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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96화 (96/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96화

96화

48시간 후.

별다른 소득 없이 채미라는 풀려났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수집했지만, 특별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채미라가 평소에 얼마나 교묘하게 아이들을 학대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었다.

남편도 감쪽같이 속을 만했다.

지방 출장을 갔다가 아내가 구속되었다는 말에 급히 서울로 올라온 남편은 채미라를 두둔했다.

남편은 작은 건설사 직원으로 지방의 건설현장에 몇 개월간 파견을 나가 있는 중이었다.

남편의 말로는 자기 아내가 계모라도 평소 아이들에게 잘 했다는 것이다.

경찰 쪽에 남은 건 아이들의 증언과 골절상에 대한 의사의 소견서뿐이었다.

"흥, 당신! 그리고 당신! 내가 고소할거야."

채미라가 표독스런 표정으로 강혁과 하수연을 노려보았다.

"마음대로 하시죠."

하수연이 끄덕도 하지 않고 대꾸했다.

"뭐야?"

채미라는 하수연의 반응에 코웃음을 쳤다.

"두고 보자. 내가 너네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해줄 테니."

씩씩거리며 채미라와 지방에서 올라온 그녀의 남편 박재호가 경찰서를 나섰다.

"뭐해? 가자."

박재호가 연지와 민우 두 아이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아빠를 본 두 아이들은 반가우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두 아이가 하수연과 강혁을 바라본다.

지난 이틀 동안 연지와 민우는 하수연의 집에서 함께 지냈다.

그래서 특히나 하수연에게 정을 느끼고 있었다.

수연이 애틋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얘들아, 알지? 무슨 일 있으면 삐삐 쳐."

"……예!"

연지가 말했다.

민우의 손을 꼭 잡고 수연과 강혁을 한 번 바라보더니 꾸벅 인사를 했다.

아빠의 뒤를 따라 가는 연지와 민우를 보며 하수연은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괜찮을까?"

하수연은 떠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걱정이 일었다.

"한동안은 괜찮을 거다. 재판 중인 걸 아는데 함부로 하겠어?"

심 계장이 하수연을 위로했다.

"그러면 다행인데."

"문제는 그 다음이야. 조용해지면 또 시작일걸?"

"휴, 방법이 없을까요?"

"안타깝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계속 지켜보는 수밖에."

심 계장은 경찰서를 나서는 부모와 두 아이를 보며 우려 섞인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마. 애들은 괜찮을 거야."

강혁의 말에 하수연이 그를 돌아보았다.

"정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음,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바로 달려가서 애들을 보호할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강혁이 하수연을 바라보았다.

"글쎄, 애들이 삐삐를 칠 겨를이라도 있을지 걱정이다."

하수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애들은 내가 반드시 지킬거야.'

강혁이 떠나는 연지와 민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 눈을 번쩍였다.

딩동댕동.

"누구세요?"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인데요. 떡을 좀 가져왔어요."

채미라가 문을 열고 나가자 참하게 생긴 새댁이 둥근 접시 위에 떡을 가져왔다.

머리는 동그랗게 뒤로 말아 올렸는데, 코도 오똑하고 눈도 큰 것이 서구형 미인이다.

"어머, 잘 먹을게요. 그런데 언제 이사 오셨어요?"

"예, 어제 이사했어요. 정리 다 되면 한 번 모실게요. 놀러 오세요."

새댁이 웃으며 말한다.

싹싹하고 예쁘다.

채미라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휴, 그래요. 새댁."

채미라가 웃으며 떡을 받아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여보, 세상에 미정이 언니가 이사 갔다는데? 어제 이사 왔다는 새댁이 떡을 가져왔어."

"응? 그래? 미정씨라면 503호?"

"맞아, 미정 언니랑은 친하게 지냈는데 아쉽네. 그런데 이사 간다는 말은 없었는데?"

채미라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 말도 없다가 채미라가 구속된 사이에 갑작스레 이사를 간 것이다.

평소 막역하게 지내던 사이라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의아한 표정을 짓던 채미라는 떡을 내려놓고, 남편과 딸아이와 나눠 먹었다.

"너희들도 이리와."

채미라가 연지와 민우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연지와 민우가 슬쩍 서로를 바라본다.

"이리 오래도. 안 오면 우리끼리 먹는다."

연신 미소를 띠며 말한다.

연지가 두려워하는 민우를 끌고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두 아이가 계모와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떡을 먹었다.

"이 녀석들, 너희들 때문에 엄마, 아빠가 얼마나 곤혹을 치르고 있는지 알아?"

박재호가 눈을 부라리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어휴, 그만해요. 애들 체할라. 먹고 해. 먹고."

그녀의 말에 박재호가 화를 냈다.

"이렇게 애들을 아끼는 사람을~ 경찰들도 미친놈들 아냐. 애들 말만 듣고 기소를 해?"

"그러게 말이에요. 그놈들 그냥 두면 안 돼. 생사람 잡을 놈들이야."

30대 초반의 사내가 양귀를 덮은 두터운 헤드폰을 끼고 눈앞의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모니터에는 채미라 가족이 거실에 모여 떡을 먹는 모습들이 그대로 보였다.

모니터 옆에는 커다란 녹음테이프가 돌아가며 이들의 대화가 모두 기록되고 있었다.

"갔다 왔어요."

조금 전 채미라에게 떡을 가져갔던 새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헤드폰을 낀 사내 뒤에서 그를 지켜보던 중년 남자가 새댁을 보며 말했다.

"수고했어."

머리가 희끗희끗한 40대 중반의 남자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새댁이 접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거실에는 각양각색의 네 명의 젊은 남녀가 모여 앉아 치킨을 먹고 있었다.

"요즘은 신라 치킨이 대세야. 다른 치킨은 따라갈 수가 없어."

잘 튀겨진 닭다리 하나를 들고 20대 청년이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청년은 머리를 금발로 물들이고, 귀에는 작은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귀티 나게 보이는 얼굴로 부유층 자녀처럼 보였다.

그런데 치킨을 먹는 모습을 보면 그게 아니다.

무슨 걸신이 들린 듯이 먹는다.

"어휴, 요한아, 얼굴은 어디 부잣집 아들처럼 생긴 게 이러니 확 깬다."

"독거미 누나,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는 게 아니야. 야, 안 그래?"

요한이 옆자리에서 조용히 치킨을 먹고 있는 또래 청년에게 물었다.

청년의 이름은 캐리 박.

짙은 흑발에 우수가 깃든 눈매, 앙 다문 입술과 날카로운 콧대를 가진 미청년이었다.

"조용히 하고 그냥 먹어."

"야, 독거미라고 부르지 말랬지."

"아얏!"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요한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알았어요. 알았어. 수정이 누나."

중년 남자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저희는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지금 실시간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부탁해요. 박 팀장님. 애들이 위험에 빠지면 바로 구출작전 시작하세요."

"걱정 마십시오. 회장님.

전화를 건 중년 남자는 강혁이 심혈을 기운 프로젝트 알파 팀 팀장 박정철이었다.

국정원 해외 파트에서 오랜 기간 작전 팀장으로 활약했다.

"소희야, 여기 앉아."

최요한에게 독거미라 불린 여자가 새댁으로 분장한 여성에게 말했다.

새댁의 이름은 신소희 알파 팀의 부팀장이며 전 정보경찰 출신이다.

"예, 언니."

"야, 최요한. 소장님한테도 가져다 드려."

"얘도 있는데 왜 나한테 시켜요."

"이게 확! 누나 말 안 들을래?"

수정이 한 팔을 들어 위협하자 그제야 요한이 움직인다.

"알았어요. 알았어. 쳇!"

요한이 치킨을 몇 개 챙겨 감청하고 있는 전 일성 흥신소 소장 임호장에게 가져다주었다.

이들 다섯 명이 현재 프로젝트 알파 팀의 구성원이다.

경찰 업무에 매여 있는 강혁의 손과 발, 귀와 눈이 되어 줄 사람들인 것이다.

*     *     *

"그럼, 난 다시 가볼게 애들 잘 챙기고."

"알았어요. 여보."

박재호는 다시 지방으로 출장을 떠났다.

세 아이도 모두 학교를 가자 채미라는 어제 떡을 가지고 왔던 새댁 집으로 놀러갔다.

딩동댕동.

"어머, 어서 오세요. 언니."

신소희가 살갑게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놀러 왔어. 괜찮지?"

"그럼요. 안 그래도 내가 모시러 가려고 했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채미라가 거실을 돌아보았다.

"동생, 진짜 예쁘게 꾸며 놓고 사네."

채미라가 감탄하며 말했다.

모두 새로 산 물건들에, 인테리어가 신선하고 예뻤다.

"아유, 아니에요. 언니."

신소희가 웃으며 대답했다.

'안 그럴 수가 없지. 돈으로 도배를 했는데.'

이 아파트와 집 안의 모든 물건들, 인테리어는 하루 만에 모두 장만된 것들이다.

대진건설 영업이사 직함을 가지고 있는 이규철이 사람들을 시켜서 한 일이다.

신소희는 강혁과 이규철의 통 큰 움직임에 혀를 내둘렀다.

자신의 동료들은 지금 채미라의 맞은 편 아파트에 가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과 채미라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이규철은 이번 작전을 위해 두 배의 값을 지불하고 하루 만에 아파트 두 채를 사들였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어머? 이거 TV에서 선전하던데. 새댁 남편이 잘 버나봐?"

채미라가 거실을 돌아보며 연신 감탄했다.

"참, 우리 통성명도 안 했네. 난 채미라라고 해."

"예, 미라 언니. 제 이름은 신소희에요."

"신혼인 것 같은데 결혼한지는 얼마나 됐어?"

"이제 반년 됐어요. 원래 해외에 있다가 이번에 귀국했어요."

"정말? 어디서 살았는데?"

"남편 따라 LA에서 지냈는데요. 그때……."

두 사람은 한참을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채미라는 미국에서 살았다는 신소희의 말에 큰 관심을 표했다.

"부러워라, 난 태어나서 해외는 한 번도 못 가봤는데."

"언니도 기회가 있을 거예요."

소희의 말에 채미라가 웃었다.

"그럴까?"

두 사람이 수다를 떨 때, 채미라의 집에는 임호장과 최요한이 들어와 있었다.

"넌 욕실과 세탁기 있는 곳에 설치해."

임호장이 최요한에게 지시를 내렸다.

강혁이 건네준 진술서 사본에 고문에 가까운 행동이 욕실과 세탁기가 있는 곳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현재 설치되어 있는 카메라와 도청장치는 거실만 볼 수 있었다.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다른 곳은 카메라 등을 설치할 시간이 없었다.

최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 방에는 임호장이 들어갔다.

방 안을 둘러본 임호장은 아이들 방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여기 있군."

침대 위에 놓여 있는 곰인형을 발견하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곰인형은 모두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연지의 것이고, 또 하나는 동갑인 규리의 것이다.

규리는 채미라의 친딸이었다.

임호장은 두 곰인형 안에 모두 카메라를 설치했다.

설치를 마친 후 다시 방 안을 돌아보고는 벽에 걸려 있는 사진틀 뒤에도 카메라를 설치했다.

*     *     *

"야단났다."

심 계장이 강혁과 하수연을 보며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시나요. 계장님?"

"애들이 지난번에 했던 진술서 내용을 부정했어."

"예?"

"그쪽 변호사가 연락이 왔는데. 아이들이 경찰서에서 한 진술 모두가 거짓말이었다고 했대."

"그럴 리가 없어요!"

하수연은 심 계장의 말에 깜짝 놀랐다.

"오후에 변호사가 애들과 함께 경찰서에 직접 오겠다고 했어."

심 계장은 한쪽 팔을 책상 위에 올리고 한숨을 쉬었다.

"어이쿠, 이렇게 될까봐 걱정했는데."

이 경장도 얼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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