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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95화 (95/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95화

95화

"남부검찰청 형사3부 김형욱 검사입니다."

―북천경찰서 아동청소년계 하수연 순경입니다.

"응? 무슨 일이죠?"

―검사님, 왜 영장 안 해 주시겠다는 거죠?

"뭐죠? 손 계장이 설명 안 해 주던가?"

―설명이야 해주셨죠. 하지만 납득이 안 가잖아요.

"대체 뭐가 납득 안 간다는 건데?"

―아니, 그렇잖아요. 애가 골절상을 벌써 여러 번 당했는데… 아동학대 명백하잖아요.

"골절상이 아동학대 때문이라는 증거 있어?"

―의사 선생님이 아동학대라고 했어요.

"좋아,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체포영장이 왜 필요한데?"

―애들 이대로는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잖아요. 신고했다고 보복하면 어떻게 해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으면 그럴 일 없을 테니깐 걱정 마."

―어휴, 그 여자 완전 사이코예요.

"계모라도 결국은 걔들 엄마잖아? 언제든 결국 함께 살아야하는데 어쩌려고 함부로 체포야?"

―하지만 검사님.

"하지만이고 뭐고. 전화 끊어."

하수연이 사정을 했지만 김형욱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하! 이것들이 어디서 함부로 전화질이야?"

김형욱은 전화기를 들어 북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담당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장 과장님. 거기 하 순경이라고 있죠?"

―무슨 일인가요? 김 검사님?

"하 순경, 그 친구 좀 당돌하던데?"

―……?

"요즘은 순경들한테, 검사한테 영장 내놓으라고 전화질 하라고 교육시켜요?"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제가 조용히 타이르겠습니다.

"부탁 좀 해요.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확실히! 아시겠습니까?"

―아, 예. 그러죠.

장 과장은 자기보다 몇 살이나 어린 김 검사에게 질책을 당하자 굴욕감을 느꼈다.

"이 새끼가?"

벌떡 일어난 장 과장은 씩씩거리며 아동 청소년계 사무실로 이동했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김형욱 검사의 검사실 문이 열렸다.

김 검사가 고개를 돌리자 호랑이 박 차장검사가 최 부장검사와 함께 서 있다.

김형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직속상관과 그 상관의 상관이 자신을 죽일 듯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쩐 일이 십니까?"

"이 새끼야!"

최 부장검사가 날듯이 사무실 안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김 검사의 멱살을 잡았다.

퍼―억!

무릎으로 조인트를 까이는 동시에 뺨이 좌우로 날았다.

김형욱은 영문도 모른 채 순식간에 두 뺨이 벌겋게 물들었다.

"부, 부장님?"

"야, 이 자식아. 당장 법원에 영장신청하고, 경찰서로 보내! 딱 5분 준다."

"예?"

"동작 봐라!"

서슬 퍼런 김 부장 뒤로 화르륵 분노로 불타는 박 차장검사가 보인다.

김형욱은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알겠습니다."

번개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어디에 갔다가 온 거야?"

하수연이 마침 사무실로 들어오는 강혁에게 물었다.

"잠시 볼일이 있어서."

"그래?"

"그런데 얼굴 표정이 왜 그래?"

강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수연의 표정이 한참 안 좋았다.

"하 순경이 검사실로 전화까지 했다가 혼만 났다."

이 경장이 말했다.

"그래요?"

"그런데 걱정이다. 김 검사 그 친구 아직 젊은 놈이 성격이 지랄 같아서……."

이 경장은 여러 차례 김형욱 검사와 일을 같이 해본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니다 다를까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장 과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빛이 벌겋게 씩씩거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어…어쩐 일이 십니까?"

이 경장이 장 과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더듬거리며 물었다.

"하수연!"

장 과장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하수연은 바짝 겁을 먹은 상태로 대답했다.

"예, 옙, 과장님."

"너? 혹시 김 검사한테 전화 걸어서 영장 내놓으라고 지랄했냐?"

"그… 그게……."

하수연은 장 과장의 서슬 퍼런 표정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 경장은 평소 의욕 만땅인 후배가 상사에게 당하려하자 안쓰러운 마음에 급히 나섰다.

"과장님, 제가 설명 드리죠. 사실은……."

"얌마, 넌 뭐하고 있었어? 선배라는 놈이 그걸 그냥 넋 놓고 보고 있었냐?"

"그게 아니라 사실은……."

"듣기 싫어! 네 놈도 잘한 거 하나도 없어. 후배 교육 이따위로 시킬래!"

"죄송합니다."

"아니, 순경 나부랭이가 뭐 잘 났다고 겁도 없이 거길 전화해? 엉? 너 돌았니?"

장 과장의 코에서 뜨거운 김이 풍겼다.

그런 그의 눈에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혁이 보였다.

"네놈은 뭐야?"

"은하파출소 소속 강혁입니다."

"파출소 애가 여긴 무슨 일이야?"

"제가 접수 받았습니다."

강혁이 장 과장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응?"

"9살, 5살짜리 아이가 계모로부터 지속적으로 학대와 폭행을 당했습니다. 과장님."

"뭐야? 새끼야? 그래서 잘 했다는 거야?"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야 이 새끼가?"

장 과장은 강혁의 대답에 더 화가 났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 경장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대체 요즘은 신입 교육을 어떻게 시키기에 이 모양이야?"

"죄송합니다. 과장님. 제가 잘 타이르겠습니다. 진정하시죠."

"내가 진정하게 됐어?"

장 과장이 목소리의 톤을 한 칸 더 올릴 때였다.

문이 열리며 북천 경찰서 서장 차건우가 들어왔다.

"서장님?"

"마침 여기 있었군. 장 과장, 그런데 무슨 일 있었나?"

"아, 서장님. 사실은 이 친구들이……."

장 과장이 하수연과 강혁을 가리킬 때였다.

차 서장이 장 과장 옆을 성큼성큼 지나갔다.

장 과장은 무슨 일인가 싶어 말을 멈추었다.

"자네들이군. 오늘 아동학대 신고를 받았다며?"

하수연은 차 서장의 말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선배의 말대로 이 일은 벌집에 머리를 들이미는 일이였다.

반나절도 되지 않아, 최상급자인 경찰서장까지 내려와서 질책할 줄이야.

"서장님, 전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정말로 학대를 당한 정황이……."

"잘 했어."

"예?"

"마침 검찰청에서 직접 연락이 왔어. 영장 발급한다고, 보강수사 잘하라고 격려까지 하더군."

"……?"

하수연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기뻐했다.

"영장 발급해준다고요?"

"그래, 직접 연락을 받았네. 이런 일은 거의 없는 일인데 차장 검사가 격려 전화까지 주더군."

"……예?"

"자기들도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깊은 우려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야."

"……!"

"그런데 자네들이 제대로 된 사건을 발굴한 거지. 보강수사 철저하게 해서 보내달래."

차 서장의 말에 하수연의 얼굴이 활짝 폈다.

이 경장과 장 과장도 서장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니 놀람을 넘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 수연은 희희낙락하며 90도 각도로 꾸벅 절했다.

"감사합니다. 서장님."

"하하, 난 아무 것도 한 게 없네. 이번 사건 나도 기대해 보지. 잘해보게 하 순경."

"옛, 서장님."

"참, 자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건가?"

차 서장이 장 과장을 돌아보았다.

"예? 아뇨.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장 과장의 얼굴에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 그럼 난 가보겠네. 수고하게."

"예, 서장님. 조심해서 가십시오."

차 서장이 나가자 장 과장이 하순경과 강혁을 돌아보았다.

"크… 험."

장 과장은 얼굴이 벌겋게 변해 시선을 허공에 두었다.

"잘… 잘해봐."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이 경장과 하수연은 장 과장 얼굴이 벌겋게 변해 사무실 밖으로 나가자 킥킥거리며 웃었다.

"김 검사, 이 새끼. 나하고 무슨 원수졌나? 이럴 거면 전화는 왜 해서……."

문 뒤로 킥킥거리는 부하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것들이?"

장 과장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재빨리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아이고… 망신살, 이게 무슨 망신이야. 김 검사 이 시키 두고 봐."

"진짜네?"

이 경장이 신기하다는 듯이 구속영장을 바라봤다.

원래 이런 일로는 영장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얽혀 있어서 영장 청구를 피하는 편이다.

민법915조의 존재도 영장기피에 한몫했다.

부모가 아이에게 훈육을 위해 징계를 할 수 있는 권리가 버젓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 구속영장이 떡하니 있었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해가 서쪽에서 뜬 것만큼이나 생소한 일이였다.

"그럼 다녀올게요."

하수연이 두 눈을 반짝거리며 강혁과 함께 경찰서를 나섰다.

*     *     *

"이것 놔!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러는 거야?"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의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강혁이 채미라를 체포하는 동안, 하수연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너희들, 내가 가만있을 줄 알아?"

채미라는 마지막까지 발악을 하다가 경찰서로 끌려갔다.

취조실에서 채미라는 일체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러다 변호사가 왔다.

나름 잘 사는 채미라의 친정오빠가 변호사를 구해준 것이다.

변호사가 떡하니 버티고 서서, 강력하게 어필했다.

"이분, 아버님이 목사님이에요. 어머님은 어린이집 원장선생님이시고."

변호사는 취조를 하는 심 계장에게 채미라의 친정가족 얘기를 꺼냈다.

"채미라씨도 오랫동안 어린이집 교사로 일했어요. 그런 분이 아동학대를 한다고요?"

알고 보니 그녀는 잘 사는 집안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기업형 어린이집을 하고 있었다.

그런 것에 비해 본인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주부였다.

취조를 맡은 경찰은 의아했지만 남의 집안일이니 더 파고들지 않았다.

"갑갑하네. 애들 진술은 확실하지?"

취조를 마치고 나온 하수연의 상관인 심 계장이 물었다.

심 계장은 40대 중반의 여경이다.

휴일이라 집에서 쉬다가 사건이 커지자 바로 출근해서 직접 사건을 지휘했다.

"예, 계장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하수연의 말에 심계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중요한 건 애들 증언이 바뀌면 안 된다는 거야. 그리고 주변에 탐문수사 들어가자."

"예, 계장님."

휴일이지만 일제히 출근한 아동청소년계 경찰과 강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속영장은 48시간을 넘겨서 구금할 수 없었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이웃 주민들과 학교, 친구 등에게 증언을 수집했다.

강혁은 서장 직권으로 이번 사건에 한해서 아동청소년계와 함께 움직일 수 있었다.

사건의 최초 접수자로서 이번 일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라는 서장의 배려였다.

은하파출소 동료들도 잘해보라고 격려를 보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이다.

사실 심 계장을 비롯하여 아동청소년계 경찰들도 걱정이 적지 않았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이런 사건들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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