도 있다.

민우는 몸을 거꾸로 세워서 물이 담긴 욕조에 잠수를 시켰다.

"이건 고문이야. 고문. 나 이 사람. 진짜 콩밥 먹이고 싶어졌어."

하수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강혁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눈앞에 있으면 아무리 여자라도 몹시 때려주고 싶었다.

대체 어떤 정신이면 저렇게 작고 귀여운 아이들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강혁은 연쇄 살인 범죄자들을 수없이 많이 다루었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어린 시절의 학대다.

가정에서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성장해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단기적으로는 정서적인 행동 문제를 표출할 수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약물에 의존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성인이 된 후에도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보이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보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린 시절 오줌을 쌌다고 세탁기에 넣어져 돌려진 사람의 정신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강혁은 아이들에게 전문적인 치료와 따뜻하고 애정 어린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갈 건데, 어떻게… 같이 갈래?"

하수연의 말에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기다려. 하 순경."

30대 중반에 오늘 함께 근무를 서고 있는 이상복 경장이 하수연을 불렀다.

"왜 그러시나요? 이 경장님."

"자네, 아이들 진술 받을 때, 심 계장님한테 상황을 알려드렸는데 걱정하시더라."

"……."

"알고 있지? 이 일이 얼마나 민감한 일인지? 아무것도 못하고 상처만 받을 수 있어."

이 경장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하수연을 보았다.

"…할래요."

"응?"

"그래도… 할래요. 저 아이들 힘들어서 파출소까지 찾아온 아이들이에요."

하수연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으…음. 알았어. 그렇게까지 말하면 할 말 없다. 조심해."

"예, 이 경장님… 우리 그만 가자."

"그럼 가보겠습니다."

강혁도 이 경장에게 인사하고 두 사람은 순찰차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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