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05화
105화
#28장 안젤라와의 재회
쉬익!
강혁이 오른손을 뻗어 상대의 눈을 노렸다.
손바닥이 펴지며 마치 뱀이 먹이를 노리듯 눈으로 날아갔다.
'헉!'
고일석은 갑자기 눈을 향해 손가락이 날아들자 헛바람을 들이키며 고개를 뒤로 피했다.
그때 갑자기 낭심을 향해 앞발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커―억!
소중한 알이 깨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고일석은 앞으로 고꾸라졌다.
"짜샤, 감히 우리 형님 얼굴에 스크래치를 내?"
고통에 몸부림치는 고일석의 팔목에 수갑을 채웠다.
초기 태권도 시절, 상대의 하단발차기를 효과적으로 봉쇄했던 방법이 존재했다.
하지만 시합을 위해서 금지하자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이런 기술이 존재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상대의 발차기를 발을 들어 막는다.
다리를 들어 방어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방어라기보다는 공격에 가까운 개념이다.
강혁은 이것을 아버지에게 배울 때, 알퇴라는 기법명으로 배웠다.
알퇴는 당랑권에서 부르는 명칭이었다.
태권도인들은 영어와 혼합하여 커트 발이라는 이름으로 알음알음 전수했다.
고일석의 급소를 가격한 것은 요음퇴로, 처음 눈을 노린 초식과 합쳐서 취안요음퇴라고 부른다.
강혁은 이 기법을 배울 때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수련을 했었다.
눈을 노리는 척 손가락으로 찔러 들어가는 도중에 갑자기 간격을 좁히며 앞발을 올려 찬다.
일종의 시간차 공격으로 리듬감이 상당히 중요했다.
* * *
"수고했어. 강 순경. 이번 달만 벌써 세건 째야."
흐뭇한 얼굴로 파출소 소장 이강무는 강혁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던 막내에 대해 요즘 확신이 들었다.
새로 들어온 신참이 상당히 유능한 인재였던 것이다.
"자네한텐 좋은 소식일 것 같은데 다음 달에 강력반으로 옮기는 것이 확정됐어."
"정말입니까? 소장님?"
나경필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 거기 마동태가 서장님한테 엄청 졸랐단다."
"아, 하긴 마 반장님이 우리 강혁이를 엄청 좋아라하긴 했죠."
"인마, 거기 가서도 잘해라."
나경필이 웃으며 강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강혁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미소를 지었다.
염원하던 강력반 배정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사실 윗선을 움직이면 금세라도 이루어졌을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에까지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지는 않았다.
* * *
힐튼 호텔 커피숍.
영화 속에서 걸어 나온 듯이 아름다운 여인이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호텔에서 여독을 풀고, 약속한 시간이 되자 모습을 드러낸 안젤라 존슨이었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약간은 어두운 얼굴이다.
잠시 후, 커피 숍 입구에 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고급 정장차림에 상당히 세련되어 보이는 용모였다.
파출소에서 근무할 때랑은 180도로 달라진 것이 은근한 품위까지 느껴졌다.
누가 저 모습을 보고, 은하파출소 신출내기 막내 순경 강혁이라고 하겠는가?
완전히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안젤라!"
강혁이 다가가자 안젤라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마주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존."
"미안해요. 안젤라."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며 미소 지었다.
서로에게서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듯한 친숙함마저 느꼈다.
'이상한 일이야.'
안젤라는 강혁을 만나자 느끼는 안도감에 속으로 살짝 의아함을 느꼈다.
사실 그녀가 느끼는 이 기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강혁은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공포스럽고, 위험했던 순간에 생명을 구해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서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강혁이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후훗,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별다른 일을 하지는 않았어요. 주변에서도 말리고."
"듣기로 원래는 지역 검찰의 검사보로 지원할 예정이었다면서요."
"맞아요.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어요. 제가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을지."
안젤라의 말에 강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안젤라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을 믿어요."
그의 말에 안젤라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그렇게 믿으시나요?"
강혁은 안젤라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깃들어 있었다.
불안감, 의혹, 연민, 슬픔 그리고… 희망.
강혁은 빙긋 웃었다.
"그럼요. 안젤라. 당신은 할 수 있을 거예요. 충분히."
왜 그렇게 믿는지는 묻지 않았다.
다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커피를 입가에 가져갔다.
두 사람은 커피숍을 나와 호텔 인근의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한국에는 얼마나 있을 생각이신가요?"
"글쎄요. 사실 정확히 기일을 정해놓고 온 것은 아니라서요. 모르겠네요."
"그럼, 이번 토요일 저와 함께 홍콩에 다녀오지 않겠어요?"
"홍콩에요?"
"그날 제가 비번이거든요."
"……!"
"홍콩에서 사업상 만나야 할 사람과의 시간을 제외하면 다음날까지 시간이 남아서요."
잠시 생각하던 안젤라가 입을 열었다.
"좋아요."
강혁을 바라보며 안젤라가 방긋 웃었다.
그녀의 미소에 그도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 * *
"말레이시아에서는 손을 털어야겠어."
조지아 솔라스가 자신이 만든 헤지펀드 퀸덤 박스의 실무자인 에런 마이클에게 말했다.
"아쉽네요. 설마 아예 문을 걸어 잠궈 버릴 줄이야."
"훗, 미친 짓이지."
조지아 솔라스가 손에 쥔 잔을 입가에 가져가며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조지아 솔라스를 필두로 한 국제투기세력의 공격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막아섰다.
말레이시아 화폐인 링깃화를 팔고, 달러를 사들여야 하는데, 아예 디폴트 선언을 한 것이다.
달러를 중앙은행에서 금리를 무려 49%까지 올린 후, 아예 달러를 안 바꿔줬다.
결국 국제투기세력의 공격은 막아냈지만 수출입 달러 거래가 막혀버렸다.
"말레이시아 경제가 박살이 날거야."
"인도네시아는 태국처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에런의 말에 솔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타깃은 어디로 할까요?"
에런의 말에 솔라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시아 여러 국가가 그들의 타깃이었다.
잠시 한국을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금융개방이 부분적으로만 이뤄져 있어서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처럼은 하기 어려웠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솔라스가 말했다.
"일본은 어떨까?"
"일본요?"
에런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방법이 있을까요? 그래도 경제 규모가 2위인 국가입니다."
에런은 말레이시아처럼 실패할 것을 우려했다.
"얼마 전에 기가 막힌 방법을 제시해준 친구가 있어."
"……?"
"모레 그 친구를 만나 볼 거야. 그 후에 결정하도록 하지."
솔로스의 말에 에런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홍콩.
강혁의 전용기가 그 미끈한 동체를 홍콩 공항에 안착했다.
한국에서 홍콩까지 한두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강혁과 안젤라는 솔라스와의 약속 시간 전까지 홍콩 시내를 거닐며 휴가를 즐겼다.
거리에는 다양한 길거리 음식이 있었다.
둘은 가이단자이를 사서 나누어 먹었다.
가이단자이는 메추리알 크기만 한 빵이 알알이 붙어 있어서 길을 걸으면서 먹기 좋았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이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었다.
"혁,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어."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 격 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뭔데 안젤라?"
"혁은 왜 큰 기업을 운영하면서 경찰이 된 거야?"
그녀가 한국에 와서 깜짝 놀란 일 중의 하나였다.
설마 강혁이 경찰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음, 글쎄. 왜 경찰이 되었을까?"
강혁은 가이단자이 하나를 떼서 입에 넣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강혁이 안젤라를 바라보았다.
"확실한 건 난 경찰로서 사람들을 도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거야."
"그래?"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거리를 걸었다.
"이전에 난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
거리를 걸으며, 강혁은 안젤라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
"…안젤라."
두 사람의 걸어가는 방향에서 앞쪽에 인파가 갑자기 소란스러웠다.
둘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무슨 일이지?"
인파가 갈라지며 한 사내가 달려 나왔다.
사내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고, 그 뒤를 홍콩 경찰인 듯한 사내가 쫓고 있었다.
"아앗, 살려줘요."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조용히 해!"
도망치던 사내가 궁지에 몰리자 관광객을 잡아 총으로 위협한 것이다.
"꼼작 마. 마오."
뒤를 쫓던 경찰이 남자를 향해 총을 겨누며 외쳤다.
주위의 인파가 모두 바닥에 엎드렸다.
강혁도 안젤라를 감싸 안으며 바닥에 몸을 숙였다.
"혁, 어떻게 해?"
"쉿, 안젤라. 조용. 일단 지켜보자."
인질을 잡은 사내와 형사가 옥신각신했다.
그러다 사내가 허공을 향해 총을 쏜 후 다시 인질을 향해 겨누었다.
"당장 총을 내려놔! 안 그러며 이 여자는 죽어!"
"알았어. 진정해"
홍콩 경찰이 총을 내려놓는 포즈를 취하며 천천히 몸을 아래로 낮추었다.
그때였다.
사내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끄―웃!"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사내의 손에서 권총이 땅에 떨어졌고, 손등에는 카드 하나가 꽂혀 있었다.
인질은 그 사이 사내의 품에서 벗어나 달아났다.
'고수다!'
홍콩 경찰 소건은 손등에 꽂힌 카드를 보고 누군가가 자신을 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들어! 마오!"
"제…젠장!"
소건은 마오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며 카드가 날아왔던 방향을 살폈다.
하지만 소건이 살펴본 방향에는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몸을 붙이고 있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누구였을까?"
소건은 어느새 사라진 정체불명의 사람에 대해 의아해했다.
카드를 날려 사람의 손등에 꽂았다는 것은 상대가 고수라는 뜻이다.
정체불명의 고수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당장 마오를 경찰서로 데리고 가서 심문을 해야 했다.
"가자, 마오."
소건은 수갑을 채운 마오를 끌고 자신의 차로 향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야? 혁."
안젤라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눈앞에서 강혁이 품속에 손을 넣는 것을 보았다 싶은 순간, 사내의 손등에 카드가 꽂혀 있었다.
눈 깜박할 시간에 이루어 진 일이었다.
"별거 아냐."
"별거 아니긴. 난 정말 깜짝 놀랐다니깐."
"그래?"
강혁은 품속에서 한 벌의 카드를 꺼내어 안젤라에게 건넸다.