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01화
101화
#27장 승호의 귀국
―…존 회장.
전화기 너머로 윌 존슨이 잠깐 주저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말씀하세요. 윌."
―사실은 말이네. 이번에 안젤라가 자네를 만나러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네.
"예? 안젤라가요?"
―그렇다네. 요즘 많이 안정되기는 했지만 아직…….
"그렇군요."
강혁의 목소리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작게 떨렸다.
강혁은 안젤라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아파왔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안젤라의 상태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도 잔인하고 비극적인 상황에서 잃었다.
그것도 자기 일생에서 행복의 절정에 다가갔다고 믿었던 상태에서 말이다.
세상에 누가 그 아픔을 이해하겠는가?
그저 옆에 있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리라.
부모라 할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도 도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안젤라가 자신에게 집착하는 이유도 분명했다.
자신이 안젤라에게 느끼는 감정과 같은 것이리라.
'그 사람은 내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 그만은 내 고통을 알고 있다.'
상실의 고통.
같은 상처를 입은 영혼을 통해 위로 받고 싶은 것이다.
안젤라를 생각하자 가슴 깊은 곳에서 연민이 솟구쳤다.
그녀의 눈동자에 어린 아픔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언제나 환영입니다. 윌. 안젤라에게는 제가 전용기를 보내드리죠. 언제든 오라고 하세요."
―오! 그래 주겠나? 존.
전화기 너머 윌의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다.
"여보, 존이 전용기를 보내주겠다는군."
"그래요? 잘 됐군요."
남편의 말에 마릴린은 기뻐했다.
"그건 그렇고. 여보. 아버지랑 얘기했는데 말이에요."
"응? 장인어른이?"
"예, 사실 존에게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고 싶은데 우리에게 전혀 도움을 요청하지 않잖아요."
"맞아, 그랬지."
사실 존슨이나 마릴린은 강혁이 자신의 사업과 관련된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강혁은 일절 그런 종류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알게 된 것은 강혁이 남을 돕기 위해서만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존 같은 사람을 알게 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야."
"정말이에요. 존이 아니라면 전 안젤라가 한국에 가는 것을 승낙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내의 말에 존슨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존슨이나 마릴린은 안젤라가 강혁과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조금이라도 빨리 상처가 아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이전에는 조금이나마 강혁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나치게 안젤라와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혁이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니 그야말로 최고의 신랑감이 아닌가?
인간으로서 존경심까지 생겼다.
둘은 강혁을 지금에 와서는 정말 아끼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의 딸이 그와 맺어진다면 최상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아빠가 존이 괘씸하니 혼을 좀 내주자고 하네요."
"응?"
"그렇잖아요. 감히 미국에서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우리에게 도움을 전혀 요청하지 않다니 말이에요."
"하하, 그렇지."
존슨은 아내의 말에 유쾌하게 반응했다.
"아빠가 존의 투자회사에 우리 재산을 맡겨서 골치 좀 아프게 해주자고 하네요."
"오호, 정말? 장인어른이 큰 결심을 했군. 그래."
"존의 투자회사가 상당히 잘 되고 있으니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겠죠."
"음, 좋아. 그럼 우리 존슨 가문도 투자하도록 하지."
"그거 좋군요. 그럼 배로 골치를 썩겠네요."
"하하하, 그렇겠네. 우리 재산으로 존을 좀 골탕먹여보자고."
존슨과 마릴린이 유쾌하게 웃었다.
미국의 역사와 함께한 유서 깊은 가문인 존슨과 미국 석유 재벌의 상속녀가 의기투합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자금이 골든타워에 유입되는 순간이었다.
* * *
―한국에 오고 싶다고?
최승호는 미국에 간지 1년 만에 스탠포드 합격통지서를 받아냈다.
말 그대로 쾌거였다.
테러와 페이스북으로 한국에서 유명세를 떨쳤던지라 스탠포드 합격은 한국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다.
"예, 오랜만에 부모님도 보고 싶고요."
강혁은 공교롭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안젤라가 한국에 오고 싶다고 해서 전용기를 보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좋아, 그렇게 해. 전용기를 보낼 테니 내 손님과 함께 귀국하면 되겠네.
강혁의 허락을 받은 승호는 전화를 끊고, 페이스북에 이 소식을 올렸다.
그러자 페친들에게서 반응이 왔다.
[한국으로 귀국한다고?]
[그래, 오랜만에 부모님과 동생도 보고 싶고 겸사겸사]
[흐응, 그래? 한국이라. 나도 갈까?]
[뭐?]
[잠깐만 기다려봐. 아빠한테 허락을 받을 테니까.]
승호에게 글을 올린 사람은 다름 아닌 살아 있는 비타민 여신 에밀리였다.
뉴욕 고등학교 최고의 치어리더로도 유명한 에밀리는 요즘 그야말로 승호 홀릭이었다.
그녀로서는 스탠포드 합격이 결정된 승호와 떨어지기 전에 기회를 노려야 했다.
허락은 금세 떨어졌다.
아빠인 올리브 윌슨은 누구보다도 최승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딸이 그런 남자와 잘된다면 감지덕지이니 적극적으로 밀어주었다.
[승호, 허락받았어. 나도 한국에 갈래.]
[뭐, 뭐라고?]
최승호는 매우 당황했다.
그런데 그런 당혹감은 계속해서 이어져야 했다.
에밀리와 세트처럼 움직이는 삼대 여신 모두 한국행에 동참하겠다는 것이다.
승호는 내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팬이었던 아멜리아도 함께 한국에 온다고 하니 내심 기대가 되었던 것이다.
[잠, 잠깐 기다려봐.]
승호는 강혁에게 친구들도 함께 전용기에 타도 되냐고 물었고, 바로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모두의 한국행이 갑자기 결정되었다.
* * *
"우와, 이게 존 회장님의 전용기야?"
에밀리는 강혁의 전용 비행기를 보며 놀라고 있었다.
걸프스프림Ⅳ가 공항 활주로에 연청색의 미끈한 동체를 뽐내고 있었다.
최승호도 전용기를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멋들어진 동체를 본다.
대재벌의 딸인 다나 무어도 걸프스프림Ⅳ에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멜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아직 이런 전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모두 왁자지껄 즐거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아멜리아는 소속사에서 보낸 매니저와 경호원을 대동했다.
다나 무어 역시 경호원들을 대동했지만 두 사람 모두 비행기 앞에서 이들과 헤어졌다.
존 강 회장이 한국 여행 중 필요한 경호원들을 보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엇? 누가 계시는데?"
비행기 승무원에게 짐을 맡긴 에밀리는 제일 먼저 기내 안으로 들어갔다가 안젤라를 만났다.
안젤라는 에밀리에게 빙긋이 웃으며 손을 살짝 흔들었다.
'우와, 예쁘시다. 누구지? 혹시 존 회장님의 애인?'
에밀리는 안젤라를 보고 살짝 놀랐다.
아멜리아를 오랫동안 알아왔던 그녀가 놀랄 정도로 안젤라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만 안젤라는 아멜리아보다 좀 더 성숙미가 풍겼다.
잠시 후, 최승호의 소개로 모두 인사를 나누었다.
그 역시 안젤라를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강혁에게서 언질을 받았던 것이다.
모두 금방 안젤라에게 호의를 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얼마 후, 비행기가 한국으로 출발했다.
* * *
"일본, 일본이란 말이지."
강혁은 한국의 아동인권 문제를 위해 외신을 이용했지만 입맛이 썼다.
하필 일본이 이 문제를 가지고 언론 보도하면서 한국의 위신을 깎아내린 것이다.
강혁은 자신의 주도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꼈다.
게다가 올해 말에는 외환위기에 나라의 경제가 크게 흔들린다.
흔히들 I.M.F사태라고 불리는 위기에 빠지는 것이다.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400억 달러에 달하는 단기외채를 회수했다.
금융위기를 맞이했던 한국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간 외국 자본이었다.
일본이 자본을 빼는 것을 본 뉴욕, 런던, 홍콩의 금융시장이 앞다투어 자본을 빼냈다.
그렇게 한국은 부도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강혁은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자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어났다.
"이 놈들을 가만히 두면 내가 강혁이 아니다."
외환위기 자체를 막을 생각은 없었다.
만일 그렇게 하면 앞으로 일어날 미래가 너무 많이 변해버린다.
그리고 나쁜 일만 있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외환위기를 통해 바뀐 정권은 역설적으로 일본을 이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다음 정권에서 일본을 처음으로 앞서기 시작하는 분야가 출현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IT, NT, BT, 금융산업, 문화예술산업 등이 대표적이다.
강혁은 미래에 대한민국이 일본의 1인당 GDP를 넘어서는 것을 지켜보았다.
역사적인 분기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식민지였던 국가가 식민 지배를 했던 국가를 넘어서는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그래서 미래의 지식과 자신이 가진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했다.
현재 일본은 서서히 스스로 몰락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다.
IT산업을 미국이 주도하는 사이, 자신들은 금융계의 무분별한 투기를 방치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혁은 자신의 가세로 역사를 좀 더 앞당길 수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경제와 일본 경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우리가 물건을 팔면 일본이 이득을 얻었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플리이미드 수입을 일본에서 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종 부품산업의 일본 의존도는 컸다.
강혁은 이들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아예 해당 일본 기업들을 사들이는 방법을 생각했다.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야. 아시아 금융위기로 일본의 여러 금융사들이 부도가 났었다.'
강혁은 이들 금융사에 대한 공격적인 인수를 생각했다.
'조지아 솔라즈를 이용해야겠어.'
강혁의 눈빛이 빛났다.
헤지펀드의 전설 조지아 솔라즈를 이용할 방법이 생각난 것이다.
조지아 솔라즈는 1990년 영국의 파운드화를 공격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유명했다.
현재 그가 세운 헤지펀드 회사 퀀덤박스에서 수많은 자산가들이 엄청난 돈을 위탁하고 있었다.
강혁은 그가 97년도에 일어난 아시아금융위기의 주범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환투기 공격으로 한 나라의 경제를 흔들 정도로 거물이었다.
강혁은 그를 이용할 생각에 두 눈을 반짝였다.
* * *
"조지아, 이번에도 잘 해보자고."
"물론이지. 자네들은 우리 움직임에 잘 따라 주기만 하면 되는 거네."
"크크크, 기대하지."
조지아 솔라즈는 국제 투기 자본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현재 태국을 공격 중이었는데, 이미 천문학적인 수입을 얻고 있었다.
그의 다음 목표는 말레이시아였다.
협력자들과의 통화를 마친 조지아는 커피를 마셨다.
환투기 공격이 성공적이라 커피가 더욱 달았다.
그때 그의 전화기로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지?"
그의 번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조지아 솔라즈입니다."
―존 강이라고 합니다. 조지아 회장님.
조지아는 강혁의 이름을 듣는 순가 그가 윌가의 떠오르는 샛별 존 강 회장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유명인께서 전화를 주셨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제게 전화를……?"
조지아 솔라즈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