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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94화 (94/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94화

94화

딩동딩동~

"누구세요?"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벨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에는 그녀의 딸로 보이는 9살 남짓 된 여자아이가 스케치북에 색칠놀이를 하고 있다.

잠시 후 머리를 뒤로 묶고 평범하게 차려입은 여인이 아파트 문을 열었다.

"북천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채미라씨 되시나요?"

하수연 순경이 말했다.

"경찰서라고요?"

여자의 얼굴에 당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채미라씨 되시죠?"

"예.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이 집에 9살 박연지, 6살 박민우라는 아이가 있죠?"

하순경의 말에 채미라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말도 조금 더듬는다.

"맞, 맞아요… 그런데 애들이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나요? 지금 없는데… 무슨 일이죠?"

아침나절부터 아이들이 사라졌는데 찾을 생각도 없었던 여자다.

이런 사람이 과연 부모 자격이 있을까?

하 순경은 속에서 열불이 올랐지만 꾹 참고 말했다.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협조 바랍니다. 잠시 저희와 함께 서로 가시죠."

"예?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아동학대? 학대라니? 무슨 소리예요?"

하순경의 말에 채미라의 얼굴빛이 싹 변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서로 가서 말씀하시죠."

"이 사람들아! 대체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당신들 애들 안 키워 봤지?"

앙칼진 목소리가 모두의 귓전을 때렸다.

"애들 키우는 일이 쉬운 줄 알아? 말 안 들었다고 몇 대 때린 것 가지고 일 크게 만들 거야?"

채미라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가 더 올라갔다.

완전히 발악을 하는 목소리다.

집 안에 있던 아이가 놀랐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멀뚱멀뚱 쳐다본다.

아이의 얼굴에 두려워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저 아이는 또 대체 무슨 죄래…….'

강혁은 아이의 얼굴에 생긴 표정을 살피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 아이의 마음속에 오늘의 일은 씻기지 않는 정신적인 상처로 남을 것이다.

강혁은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여러 가지 서적들을 탐독했다.

트라우마에 대해 그만큼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도 드물었다.

"어머님, 저희는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에 조사를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순경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딱딱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순간 채미라가 고함을 빽 질렀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문을 쾅 두드린다.

"얼마나 참고 살았는데!"

"어머니. 진정하세요."

강혁이 나섰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체 누구얏! 신고한 년이!"

바락바락 발악을 했다.

하수경이 다시 나섰다.

"억울하신 것이 있으시면 서로 가셔서 충분히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조사에 협조 부탁드립니다."

차분한 음성과 살짝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한 번 발작을 한 채미라는 그 후로도 실랑이를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높였다.

아파트에 살던 이웃들이 무슨 일인지 몰라 문을 열고 하나둘 나왔다.

"어머님, 이러시면 나중에 더 힘들어 지십니다."

하수연이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설득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저희와 함께 서로 가셔서 협조해주시는 것이 나중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겁니다. 어머님."

"지금 이러시면 저희가 영장을 가져와서 강제로 모시고 갈 수도 있습니다."

강혁이 조금 딱딱하게 말했다.

일종의 강온전략이다.

"맞아요. 어머님. 지금 그냥 협조해 주시는 것이 훨씬……."

"흥, 내가 못 갈 줄 알아? 뭐가 겁나서! 갑시다. 가자고요!"

두 사람의 양온전략에 채미라가 마침내 넘어갔다.

하지만 서슬 퍼런 얼굴은 그대로다.

매우 기세등등하게 말한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얼굴이다.

하순경은 그제야 한숨을 쉬며 안도했다.

'역시 극도로 자신의 이익에 민감한 성격이군. 흥분한 듯 보이지만 계산에 밝다.'

강혁은 채미라를 관찰하며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파악했다.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하죠? 시간이 많이 걸리나요?"

채미라가 딱딱한 표정으로 쏘아붙이듯이 물었다.

"아뇨, 오늘은 간단히 조사만 받으시고 돌아가시면 됩니다."

하수연이 대답했다.

"알았어요. 그럼 조금만 기다려요."

그녀는 임의 동행에 동의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따라 나섰다.

*     *     *

"여기 검사들은 어떻습니까? 아동학대 건은 기소를 잘 해주시나요?"

채미라가 하순경에게 조사를 받는 사이 강혁이 이 경장에게 물었다.

"그게… 이런 사건은 사실 기소가 잘 안 돼."

강혁의 질문에 이 경장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렇군.'

강혁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검사나 경찰이나 다들 이런 사건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대부분 조사를 끝낸 후에는 다시 훈방 조치한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다시 원래의 부모에게 돌아가게 된다.

잠시 학대나 폭행이 멈춰질 뿐 더 은밀해지고 가혹해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에는 그러다 학대와 폭행에 의한 사망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다.

지금의 사법 시스템 아래서는 거의 방치상태나 마찬가지다.

배덕만 경사의 시큰둥한 표정이 떠올랐다.

'아동학대 사건이라 피한거야.'

파출소 안에 있던 다른 경찰들 표정이 떠올랐다.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을 보는 표정이었다.

이유는 알고 있다.

강혁 역시 경찰 생활을 하며 보고 들은 것이 많았다.

이런 사건이 왜 어려운지.

왜 경찰들이 겁을 내며 기피하는지.

아동학대특례법이 만들어진 후에도 이런 풍토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실제로 경찰대학에서 사례로 올려진 대표적인 일이 있었다.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부모와 아동을 분리조치 시켰던 경찰이 부모에게 고소를 당한 일이다.

문제는 학대 신고 이후, 신고자가 증언을 바꾼 것이다.

학대당한 아이도 증언을 바꾸었다.

아이들은 아무리 학대를 당하더라도 부모가 세상의 전부고 중심이기에 증언을 철회하는 경우가 많다.

신고자도 부모의 지인이라 나중에는 말을 바꾸는 일이 있다.

결국 해당 경찰은 정직을 당하고 법정 투쟁으로 빚까지 졌다.

이러니 어느 경찰이 책임감 있게 나서겠는가?

강혁은 미래에 벌어졌던 한 사건을 떠올렸다.

무려 세 차례에 걸쳐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이뤄졌던 사건이다.

그런데 경찰에서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고 풀어줬다가 결국 16개월 된 입양 아동이 죽었다.

강혁의 머리 속으로 악순환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휴, 그럴 줄 알았지만 역시나네."

하 순경이 진술을 마친 채미라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고 이 경장과 강혁에게 다가왔다.

"전면 부인?"

"맞아요. 이 경장님."

하수연의 말에 이 경장의 얼굴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니 아이들이 원하는 건 뭐야?"

"아이들은 보호를 원해요. 엄마가 다시는 자신들을 괴롭히지 않는 거죠."

하수연이 찹찹한 표정으로 말했다.

"애들 아빠는 이 상황을 알고 있나?"

"지금 지방으로 출장 갔다고 하네요."

채미라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인 박재호는 작은 건설사 직원이다.

"애들 아빠가 묵인하지 않았을까요? 애들 골절상이 벌써 여러 차례인데 몰랐을까요?"

강혁의 말에 이 경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문제에서 제일 어려운 점이 이런 거야. 어쩌면 이 일로 가정이 해체될 수도 있어."

이 경장의 말에 일순 침묵이 감돌았다.

"저도 생각해봤는데… 아이들을 이런 어머니 밑에 계속 둘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수연이 말했다.

"저도 구속시켜야 한다는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혁이 말했다.

"너희들 진짜 끝까지 가볼 생각이야?"

이 경장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예, 그럴 겁니다."

하수연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바로 말했다.

"좋아, 알겠어. 하지만 일단은 아이들을 다시 그 집으로 돌려보내야 해."

"그건 싫어요. 일단 확보한 증거로 영장 신청하면 안 될까요?"

"어디 줘봐."

이 경장이 하수연이 확보한 수사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음~"

"엑스레이 사진과 의사 선생님의 의견서, 아이들의 진술이면 어떻게 안 될까요?"

이 경장이 확보된 증거자료를 살펴 본 후, 하수연에게 말했다.

"지속적인 학대로 인한 골절상이라? 해 줄려나… 어려울 것 같은데."

이 경장이 얼굴을 찌푸렸다.

"김 검사님. 북천 아동청소년계에서 긴급으로 구속영장 신청이 들어왔는데요?"

"이리 줘봐요."

김형욱은 손 계장에게 영장신청서를 받았다.

신청서에는 아이에 대한 지속적인 학대 정황으로 인해 계모에 대한 긴급 구속의 필요성이 적혀 있었다.

"뭐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영장을 신청하고 있어?"

김형욱 검사는 영장신청서를 읽으며 코웃음을 쳤다.

"이것들이 겁도 없이. 민원에 고소로 시달려봐야 정신을 차리지."

김형욱은 영장신청서를 책상 한구석의 서류더미 속에 처박았다.

"아, 손 계장님. 그렇습니까?"

이 경장은 검사실에서 걸려온 전화기에 대고 다시 한 번 상황을 설명했다.

"예, 알고는 있지만 이대로면 학대 신고를 한 아이를 다시 그 집으로 돌려보내야하는데……."

이 경장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일을 크게 벌려요. 난 모르겠으니까 전화 끊어요.

손 계장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휴, 역시 안 되나보다."

이 경장이 똥 씹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안 돼요. 이 경장님. 진술서 보셨잖아요."

"……."

"그 사이코, 이대로 애들 돌려보내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하수연이 이 경장에게 절대 안 된다는 듯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난들 몰라? 하지만 영장신청을 안 받아 주겠다잖아. 제기랄."

"난 쟤들 절대 그 집으로 못 돌려보내요."

"어쩌려고?"

"제가 데리고 있을래요."

"야, 인마. 너 그러면 아동납치죄로 고소당해!

"흥, 해볼 테면 해보라지!"

"뭐, 뭐라고?"

이 경장이 기가 막힌 얼굴로 하 순경을 바라보았다.

"강혁, 너도 말 좀 해봐."

하 순경이 고개를 돌려 강혁을 찾았다.

"엇? 얘가 어디 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함께 있던 강혁이 보이지 않았다.

강혁은 몰래 이리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이리나, 전에 받아둔 번호 있죠."

―예, 회장님.

"거기로 전화해서……."

전화를 끊은 강혁은 다시 경찰서로 들어갔다.

청와대 비서실.

박 대통령을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곽대명 실장은 개인 전화로 걸려온 번호를 확인했다.

"무슨 일인가?"

곽 실장의 물음에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그에게 무언가를 설명했다.

곽 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전화를 끊은 후, 어딘가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 지검장, 나 곽 실장이네."

―아니, 비서실장님께서 무슨 일로 전화까지 주셨습니까?

아직 군사정권에서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이 지검장은 청와대에서 걸려온 전화에 바짝 군기가 잡힌 자세로 전화를 응대했다.

"음, 다른 게 아니고 나라를 위해 자네가 좀 움직여 줘야겠어."

―예, 예. 알겠습니다. 실장님.

이 지검장은 황송한 얼굴로 곽 실장의 전화를 내내 일어서서 받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어딘가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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