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00화
100화
연지는 아빠와 함께 살 때 새엄마를 정말로 원했었다.
재혼이 이루어지자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새엄마를 사랑했고, 동갑인 규리의 존재도 정말 좋아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악몽으로 변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아빠가 지방으로 출장을 갈 때마다 새엄마는 사람이 변한 듯이 행동했다
그렇게 학대를 하다가도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들로 아이들을 옭아매었다.
하지만 마침내 채미라의 엽기적인 행각은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박재호의 신고와 그가 제출한 동영상 증거로 채미라가 바로 구속을 당하게 된 것이다.
아동학대에 살인미수죄까지 첨가 돼서 말이다.
사건을 처음부터 조사했던 하수연과 강혁은 동료 경찰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서장에게 큰 칭찬을 받았다.
최초 신고 접수자였던 강혁은 강력반 팀장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다.
아이들이 파출소를 방문했을 때의 상황을 전해들은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놓칠 수 있었던 점을 잘 캐치한 것이 호평을 받았다.
팀장들은 아이들이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점을 높게 평가했다.
경찰과 검찰은 이번 사건이 살인미수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놀랐다.
하지만 검경의 주목만을 받은 것이 아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언론의 관심을 받아 이번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외신이었다.
여기에 국내 언론들이 가세해서 아동학대에 대한 여론이 크게 환기되었다.
채미라가 아이들에게 행한 엽기적인 행동들은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아무리 자기 아이가 아니지만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여기에 더해 처음 혐의를 피하고 구치소에서 풀려 날 수 있었던 이유가 알려지면서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채미라의 아버지가 중견 교회 목사이며, 어머니가 유명한 체인 어린이집 원장임을 강조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목사 딸인 내가 어떻게 아이들을 학대했겠느냐?'
'나도 어린이집에서 오랫동안 교사생활을 했었다.'
스스로 이렇게 강변하면서 경찰조사를 피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채미라에게 향했던 분노가 그녀의 친정집으로 옮겨졌다.
그러면서 채미라 역시 어린 시절 학대당했던 사실이 검찰 조사 가운데 드러난 것이다.
두 아이에게 가했던 학대들은 사실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학대였다.
처음 이혼하게 된 이유도 어린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로 인해 생긴 이상 행동 때문이었다.
재혼 후, 육아에 대한 부담이 더 늘었고, 남편의 벌이가 많지 않았다.
여기에 부유한 친정에서 도움을 주지 않아 모든 분노가 두 아이에게 부어진 것이다.
채미라는 감옥에서 두 아이에게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사과했다.
너무 뒤늦은 후회였다.
"대통령님,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곽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대통령에게 말했다.
박영삼 대통령은 저녁 석간을 내려놓고 심기가 언짢았다.
신문에는 채미라의 악행과 어린 시절 당한 학대가 적혀 있었다.
"그 여자 친정 부모도 문제가 많더만?"
"예,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 혹독한 학대를 가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마음이 안 좋았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범죄요건이 성립이 안 된다.
"어린이집 원장이라고 했던가?"
"예, 기업형으로 매우 크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친정이 그렇게 잘 사는데도 도움을 안 줬다는 말이지."
"……예."
"쯧쯧, 채미라 이 친구도 잘못이 크지만, 부모가 죄를 키운 셈이야."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여기 세무조사 한번 해봐."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곽 비서실장이 허리 숙여 인사한 후, 집무실을 나왔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대대적인 세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와 더불어 내부고발이 이어졌는데, 채미라 오빠의 성추행 혐의가 드러난 것이다.
전직 어린이집 교사들의 고발이 연이어 검찰에 제소되었다.
세무조사와 대대적인 감사가 이루어지면서 간식비와 체험비가 빼돌려 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결국 징벌적인 과세와 함께 형사고소를 당하며 엄마와 오빠도 감옥행이 됐다.
어린 시절 채미라의 폭행을 주도했던 아버지가 목사로 시무하던 교회도 사정은 안 좋았다.
이런 비인간적인 목사 밑에 있을 수 없다며 성도들이 급속도로 빠져나간 것이다.
결국 교회를 살려야 한다는 몇몇 성도들의 주도로 교회에서 쫓겨나듯 물러나야 했다.
시간이 지나자 이번 사건을 다루었던 여론은 빠르게 달아올랐다가 다시 빠르게 식었다.
언론들은 금세 다른 이슈를 찾아 움직였다.
아동학대와 관련된 법령의 제정과 제도의 구비를 생각하는 사람은 제로에 수렴했다.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동학대 문제가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무렵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다.
CNN과 스타TV가 특집으로 한국의 아동학대와 관련된 특집 방송을 편성한 것이다.
단순히 이번 사건 하나에 대한 가십성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다양한 전문가들을 초대해서 다각도로 문제를 조명한 제대로 된 방송이었다.
두 방송사는 오너들의 라이벌 의식까지 더해져 여러 편에 걸쳐서 한국의 아동문제를 다루었다.
이렇게 되자, 한국의 언론들도 이를 다시 보도하기 시작했다.
가라앉았던 여론도 다시 들썩거리려고 할 때, 일본에서 한국국민의 심기를 거슬리는 기사가 떴다.
한국이 아동학대 문제에 있어서 제대로 된 시스템이 없는 야만적인 국가라는 것이다.
이 기사는 다시 대한일보에서 소개되었고 큰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한편, 이 문제가 한국에서 공론화되고 있을 때,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 중이었다.
"존슨 위원, 우리 정부의 대외정책을 지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저희 미국은 민주화를 이룩한 대한민국 정부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정부이고, 민주당 대통령이 미국을 다스리고 있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한쪽에만 쏠렸다가는, 다시 정권이 바뀔 때 낭패를 당한다.
그래서 대통령은 공화당의 실세라고 불리는 윌 존슨 상원 의원을 만나고 있었다.
서로 간에 덕담이 오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갑자기 존슨 의원이 아동학대 문제를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저는 한국이 그런 문제를 방치해 두고 있는 것에 대해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윌 존슨이 CNN에서 방송된 내용들을 지적하자 박 대통령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의 지적이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통치하고 있는 위정자로서 존슨 의원의 지적은 아프지만 뭐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부디 박 대통령께서 한국 정부의 수장으로 계실 때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소망합니다."
"하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귀국하면 전향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존슨 의원이 돌아가고 나자 박 대통령은 화가 났다.
일본 언론에서마저 한국의 아동학대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 받은 것이다.
현재 워싱턴 정가에는 그 문제가 화제였다.
한국의 아동인권 문제가 도마에 올랐던 것이다.
"귀국하면, 당장 원내 대표를 불러요. 단단히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겠어."
"예, 대통령님."
이번 미국 방문에서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비서관이 몸 둘바를 몰라 했다.
대통령이 한국으로 돌아오자 야당 대표가 접견을 요청했다.
"그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오시라고 해요."
"예, 대통령님."
다음 날, 야당 대표인 정대중이 찾아왔다.
박영삼은 자신과 함께 혹독한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을 했던 동지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정 대표님, 어서 오십시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대통령님."
평소 한복을 즐겨 입는 정 대표는 이번 회동에도 한복을 입고 청와대를 방문했다.
언론도 이번 영수회담을 주목했다.
"회담이 끝나면 청와대 식당에서 칼국수나 한 그릇 같이 하시지요."
"좋지요. 허허."
두 사람은 잠시 서로 덕담을 주고받았다.
"그래, 무슨 일로 여기까지 힘든 걸음을 하셨습니까?"
박영삼은 왕년의 동지에게 살갑게 물었다.
비록 삼당합당으로 서로 갈라섰지만 동지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이번에 대통령께서 미국 외유 중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아동 인권에 대해 꼬집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라면 사실 저도 미국에서 존슨 의원에게 뼈아픈 말을 들었지요."
박영삼은 허심탄회하게 미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으음, 워싱턴에서도 그 문제가 거론이 되었단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안 그래로 귀국하자마자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생각이십니다. 제가 이렇게 온 것도 그 문제를 아프게 생각해서입니다."
두 사람의 의견이 오랜만에 일치했다.
정쟁으로 날을 새던 국회가 여야 간에 힘을 합쳐 아동학대방지 법안 마련에 나서게 된 것이다.
영수회담의 결과는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알려졌고,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두 당의 의원들은 앞다투어 관련 법안 마련에 힘썼다.
그렇게 여야 간의 협력과 경쟁을 통해 역사적인 법안이 마련되었다.
2014년에나 만들어진 아동학대특례법의 제정이 역사를 앞당겨 이루어진 것이다.
이 법안은 여야 간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법안이라는 상징성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그 파급력이 사회전반에 걸쳐 컸다.
당장 아동학대사건을 대하는 검경의 자세가 달라졌다.
강혁은 커트의 협력을 통해, 홍익재단의 이름으로 한국에 아동보호 센터를 대대적으로 건립하기 시작했다.
강혁을 찾아 왔던 연지와 민우의 용기가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되어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 * *
강혁은 역사적인 법안 제정소식을 TV를 통해 보면서 미국으로 국제 전화를 걸었다.
"존슨 의원님, 이번 일에 힘을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하, 존 회장. 사실 난 좀 섭섭했네.
"예?"
―이번 일만 해도 커트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왜 내게는 일언반구 없었나.
"그…그게… 죄송합니다. 의원님."
―하하, 아니네. 농담이야.
사실 이번 일은 강혁이 부탁한 것이 아니었다.
윌 존슨은 강혁이 도움을 줬으니 당연히 대가를 받으러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혁의 동향을 조사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윌 존슨은 진심으로 감복했다.
강혁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사는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대기업 회장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개 경찰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커트 와이엇에게 몇 번의 도움을 처한 것도, 자신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윌 존슨이 이번에 한국 대통령을 만나 법안 제정에 대해 말한 것은 스스로 나선 것이었다.
강혁이 관심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윌 존슨은 어느새 진심으로 강혁을 아끼고 존중하고 있었다.
―그거 아나? 커트 회장이 야당 대표인 정대중씨에게도 부탁을 했네.
"그… 그렇군요."
강혁은 존슨 의원의 말에 따뜻한 감동을 느꼈다.
커트와 윌 존슨, 두 사람 모두 자신을 진심으로 돕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