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098화
98화
"그래, 우선 변호사부터 구해라."
남경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강혁에게 말했다.
"예, 형님.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너무 걱정마세요."
"그래, 돈 없다고 이런 일에 돈 안 쓰면 더 크게 후회할 수 있다. 혁아."
남경필의 거듭되는 걱정에 강혁이 미소를 지었다.
"예, 좋은 변호사로 구해보겠습니다."
"쯧쯧, 돈 수천 깨지겠구만."
배덕만이 말로는 걱정하면서 입으로는 실실 웃었다.
"형님~ 그만 좀 하라니까요."
"그래, 알았다. 알았어."
배덕만이 그제야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강혁은 모두가 자리에 앉아 자기 업무에 몰두하자 살짝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핸드폰을 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예, 회장님."
"이리나, 변호사가 필요하게 됐어."
"예, 회장님. 바로 보내겠습니다."
"부탁해."
강혁은 국내에 들어온 후, 이리나에게 여러 가지 일을 맡겼다.
그 중에 하나가 국내 최고 최대 규모의 로펌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리나는 강혁의 지시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서초동에 30층짜리 빌딩을 매입하고, 국내 최고 수준의 변호사들을 시쳇말로 끌어 모았다.
"하아, 어쩌지? 변호사를 구해야하나."
하수연은 자신 앞으로 발부된 고소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돈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된 사람 구해라. 잘못하면 네 경찰 생활 꼬인다."
이 경장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꼬였어요. 이 경장님."
하수연의 동기인 김미정이 비꼬듯 말했다.
"야!"
"왜 내가 틀린 말했냐?"
"이게 진짜!"
"야, 너 때문에 우리 아동청소년계 전체가 완전 망했어. 진짜 몰라?"
"이잇!"
김미정의 말은 사실이었다.
오늘도 심 계장은 장 과장에게 불려가 이번 일에 대해 질책을 받았다.
아동청소년계 전체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강혁 그 친구는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네. 둘 다 고소당했지?"
"예에."
하수연이 풀이 죽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강혁은 임시 파견 근무를 마치고, 다시 파출소 근무로 돌아갔다.
"혁이도 정말 안됐어. 하필 이런 일에 걸려가지고."
김미정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게 다 저 여우같은 것이 우리 혁이를 꼬셔서 그래.'
하수연을 보며 몰래 쌍심지를 켰다.
다른 젊은 여경들과 마찬가지로 김미정도 강혁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 정도로 괜찮은 젊은 남자경찰이 드물었다.
전도유망한 젊은 경찰을 하수연이 망쳤다는 생각에 괜히 더 화가 났다.
그때, 문이 열리며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하수연 순경이 누구시죠?"
"어, 전데요? 무슨 일로 오셨죠."
하수연이 대답하자 남자가 다가왔다.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수연에게 중년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로펌 홍익이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변호사세요?"
명함을 확인한 수연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예, 이번에 어려운 일에 휘말렸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아시고?"
"강혁 순경이 저희 로펌에 의뢰를 했는데, 저희 측에서 무료 변론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정말요?"
무료라는 말에 하수연의 표정이 밝게 빛났다.
"예, 저희 로펌 홍익에서는 사회공헌을 위한 무료 변론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변호사님. 잘 좀 부탁드려요."
처음에는 웬 양복 입은 중년 남자의 출현에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하수연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하수연은 모르고 있었지만 로펌 홍익은 현재 대한민국 법조계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만큼 대단한 솜씨의 변호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하, 이제 염려 마세요. 이번 고소 건은 저희가 반드시 막아내겠습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하수연의 말에 중년 남자는 멈칫했다가 웃으며 말했다.
"예, 좋지요. 하하."
"선배님도 커피 한잔 하세요. 제가 사올게요."
"뭐, 하 순경이 산다면야."
밝은 모습으로 돌아온 하수연을 보며 이 경장도 웃었다.
"넌 네 돈 내고 사먹어라."
김미경을 보며 눈썹을 살짝 올린 후, 하수연은 룰루랄라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 * *
박재호는 자신의 지방 출장소에 찾아온 낯선 중년 남자와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대체 누구신데 갑자기 남의 직장을 찾아와서 곤란하게 합니까?"
중년 남자는 낮에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을 찾아와 아내 문제로 의논할 것이 있다고 했다.
남자는 등산 모자를 눌러썼는데, 얼굴이 너무 평범해서 특징이 없었다.
한두 번 봐서는 기억이 나지 않을 얼굴이었다.
박재호는 쫓아낼까 했지만 소란이 일어날까 저어하여 퇴근 후, 커피숍에서 만난 것이다.
"말씀드렸다시피 아내분에 대해 알려드릴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중년 남자는 박재호의 눈앞에 비디오카메라를 내밀었다.
박재호는 의아한 눈으로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중년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화가 났지만 박재호는 비디오카메라의 녹음장치를 재생시켰다.
[엎드려 뻗쳐.]
채미라의 앙칼진 목소리가 아파트 비상계단을 울렸다.
[잘못했어요. 엄마.]
연지와 민우가 울먹이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
[잔말 말고 엎드려!]
채미라의 엄포에 두 아이는 계단에 거꾸로 손을 대고 엎드려뻗친다.
누가 봐도 아슬아슬한 모습이다.
그런데 채미라는 그런 두 아이를 뒤에서 밀려고 양손을 뻗었다.
이대로 밀리면 아이들은 아래로 굴러 떨어져 크게 타박상을 입을 것이 눈에 뻔했다.
"아, 아니?"
박재호는 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비켜주세요. 아줌마. 그런데 뭐하세요?]
아이들을 뒤에서 밀려고 했던 두 손을 채미라가 깜짝 놀라 뒤로 감추었다.
[뭐, 뭐예요?]
[저요? 치킨 배달원요.]
빨간색 오토바이 헬멧을 쓴 금발의 최요한이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가, 가세요.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예!]
최요한이 지나가며 아이들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러면서 채미라를 향해서도 몇 번을 돌아보자 그녀가 불안해했다.
[얘들아, 들어가자. 오늘 운동은 그만하자.]
[운동?]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배달이나 가요.]
[예, 예.]
최요한이 어슬렁거리며 내려가자 채미라가 아이들을 잡아 일으켜 손을 잡고 아파트로 돌아갔다.
"이… 이게 대체?"
"다음 영상도 보시죠."
중년 남자의 말에 박재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눈을 다시 영상을 향해 돌렸다.
[오줌을 싸? 네가 대체 몇 살인데 아직도 이불에 오줌을 싸는 거야?]
[잘못했어요. 엄마.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민우가 울고불고 난리다.
[당장 안 들어가?]
채미라가 민우를 세탁기가 있는 곳으로 밀어붙인다.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엄마.]
[말로만 잘못했다지? 오줌 싸는 버릇 고치려면 벌을 받아야 해.]
채미라는 엉엉 우는 민우를 강제로 세탁기 안에 넣었다.
영상을 보는 박재호는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경악했다.
"저…저 사람이 설, 설마……."
세탁기 안에 민우를 강제로 밀어 넣고는 뚜껑을 닫았다.
민우의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게 다 네 아비 때문이야."
채미라가 알 수 없는 말을 응얼거렸다.
세탁기 전원 버튼에 손가락이 올라가자 박재호는 안―돼라고 소리쳤다.
영상은 계속 이어졌다.
[딩동댕동 딩동댕동.]
갑작스런 벨소리에 채미라가 화들짝 놀랐다.
[뭐야? 대체?]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물건 안사요!]
[경찰입니다. 채미라씨. 안에 계시죠.]
경찰이란 말에 채미라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급히 민우를 세탁기에서 꺼내고는 방 안으로 쫓아 보냈다.
[나가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문을 열자 경찰서에서 본 적이 없는 여경이 눈앞에 있었다.
[채미라 씨, 저는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이미란 경위입니다.]
제복을 입은 여경의 포스에 채미란은 짐짓 당황했다.
[예,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이번 아동학대 신고 사건에 대해 지방경찰청차원에서 재조사 중입니다. 그럼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 들어오세요.]
이번 영상은 여기서 끝났다.
"대…대체 이게 다 뭡니까?"
"아직 안 끝났습니다. 다음 영상을 보시죠."
중년인의 말에 박재호는 떨리는 손으로 다음 영상을 재생시켰다.
콸콸콸
물이 욕조에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채미라는 두 아이를 욕조 앞에 세우고는 소리쳤다.
[어디서 우리 규리한테 못된 짓이야!]
[엄마, 잘못했어요.]
연지가 울먹거렸다.
조금 전 연지는 규리와 함께 그림을 그리다가 실수로 크레파스를 부러뜨렸다.
그때 파편이 얼굴에 튀었는데, 규리가 살짝 놀랐을 뿐이다.
그런데 채미라는 고래고래 화를 내며 연지를 욕실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욕조에 얼굴을 처박았다.
"저… 저……."
박재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딩동댕동.]
[언니, 우리 집에 놀러오세요. 미국에서 친구가 맛있는 걸 보내줬어요.]
[동생, 바빠서 그러는데 다음에 갈게?]
[아이, 안 돼요. 지금 아니면 못 먹어요. 진짜 후회하실 걸요?]
[그, 그래?]
[물건도 좀 있어요. 언니 필요한 거 골라가세요.]
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채미라는 그제야 멈췄다.
연지는 가까스로 얼굴을 욕조에서 들었다.
입에서 구역질과 함께 물을 질질 흘렸다.
[넌 옷 갈아 입고. 방으로 들어가.]
채미라의 말에 연지는 엉망이 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은 그걸로 끝났다.
박재호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눈물을 줄줄 흘리던 박재호가 말했다.
"당신들은 대체 누굽니까?"
"그게 중요한가요?"
"가르쳐 주십시오."
"저희는 따님이 의뢰하신 로펌의 증거보존팀입니다. 따님의 인형에 카메라를 심어두었죠."
"연지가요?"
"경찰서에 있을 때, 저희가 정식으로 의뢰를 받았지요."
물론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박재호는 의아해하면서도 수긍했다.
경찰기관이 직접 몰카나 녹음을 한 것이 아니기에 증거로 채택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잠시 고민하던 박재호가 말했다.
"애 엄마와는 이혼하겠습니다."
"우리 쪽에서 계속 막고는 있지만 채미라씨가 곧 이상하게 여길 겁니다."
"오늘밤 집으로 가서 애들을 데리고 나오겠습니다."
박재호의 말에 중년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의뢰인은 연지양과 민호군입니다. 형사 및 민사 소송을 할 생각입니다."
"이혼 소송도 받아 주시나요."
"물론이죠."
중년 남자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 * *
"어머? 당신 어떻게 된 거야? 2주는 더 있어야 한다며?"
아이들이 학교에 간 오전 시간에 박재호가 갑자기 집에 나타났다.
채미라의 말에 박재호는 묵묵부답이다.
"당신 왜 그래?"
박재호의 표정이 이상하다.
"우리 이혼하자."
"뭐?"
"이리와 봐."
박재호가 채미라를 이끌고 거실로 가서 앉혔다.
그리고 가방에서 비디오카메라를 꺼냈다.
"이런 건 어디서 났어? 샀어?"
채미라의 물음에 박재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영상을 재생시켰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영상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